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남는다, 그 집이 내 집이 아닐 뿐

주택보급률 102%의 나라에서, 집은 왜 아직도 멀기만 한가?

by 김선철
Gemini_Generated_Image_sjoelgsjoelgsjoe.png

1. 같은 시대의 다른 현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1859년 「두 도시 이야기」를 이 문장으로 열었다. 혁명 전야의 파리와 런던을 같은 시간 위에 겹쳐 놓으면서, 하나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 두 얼굴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풍요와 결핍은 서로 다른 시대가 아니라, 같은 시대 안에서 다른 조건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2024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9%다. 가구 수보다 집이 많다는 뜻이다. 같은 해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3.9%였고, 생애최초 주택 마련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7.9년이었다. 수도권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는 8.7배에 달했다. 전국 숫자로 보면 남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는 여전히 모자란다.


이 역설이 지금 한국 주거 통계 안에서 디킨스의 문장처럼 겹쳐 보인다. '남는다'와 '모자란다', 어느 쪽도 거짓말이 아니다. 풍요와 결핍이 동시에 사실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총량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구조는 통계가 무엇을 세고, 무엇을 묻지 않는가에서 시작된다.


2. 총량이 포착하지 못하는 것


주택보급률은 '주택 총수 ÷ 일반가구수 × 100'으로 계산한다. 이 공식에서 주택 총수에는 빈집도 포함된다. 장기 방치된 집이든, 수요가 사실상 없는 지역의 집이든, 노후화로 즉시 거주가 어려운 집이든 모두 1호로 계산된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총조사 기준(광의의 미거주 주택 포함)으로 2024년 전국 미거주 주택은 159만 9,086호였다. 이 집들도 102.9%를 만드는 분자 안에 있다.


지역별 편차는 더 선명하다.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97.3%, 서울은 93.9%다. 반면 지방은 108.4%를 기록했다. 집이 남는 곳과 사람이 모이는 곳이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공급은 지방에 쌓이고,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된다.


소유 구조도 단순하지 않다. 2024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주택 소유자 중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14.9%였다. 자가보유율(집을 소유한 가구 비율)은 61.4%였으나 자가점유율(자기 집에 직접 사는 가구 비율)은 58.4%로 3.0%포인트 낮았다. 소유하되 거주하지 않는 가구가 그만큼 존재한다는 뜻이다.

가구 구조도 달라졌다. 2025년 통계 기준 1인가구 비중은 36.1%로 역대 최고치였다. 가구는 잘게 쪼개졌고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의 지역 배치는 그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이 숫자들이 각각 다른 이유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구조 안에 얽혀 있다.


3. 전제가 현실과 어긋나는 구조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는 사실은 흔히 "공급이 충분하다"는 근거로 읽힌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말해지지 않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집이 있는 곳과 사람이 원하는 곳이 일치한다. 둘째, 통계에 잡힌 주택이 실제로 거래 가능한 상태다. 두 전제 모두 현실과 어긋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선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1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8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9화소비자가 기억을 팔 때, 기업은 무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