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나에게 짜증 냈을 때 잘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날짜 : 2023년 7월 31일 (월요일)
시간 : 오전 8시 30분 ~ 오후 5시 30분
감정 : 짜증
내 마음 : 잘 해소함
오늘은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의 병원은 특히 다른 요일보다 출근 후 업무 시작 전 준비로 바쁜 날이다.
오늘은 조용한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상도 닦고 마우스와 키보드, 컴퓨터 주변 기기들에 주말 간 쌓인 먼지를 닦으며 업무는 시작됐다.
오늘의 주제인 짜증의 첫 번째 주인공은 제증명 창구를 내원하신 고객님이었다.
현재 우리 창구 파트는 제증명과 입퇴원이 같은 라인으로, 나 포함 총 세 명이 앉아있는데 그중 한 명이 병가를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 제증명을 혼자, 입퇴원을 나 혼자 업무를 보고 있다.
그런 상황에 제증명 창구 선생님이 화장실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나는 혼자 입퇴원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제증명 창구를 신경 쓸 수 없었고, 제증명 창구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고객님은 아마도 5분 정도 기다리셨을까...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 나에게 직접 오셔서 짜증 섞인 말을 뱉으셨다.
고객 : "저기요, 여기는 직원 없어요!!!!? ㅡㅡ"
나 : (시작됐구나..) 고객님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하지만 지금 제증명 창구 선생님이 급한 용무로 자리를 잠시 비우셔서 조금만 더 대기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앞에 응대하고 있는 고객님의 용무가 끝나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객 : 몇 분 째예요 지금!!! 급한 용무가 있어서 자리를 비우면 자리를 비웠다고 써놓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바로 와서 업무를 하던가 해야죠!!
나는 이분께 잠깐 응대한 뒤, 내 앞에 응대 중이었던 고객의 업무를 처리해 주느라 저 말에는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잠깐 응대를 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 효과 없이 화를 계속 내셨다. 하필이면, 내가 응대 중이었던 고객님은 처리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는 분이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응대 중인 앞에 고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분의 업무를 처리해 드리기에는 잠깐 자리를 비운 창구 선생님의 자리 비움 사유가 화장실 볼일이었기에 금방 오는 상황이었다. 그 잠깐의 순간에 정말 많은 '짜증'을 내게 내셨다.
매우 듣기 싫은 소리였지만, 고객의 일방적인 짜증은 내가 멈출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한 귀로 흘려보내기 스킬을 사용해야 한다. 이때는 오히려 내가 말대꾸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응대를 한다면 고객님의 화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고객님들은 직원들에게 짜증이 났다기보다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난 것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진정하시기를 바라며 말을 아낀다.
욕설을 뱉으시거나 하신 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가벼운 한귀 흘리기 스킬로 감정노동을 잘 해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점심시간에 잠깐 외래 접수창구에서 응대했던 고객님이다.
이분은 상해로 다른 사람에게 얼굴과 머리 쪽을 가격 당해 통증과 어지러움을 호소하여 오신 분이었다.
외상으로 인한 분명한 증상이고 특히, 어지러움을 호소하시기에 신경외과 접수를 안내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신경외과 당일 초진 접수가 마감된 상태라 접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환자분께 설명드리며 응급실 진료 또는 오후 외래 시작 시간까지 조금 기다려달라 양해를 구했다. (점심시간 중엔 외래 문의 불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즉각 돌아오는 것은 '짜증'
고객 : 아 그냥 해줘 쪼옴!!!!!!!!!!! ㅡㅡ 아파죽겠는데 언제 기다리고 있어!! 무슨 놈에 병원이 이래!
나 : (후.. 감정 잘 추스르자) 고객님 진정하시고 오후 외래 진료 시작까지 20분 정도 남았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점심시간이라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증상이 너무 심하셔서 기다리기 힘드시다면 응급실로 접수를 도와드릴까요?
고객 : 아!! 무슨 응급실이야!! 거긴 돈 많이 나오잖아! 점심시간에도 환자를 보게 해 줘야지~!!!
나 : 그렇다면, 응급실 접수는 안 하시는 거니까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오후 외래 진료 시작까지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앞쪽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저는 다음 고객님께서 기다리고 계셔서 다음 고객님 호출하겠습니다.
다음 고객을 부르고도 이분은 대기 의자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고객을 응대하는 데에도 옆에 서서 혼잣말을 중얼중얼 계속해서 하셨다. 뭐라고 하시는지는 귀로는 들렸으나 정확한 의미는 잘 들리지 않는 그런 혼잣말 말이다.
이런 막무가내 환자의 응대는 아주 쉽지만은 않다. 자칫 잘못 응대하면 환자가 더 흥분할 수도 있고 더욱 강한 아몰랑 스킬을 시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명확한 안내를 한 후 마무리지어야 한다. (대기 의자로 안 가고 계속 다른 환자 옆에서 서서 혼잣말하시던 건 좀 당혹스러웠음..)
난 과하지도 적지도 않은 필요한 만큼의 응대를 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이번 감정노동은 정신적으로 큰 타격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인공은 입원 환자 배정을 받으시던 병동 간호사 선생님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오전에 높은 강도로 노동을 한 후에 맞이한 오후는 오전과는 사뭇 다르게 지쳐있고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힘을 내려 노력하지만 힘이 안나는 상태랄까..
오전 내내 입원 환자를 받으신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 : 네, 선생님 원무팀입니다. 몇 호로 무슨 과 남자 외래 환자분 한 분 병실 배정 부탁드립니다.
병동 간호사 선생님 : 저희밖에 없어요? (짜증 섞인 말투)
나 : 선생님 오늘 입원이 좀 많네요... 오전에 많이 받으신 거 알지만 간병사실이 다른 병동엔 다 차서 배정할 곳이 여기밖에 없습니다. 제가 다른 일반 병실 가실 수 있는 분들은 최대한 다른 병동으로 조정해서 배정해 보겠습니다.
병동 간호사 선생님 : 너무 저희만 주시는 거 같아요~ 다른 병동 보니까 저희보다 환자도 적던데...
나 : (그래, 많이 힘드시겠지) 선생님~ 다른 병동 선생님들도 많이 받고 계십니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원무에서 병실 배정을 하고 있다. 배정 자체가 나의 업무이기 때문에 병동 현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병동이 많기 때문에 표면적인 부분은 알아도 세세하게 간호사 선생님들만큼 알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정은 나의 업무여도 실제로 병동 상황에 맞게 배정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병동 선생님들의 의견은 중요하다.
배정하는 입장의 나도 사실 힘든 건 마찬가지다. 여기 전화하면 여기서도 저희밖에 없냐고 하고, 저기 전화하면 저기서도 저희 밖에 없냐고 한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수 있는 한마디기도하다.
그렇지만, 그게 그분들의 일이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고 그분들도 그분들이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원 오더를 내는 건 내가 아닌 의사인데, 배정하는 나에게 짜증을 내실 때는 나도 짜증이 날 때도 많지만,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크게 신경 안 쓰고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내부직원들끼리 감정노동 하는 게 사실 제일 힘들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 업무를 같이 해야 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많이 부딪히는 게 사실이다. 이건 서로를 이해하려고 해 봐도 솔직히 이해는 잘 안 된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저 저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다.
오늘의 감정노동을 잘 해낸 나 스스로를 칭찬해 주자.
감정노동은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고 그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면, 되도록 다음날이 되기 전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잠에 들기를 바란다.
나 같이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사람도 감정노동을 잘 해내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감정노동자들에게 응원과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