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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Feb 16. 2024

개발자의 카메라

Ep4.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2023년 10월 3일.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나는 25살에 결혼을 했다. 친구들 중에 가장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친구들 중에서는 학생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도 가까운 누군가의 결혼식에 처음 참석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이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우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고, 가장 친한 친구들 8명이 정말 재밌게 축무를 하는 모습을 보며 학창 시절의 우리들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내가 결혼식을 하던 시기가 코로나가 가장 심했던 시기라 해외여행이 조심스러워서 신혼여행은 뒤로 미루고, 가까운 지인들과 가볍게 식사를 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같이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놓고 밤새 뒤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몇몇 친구들은 취해서 집에서 자고 아침에 돌아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한 당일에 부부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큰 일을 하나 끝냈다는 회포를 푸느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지금 다시 결혼식을 한다면, 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은데 어렸어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물론, 돌이켜봐도 참 재밌었던 시간이긴 했다.


그리고 4년 뒤, 드디어 친구들 중에 나 다음으로 결혼을 하는 친구가 생겼다. 이른 아침부터 친구 결혼식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모였고, 친구 한 명은 새벽까지 일을 하느냐 결혼식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근황 이야기도 하며 결혼식 시작을 기다렸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부 입장을 보는데 살짝 뭉클한 마음도 들고,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식이 끝나고 결혼한 친구가 여기저기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앉은 테이블에 와서 8명이 정말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신혼여행에 다녀와서 꼭 다시 보자 했는데, 다들 바쁘다 보니 아직까지 못 만나고 있다.



몇몇 친구들은 이후 다른 일정으로 헤어지고, 나를 포함한 4명의 친구들이 남았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여의도 한강 공원에 가자는 친구 말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바로 여의도로 갔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선선했던 10월의 날씨.


공원에서 돗자리와 테이블을 빌리고 오랜만에 신은 구두를 벗어던졌다. 친구들이 배려해 줘서 노을이 지는 순간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고, 내가 셔터를 누르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은 맥주와 함께할 요깃거리를 사 왔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앉아서 연애 이야기도 하고, 서로 요즘 회사에서 힘든 일은 없는지 이야기하느냐 어두 컴컴해진지도 모르고 몇 시간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10년 전에는 항상 같이 있어서 서로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서로 각자 생활을 하느냐 바쁘고 서로를 배려하느냐 못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한 번 만나면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야기 끝 무렵, 같이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다음날 모두가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생활이 있기에 서로의 감정이나 상황을 배려하기에 내가 힘든 일이 있어도 친구들에게 바로 털어놓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다. 나만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친구의 짐을 덜어주지도 못하는데 지어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만났을 때, 있었던 일들을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며 같이 웃고 우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처럼 항상 같이 있는 건 어렵지만, 정말 필요할 때 같이 만나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았다 생각이 든다.


이 날 찍었던 노을 지는 한강 사진을 볼 때마다 친구들 생각이 난다.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 있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힘든 오늘을 살아갈 힘을 받는다.


- 같이 나이 드는 친구가 내 옆에 항상 그대로 있다는 것에 감사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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