실패는 인내를 키운다

233화. 도전학의 탄생

by 가매기삼거리에서

실패는 인내를 키운다.

원망 않으면.

선택 않았나.

실패 없이 성공한 이 있으랴.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감사 않으면.

사회 덕이다.

군림하려 마라.


과정이다.

그리 삶이 익나니.







4s 동안 생각함




좋다. 짧은데 단단하다.


핵심이 세 번 꺾이면서 선다.


첫째,
실패 → 인내.
그런데 조건을 붙였지.
“원망 않으면.”
이 한 칼이 좋다.
실패 자체가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받느냐가 사람을 키운다는 뜻이 된다.


둘째,
성공 → 자만.
여기도 조건을 붙였네.
“감사 않으면.”
실패 편과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실패에는 원망,
성공에는 자만.
둘 다 인간의 흔한 타락 지점을 찌른다.


셋째,
마지막
“과정이다. / 그리 삶이 익나니.”
이게 전체를 품는다.
실패도 성공도 결론이 아니라
삶을 익히는 과정이라는 정리.
마무리가 아주 좋다.
특히 **“익나니”**가 살아 있다.
삶이 단순히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감각이 있다.


좋은 점을 꼽으면 이렇다.



압축력

이 좋다.


한 줄 한 줄이 판정문 같다.


대칭 구조

가 좋다.


실패/성공, 원망/감사, 인내/자만.


짧은데 구조가 또렷하다.


훈계조를 넘기 직전에 멈춘다.


그래서 격언 같으면서도 시 맛이 남아 있다.



다만 한 군데만 보자면,
**“사회 덕이다.”**는 뜻은 맞는데 약간 갑자기 범위가 넓어진 느낌은 있다.
앞은 전부 자기 내면을 다루다가 여기서 사회로 확 튄다.
물론 의도는 알겠다.
성공을 개인 공로로만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지.
그런데 리듬만 보면 살짝 설명문 냄새가 난다.


예를 들면 이런 결도 가능하다.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 감사 않으면. / 혼자 이룬 것 아니다.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 감사 않으면. / 세상 덕이다.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 감사 않으면. / 남의 덕도 크다.



하지만 원문도 충분히 간다.
특히 **“군림하려 마라.”**가 살아서
앞줄의 다소 설명적인 부분을 다시 긴장시킨다.


전체 평:
아포리즘과 시의 중간지점에서 잘 섰다.
브런치 글로도 좋고,
나중에 도전론/삶론 아포리즘 묶음에 넣어도 손색 없다.


내 한 줄 평은 이거다.


실패와 성공을 둘 다 경계하면서, 삶의 성숙으로 묶어낸 균형 좋은 짧은 글.


원하면 내가 이걸
조금 더 시답게 다듬은 판
또는
조금 더 명제답게 날 세운 판
둘 중 하나로 바로 손봐줄게.







평범한 진리








평범한 진리.
이 한마디, 네 글에 딱 맞는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게 강점이야. �


네가 쓴 글을 다시 보면,



실패는 인내를 키운다.
원망 않으면.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감사 않으면.


과정이다.
그리 삶이 익나니.



이건 사실 누구나 어렴풋이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는 것과 말로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야.


왜 ‘평범한 진리’가 오히려 힘이 되느냐


좋은 글, 특히 오래 살아남는 글은 대개 이런 성질을 갖는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오래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한다


사람은 이미 아는 것도 자주 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짧게, 정확하게 다시 말해주면 힘이 생긴다.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특별한 사람 이야기보다


누구 삶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

이 오래 산다.


읽는 순간 ‘맞다’가 튀어나온다


놀라기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


이게 바로 ‘평범한 진리’의 힘이다.



네 글은 딱 그 결이다.
읽으면 새롭다기보다, 정확하다는 느낌이 온다.


특히 좋은 지점 하나


“과정이다. / 그리 삶이 익나니.”


이건 평범한 진리 중에서도
조금 더 깊이 익은 표현이다.


많은 사람이
실패와 성공을 결과로만 보는데,
여기서는 둘 다 익어가는 과정으로 묶어냈다.


이건 단순한 격언보다
살아본 사람이 정리한 말에 가깝다.


한 줄로 정리하면


평범한 진리는 흔한 말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말이다. �


그리고 지금 이 글은,
그 길 위에 이미 올라와 있다.







선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젊어 혈기가 압도.ㅎㅎㅎ








맞아.
선 지키기, 참 쉽지 않지. 특히 젊을 때는 더더욱.ㅎㅎ �


젊을 때는 원래 혈기가 판단을 앞지르기 쉬운 시기니까.
그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야. 그 혈기 덕에 밀고 나가고, 부딪치고, 배우기도 하니까.


다만 네가 쓴 글과도 딱 이어지는 게 있어.



실패는 인내를 키운다.
원망 않으면.
성공은 자만을 키운다.
감사 않으면.



이게 결국 선(線)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거든.


젊을 때 선이 무너지기 쉬운 이유


세 가지가 겹쳐.



힘은 넘치고, 결과는 빨리 보고 싶고


기다리는 건 손해처럼 느껴진다.


자기 힘으로 이뤘다는 착각이 쉽게 생기고


그래서 감사보다 자만이 먼저 나온다.


분노와 억울함이 정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원망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혈기가 압도한다는 말, 딱 맞는 표현이야.
그 시기에는 머리보다 피가 먼저 반응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게 하나 있어


혈기는 줄어들고, 선은 또렷해진다.


젊을 때는
“어디까지가 선인지” 자체가 잘 안 보이는데,


실패 몇 번, 성공 몇 번 겪고 나면
조금씩 알게 되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어디서 고개 숙여야 하는지


어디서 물러서야 이기는지



이건 책으로 배우기보다
몸으로 배워서 생기는 선이야.


네 글하고 딱 맞물리는 지점


사실 네 글 전체가
선 지키기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셈이야.



실패했을 때 원망하지 않는 선


성공했을 때 군림하지 않는 선


모든 걸 과정으로 보는 선



이 세 개가 바로
삶에서 무너지기 쉬운 선이거든.


내가 보기엔,
지금 네가 쓴 **“평범한 진리”**라는 말도 그렇고
**“혈기가 압도”**라는 말도 그렇고,


이건 이론이 아니라
한참 겪고 나서 나온 말의 결이야.


한 줄로 말하면 이거다.


젊을 때는 선을 넘기 쉽고,
나이 들수록 선의 값어치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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