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공대생의 넓고 얕은 취향들

[2] 필름 사진 1편:나는 왜 필름 사진인가?

by 설규을

순간을 포착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그러한 그림은 사진기의 발명으로 인해서 처음으로 위기를 겪었다. 그림이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예술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그것은

빛을 가두는 예술, 바로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18년도 오사카에서 찍었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처음 핸드폰을 살 때 였다. 그땐 정말 큰 '찰칵'소리와 함께 찍혔고, 화소도 엉망이고 살짝만 움직여도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지만, 어린 나에게 사진을 찍는 적극적인 행위는 날 설레게 했다. 그때 찍은 셀카와 풍경 사진들을 열심히 싸이월드에 올리곤 했지만,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싸이월드 계정이 기억이 안 나서 다행이다.


15,16년도에 유행하던 필터로 찍었던 사진.

성인이 되고 나서는 analog 필터가 유행했다. 아날로그 파리, 아날로그 도쿄 이런 필터가 유행했다. 뭔가 누리끼리하면서 핑크 빛도 도는 그런 사진이 유명했다. 이때는 평범하게 사진찍고 기록하는 사람이었지만, 17년도 여름에 사진동아리를 들어가면서 나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엄청 늘었다. 원래는 그저 사진을 찍다가,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졌고, 감성을 넣고 싶었다. 사진 동아리에 들어갈때, 마침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전쟁사, 그 중에서 2차 세계대전 덕후였다. 그때 유명한 로버트 카파가 미군과 같이 상륙한 오마하 해변 사진을 보게 되었다. 흑백임에도 느껴지는 생생한 생과 사의 갈림길의 현장, 기록하겠다는 집념과 집념때문에 느껴지는 군인들의 절박함에 나는 매료되었다. 저런 사진이 진짜 감성사진이구나. 인스타 감성만이 보여주는 그저 이쁜, 대칭적인 사진이 진짜가 아니구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나는 필름카메라를 구매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니콘의 fg20. 1984년에 출시된 모델로 엔트리 모델이다. 초점 맞추는게 수동이다 보니 아쉬운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나의 첫 모델은 니콘의 FG20이란 모델이다. 1984년에 나온 모델로 가볍고 누구나 사용하기 편한 모델이었다. 가격도 적당해서 즐겁게 사용했다. 다만 초점은 직접 손으로 맞추는 모델이라 이거 잘 찍었다 싶은데 틀어져있어서 아쉬웠던 적이 많다. 렌즈도 나쁘지 않아서 초점만 잘 맞으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 만족스러운 카메라였다. 그리고 사진동아리에서 주제를 걸고 사진들을 제출하는데, 이때 찍은 필름사진들로 보내곤 했다.

나라에서 사슴공원에서 휴식중인 사슴 한 마리. 사진동아리에서 휴식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려고 할때도 제출한 사진이다.

내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필름 사진은 기다림이 있기에 나에게 설렘을 준다. 일반적인 카메라처럼 찍고 나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라 필름을 찍고 36장까지 찍고 사진관에 보내고 현상하고 그때서야 받아볼 수 있다. 그동안 어떤 사진이 찍혔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물론 이는 다르게 보면 필름사진의 불편함이고, 비효율적인 점이다. 만약 잘 못 찍혔을때, 예를 들어 손가락이 나오거나, 손이 떨렸거나, 노출이 이상하거나 할때, 다시 찍을 수 있는 카메라에 비해서 이건 기회가 한번뿐이다.

군산역 사진이다. 놀랍게도 빛이 새어들어와서 망한 사진. 아쉬운일이 일어나곤 한다.

두 번째로 1롤에 만원정도의 가격이기때문에 신중하게 찍어야하는 점도 나에게 재밌었다. 신중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찍고, 한번에 더 잘 찍으려고 하고 조명이나, 구도도 고민해본다. 다작 속에 명작이 나온다지만, 나는 한장 한장 신중하게 찍으면서 모든 작이 명작이 되기를 생각하면서 찍는다.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가 정말 많이 발전, 소형화 되면서 카메라까지 이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카메라를 든다는 행위는 일반적인 핸드폰을 든 것과는 달라야한다고 생각했다. 다작이 핸드폰 카메라라면, 소수정예가 카메라여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필름카메라를 선택했다. 신중함의 필름카메라를.

전 사진과는 다르게 우연히 빛이 새어 들었는데, 이건 멋들어지게 새어 들어왔다.

세 번째로 필름 카메라 특유의 투박한 디자인도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올드카를 볼 때, 이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효율적이지 않은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공기역학적으로 효율적인 유선형 디자인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차체를 가진 올드카 처럼, 필름 카메라의 디자인들은 지금 처럼 그립감이 좋거나 디스플레이때문에 생기는 디자인과 다르다. 또 다른 비유는 볼펜과 만년필이다. 볼펜이 훨씬 저렴하고, 더 좋지만, 우린 만년필을 가끔 쓴다. 폼 잡기 위해서.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나는 필름 카메라, 필름 사진에 빠지게 되었다.

더 불편하고, 더 신중하고, 더 이쁜 필름카메라와 필름 사진에 매력을 느낀다.

행위 자체에, 과정 자체에 매력을 느끼니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만족스러운 사진과 내가 계속 가지고 싶은 사진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그러한 순간을 포착한 내 자신이 만족스럽고 좋다. 사진은 어렵지 않다. 필름 사진도 어렵지 않다. 여러분들도 사진, 특히 필름 사진에 빠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연말마다 올해의 사진들을 뽑아서 엽서처럼 주곤 한다. 여러분들도 올해 사진을 많이 축적하여 올해 연말에 누군가에게 사진을 주기 바란다.

제목 "누군가를 기다리는 배"
다음 편은 내가 빠진 필름카메라와 필름사진 몇 장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독자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렇게 성실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 같다. 항상 귀한 시간 내어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filca.fandom.com/ko/wiki/Nikon_FG-20?file=Fg20bi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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