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도 우직한 취미를 가지고 싶다고!!!
나이가 들다 보니, 취미가 확고한 덕후들이 참 부럽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기타를 잘 쳐서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해왔는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까지 가끔 아는 형들이랑 지역 밴드를 결성해서 종종 활동을 한다. 또 어떤 친구는 힙합 한다고 공부 안 하고 힙합 외길을 걷고 있기도 하다. 그 친구는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음원사이트에 지속적으로 곡을 올리곤 한다. 이게 내 눈에는 굉장히 신기해 보인다. 그러면서 이십 대 중반이 지난 나는 왜 그런 우직한 취미가 없는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다양한 활동을 했다. 클라리넷, 색소폰, 쇼트트랙을 했지만 각각 중학교 3학년,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여름까지만 했다. 취미를 그만둔 이유는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입시에 집중하면서 나는 학원을 많이 다녔다. 집에 와서 학원에서 낸 숙제와 학교에서 해야하는 숙제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푹 자고 아침을 먹고 학원은 다르지만 스케줄은 똑같은 변주가 다음날에 시작된다. 이때 당시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잘하는 편이라 과학고나 영재고를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 떨어지고 탈락의 충격에 휩싸여 울었었다. 그 이후에 나는 인문계 남자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악에 받혀서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라는 큰 관문과 롤 이렇게 두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운 좋게 좋은 성과를 거뒀다. 고등학생일 때 늘 쓸데없는 것을 버리고 그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우던가 수학 문제 오답노트를 본다던가 했기 때문에, 취미란 점점 사라지고, 여가 시간은 그저 게임으로 치환됐다. 게임도 좋은 취미, 취향이지만 그러기엔 또 내가 몰입하지는 않았다. 그냥 게임을 적당히 하다가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리그처럼 롤 경기 보는 것은 열심히 봤다. 수동적인 자세로 열심히 봤다고 해야 하나?
마침내 원하던 학교의 대학생이 되었다. 대입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고등학생은 다시 벽을 마주했다. 잘하는 과학고, 영재고 친구들은 참 많았고, 심지어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학교적응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자리도 자주 가고 술이 아까워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수업도 안 가보고 지냈더니 새내기가 끝났다. 새내기 때 나는 무려 힙합댄스동아리(아직도 내가 이걸 했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를 들어가기도 하고, 총학생회도 했다. 대학교때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고 싶었다.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나는 그 이후에도 사진 동아리, 수학 문제 연구회(이런 동아리가 있나 싶지만, 동아리가 맞다)를 했다가 각각 4학기, 1학기만 하고 또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나한테 남은 것은 필름 사진과 필름 카메라, 친구 몇 명이었다. 그리고 사진 동아리를 그만둘 때쯤(군 휴학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동기들 중 새내기 때 들어간 동아리에 우직하게 몇 년씩 활동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취미, 취향이 생겼는데 그 친구들은 좀 더 깊은 그리고 전문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취미에 몰입하는 모습이 멋졌다.
"나는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원두가 좋아, 케냐의 원두는 싫어", 혹은 힙합댄스 세션이나 배틀에 참여해서 더 높은 경지까지 이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열정 있어서 누군가의 마음을 이끄는 것 같다. 마치 라라 랜드에서 세바스찬이 "어떤 사람의 열정은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어."라는 말처럼.
이런 우직함과는 반대로 나는 본디 산만하고 호기심이 많다. MBTI도 ENTP로 산만하고 활발한 강아지 같은 취향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취미, 취향을 넓고 얕게 안다. 시티팝(City Pop), 필름 사진, 글 쓰기, 와인, 커피, 책 읽기, 향수 등이 나의 취향이다. 그렇지만 덕후의 수준은 아니다. 적당한 애호가로 보는 게 적절하다. 시티팝 애호가, 필름 사진 애호가, 와인 애호가 정도이다. 훌륭하고 우직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알고 이야기는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직한 사람이 소수라면 나처럼 산만하고 넓고 얕게 아는 사람은 다수일 것 같다.
나의 글이 전문가만큼 깊이는 없을지라도, 대학교 전공 개론같이 여러분의 흥미를 돋울 것이다. 여러분들이 더 많이 알 테지만, 나도 아는 척 한번 해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아는 척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고, 인생이라는 요리에 조미료처럼 가미되는 여러분과 나의 넓고 얕은 취향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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