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새 정비법

도시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묻다

by 김선철
하우징헤럴드 문상연기자

1949년 6월, 대한민국은 '토지개혁법'을 시행했다. 지주의 땅이 농민의 땅으로 바뀌던 날, 토지는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가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재편하는 매개체였다. 역사의 그날은, 권리의 비대칭을 해소하려는 첫 제도적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76년이 흐른 지금, 2025년 6월, 또 한 번 땅을 보는 시선이 바뀌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땅 자체보다, 그 위에 얹힌 집과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정비사업이라는 제도의 틀이 바뀐다. 2024년 말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이날부터 본격 시행되며,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 도시정비사업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선다.


이전까지 정비사업은 정부와 인·허가청이 틀을 짜고, 주민이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정비구역 지정이 먼저 이뤄져야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고,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은 높은 벽처럼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는 추진위원회를 정비예정구역이나 정비계획 공람 단계에서 구성할 수 있도록 허용한 개정법 시행으로, 주민조직의 형성과 사업 초기 개입이 훨씬 앞당겨진다. 민간 기획형 정비계획의 제출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사업의 프레임을 먼저 선점하려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 역시 크게 바뀌었다. 기존의 예비안전진단 절차는 폐지되었고, 정비계획 입안 시점에서 재건축진단을 병행해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구청장의 사전 승인 없이도 자체 진단이 가능해졌고, 이는 중앙정부의 통제보다는 지방정부와 민간의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제도적 의도로 해석된다.


총회와 동의 절차에도 디지털 전환의 바람이 불었다. 전자총회는 2025년 6월 4일부터, 전자서명 동의서 징구는 같은 해 12월 4일부터 허용되며, 카카오·PASS 등 민간 전자서명을 포함한 방식으로 추진위원회 구성이나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주민참여율을 높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전자서명 남용 및 동의의 실질적 이해 여부를 둘러싼 법적 분쟁 가능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조합설립 요건도 완화되었다. 재건축 조합의 설립 요건이 구분소유자 및 토지면적 기준 각각 75%에서 70%로 낮아졌고, 복리시설의 경우에는 1/2에서 1/3로 완화되었다. 동의율이라는 심리적 허들을 낮춰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되며, 동의서 확보 전략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사업시행계획 인가 과정에서는 사전협의제가 도입되어 도시계획, 건축, 교통 등 관계부서와의 협의가 완료된 경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실질적인 일정 단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으로, 민간 시행사와 신탁사의 초기 기획·조율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공공지원형 정비사업 제도가 도입되었다. LH나 SH 등 공공기관이 정비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국공유지 활용 및 공공기여와 연계된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는 민간 단독으로 추진이 어려운 구역에 공공이 개입하여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축으로 수렴된다. 바로 "속도"다. 규제는 풀렸고, 절차는 단순화되었으며, 참여는 비대면으로 효율화되었다.


그러나 도시정비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곧 삶을 밀어내고 다시 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낡은 골목 하나가 사라질 때,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도 함께 밀려난다.


속도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도시정비사업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과제는 "갈등"이다. 조합과 주민 간의 신뢰 부족,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계약 분쟁, 주민 간 입장 차이로 인한 갈등은 사업 지연의 주요 원인이 된다. 정부는 이제 단지 속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도시정비사업은 1962년 도시계획법 제정 이후 63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사례들을 품고 있다. 각 단계별로 발생한 소송, 민원, 유권해석, 판례 등의 갈등관리 자료들은 현재까지도 분산되고 축적되어 있을 뿐,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이를 통합하여, 언제든지 온라인에서 접속하고 검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과 조합, 시공사와 조합, 행정기관과 추진 주체 간의 다양한 갈등 상황에 대해 유사사례를 참고하고 사전에 대응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고 사업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갈등관리를 위한 시스템은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제도 운영에서 이미 쌓여온 경험과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공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여 이러한 사례 기반 갈등관리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속도와 함께 신뢰를 쌓아가는 정비사업이 가능해질 것이다.


도시는 한 사람의 삶이 집단으로 이어져 형성된 기록이다. 제도가 그 기록을 지우고 다시 쓰겠다면, 그 이유와 방식은 더욱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 토지개혁법이 농민의 땅을 가능케 했듯, 오늘의 도시정비법도 도시를 공존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속도를 볼 것이 아니라, 방향을 보아야 한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의 도시인가?’ 바로 그 질문이 다시 도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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