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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25. 2020

회피가 사망을 낳는다

실전 비지니스


92년 영업 처음 할 때.
그니까 만 31살 때.


봉고차 기사가 과장 지시로 영업 겸하게 됨. 평소 가벼운 음주 운전.
오후에 춘천 배송 간다길래 화장품 실어주고 걱정돼서 술 절대 먹지 말라고, 혹시 술 먹게되면 꼭 자고 오라고 신신당부. 난 대리고 나와 기사는 과장 직속 부하 직원. 퇴근 전 전화했더니 일보는 중이고 술 안 먹고 출발한다고. 대리점 사장 바꿔 달라해 절대 기사에게 술 먹이지 말라고 당부.
퇴근해 가매기 삼거리 집에서 곤히 잠든다.


"따르릉"


전화벨.

 켜고 벽에 뻐꾸기시계 보니 새벽 1시.


"에이, 조졌다."

하고 전화 받으니 춘천경찰서라고.


경찰서?

섬뜩.


누구가 엘지 직원 맞냐고.

맞다 하니까 죽었다고.


에이, 씨발. 불길한 예감은 꼭 맞는건가.




ㅡㅡㅡ




사망 사고의 경위



새벽에 난리가 났다. 과장에게 전화 보고하자마자 내 차로 원주 출발, 춘천 외곽 동산병원인가 시신 확인하니 두개골 이마쪽이 평평하게 함몰. 경찰에게 들으니 택시 기사가 목격자고 언덕에서 추월하다가 사고난 거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고.


사고 현장 가보니 원창고개 오르막 중간쯤. 후라쉬 켜고 살펴본다. 차 조수석이 도로 바로 옆 콘크리트 전봇대를 들이박은 채로 움푹 패임. 거기서 10여 미터 조금 안 되게 도로 중앙 아스팔트 위에 넓게 퍼진 피자국. 대리점 사장에게 전화해 물으니 영업 담당 첫 방문이라 룸싸롱 갔고 양주 세 병 중 기사가 두 병 먹었다고. 자고 가라고 붙들었는데 원주 집에 가야 한다며 출발했다고.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이렇게 된 거.


1.대리점 도착해 봉고차에서 제품 내리고

2.사장이 처음 영업 담당된 기사에게 술 접대

3.새벽 12시 50분경 출발


4.앞선 택시를 추월할 만한 직선주로가 원창고개 오르막길. 거기서 악세레타 있는대로 밟고 추월. 고개 입구서 꼭대기의 중간 지점

5.한겨울이라 노변에 밀쳐둔 눈에 왼쪽 바퀴가 얹히면서 차가 미끄러짐.

6.전봇대에 조수석 충돌


7.운전자가 안전벨트를 안 매서 미사일처럼 몸이 일직선으로 펴진 상태로 10여 미터 날아가 아스팔트 도로 가운데에 이마 윗쪽 오른쪽 부분을 찧으면서 즉사.





ㅡㅡㅡ




새로운 업무 지침



원래


영업직과 운전직은 분리.

영업직은 대졸, 영업 전문. 대리점 관리. 술을 많이 먹는다.

운전직은 고졸, 운전 전문. 음주 운전 절대 금지.



본사  지침

 

영업 사원 1명의 관리 대리점 수 셋이다. 최대 넷으로 한다. 초과시 영업 과장이 담당한다.


우리 영업소는 과장 1명, 영업사원 나 포함 2명, 운전직 1명.

나는 영서지역 대리점 5개를 맡고 있었다. 다른 영업사원은 영동지역 대리점 넷. 새 지침 후 영서에 대리점이 하나 늘었다. 그게 춘천 위탁대리점.


과장이 나보고 춘위대를 맡으란다. 정중히 거절. 이미 과다이고 새 지침이 있기에.

당연히 과장 업무기에.


과장은 춘위대의 영업 업무를 봉고차 기사에게 맡겼다. 떠넘긴 거.

기사는 과장이 영업을 시키니 할 수밖에. 지방에서 기사 채용과 해고는 과장 맘대로니까.


걱정된다.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기사에게 시키는 거니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절대 술 먹지 마라, 혹시 먹게 되면 절대 운전대  잡지말고 자고 오라고 신신당부.




ㅡㅡㅡ




갈등



본사로 올릴 경위서는 내가 파악한대로 사실대로 작성하면 그뿐.

허나 만취 운전은?회사가 보상을 안 할 수도 있는데?줄이거나. 부인과 어린 아들 가족이 있는데.


그전에 과장이 기사에게 영업을 시킨 거는?

영업이 아니면 대리점 사장이 기사에게 술 살 일이 없는데? 술 먹을 일이 없는데?

경위서를 과장이 결재하는데?근원이 과장 잘못인 걸 써야하는데?


과장은 사업부 모든 상급자에게 이미 찍혔었다. 부장과 과장 둘이 미팅 중 과장이 열받아서 앞에 놓인 유리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친 거. 와장창 깨지면서 손에서 피가 터져 줄줄. 사무실에 있던 전직원  목격. 사업부 전체에 퍼졌고 그날로 직장 생활 끝인 상태. 그래서 과장 진급도 늦게.


그런 인 걸 뻔히 아는데 본인 업무를 기사에게 떠넘겨 사망 사고까지 이른 걸 어떻게 경위서에 쓰나? 까발리는 건데.




ㅡㅡㅡ




죄책감



음주는 교통 사고 사망이기에 어차피 드러난다. 굳이 내가 다 밝힐 필요는 없다.

최대한 줄여서 술 먹었다고만 기술.

과장 업무를 기사에게 떠넘긴 건 어차피 과장이 결재 안 할 거니 뺀다.

나머지는 사실대로 작성.

직원 사망 사고니 경위서 당장 올리라고 재촉.

그렇게 급히 본사로 경위서가 올라갔다.


헌데, 고민 계속.

그럼 술 먹고 운전이니까 기사 본인 잘못.

그럼 귀책 사유로 보상금 못 받거나, 덜 줄톈데, 가족이 있는데.

이틀 밤잠을 설치다가 이건 아니다라고 결론내고 본사에 전화해서 구두로 사실대로 보고. 최근 과장이 영업 업무를 기사에게 맡겼고 영업 업무의 일환으로 술 먹은 거다, 음주를 귀책 삼아 퇴직금, 보상금을 줄이면 절대 안 된다고. 부인, 어린 아들 대책이 없다고.




ㅡㅡㅡ




하관



장례식은 무사히 치뤄졌다. 30대 초 부인은 넋을 잃었다. 취학 전 어린 아들은 집에 사람들이 연일 북적이니 신이 났다.

녀석은 장지에 가서도 모처럼 산. 기분이 여전히 좋다.


미리 땅에 파놓은 커다란 구멍에 관을 내린다. 부인과 아들이 차례로 관 위로 흙을 한 줌씩 뿌린다. 그리고 나서 여럿이 삽으로 흙을 관 위로 덮는다.

이때다.


"안돼요. 흙 뿌리지 마요. 우리 아부지 숨 못 쉬어요."


울부짖는 소리.


지켜보다가 땅 구덩이로 달려와 삽에 가득 담긴 흙을 관으로  던지온몸으로 막아선다. 녀석은 죽음은 몰랐어도 숨 못 쉬면 아부지가 죽는다는 건 아는 거였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 하고 고개를 돌린다.




ㅡㅡㅡ




보상



삼성생명에서 사무실로 찾아왔다. 일주일 전에 보험 가입하면서 첫 회분 보험료 납입하고 사망했으니 보험회사도 놀랄 수밖에. 자살이 아닌지 의심했으나 내가 명백한 사고사임을 설명. 생명보험은 음주 여부와 상관 없다.

보상금 3억원 지급.


회사서 나온 돈은 정확히는 모른다.  알아본 바로는 얼마 안되는 퇴직금에다 보상금, 위로금까지 합쳐서 5천만 원은 넘고 일억 원은 조금 모자라는 정도.


당시 원주 현대아파트 23평 분양가가 45백만 원 정도니 남은 가족에 대한 대책은 세워 놓고 가신 거다.


이때부터다. 

새벽에 오는 전화는 두렵다.


이때다.

관리자의 직무 회피가 직원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뼈에 각인한 게.




2020.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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