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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콜 May 06. 2022

퀴어의 유럽 대학 생활

-  학교 편 -

# 0. 나는 유럽에서 학교를 다닌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길을 가다 보면 동성 연인이나 무지개 깃발, 퀴어에 관련된 단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퀴어를 쉽게 접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퀴어로서 당당하게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내가 이곳에서 처음 만나고 겪은 학교의 이야기, 그리고 학교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1. 신입생 환영회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나에게 대학과 LGBT+는 한 문장에 공존할 수 없는 두 단어였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입학도 하기 전부터 이 편견을 깨는 몇 가지 감동을 나에게 선사했다. 먼저 학교의 신입생 OT였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입생 OT에는 학교가 중요시하는 몇몇 가치관이 등장했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Equality라는 단어 옆의 무지개 벤치 사진이었다. 나중에 학교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Pride 행사의 모습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벤치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페인트를 칠한 것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의 배너 탭에 Gender equality가 있을 정도로 우리 학교는 Equality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 탭에는 아이가 있는 학생을 위한 등록금 및 교육 정책, 이용 가능한 유아시설 혜택에서부터 다양한 여성 프로그램 및 장학금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 올려진 구체적인 예산 내역을 살펴보면 매년 학교 예산 중 일부가 Equality에 편성되고 있었다.


개강 전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캠퍼스 투어, 동아리 소개 등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캠퍼스를 가득 채웠는데, 뜻밖의 Equality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 부스에서는 Diversity, Inclusion, Equal opportunities로 시작하는 리플렛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읽어보기도 전에 나는 부스의 존재 자체에서부터 감동을 받아버렸다.


리플렛에는 정확히 LQBT+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학교가 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해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학생 상담처와, 성소수자, 외국인 학생, 소수 종교 학생을 위주로 한 인권 문제 신고처, 젠더 기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스토킹 및 성범죄 신고처, 신체적 장애나 SLD를 가진 학생들의 교내 불편 신고처, 이렇게 총 네 가지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상담처와 신고처가 있으므로 인해 학생들은 분명 험난한 학교 생활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을 것이.  불편을 이야기할 곳이 있다는 ,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그것 겪어본 사람이면 쉽게   있다. 특히  이용 대상과 분야가 명확히 기재돼있는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 한국의 대학에도 상담처 혹은 신고처가 개설돼있지만 설명이 부족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다. 그렇다 보니 '내가 이런 문제로 상담해도 되는가?' 혹은 ' 상담이 내 문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서 사용도 전부터 망설이게 되는 현실이다.



# 2. 국내 대학에서의 퀴어


'대학에서의 퀴어'를 처음 접한 것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5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대학에서의 커밍아웃은 상상의 영역쯤에 있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레즈비언 김보미 씨가 선출되면서 그 상상은 더이상 상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다양성을 향한 하나의 움직임>을 학생회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보미씨는 출마 선언에서 커밍아웃을 하며 이런 연설을 남겼다.


 성적 지향은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레즈비언이지만, 여전히 회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며,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기를 좋아합니다.
(중략)
김보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김보미가 가진 요소 중 단지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당시 나는 우리 학교가 서울대 부럽지 않게 크고 우수하다고 생각했지만, 앞서 나가던 서울대와 달리 우리 학교는 성소수자 안건에 대해서 줄곧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성소수자 동아리는 학생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못한 채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했고(나도 4학년이 되어서야 그 존재를 알았을 정도였으니),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소통할 뿐이었다. 그것도 에브리타임과 같은 대학생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최근 세대에나 가능해진 일이지, 그전에는 사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도대체 학교에서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학교에는 퀴어에 관련된 많은 이슈들이 있다. 단순히 성소수자 동아리뿐 아니라, 해마다 찾아오는 퀴어축제에 관한 이슈도 있고, 성소수자들의 건강 상담에 관한 이슈도 있다. 이때 학교는 이러한 이슈에 대응하는 가치관을 제시함으로써 학내의 소수자들에게 일종의 Safe zone을 제공할 수 있다. 학교가 Equality를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양성을 지지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가치에 반대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학교의 온오프라인 사이트 어디서도 LGBT+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가 LGBT+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즉, 학교가 소수 학생들을 위한 Safe zone을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이란 뜻이다. 학교의 지지 없이 소수자들은 학교 내에서 아무것도 함부로 할 수 없다. 퀴어축제 주간에 천막 하나를 치는 것에도, 장애인 전용 화장실 설치를 요청하는 것에도 다른 사람과 집단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불리한 여론이나, 반대하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논란에, 심지어 이유 없는 조롱이나 멸시에 대해서 학교 안의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오히려 Safe zone이 없는 공간에서는 약자가 해명하고 사과한다. "나는 성소수자를 싫어한다"는 말 뒤에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성소수자다"라는 말에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 3. 모두의 화장실


단적인 예로 최근 성공회대학교에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하는, 성별·나이·성 정체성·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되었다. 외국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이 화장실은 '어떤 다름을 가진 사람이든 이용할 수 있다'는 가치적인 면에서 기존의 남녀공용 화장실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무려 5년의 논의 끝에 완성된 이 화장실은 준공식과 동시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불법 촬영 문제가 심각한 현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에서부터,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해야 하느냐는 불만, 논란의 핵심을 비껴가는 조롱 섞인 댓글들까지. 예상된 결과였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쉽게 판단하고 평가했다. 모든 대학 구성원을 위한다는 공간이 되려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말은 차별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뿐이다. 불법 촬영은 가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 범죄이므로, 논란의 화살은 애꿎은 화장실이 아닌 동의 없이 촬영을 하고 촬영물을 유포/소비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게 맞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화장실은 잘못이 없다. 성공회대학의 캠퍼스에는 이미 다른 화장실이 수십 개는 더 있을 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한 개 생겨난다고 해서 학생들의 없던 불편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의 원성은 이 화장실이 주는 불편한 메시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두의 화장실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화장실이 누군가에게는 차별적인 공간이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니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나를 위한 화장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대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보았을 때, 모두의 화장실의 목적은 높은 효율성이 아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차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화장실, 즉 제도의 울타리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주기 위한 화장실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겨우 한 개뿐일지라도, 모두의 화장실이 없다면 우리의 화장실은 모두를 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모두의 화장실이다.


성공회대학교의 학생회가 5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굴하지 않고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학교의 슬로건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는 한 발 앞장서서 학생들을 지켜야 한다. 여론이 어떻든, 타학교가 어떻든,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Safe zone을 표시해야 한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서 그렇다.



# D.C. al fine


그러니까 나는 지금의 우리 학교가 좋다. 학교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신입생 OT에서부터 Equality를 강조한 만큼, 우리 학교는 모든 학생들을 차별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다. 나는 매일 같이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벤치를 보며 등교하고, 모든 건물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Safe boundary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수백만 원의 장학금도, 좋은 취업환경도 아닌, 이토록 사소한 감동들이 내 애교심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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