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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경 Jan 17. 2020

자연, 도시로 돌아오다
우통따오梧桐島 정원

- 중국 선전시

중국 선전시에 있는 산업단지 우통타오. 큰 호수를 둘러싼 24개의 빌딩 사이에 생태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통타오 조감도. Ⓒ우통타오 홈페이지



중국 광저우시에서 생태농업 현장들을 한참 둘러보고, 생긴지 800년이 넘었다는 푸젠성 페이티엔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버스로 한참을 달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토루에 들렀다. 그러고는 고속철로 이동해 광둥성 선전(심천, 深圳)시市에 도착했다.
  선전은 작은 어촌에서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도하며 ‘중국 첨단 기술의 허브’로 ‘급진’했음을 확인해주듯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했다. 수십 년을 순간 이동한 듯한 첨단산 업도시에서 만난 우통타오梧桐島 TaihuaWutong Island는 그래서 더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오른쪽부터) 단지 전체 설계를 담당한 펑지예, 생태정원을 관리하는 웬디, 파머스마켓을 담당하는 망고.



24절기, 빗물저장소를 담은 빌딩


선전 공항 근처에 있는 우통타오는 중국의 타이화라는 부동산건설 기업이 조성한 단지로 호텔과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 12월, 단지 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단지 전체를 설계한 펑지예(펑누나라는 뜻의 별명), 생태정원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웬디, 파머스마켓 운영을 담당하는 멍자 씨 등 세 사람의 안내로 단지를 둘러보았다.
  높은 빌딩들이 쭉쭉 뻗어있는 다른 산업단지와는 달리 이곳은 24개의 빌딩이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건물과 건물 사이 빈틈을 메우듯 크고 작은 식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이 어울려 사는 생태정원이 자리한다. 빌딩입구에는 각각 이름이 붙어있는데 춘분, 곡우, 하지, 추분…. 24절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24개의 빌딩에는 24절기에서 따온 이름이 붙어있다.


  “이 빌딩 이름은 ‘추분’인데요. 이 지역은 아열대라 가을 겨울 구분이 없죠. 그래서 가을 느낌이 나도록 삼나무 계열의 나무를 심었어요. 1월이 되면 낙엽이 질 거예요.”
  생태농업에 관심이 많은 회사 대표의 뜻에 따라 생태와 자연의 개념을 공간에 녹여내려고 의도했다고, 단지 설계자인 펑지예 씨가 말했다.
  “전체 공원이 조성되는 데 5년이 걸렸어요. 흔히 잡초, 잡목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자라는 식물들이 대부분이에요. 농약을 쓰지 않으니 벌레가 많이 살고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와요. 단작을 하지 않으니까 이제 생태계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서 해충은 없는 편이죠.”

왼편 도로 아래 6,000㎡ 규모의 빗물저장소가 있어 건기에 물을 사용한다.


  생태정원을 둘러보는 중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나자, 이벤트 담당자 망고 씨가 말했다.
  “이곳은 파머스마켓이 열리는 장소인데, 바닥에 6,000㎡ 규모의 빗물저장소가 있어요. 우기에   빗물을 모아두었다가 요즘 같은 건기에 호수에 물을 공급하는 겁니다.”
  첨단시설 속에 생태적 가치를 담은 호수도 이곳의 자랑거리이다. 2만 평 크기의 인공호수에 조류 서식지용 인공섬을 조성하니 다양한 새들이 찾아왔다. 공작도, 토끼도, 닭과 다람쥐도 이곳에서 함께 산다. 사람이 하는 일은 외래 침입종이 있을 때 생태계가 교란되지 않도록 관리하고,낙엽 멀칭과 유기질 퇴비를 직접 만드는 일 같은 것뿐이다.

나뭇잎, 잔가지 등은 퇴비로  다시 땅에 돌려준다.



첨단의 현장에서 파머스마켓을 열다

 “선전은 첨단산업이 융성한 곳이죠. 이 단지에도 IT기업이 많이 입주해 있어요. 그런데 이런첨단산업단지에서 파머스마켓을 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의외로 받아들이더라고요.”
  파머스마켓 담당자 멍자(망고) 씨가 말했다. 멍자 씨는 광둥지역 농민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2017년부터 파머스마켓을 열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주말, 보통 30여 농가가 참여하는데 대부분 인근 지역 농민이고, 멀리서 오는 농민도 간혹 있다고 했다.
  “일종의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 지원농업)활동인 거죠. 처음엔 이 농산물은 어디서 왔나, 어떤 농민이 생산했나 알려주기 위해 기획했어요.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소비자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파머스마켓이 아직 활발하진 않지만 선전시의 유일한 파머스마켓이라는 상징성도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어요.”

우통타오의 옥상 생태텃밭. 파머컬처를 적용하여 운영한다.



옥상의 생태텃밭, 공동체

우통타오의 또 하나의 특별함은 옥상에 있다. 24개의 건물 옥상에 모두 생태텃밭을 조성해 놓은 것이다.
  “텃밭에 파머컬처를  적용했어요. 빌딩에 입주한 회사 직원들에게 신청을 받아서 텃밭을 가꾸게 해요.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본사 직원인 저희가 가꿉니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여기서 자란 채소와 과일은 직원들이 나눠 먹기도 하고, 파머스마켓에서 판매하기도 하죠. 또 단지 내 유치원에 기증하기도 합니다.”
  생태정원 설계자인 웬디 씨의 말이다. 단지 내 식당의 채소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하고 주변의 나무 부산물들도 유용한 멀칭 재료가 된다. 버려지는 것도,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도 최소화한다.
  “직원이 60~70명 정도예요. 매일 4명씩 한 조가 되어 밥을 지어 같이 먹어요. 이곳에 있는 채소 과일들이 주재료가 되지요. 텃밭은 단작하지 않으니 병충해 걱정도 적어서 특별한 관리는 하지 않습니다. 잡초만 무성한 것 같지만 이 안에서 동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거죠.”

호수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생한다. 사람을 보고 반가워 다가오는 백조무리.



스마트한, 자연과의 공생을 꿈꾼다

“IT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시마다 부동산 개발도 과도해요. 스마트업단지도 워낙 많아져서 공실률이 50% 정도면 양호하다고 해요. 그런데 이곳은 공실률이 1%에 불과하죠. 첨단산업단지에 오히려 생태지향적인 환경에 대한 요구와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요.”
호숫가를 거니는데 반대편에 모여 있던 백조 무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헤엄쳐왔다.  마침 반가운 이웃을 만나 할 말이 많다는 듯, 열심히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니,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让自然回到城市,让人回到自然”
– 자연은 도시로,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오게 하라


  우통타오 입구에 적힌 글귀는 끊임없는 개발과 발전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제 와서, 홀대했던 자연을 도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러나 편의와 편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겠다는 생각과 행동이 모이면, 차갑고 매끈하기만 한 도시의 얼굴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대산농촌문화 2020신년호 

http://webzine.dsa.or.kr/?p=8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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