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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흙의 뒷모습에 모두 목이 멘다.

by 임세규


* 조은 시인의 시집 ' 생의 빛살 ' 에 실린 시 두 편입니다 *




연주가 끝난 아코디언처럼 / 조은

집과 병원만을 오가는 어머니를 위해
온 가족이 바다로 온 날
어머니는 바다를 보고 앉아 꼼짝도 않는다
깊게 주름진 몸이
연주가 끝난 아코디언처럼
모래톱에 얹혀 있다

축축한 눈길이
수평선 위로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앉는

어머니의 몸속으로 자식들은
두 손을 들이밀며
평생을 아우성쳤다

부드러운 흙속에 들어 있다가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마는 모래들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모래들
핏줄에 엉겨 붙는 모래들.....

말라가는 흙의 뒷모습에 모두 목이 멘다



동질 ( 同質 ) / 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을 쓴다
---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조은 시인의 시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스 있습니다. 어머니와의 여행과 잘못 온 문자를 통한 시인의 일상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잘났 건 못났 건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실 겁니다. 요즘 들어 부쩍 거동이 힘드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을 보면서 애처로움이 듭니다. 시인은 자식들을 대변해 이렇게 마음을 전하네요. ' 말라가는 흙의 뒷모습에 모두 목이 멘다 '

시인은 잘못 온 문자 메시지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이가 없어 힘들었던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 동질감이 듭니다. 비록 문자가 잘못 왔지만 무시하지 않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답을 해준 시인은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용기를 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 시험을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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