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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Nov 04. 2024

#25. 사라져야 비로소 깨닫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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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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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실패하면서 한 뼘씩 크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심하게 깨어지고 아파한다. 그중에는 비슷한 일로 아파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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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날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많이, 그리고 빈번하게 느꼈던 감정은 ‘외로움’이다. 여태껏 써온 일기도, 수필도, 나의 감정에 대해 고찰할 때면 주로 내 속을 파고들었던 감정은 늘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나를 사로잡은 족쇄임과 동시에 삶을 활력 있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한 때는 일정 없이 비어 있는 주말을 견디기 힘들었던 적도 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보내는 하루는 비어 있고, 또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공허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또 앞으로 새로이 만날 누군가가 나의 공허함을 달래 줄 것이라 굳게 믿었기에 늘 본능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섰다. ‘새로운 경험’ 혹은 ‘성장’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참 다양한 자극을 쫓아다녔다. 봉사 활동을 하고, 운동 모임에 나가고, 회화 모임에 나갔다. 그러고선 활동에 집중하기보다는, 활동에 참여해 준 사람들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날도 많았다. 역설적이게 활동에 참여해서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그 활동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활동의 본질과 부가적인 요소가 완전히 뒤틀려버린 하루를 보내왔던 것이다. 


물론 많은 활동을 하는 중에 마음에 들어온 이성도 있었다. 그녀를 통해 약간의 공허함이 채워진 이후엔 나는 늘 청개구리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혼자였을 때는 그렇게나 원하던 둘이 막상 되고 난 이후엔 그제야 혼자서 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찾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서로의 관계가 무르익으면 어느샌가 당연하듯 나의 모든 감정선은 나를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대에게 기꺼이 맞춰주며 보냈던 하루는 이미 사라지고 없고, 관계 속에는 오직 나 자신만 남는다. 

난 정말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었다. 성향이 이렇기에 이성 문제는 늘 내게 가장 많은 숙제를 주었다. 하나의 사랑을 하고 또 끝내면서 ‘다음 사랑에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하는 것도 잠시, 다음 사랑이 찾아오면 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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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만났던 G 양은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더 보여달라고 늘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이성 친구에게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의 양이 엄청 작다는 것을 알았다. G 양은 내게 늘 그것을 갈구했음에도 사실 잠시 바뀌는 척을 하는 것은 그 순간뿐이었다. 본질의 움직임이 없는 현상의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허상이었다. 늘 순간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던 그녀는 결국 이별을 고했다. 그제야 나는 나를 진정으로 뒤돌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쏟은 사랑의 양은 얼마였는지, 표면으로 드러났었던 사랑의 양은 또 얼마였는지 알았고 그제야 '나의 애정을 100% 쏟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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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마는 것이다. 몰려오는 외로움에 못 이겨 비슷한 감정선의 이성을 다시 만나고, 또 비슷한 이유를 들어 똑같은 이별을 겪는다. 잃고 나서 겨우내 얻은 깨달음은 어느덧 모두 증발하여 버리고, 마치 목이 말라 계속해서 소금물을 들이켜듯 급하게 공허함을 채우지만 결국 체하고 마는 것이다. 

이별과 같은 커다란 비극의 자극제 없이는 나는 무언가를 깨닫기도 힘든 지경에 다다랐다. 한 번의 큰 감정의 변화가 있어야지만 한 뼘만큼 더 성장하는 것 같고, 그렇게 조금씩 자라 앞으로는 최소한의 시행착오는 더 이상 겪지 않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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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라지고 나서야,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나는 아주 조금 더 성장한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먼 훗날 내가 훌쩍 크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성장하고 싶지만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욕심인 걸까. 또 나는 욕심 속에 허덕이며 조금의 성장을 맛보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실수는 대체 내 삶의 언제까지 반복되는 것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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