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진강에서 태어났다. 친구가 살짝 귀띔을 해줬다. 매화꽃이 필 때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며 고향 냄새를 '실컷' 맡아두라고 했다. 꽃잎 하나가 봄바람에 실려 '톡' 강물에 떨어졌다. 작은 동심원이 생기며 물결이 일어났다.
''자~ 떠나자.''
덩치가 제법 큰 치어 한 마리가 외쳤다. 본능이란 대대 손손 내려오는 익숙한 감각일까. 당연하다는 듯 나는 멀리 알래스카로 떠나는 1만 6000Km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강물을 헤엄쳐 바다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보는 바다였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수면 위로 살짝 떠오르자 '깜깜한' 밤하늘에 하얀 별들이 촘촘했다. 내 고향 섬진강에서 보던 하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에 몸을 맡기자 스르르 잠이 왔다.
꿈을 꾼다. 우리는 왜 '모천회귀(母川回歸)'의 운명을 타고나야 했을까. 태어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습성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일까. 수십만 년 전이다.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연어들에게 생존이 달린 큰일이 났다. 전염병이 발생했다. 강물 위로 '둥둥' 폐사된 연어들이 즐비했다. 악취가 코를 진동했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다. 무리를 이끌던 우두머리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했다. '어차피 여기서 죽나, 큰 물에서 죽나. 마찬가지 아닌가. ' 저 강물 끝쪽에는 바다라 불리는 큰 강물이 있다고 새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가자~' 살아 남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 수백 마리의 연어 떼가 바다를 향해 헤엄쳤다. 강하구에 다다르자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모두가 두려웠다. 막연했던 미지의 강물, 바다에 도착했다. 먹을 것을 찾아 힘껏 헤엄쳤다. 돌고래 한 마리가 알려줬다.
''북태평양으로 가면 먹이가 풍부하지. 그곳에는 '크릴새우'도 있어.'' 그렇게 바다에 적응한 우리 조상들은 늘 '향수병'에 시달렸다. 다 좋을 수는 없었다. 넓은 바다는 종족 번식을 하기에 너무 위험했다. 건강하게 자란 청년 연어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바다에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망망대해에서 오로지 북극성 하나를 보고 방향을 잡았다.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하구에 이르렀다. 고향의 강물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냄새를 따라갔다. 마침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멀고도 긴 여정이었다. 그 험난한 길을 이기고 마침내 혼신의 힘을 다해 방사를 하고 수정을 했다. '파르르' 하늘이 정해주신 시간이 왔다. 고통과 동시에 환희를 맞이한 죽음이 왔다.
''토도독~'' 빗방울 소리에 나는 꿈에서 깼다. 알래스카 해안에 도착했다. '크릴새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유전자가 있어서 다음 세대에게 생존의 방법이 전해진다. 우리도 있다. 어미 몸속에서 이미 모든 정보를 물려받는다. 우리의 유전자는 알려준다.
''너희는 조상들이 그랬듯 강물에서 바다로 다시 태어난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고향인 섬진강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왔다. 노르웨이 연안을 거쳐 고향인 섬진강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참을 헤엄치다가 보니 큰 그물 안에 있는 우리 종족이 보인다. 수백만 마리다. 파이프 라인으로 사료가 나온다. '저게 도대체 뭐지.. ' 무리에서 이탈한 정어리가 다가와 알려준다.
''저건 말이지. 인간들이 하는 말로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하는 거야. 너희를 잡아다가 인공으로 수정을 시키고 몸집을 키워서 돈을 버는 거지.''
''얼마 전 가두리에 전염병이 돌았어. 아마 거의 다 죽었을 거야. 난리가 났었지. 그래서 인간들이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 항생제를 쓰기 시작했어. ''
''자연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너희 연어들 뿐만 아니라 많은 바다 생물들이 고통받고 있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정어리가 말했다. 얼마 전 자기 친구인 거북이가 바다에 떠도는 비닐봉지를 먹이로 착각해서 결국 죽었다고.
'' 또 하나 충격적인 건 너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축해둔 선홍 빛살을 만들기 위해 화학 약품을 쓴다는 거야... ''
나는 어지러웠다. 그렇게 우리 종족을 키운다니.. 그물망 안에 있는 연어들이 나를 바라보며 고향으로 '어서 가라'며 꼬리를 흔들었다.
1인칭 시점인 연어의 시선으로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라본다. 우리가 먹는 대분의 연어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인공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연어는 노르웨이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