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oori Farm & Botanic Garden, 홍콩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화려한 도시 야경을 자랑하는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이미’
100% 도시화된(2015년 기준, 통계청 자료), 농촌이 사실상 사라진 국가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화려한 야경 뒤편, 허름한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헤매다 한 건물 23층 옥상에 있는 ‘도시 농장’을 찾았을 때, 나는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게 농장이라고?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분양 받아 농작물을 키운다는 상자 텃밭들이 모여 있는 ‘정원’은, 허술하고 적막했다. 홍콩에서 농업은 그렇게 물러서듯, 허물어졌다.
홍콩에서 생태와 농업의 공존을 볼 수 있는 카두리 농장&식물원Kadoori Farm & Botanic Garden. KFBG(이하 카두리농장)은 이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했다. 마치 성경 속 ‘노아의 방주’처럼.
홍콩에서 가장 높은 산 타이모샨(957m)의 북쪽에 있는 카두리농장은 홍콩 카두리Kadoorie 기업의 로렌스 카두리와 호레이스 카두리 형제의 뜻에 따라 1956년에 설립한 농장이다. 총면적 148ha(약 44만 평). 농장 안에는 폭포와 삼림, 과수원, 채소밭, 산책로, 지속 가능한 농업 현장과 예술 전시장 야생 동물 구조 센터, 토종 나무, 생태 보전을 위한 시설과 교육장 등이 있다. 설립 초기에는 양돈과 양계를 하며 단작, 관행농업을 지원했다. 여성농민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1993년 이후 지속 가능한 농업 실험과 보급, 홍콩 교외의 야생 동물 보호 등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설립자 호레이스는 “농부 원예사”라고 불린다. 그는 형 로렌스와 함께 1951년 Kadoorie Agricultural Aid Association(KAAA)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현재 카두리 농장을 세웠다. 두 형제의 역할은 명확했다. 로렌스가 전력, 건설 등 인프라 사업으로 ‘돈을 버는’ 역할이었다면, 중국과 홍콩의 소외된 사람들, 생태 환경 복원과 보존 등 의미 있는 일에 ‘돈을 쓰는’ 사람이 호레이스다.
농장 입구에서 승합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렸다. 꽤 가파른 길이다. 산 정상에 오르자 파란 하늘과 함께 홍콩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관음산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저 산 나무들은 거의 땔감으로 쓰였어요. 자연히 민둥산이 되었죠. 20년간 복원을 해왔어요. 이제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에요.”
왕래이윈王麗賢 지속 가능한 농업부(the Sustainable Living and Agriculture Department) 부장이 말했다. 처음엔 외래종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토종으로 교체 중이라 했다. “홍콩에서 가장 생태환경이 잘 보전된 곳”이라는 그의 말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전망대 부근 카두리 형제를 기념하는 쌍둥이 지붕 정자에 들렀다. 왕 부장이 ‘호레이스’ 정자의 특별한 표식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무로 만든 생쥐 조각품.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드러나 스스로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생쥐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은 호레이스의 상징이다.
“매년 12월이면 설립자를 기리는 경주대회가 열려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산길을 오르죠. 지난해에는 5.3km를 25분에 완주한 사람이 우승했어요. 대부분은 농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완주하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카두리 농장에는 다양한 작물을 키우며 여러 가지 생태 실험을 하고 있다. 해발 120-160m에서는 허브와 채소, 200m 부근엔 과수, 400m 지대에선 차를 재배한다. 예전 홍콩 전역에 차를 키우는 곳이 많았지만, 지금은 비싼 땅값 때문에 차를 재배하는 곳이 없다. 카두리 농장만이 차 문화 보존을 위해 자연재배 방식으로 차 농사를 짓는다.
“빗물을 100% 활용합니다. 물을 자체적으로 공급하고 있어요.”
농장 안에 있는 사방댐은 농사에 필요한 양만 저장하고 나머지는 흘려 보내기 때문에 다양한 야생동물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한다. 농장의 오·폐수는 자갈과 미생물 수생식물을 활용해 자연 정화한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상하수도 시설을 운영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교육 차원에서 동물 분뇨와 작물에서 나온 것들로 퇴비를 만들어 다시 작물에 돌려주는 생태순환 시스템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농업기술 자체가 생태적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홍콩 시민들에게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삶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커뮤니티도 만들고 파머스 마켓, 도시농업 보급, 그린허브(교육시설)도 운영하고 있어요.”
카두리 농장은 현재 총 201명, 농업 관련하여 60명이 일한다. 카두리재단에서 연간 1억 1천만 홍콩달러를 지원받고, 정부와 협력기관이 함께하는 독특한 민관 협력 형태로 운영된다.
홍콩에는 현재 2000명의 농민이 남아있고, 이 중 약 300여 명은 유기농업을 한다. 그러나 농토가 부동산 개발지에 둘러싸여 있고, 비싼 땅값과 짧은 임대기간(대부분 1~2년)으로 채소농사 외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끝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가 허물어버린 농업과 농촌. 홍콩에서 만난 카두리 농장과 식물원은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절망’의 끝에 매달린 작은 희망처럼 보였다. 동시에, 마음이 대책 없이 내려앉는 ‘명백한 소멸’의 현장이기도 했다.
※카두리농장 및 식물원 KFBG www.kfb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