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줄 땐 사랑이지만, 받는 순간엔 세금이다

다시 뜨거워진 '아파트 증여'와 한국의 불편한 진실

by 김선철
사진출처 : 매일경제

강남의 어느 오래된 아파트.

한 평생을 살아온 집을 아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한 아버지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등기이전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그 순간, 아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지서를 받는다.

“증여세 3억 4,000만 원.”


부를 물려주는 행위가,

갑작스러운 '세금 폭탄'으로 다가온 현실이다.



다시 늘어나는 '아파트 증여'


서울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2020년 8,325건에서

2021년 6,507건으로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2023년부터 다시 상승세.

2025년엔 3,617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3구의 경우도 비슷하다.

2021년 2,677건에서 2022년 1,510건으로 감소했지만

2024년엔 675건, 2025년엔 824건까지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사람들은 팔기보다 물려주기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도세 중과, 보유세 인상, 자산시장 침체 속에서


‘증여’는 그나마 선택 가능한 전략이 되었다.



증여세, 과연 공정한가


한국의 증여세율은 최고 50%.

금액 구간별로 보면,

1억 이하는 10%,

5억 초과는 30%,

30억이 넘으면 무려 50%에 달한다.

자녀에게 20억 원의 부동산을 넘기면

세금만으로 7~8억 원이 사라진다.

심지어 증여를 했다고 끝이 아니다.

10년 간 다른 재산을 넘기면 다시 합산과세 된다.



해외는 어떻게 물려주는가?


먼저 미국을 살펴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넘길 때 생전 증여든 사후 상속이든 합산해 과세한다.
하지만 2025년 기준 640만 달러(한화 약 86억 원)까지는 과세하지 않기 때문에,
중산층은 사실상 세금 없이 자산을 이전할 수 있다.


또한 부부는 2배인 약 172억 원까지 면세가 가능해,
‘부의 이전’이 세무 전략이라기보다 가족 계획의 일부로 여겨진다.


영국은 더 과감하다.

증여세라는 세금 자체가 없다.
단, 증여 후 7년 이내에 증여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이를 상속으로 간주해 상속세를 부과한다.
이른바 “7년 룰(Seven-Year Rule)”인데,
그 기간만 넘기면 고가 자산도 세금 없이 자녀에게 넘길 수 있다.
즉, 생전 증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유연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일본은 다소 복잡하고 엄격한 구조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무려 55%이며,
특히 가족 외부에 대한 증여에는 더욱 가혹한 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자녀에게는 연간 약 1,100만 원(100만엔) 정도의 소액은 면세된다.
고령화 속도만큼이나 자산이 부모 세대에 쌓여 있는 일본에서는
“자녀가 유산을 받을 땐 이미 60대”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실용적인 절충안을 제시한다.

자녀에게는 약 5억 8천만 원(40만 유로)까지는 면세가 주어지고,
그 이상에 대해서만 누진세가 적용된다.
부모가 사업체나 부동산을 자녀에게 넘길 때도
고용을 유지하거나 자산을 일정기간 보유하면 세금을 줄여주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즉, 실질적 부의 이전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구조이다.


반면 호주와 캐나다는 더욱 단순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증여세라는 세목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자산을 넘겨주는 순간, 그에 따른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그 부분에 대해 양도소득세만 과세될 뿐이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물려줄 수 있다.”는 철학이
세금 구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유산 이전을 규제보다 '설계의 영역'으로 보고,
세금이 아니라 가족 자산 설계와 국가의 생산성 유지를 중심에 두고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이 아직도 “물려주면 절반은 나라가 가져간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제도적 패러다임 전환의 시점일지 모른다.


한국은 ‘형식적으로는 선진국’,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산층 증여조차 어려운 국가다.

해외에선 부의 이전이 생애설계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절세’가 아닌 ‘생존 전략’이다.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1.면세한도 확대

자녀에게 10년간 5천만 원까지만 면세되는 구조는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 세대 간 이전에 대한 유연성 확보

거주용 주택에 대한 생전 증여 공제 확대

장기보유자·은퇴자 대상의 세제 감면 필요


3. ‘부의 대물림’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고령화 시대, 자산을 효율적으로 이전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도 연결된다.


4. 증여 대신 생전 신탁제도 등 대안 제도 활성화

자산의 관리·이전이 동시에 가능한 유연한 장치 마련



정리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그 축복을 세금으로 깎아먹고 있다.

아파트 한 채를 두고

가족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세무사는 절세 플랜을 짠다.


증여는 더 이상 부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 자산 양극화, 세대갈등을 넘어

지혜롭게 부를 넘기는 사회로 진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사랑을 물려주고 싶다.


그 사랑에 세금이 덧씌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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