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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May 09. 2024

#22. 당신에겐 특별히 기억나는 드라이브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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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서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완전한 일상이다. 늘 움직이며 길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겐 이동한다는 것이 별다른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어딘가를 가는 길이 유난히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하나씩 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각자 다양할 것이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난생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순간일지도, 유학을 위해 비행기에 첫 발을 내민 순간일지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군 면회를 가기 위해 양손 가득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군부대로 향하는 길일지도, 간절히 바라던 회사의 최종 입사 면접을 위해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순간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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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또렷이 기억나는 드라이브가 있다.
나는 참 특이하게도 군대 시절, 사랑을 시작해 본 경험이 있다. 입대 전에 국내 여행을 갔다가 같은 숙소에서 어떤 누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알게 되어 다음 날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나름 친해지게 되었다. 이후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다가 입대 후 우연히 내가 발령받은 군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누나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에 부대 밖을 나가게 될 때면 늘 누나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이전보다 우리는 훨씬 자주 만나게 되면서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고, 점점 더 사이가 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 생활을 하며 내겐 사랑이 찾아왔다. 


  누나는 나보다 꽤나 연상이었고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누나는 당시에 차를 가지고 있어서 나를 만나러 올 때 대개 차를 운전해서 군부대 앞까지 오기도 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이었기에 마치 견우와 직녀가 된 것처럼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분명히 정해졌었고 누나와 만나기 전 날이면 우리에겐 어떤 내일이 펼쳐질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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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잠을 거의 못 자고선 태극기를 향해 크게 경례한 뒤 성채만 한 철문을 나서노라면 누나는 수줍으면서도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누나를 향해 머쓱한 웃음을 짓고 누나 옆 조수석에 살포시 앉아 잠시 누나에게 폭 안긴 뒤 우리는 어디론가 향했다. 어떤 날은 바다로, 어떤 날은 산으로, 또 어떤 날은 넓은 들판으로. 누나의 옆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쾌한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나도 이 바람에 날려버릴 것만 같이 마음이 살랑거렸다. 우리는 개울가에서 가재를 보기도, 항구에서 출항하는 배를 보기도, 또 한 번은 한 카지노장에 들어가 기계가 뱉어내는 현란한 음악소리를 함께 듣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한다면 순간순간이 모험이었다. 둘이서 맞이하는 세상의 구석구석은 익숙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새롭게 느껴졌다. 누나를 만나기 전, ‘우리는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애써 정한 그 목적지로 함께 발걸음을 맞출 때면 세상 누구와도 행복을 견줄 수 없었다. 누나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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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에게도 끝이라는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국방의 의무라는 속박은 끝이 정해져 있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몸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이후에도 우리는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둘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직감했을 때는 그토록 기다려지던 누나와의 드라이브가 세상 무엇보다 두려웠다. 피하고 싶었다. 여태까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선 철문을 나섰다. 나는 언제나처럼 누나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살포시 포옹을 나누고선 우리는 어디론가 향했다. 항상 웃음과 장난기다 가득했던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겨우내 도착한 인천의 한 선술집에서 나는 어렵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고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누나는 침착하게 내 말을 듣고 나서 눈물 한 방울을 흘렸고, 이내 마음을 다잡고선 나를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숙소 앞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뜨거운 포옹을 한 번 하고 서로 등을 돌려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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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기 위해 두근대었던 마음과, 빨리 누나와 어딘가도 달려가고 싶었던 내 심정. 긴장되는 마음과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나 두려웠던 그 밤.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의 파도를 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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