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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Oct 05. 2020

군 사회 폭력은 기생충처럼

책머리 - 군 사회 폭력은 기생충처럼


군이건 사회건 폭력의 본질은 같다. 80년대 군을 통해 폭력의 본질과 폐해를 생생하게 파헤쳐 본다. 


군의 폭력은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군과 사회를 폭력의 사슬이 단단히 얽어매고 있었다. 오늘날 군에서 폭력이 거의 사라졌지만 사회에서 폭력의 잔재는 여전하다. 곳곳에서 폭력이 기생한다. 폭력은 마약과 같아서 배우는 건 순간이고 근절은 쉽지 않다. 


80년대 군을 들여다보자. 신성한 국방 의무라고? 군가 진짜 사나이처럼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가 결코 아니었다. 폭력이 칼춤 춘다. 사회에서 멀쩡한 청년들이 군에 가서 맞아 죽고 병신 된다. 잘해봤자 영혼을 강탈당해 바보 될 뿐. 폭력은 먹이 사슬이다. 군 수뇌부터 의지가 없기 때문.


38년 전. 한 청년이 폭력의 쓰레기 더미에서 작은 변화와 희망의 촛불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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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력은 살인을 부른다.    


철책을 사이에 두고 적과 마주 보는 지오피에선 실탄, 수류탄을 병사에게 지급한다. 침투하는 적을 괴멸하고 방어하라고. 헌데 자신과 전우를 겨누어 총을 갈기고 수류탄을 던진다. 대개 여자 문제나 가정 문제 둘 중 하나다.    

구타가 뇌관이 된다. 


지오피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산봉우리에서 소대 단위로 생활하며 외출도 면회도 안 되는 고립된 지역이다. 순번이 정해진 휴가는 복무 기간 중 15일씩 세 번이어서 한 번 다녀오면 다음 휴가는 일 년을 기다리는 감옥 같은 곳이다. 중대한 개인 사정이 있으면 긴밀히 상담하고 품어줘도 부족한데 허구한 날 조팬다.


어떤 녀석은 사랑하는 여자가 느닷없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 휴가 전에는 놈팽이가 누구인지, 선을 넘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휴가 가봤자 갈 데까지 간 걸 확인할 뿐이다. 부대로 복귀하면 발가벗은 연놈이 뒹구는 모습이 아른거려 눈깔이 뒤집힌다. 그래도 매일 초소에 이인 일조로 야간 경계근무에 투입되는 건 거를 수 없다. 사정을 말할 기분이 아니고 그럴 만한 상대도 아닌 고참은 밤새 우두커니 보초 서기가 지겨우니까 애인 벌써 얘기한 거 또 하고 또 하라고 시킨다. 안 따르면 기합 주고 그래도 안 하면 매로 족친다.


다른 녀석은 집안이 파산해 풍비박산이라 휴가 나가 봐야 한숨뿐이고 제대해도 희망이 절벽이다. 그래도 서열 중간으로서 소대의 군기를 담당하는 사 인조 네 명의 식기 당번은 개인 사정 구분 없이 사흘이 멀다 하고 집합시켜 조진다. 식기 당번은 그 위 고참이, 그 고참은 또 그 위 고참이 조진다. 굴비 다발,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 있다. 재수 없으면 병장 되어서도 고참이 수두룩해서 제대 전까지 기를 못 편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지는 전우인 줄 알았는데 구타와 구타 속에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철천지 원수가 된다.


'에이 씨팔, 이렇게 살면 뭐하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고 희망이 없는 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총 세워 턱 밑에 대고 방아쇠 당기면 그나마 양반이다. 때린 놈 겨냥해서 쏴 죽이고 지도 같이 죽으면 성깔 좀 있는 거고, 다 뒤지라고 내무반서 무차별 난사하거나 수류탄 까서 던지는 건 헤까닥 한 거다. 잊을 만하면 예서 탕 자살했다, 제서 탕탕 죽이고서 지도 죽었다는 말이 들린다. 사단 경계인 바로 옆 소초에서는 내무반에 수류탄 까 넣어 쾅 터뜨리고 소총을 자동으로 돌리고 드르륵 갈겨 다섯인가 죽였다. 사나이로 태어나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산다는 군대에서 허망하게 죽는다.    


조직적, 일상적, 습관적, 악질적인 구타에 비추면 지오피 모든 소초, 초소마다 총기 사고가 매달 한두 번씩 일어나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이런 상황을 직접 겪었거나 들어서 아는 부모는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기는커녕 제발 몸만 다치지 않고 집에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빈다. 자식 군대 보낸 게 자랑 아닌 죄가 된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어서 돈 있고 빽 있는 부모는 자식 군대 안 보낸 게 능력이 된다.    


2. 폭력은 영혼을 핍박한다.     


구타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을 구타한다. 구타에 굴복했다는 자괴감은 자존감을 능욕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실종되고 오직 채찍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서커스의 동물로 전락한다. 동물이 되기 싫어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육신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수한 영혼도 있다.    


3. 폭력은 비겁함이다.    


용렬한 자가 구타한다. 정당하지 않으니 구타에 기대는 거고, 겁박하려 구타를 동원하는 거다.   


4. 폭력은 대물림한다.    


구타는 창군 이래 없어진 적이 없다. 훈련소에 입소하면서부터 조교에게 맞으면서 구타를 몸으로 배우고, 자대 가서 고참한테 터지면서 익히고, 제대하기 전에 받은 만큼 학습한 대로 쫄따구에게 앙갚음한다. 구타의 악순환이다.    


군에서 구타로 죽은 자는 수없이 많다. 알려지는 건 빙산의 일각. 철저히 은폐한다. 뇌가 깨지고 피를 쏟아도 병원마저 보내지 않는다. 그러면 드러나니까. 병원에 보내져 죽어도 부모 형제는 구타가 원인이란 걸 알 수 없다. 사인에 구타사란 없으니까. 군 병원도 한통속이니까.   


군에선 명령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정당하다면. 명령 불복종은 영창 가고, 전시에는 최고 즉결 처형일 만큼 군법은 엄격하다. 육군 참모총장은 일반 명령 제37호로 구타하지 말라 한다. 그 명령은 수시로 떨어지고 그때마다 바로잡기를 청하여 적어내는 소원수리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구타가 없어진 적은 없다.


군 수뇌부터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의지는커녕 구타를 악용한다. 진급에 목숨 걸고, 진급엔 사고가 쥐약이니 사고는 철저히 은폐한다. 은폐에는 입막음이, 입막음에는 공포가, 공포에는 구타만 한 게 없으니까. 수없이 반복되는 일반 명령 37호 구타 금지가 씨도 안 먹히는 근원은 직업 군인 진급의 먹이 사슬에 있다. 사슬의 고리를 구타가 단단히 얽어 매고 있는 것이다.     


하급자에 대한 구타는 때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하급자에게 구타, 동료에게 선심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위로 대드는 자가 있다. 무자비한 폭력에 길들여진 조직은 당장의 매가 두렵지 나중의 군법은 남의 일이다.


최대 최악은 군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 즉 쿠데타다. 그리곤 국민을 구타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강제 징집해 군에 가두어 패고, 정보기관에 끌고 가 밀실에서 고문하고, 종내는 백주 대낮에 시민에게 무차별 총질해 살상한다. 심지어 어린 학생, 임산부까지.


구타로 지탱하는 군은 명이 서는 군을 이길 수 없다. 명을 세우는 제일의 순서는 구타를 포함하는 모든 폭력의 금지이다. 언어폭력, 성폭력, 동성 폭력...   


이러하니 나는 폭력을 극히 혐오한다. 




'진짜 사나이'에서.





* 책의 모든 글은 허구 아닌 사실 기록입니다. 38여 년 전 기억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의도한 건 아닙니다.



군 사회 폭력은 기생충처럼



목차



챕터 1. 책머리 - 군 사회 폭력은 기생충처럼

챕터 2. 망군

챕터 3. 희망을 부여안고

챕터 4. 강제 징집 -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

챕터 5. 책꼬리- 작가 소개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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