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가 막힐 때 한국은 왜 가장 먼저 흔들리는가?
1. 막힌 길목이 부르는 기억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은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 국가들에 원유 수출을 끊었다. 불과 석 달 만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약 3달러에서 12달러로 네 배 가까이 치솟았다. 자동차 없는 일요일이 선포됐고, 전력이 배급됐으며, 전후 최대 호황을 구가하던 선진 경제들은 처음으로 에너지가 곧 국가의 운명임을 체감했다.
2026년 3월, 그 기억이 다른 지도 위에서 다시 펼쳐졌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유조선 통행량이 70~80% 줄어들었다. 서울 증권시장은 3월 4일 단 하루에 12.06%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을 돌파했다.
1973년과 2026년의 충격은 발화점이 다르다. 그러나 에너지 길목 하나가 막혔을 때 경제의 어느 지점이 먼저 부서지는가라는 질문만큼은, 반세기를 건너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으로 이란에 합동 공습을 단행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이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이란은 즉각 걸프 지역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동시에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경고를 내렸고, 경고는 곧 공격으로 이어졌다. 혁명수비대는 경고를 무시한 유조선 10척 이상이 미사일 공격으로 불에 탔다고 공식 발표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유조선 150척 이상이 해협 밖에서 정박했고, 실제 통행량은 이전 대비 70~80% 감소했다. 해상 운임은 사흘 만에 세 배로 뛰었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7%가 통과하는 이 29킬로미터 폭의 해협이 멈추자 브렌트유는 개장과 동시에 10~13% 급등했다. 골드만삭스는 봉쇄 상태가 5주 이상 지속되면 배럴당 100달러 돌파가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2분기 브렌트유 전망을 기존 66달러에서 76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 이 충격의 전선에서 가장 노출된 위치에 있었다.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조달하며, 그 중동산 원유의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정부는 정부 비축분과 민간 보유분을 합해 208일치 비축유가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스피는 3월 4일 하루에 698포인트 떨어지며 사상 최대 하락률 12.06%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9.88%, 11.5% 폭락했고, 단 이틀 만에 시가총액 226조 원이 증발했다.
시장은 비축유의 날짜를 셈하지 않았다. 시장은 다른 무언가를 먼저 읽고 있었다.
코스피 12% 급락을 전쟁 공포의 반응으로만 읽으면 절반의 이해에 그친다. 시장이 실제로 처리한 정보는 훨씬 복잡한 연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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