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이 사라진 집에서 인간의 삶도 사라진다

창문을 열 수 없는 도시, 거주의 조건은 지켜지고 있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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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벽돌로 막힌 창문이 돌아왔다


1696년, 영국 의회는 창문 수에 비례하는 세금을 도입했다. 창문세(Window Tax)였다. 창문이 많을수록 부유하다고 보았다. 세금 고지서가 날아들자 집주인들은 즉시 응답했다. 벽돌을 가져다 창틀을 채웠다. 빛이 들어오던 자리에 회반죽을 바르고 적벽돌을 쌓았다. 18세기 영국 도시의 골목 건물들에는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빛과 바람을 차단했다.


그 장면이 오늘 일본 도심 비즈니스 호텔에서 다시 나타난다. 도쿄와 오사카의 고밀도 업무 지구 저가 호텔들은 외벽에 닿지 않는 방을 '인테리어 룸'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 소음이 없고 암막이 완벽하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나는 그 방에서 밤을 보내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창문을 찾았다. 창문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공기를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호텔 밖으로 나와 동이 트기까지 거리를 걸었다.


300년이 지났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창문을 포기한다. 다만 이번엔 세금 때문이 아니다. 왜 이 선택은 계속 반복되는가.


2. 창문세에서 창문 없는 방까지


영국 창문세는 1696년 윌리엄 3세 재위 시기에 도입되어 1851년 폐지되기까지 155년간 지속됐다. 창문 10개 이상인 주택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세금을 피한 결과는 예측 가능했다. 창문이 사라진 집은 빛이 들지 않았고, 공기가 순환하지 않았으며, 결핵과 각기병의 온상이 됐다. 의사와 위생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압력 끝에 영국 의회는 이 세금을 '건강에 해로운 세금'으로 규정하고 폐지했다. 프랑스도 같은 길을 걸었다. 1798년 도입된 '문과 창문세(impôt sur les portes et fenêtres)'는 1926년까지 128년간 유지됐다.


파리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볼 수 있는 가짜 창문과 벽돌로 막힌 아치형 창틀은 이 세금이 남긴 흔적이다.

오늘날 창문 없는 공간은 다른 경제 논리에서 태어난다. 일본 도심 호텔들은 외벽에 닿지 않는 내부 객실을 저렴한 가격에 운영한다. 창문 있는 방 대비 10~20% 저렴하다는 가격 차이가 수요를 만들었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50층 이상 초고층 주상복합은 구조적으로 자연환기가 불가능하다. 강풍과 추락 사고 위험으로 창문 개방 각도가 제한되고, 상층부는 기계식 공기조화 시스템이 환기를 전담한다.


한국 건축법은 거실의 채광 기준을 바닥면적의 10분의 1 이상, 환기 기준을 20분의 1 이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인공조명과 기계환기 시스템이 설치되면 이 기준은 면제된다. 판상형 아파트는 남향 배치와 앞뒤 창문으로 맞통풍이 가능하다. 타워형은 각 세대가 다른 방향을 향하도록 꺾여 있어 조망은 탁월하지만 맞통풍 구조가 성립하지 않는 세대가 많다.


왜 법은 창문의 면적만 보고 창문의 기능은 보지 않는가.


3. 조망권이 채광권을 삼킨 시장


창문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창문의 기능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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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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