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당이 잃은 것은 인건비가 아니다

자동화가 온기를 지울 때, 음식점은 무엇을 파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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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꾼이 떠난 카페


나기브 마푸즈(이집트, 1988년 노벨문학상)의 소설 「미다크 골목」(Midaq Alley, 1947)은 카이로 카페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20년간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시인이, 주인이 새로 단 라디오 한 대에 자리를 내준다. 손님들은 여전히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만, 골목 공동체를 묶어주던 목소리는 사라진다. 마푸즈는 이 장면을 통해 근대화가 공동체에서 가져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금 한국 식당의 풍경도 비슷하게 재편되고 있다. 입구의 키오스크, 통로를 미끄러지는 서빙 로봇, 테이블 위 QR 주문. 2025년 기준 국내 서빙 로봇 시장 규모는 약 2,700억 원에 달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반복될 때마다 도입 속도는 가팔라졌다. 음식업 폐업률이 16.2%로 전체 업종 평균의 약 두 배인 상황에서, 자동화는 생존의 선택지처럼 보인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자동화를 전혀 다른 목적으로 설계한 식당이 있다. 그 선택이 어디서 갈렸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2. 위기가 만들어낸 두 갈림길


2017년 8월, 중국 법제만보가 하이디라오(海底撈) 베이징 매장을 4개월간 잠입 취재한 결과를 공개했다. 주방을 돌아다니는 쥐, 막힌 하수구를 요리용 국자로 뚫는 직원, 기름때가 덮인 식기세척기. 영상이 퍼지자 소셜미디어는 몇 시간 안에 들끓었다. 1994년 창업 이래 '최고의 서비스'로 자리를 지켜온 훠궈 브랜드에게 이 사건은 존폐가 걸린 위기였다.


하이디라오의 대응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나는 즉각적 투명성이었다. 폭로 약 4시간 만에 공식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전 매장 주방에 CCTV를 설치해 조리 과정을 공개했다. 또 하나는 구조적 전환이었다. 2018년 파나소닉과 협력해 베이징에 AI 주방을 구현했다. 로봇 팔이 식재료를 계량·준비하고, 고객 주문에 따라 개별 요리를 완성한다. 주방에서 테이블까지의 이동은 전용 서빙 로봇이 전담한다. 2025년 기준 하이디라오의 연간 매출은 약 58억 달러 규모로, 위기 이후에도 성장 궤도를 이어왔다.


이 전환의 핵심은 인력 제거가 아니었다. 로봇이 주방과 이동을 맡는 동안, 홀 직원들은 고객과의 접점에만 집중한다. 채소를 눈앞에서 잘라 신선함을 확인시키고, 생일 손님에게 이벤트를 준비하고, 혼자 온 고객 옆에 곰 인형을 놓아둔다. 기계가 위생과 효율을 담보하는 동안, 사람은 관계를 담당한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 요식업의 자동화는 다른 논리로 전개됐다. 인건비 절감이라는 단일 목적 아래 무인화 설비가 확산됐다. 서빙 로봇 도입 업체는 수천 곳에서 1만 곳 이상으로 급증했지만, 위생을 높이거나 직원을 고객 관계에 집중시키기 위한 구조 설계는 드물었다. 두 선택의 차이는 설비의 유무가 아니라, 그 설비를 도입하는 목적에 있었다.


3. 목적 없는 자동화의 귀결


자동화는 본래 중립적 도구다. 어떤 업무를 기계에 넘기고 어떤 업무를 사람이 맡을 것인가는 기술이 결정하지 않는다. 그 조직이 무엇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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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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