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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외국인 노동자

2020년 역사의 한 페이지 우리는

by 임세규

2020년 역사의 한 페이지 우리는


강화도로 향한 가을 하늘이 맑다. 아내와 선영, 가영이와 함께 파아란 설렘으로 집을 나선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던 아이들이 모처럼 함께한 외출에 좋아한다.


황금빛 들녘이라 했던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한 해의 결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넉넉하다.
김포시 대곶면에 다다르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창밖으로 인력 사무소 앞에 줄을 서서 있는 사람들 속에 외국인들이 서너 명 있다. 저마다 얼굴에 마스크를 썼다. 타키야(Takiyah)라 불리는 챙이 없는 작은 모자를 쓴 사람도 보인다. 아마 가을 수확철 임시로 고용한 일꾼 들인듯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니 그가 생각났다. 그를 만난 건 이십여 년 전이었다. 손을 다쳐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다. 그날 오전 치료를 받으려 기다리던 중 1층 진료실 앞에서 그를 보았다.

긴박한 사이렌 소리와 잔뜩 겁을 먹은 눈동자의 한 사내가 이동 침상에 누워 응급실로 들어왔다. 2인실 맞은편에 긴급 수술을 마친 그가 올라왔다. 여전히 불안한 안색으로 멀뚱멀뚱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설픈 발음으로 그는 필리핀 출신이며 금속 공장에서 일하던 중 장갑이 기계에 말려 들어가 검지와 중지 손 끝이 절단되는 사고가 났다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일한 지 3년 차라고 했다. 새벽녘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깨어보니 그가 맞은편 침상에서 보이질 않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병실 문 앞을 나섰을 때 멀리 복도 끝 창문에서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훔치는 그를 보았다.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고 싶어 짧은 영어로 그에게 말했다. Don't worry. It'll be fine. 필리핀에 두고 온 가족이 보고 싶다며 그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노동 투쟁 등으로 인해 근로자의 임금이 크게 상승되고 '질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국민소득의 증가로 이른바 3D산업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분야의 산업을 이르는 말) 기피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계기가 된 1993년 '산업 연수생 제도'가 실시됐다.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3D산업체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부족한 노동자들은 외국인들로 대체했다.


고령화와 3D 기피로 인해 만성적인 일손 부족으로 시달리는 농촌의 현실에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수확철, 코로나 19로 입국이 잘 되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의 손길마저 구하기 힘들다 한다.

앞으로 2년은 더 갈 거라는 코로나가 암울 하지만 어쩌면 지난 100년간 인간이 만든 급격한 산업화로 파괴된 지구의 환경을 잠시 멈춤으로 회복시키려는 자연의 흐름인 듯 싶기도 하다. 노을빛으로 붉으스레 물든 가을 들녘을 걷다가 메시지가 도착한 스마트폰 창을 바라본다.

[중대본] 식당, 카페 등 다중 이용 시설에서는 수시로 환기와 소독을 하고 종사자 이용자 모두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칙 준수 요망..
먼 훗날 펜데믹으로 기록된 역사의 한 페이 지속에 있다. 2020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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