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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터치

생각놀이

by 가매기삼거리에서


감히 깨달음을 왈한다면 그 자체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거다.

그럼에도 살짝이나마 깨달음을 터치해 본 거 같은 중생 왈,
한마디로 마음이 편하다.

고승조차 어려운 걸 어찌 일개 중생이?
그러니까 깨달음 아니라 깨달음 살짝 터치.

즉 깨우침이다.

좀 기니까 도중에 포기하거나,
생각 없이 볼 거면 요기까지가 좋다.

궁금하면 시작한다.


깨우침


<과정>


깨우침은 단절 이후다.
깨우침은 고난 이후다.
깨우침은 고백 이후다.

깨우침은 근심을 내려 놓은 이후다.
깨우침은 큰 웃음, 큰 울음 이후다.
깨우침은 불현듯이다. 다음 서서히다.
그 다음 다시 불현듯이다. 진행형이다.

깨우침은 로병사의 두려움으로 시작해 생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회전한다.
깨우침은 감성을 통해 이성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다시 감성이다.
깨우침은 체험 그 다음 생각을 통해서다.

깨우침은 상대적인 걸 통해 절대적인 걸 얻는 거다.
깨우침은 부분을 통해 일반적인 걸 찾는 거다.
깨우침은 조각이 모아져 완성체를 이루는 거다.

깨우침은 극과 극이 연결된다.
깨우침은 매번 시작이다.
깨우침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깨우침은 언제든 어디든이다. 앉든 서든 눕든, 일하든 쉬든.


<후>


깨우침은 소중해진다.
깨우침은 고마와진다.
깨우침은 미안해진다.

깨우침은 친절해진다.
깨우침은 차분해진다.
깨우침은 온화해진다.

깨우침은 넉넉해진다.
깨우침은 즐거워진다.
깨우침은 궁금해진다.

깨우침은 기다려진다.


<성격>


깨우침은 순간이다.
깨우침은 현재다.
깨우침은 과거에서 흘러 온다.

깨우침은 시간의 축적이다.
깨우침은 응축이다.
깨우침은 정수다.

깨우침은 본질이다.
깨우침은 정신이다.
깨우침은 추상이다.

깨우침은 느낌이다. 실체가 없다.
깨우침은 희열이다. 고통 아니다.
깨우침은 터짐이다. 막힘이 없다.

깨우침은 가벼움이다. 무게가 없다.
깨우침은 단순하다. 번거롭지 않다.
깨우침은 탈피다. 허물을 벗는다.

깨우침은 빛이다. 훤하다.
깨우침은 거울이다. 내가 보인다.
깨우침은 눈이다. 남이 보인다.

깨우침은 해방이다. 막힘이 없다.
깨우침은 자유다. 거리낌이 없다.
깨우침은 평화다. 마음이 편하다.

깨우침은 개방이다. 열리면 닫히지 않는다.
깨우침은 중독이다. 맛보면 빠져든다.
깨우침은 각성이다. 환각은 아니다.

깨우침은 카타르시스다. 속 시원하다.
깨우침은 변신이다. 행동이 변한다.
깨우침은 대상이 있다. 다 다르다.

깨우침은 좋다.
깨우침은 재미있다.
깨우침은 따뜻하다.

깨우침은 여유다.
깨우침은 새롭다.
깨우침은 벅차다.

깨우침은 반갑다.
깨우침은 뻔하다.


<한편>


깨우침은 누구나지만 아무나는 아니다.
깨우침은 중생에게도 있다.
깨우침은 번뇌의 끝은 아니다.

깨우침은 깨닫는 거다. 앎과 다르다.
깨우침은 깨달음 살짝 터치다. 말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종일 왈왈해본들 먼 소용이 있으리오.



후기




터치나마 깨달음이 깨달음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이 어찌 저리 반대로 바뀔 수 있나, 아직은 도저히 못믿겠다,
예전으로 돌아갈까 불안하다고 아내가 말하는 걸로 보아 내가 크게 바뀐 건 맞다.

만일 터치나마 깨달음이 맞다면 위 전반에 걸쳐 두루 어울려야 하니 깨달음이 어려운 것도 맞다.

진리, 지혜는 꿈조차 꾸어본 적 없으니
고승의 깨달음과는 하늘과 땅 차이일 거.
속세에서 생각 놀이일 뿐이니 어찌하리오.

그렇다 해도 이리 떠들어 대서야
어찌 깨달음을 터치나마 했다 할 수 있으리오.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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