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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May 29. 2022

빠이로뜨 만년필

응답하라 1968


ㅡ 죽음을 예감한 노인에게는 기억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ㅡ



문구점 하는 분이다. 70대쯤. 어제 안내문 코팅하러 처음 들른 곳.  가게가 눈에 띄게 허름해 물으니 1980년에 현 자리서 개업했다고, 40여년 됐다고. 원주고등학교 담장 너머 건빵 공장을 기억한다. 빵 굽는 냄새가 구수했다하고, 사춘기였던 나는 공장서 일하는 이쁜 아가씨를 보았다 하고. 원주 분이냐니까 횡성. 대한민국 대표 깡촌에서 원주 대도시 남부시장 사거리에 목자리 차지했으니 성공하신 거라 농하니 대성고 이전하기 전에는 장사가 최고 잘됐다며 웃는다. 다리 절어 언제 그리 되셨냐 조심스레 여쭈니 두 살 때 소아마비. 장애인에겐 참 못돼먹은 시절을 이겨내신 거라고 늦으나마 공감하고 격려한다.


더 오랜 노포로 학성국민학교 기찻길 옆 이발소가 60년대 개업해 아직 영업 중이라고, 주인 아저씨가 군 제대해 개업해 지금 70대 노인이라고, 꼬맹이 내 머리 깎아주신 분이라서 반가워 안아드렸다고, 거기 옛 액자 사진이 여즉 그대로 있다고, 그중 아이 둘이 뽀뽀하는 사진 찍어둔 거 찾아서 보여주니 대번에 알아챈다. 60대와 70대가 초면임에도 60, 70, 80년대 추억으로 금새 친해진다. 내가 옛것에 관심이 많으니까 벽 진열대 구석 구석 한참을 눈으로 뒤지더니 뭔가 꺼내어 보여준다.


빠이로뜨 만년필!


이런 걸 아직 가지고 있냐며 좋아라 하니까 정리하기 싫어해서 그런 거라며 다시 매의 눈으로 정밀 탐색.


파이로뜨 잉크!


옛날 잉크병을 다시 보다니. 뚜껑을 여니 잉크물도 멀쩡. 빠이로뜨니까 구색을 갖추어 꺼낸 거. 이어서 그 시절 연필 깎는 칼, 포카 카드 이건 잘 모르겠고. 하나같이 가게에서 주인과 함께 세월을 묵힌 것들이다. 혹시 싶어 계산할까요 물으니 역시나 그냥 가져가란다. 40년 문구점에 처음 보는 이에게 이런 한 선물은 처음일 지 모른다. 나로선 이천 원어치 코팅하러 갔다가 친구 사귀고 이백만 원 가치의 귀한 선물까지. 중학교 입학 때쯤이었으리라. 부모님이 선물 했던 걸 반세기만에 다시 선물 받았다.


빠이로트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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