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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11. 2021

살다가 만난 두 못난이, 최후의 눈빛

*새로 발행하는 글과 함께 아래에 있는 글들 중 일부를 재발행합니다.*


- 두 개의 눈빛 -


지하철 1호선 인천행을 탔다. 지하철 안은 퇴근 하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덜컹덜컹' 거리며 달리던 열차 안의 조용한 침묵이 깨졌다. 큰 소리가 오고 갔다. 그가 그들에게 둘러 쌓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고함을 치던 성이 잔뜩 난 눈빛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눈빛' 이 있다.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흰색 가운과 위생모를 쓰고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일했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삼촌'이라 불렀다. 그는 사람 좋은 인상에 넉넉한 풍채를 지녔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지적 장애는 보통 크게 3개의 등급으로 분류한다. 보건 복지부의 기준은 IQ와 적응능력이다. 이중 3등급은 교육을 받을 경우 사회생활이 가능한 경우다. 삼촌은 여기에 해당된다.

그날도 그는 작업반장 보조를 하고 있었다. 새로 온 작업반장은 눈이 작고, 스포츠머리에 덩치는 산 만한 인물이었다. 공장장 '빽'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았으니 삼십 대 초반이었다. 멀리 터널 오븐 끝에서 다 구워진 빵을 틀에서 꺼내는 '삼촌'을 봤다. 작업 반장이 그에게 뭐라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동작이 좀 굼뜬 '삼촌'을 다그치는 듯했다.


투입을 끝낸 나는 그를 도와주러 갔다. 삼촌은 주눅이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에게 왜 그런지 물었다.


''삼촌,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러고 계셔요? ''


그때였다. 나는 들려오는 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다.


"나이를 처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빨리빨리 못해. 저 거봐라. 저 거봐. 밀리고 있잖아.''


신입 작업 반장은 '삼촌' 하고 나이 차이가 무려 거의 30년 정도 차이가 났다. 아무리 회사 내에서 직급이 우선이다 치지만 그래도 반장은 도를 넘어섰다. 아버지 뻘 되는 연배의 인생 선배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전임 작업 반장은 조원들 입장에서 배려를 해줬다. 각자 맡은 일에 상황이 있고 능력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반장 스스로가 나서서 보충을 했다. 그것도 늘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니면서 성실하게 일했다.


새로 온 작업 반장은 심지어 '살살' 눈치 봐가며 '꾀'를 부렸다. 조원들 모두 그를 싫어했지만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았다.


''저~ 반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삼촌'이 지적 장애인이란 거 아시잖아요. 일이 느리면 조원들끼리 상의해서 작업 배치를 바꾸는 게 어떨까요.?''


그의 조그만 뱁새눈이 더욱 작아졌다. 생긴 대로 산다더니 꼭 그가 그 짝이었다. 딱 봐도 '밴댕이 속알 딱지 ' 같은 눈빛.

''어라~  네가 뭔데 나서냐. 그럼 네가 작업 반장해라 꼬우냐? 꼬우면 다른 조로 가면 될 거 아니야.''


참았다. 참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반장님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터널 오븐 작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기가 푹 죽은 '삼촌'을 데리고 휴게실로 갔다.


''나쁜 새끼. 개새끼..''


내 입에서 '욕' 이 저절로 나왔다.


''삼촌 기분 많이 상했지. 야간작업 들어가기 전에 나하고 밥 먹러 가자. 삼촌 고기 좋아하지? 돼지 두루치기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게.''


그가 고개를 '끄떡끄떡' 했다.

삼촌과 저녁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식당 앞에서 담배를 태웠다. 신입 작업 반장이 우리를 봤다.


''어이~  거기. 맛있는 거 드셨네. 일도 못하는 주제에 끼리끼리.''


이건 뭔가.. 직장동료인가.. 불량배인가.. 짝다리를 한 채로 그가 빈정거렸다. 반대쪽 다리몽둥이를 부러 뜨리고 싶었다. 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생결단이다. 그는 여전히 시시 껄렁한 눈빛이다. 싸움은 '선빵'이다. 먼저 때리는 쪽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 내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때였다. 인간의 겁먹고 불안한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그의 눈빛이 그랬다. 의외였다. 반전이었다. 나 역시 한 덩치 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알고 보니 이런 녀석인데 겉으로 드러난 똥폼과 허세 속에는 ' 연약한 겁쟁이 '가 들어 있었구나.


그는 얼마 후 '뒷 힘'을 썼는지 다른 부서로 배치를 받았다.


지하철 소동의 사연은 이렇다. 혼잡한 지하철 안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쩍벌남'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쩍벌남(-男)은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남자'의 준말로, 대중교통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다른 자리를 침범해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노인 한 분이 그 광경을 보다 못해 지적을 한 모양이다. 다툼이 일어났다.


''당신이 뭔데...''


''나이도 어린놈이...''


고성이 오고 갔다. 언뜻 봐도 나이 차이가 30년은 넘어 보였다. 누가 봐도 쩍벌남이 잘못했지만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점점 더 큰 소리가 오고 갔다. 아저씨 한 분이 참견을 했다. 말다툼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때였다. 다른 칸에서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매서운 눈초리가 있었다.


'저벅저벅저벅' 그들이 왔다. 남자 다섯이 그를 둘러싸자 그가 구호를 외쳤다.


''필~승''


어째 이런 일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해야 할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경례를 했다. 쩍벌남은  해병대 출신이었다.

"선임은 하나님과 동기동창이고 석가모니의 절친한 친구이며 성모 마리아의 기둥서방이다."


해병대에 대대로 전해지는 말이다. 그만큼 선배 해병 기수에 대한 위계질서가 엄격하다는 말이다.


칼 같은 다림질 선의 바지 위에 입은 상의 왼쪽에 '대한민국 해병대 / R. O. K. Marines' 패치가 선명했다. 팔각모를 쓴 상사 계급의 군인이 그에게 물었다.


''해병대 인가... 몇 기 인가.. ''


차라리 해병대 출신임을 그들이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 본 그의 눈빛이란... 해병대 군인 다섯과 그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다음은 모른다. 상상에 맡긴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매서운 눈빛만 기억날 뿐이다.


작업 반장의 눈빛과 쩍벌남의 당황스러운 눈빛이 비슷했다. 겁먹고, 지질한 그들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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