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말

by 가매기삼거리에서

7년전 엄마가 가셨어요.


염할 때 신을 칭칭 동여매고 나면 영영 얼굴 못 보고 살도 만지지 못 하잖아요. 그래서 엄마 얼굴에 내 얼굴 부비며 엄마 손을 부여잡고 엄마, 엄마, 엄마 건물이 울리도록 소리쳐 불렀어요. 한참을 지켜보던 장의사가 반평생 염을 했어도 이리 슬피 우는 건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속으로 엥, 그 정도라고? 허긴 환갑에 다가서는 나이에 제수씨, 동생들, 조카들 지켜보니까 저도 망설이긴 했지요. 근데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이 저를 미치게 했어요. 이제 다신 얼굴 보며 부를 수 없잖아요. 엄마라는 그 말. 철들어 어머니 말고 나 어렸을 적 엄마. 우리 엄마. 나를 위해 모든 걸 바친 내 엄마. 한 번이라도 더 부르고 한 번이라도 더 만져야 했어요.


몇 년 지나 엄마가 사준 걸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면,


"엄마가 최고지? 나도 엄마가 있었단다."


엄마.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말입니다.




ㅡㅡㅡㅡㅡ ㅇ ㅡㅡㅡㅡㅡ




10년전.



"엄마, 잠깐만. 좀 쉬었다 갈께."


홍천 국도 도로변에 차를 세운다. 엄마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하고 나 혼자 내린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는다.


엄마는 모처럼 큰아들과 둘이 하는 드라이브에 하냥 설렜다. 엄마는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줄 안다. 큰아들이 엄마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킨다는 건 꿈에도 모른다. 엄마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키다니. 눈물이 흐르고 감정이 받쳐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차를 세웠던 거. 국립춘천병원 가는 길이다.


"안 되겠어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 받아야 합니다. 상태가 매우 안 좋아요."


일주일 전. 원주의료원 근처 정신과의원. 여의사가 엄마를 진찰하고 나서 나를 부르더니 이런다. 정신병원은 엄마도 나도 처음이었다. 의사는 보호자인 나를 먼저 보잔다. A4 용지에 미리 작성해 둔 엄마의 증상을 보여준다. 그다음 엄마만 따로 진료.

의사는 약을 먹으라 했고 엄마는 강하게 반발.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냐면서.


"엄마. 아침에는 밭일 괜찮은데 낮에는 나가면 안 돼. 해가 너무 뜨거워. 열사병 걸려. 아무도 없는 데서 쓰러지면 죽어."


한여름이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늘 걱정이었다.




ㅡㅡㅡㅡㅡ ㅇ ㅡㅡㅡㅡㅡ




15년전.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 이사를 가야했다. 엄마가 안 간다고. 혼자 산다고. 어쩔 수 없이 동생 가족이 큰집인 내 아파트 32평으로 이사 오고 엄마는 23평 동생 아파트로 가고.


이때부터다. 저장강박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 간섭하는 내가 없으니 마음 놓고 물품들을 집안에 들인다. 방 둘 다 채운다. 거실, 앞 뒤 베란다, 화장실. 의류, 박스, 프라스틱 용기류, 우산 등 사람이 만든 거라면 무엇이든. 덩치가 크거나 무거워 노인이 들 수 없는 가구나 가전제품만 빼고. 나중엔 음식물 쓰레기까지.


어머니 집에 몰래 마지막으로 점검했던 날. 현관 도어를 손으로 벅차 어깨로 미니 내 몸 하나 간신히 받아줄 틈만 열린다. 문뒤까지 쌓았기 때문. 둘러 보는데 원래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고 허리춤 높이다. 눈에 띄는 건 프라스틱 용기류는 화장실, 주방용품은 주방에 주변에 두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건 방과 거실에 가구류. 그 앞에 가득 쌓아 아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고 의류는 보이질 않는다. 언뜻 마구잡이 같아도 분류한 것이다. 음식물은 주방괴 냉장고 사이에 두었다. 말라 비틀어진 거, 허옇게 곰팡이 핀 거, 까만 봉지들 여니 썩은 거. 팅팅 뿔어 반쯤 남은 냄비를 보니 가장 최근에 드신 거 같다. 근데 어디서 주무시지?찾아보니 1인용 온열 장판이 거실 한가운데 중간이 아래로 휘어져 있다. 물건 위로 장판을 덮고 그 위가 잠자리. 전기식이라 굽으면 화재 위험. 선이 짧아 코드는 뽑혀 있다.


어머니를 국립춘천병원에 모시고 나서 폐기 견적을 보았다. 일 다 끝내고 업자가 푸념한다. 1톤 트럭 다섯 대로 봤는데 열 대라고. 인부 셋 쓰고 손해 봤단다.




ㅡ쓰는 중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