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정말로 사랑받고 있구나.
-
2026년 4월 20일 (월)
오롯이 제 이름으로 된 수필 단행본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내 필명 하나만 적힌 책을 이 세상에 내놓은 소감은 솔직히 복잡미묘하다. 기획도서처럼 단기간에 원고를 발행한 것은 아니었고, 여태껏 꾸준히 바닥에 흩뿌려온 구슬들을 겨우내 실로 꿰맨 느낌이다. 혹은,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지친 심신을 어여 뉘이고 싶은 마음에 옷가지를 이곳저곳에 마구잡이로 벗어던진 것이 며칠이 지나 이제는 어찌 이것을 정리해야 하나 싶은 것들을 비로소 다 개켜낸 기분이다. 그래도 후련한 마음이 크다. 어쨌건 해내었으니 말이다.
작가의 길은 굉장히 막연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잘 돌이켜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천성’이 이끌어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무료하게 멍하니 있는 것을 잘 못한다. 어릴 적에는 그런 성향이 더욱 심했다. 늘 “심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정말 할 게 없어서 내 방 책장 안에 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부터 책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당시의 내 유일한 낙은 컴퓨터 오락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락에 몰두해 있는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컴퓨터에 암호를 걸어 잠가버리셨다. 오히려 감질난 나는 주머니에 단 돈 천 원짜리 한 장 생길 때마다 늘 품에 안고서 동네 PC방으로 달려갔다. 화면 속의 나의 자아가 총칼로 누군가의 복부를 관통하여 쓰러뜨릴 때에는 절정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나는 학원에서 수학 문제를 풀 때도, 학교에서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 때도 늘 그 쾌감만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당시의 모든 기쁨은 가정의 바깥, 학교 저 너머에 있었다. 온갖 쾌감을 바깥에서 맛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무엇보다 편안해야 할 그 공간이 그렇게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치 흡연자들이 습관적으로 은단을 씹듯, 집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장 속 책을 읽었다. 청소년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순간순간 모험심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모험 소설에 영감을 받아 15살의 나도 정말 막연하게 ‘글을 써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책장에 있는 유년 시절의 그림일기를 발견하였고, 그 일기를 읽으며 만약 지금부터 내 삶을 기록하다 보면 나중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무작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지는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고교에서는 3년간 기숙 생활을 하면서 2주에 한 번, 2박 3일 동안 본가에서 휴식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나는 집에서 쉬고 학교로 돌아가는 날 밤에는 꼭 지난 2주간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겼다. 그 정형화된 장소와 일상 속에서 나름 어떤 일을 겪었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에 대해 마치 조선시대의 사관(史官)이 된 듯 써 내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주말 밤의 모든 친구들의 책상에는 각종 교과서 혹은 문제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내 책상에는 오롯이 공책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쓰고 있는 나를 본 친구들은 참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삶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부터 일기장은 나의 가장 의미 있는 보물이자,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이자, 카타르시스이자, 잠시나마 공부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피아노 동호회에서 만난 형, 누나들과 근처 바다로 즉흥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나와 동행한 분들은 각자 사진작가, 가야금 연주자, 프리랜서 일본어 강사였다.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와 함께 동행한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었고, 그날처럼 언제라도 상관없이 스스로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작가의 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글은 꾸준히 써 왔기에 이것이라면 나만의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
그렇게 나는 작가를 지망하게 되었다. 나의 꿈을 들은 이는 대견하다며 박수를 한 번 치고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혹자들은 내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목구멍에서부터 말문이 턱 막혔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도, 나는 어떤 글의 종류가 있는 지도 잘 몰랐다.
그나마 일기가 수필에 가깝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나는 미래에 '수필가'가 되고 싶다고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막상 수필을 한 번도 써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10년간 나의 꿈을 사람들에게 주야장천 떠들었다. 그러다, 창작의 기회는 정말 벼락같이 찾아왔다. 스리랑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급히 귀국한 뒤 자가 격리를 근 한 달간 하게 되었고, 학창 시절 방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함을 다시 한번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내 자취방 안에는 읽을 책도 없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것은 더욱이 싫었다. 그래서 답답함과 울분에 사로잡힌 채 책상에 앉았고, 처음으로 수필이라는 것을 써보았다.
막상 쓰다 보니 여태 써왔던 일기와는 또 다른 쾌감이 있었다. 일기는 단순 감상에 그쳤던 반면, 수필을 쓰며 하나의 경험 혹은 사건에 나름 진지하게 사유해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만 같았던 기억의 편린들이 비로소 재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기억을 더듬어 깊이는 얕더라도 젊은 시선으로 수필을 하나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더하여 즐겨 듣는 음악의 가사를 분석하는 글도 하나씩 썼다. 어차피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격리 기간이라 밥을 먹고 글을 쓰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고, 팔굽혀펴기 10개를 한 후 헥헥거리면서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를 찾아온 귀인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우연히 지인이 책을 발간한 것을 알게 되었고, 문득 책이라는 것은 어떻게 출판하게 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분이 도서 제작자였던 것이다. 그리고선 먼저 이전에 썼던 글감들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조심스레 여태까지의 기록들을 모조리 보여드렸다. 그렇게, 출판의 길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되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작가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는 매개체라 모든 요소에 다양한 고민들이 따라왔다. 표지 작가는 누구로 하여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어떤 글을 독자에게 보여줄 것인지, 나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강조하고 싶은 색감은 어떤 것인지 등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더하여, 책의 가격은 얼마인지와 완판이 되었을 경우 내 손에 쥐게 될 실익까지 모두 다 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나의 이름으로 나오는 나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의 심의와 숙고의 과정을 거쳐 마치 첫 자식과 같은 기억의 편린들을 세상에 내게 되었다. 사실 나의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자서(自敍)에 가깝기 때문에 별다른 문학적인 내용은 없지만, 정식으로 출판 소식을 알게 되고 정말 많은 이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어렴풋이,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절실히 느껴졌다.
-
책의 표지를 보고 필명의 뜻에 대해서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본명의 조합을 엉뚱하게 섞으면 지금의 필명이 된다.
이 필명은 21살, 군대 휴가를 나왔을 적 광주 봉선동의 한 카페에서 동아리 선배를 만나 미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필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즉석으로 지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지어낸 필명이 꽤 마음에 들었고, 나중에 이 필명으로 책을 내보자며 우리는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우리는 현실 살이에 바빠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의, 그리고 선배와의 약속을 끝끝내 지켜내었다.
도서점에서는 오늘부터 나를 '현대 문학가' 혹은 '수필가'로 수식하고 있다. 그 수식어 뒤에는 대학 시절 프리랜서 형, 누나들과 울산 바다로 떠나며 아련하게 미래를 꿈꾸었던 나의 어린 날의 초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여태껏 늘 선택받는 삶을 살아왔지만, 더욱이 선택받는 삶을 나는 택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필가로서, 그리고 작사가로서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 나갈 것이다.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온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추신: 지금까지 공개된 수필 중 단행본에 실린 31개의 이야기는 2026년 4월 30일부로 일괄 발행 취소 처리될 예정임을 공지드립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간 인사말]
-
2026년 4월 20일, 산문집을 엮어 내면서 정식으로 수필가가 되었습니다. 11,195일의 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라도 다시 곱씹어 보고 싶은 생각들을 추리고 오려내어 고스란히 빈 종이 위에 옮겼습니다. 솔직해지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것에는 비단 기쁨만이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저 아래에 침잠해 있는 어두운 부분도 과감히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수필을 써 내려가며 가장 깊게 자리 잡았던 사명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
2025년 3월 28일, 그날을 기억합니다. 여태 천천히 써내려 온 저의 글들을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출판사 대표님께서 먼저 출간 제의를 해 주셨습니다. 평생을 바라온 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이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막연히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의 가을밤, 저의 운명은 이미 점지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어떤 순간에서든 저는 무언가를 써 내려갔고, 저를 마주한 모든 이들은 저를 점점 ‘쓰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도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작가’가 꿈이라며 실컷 외쳐 왔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30대의 초입에서 저는 정녕 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
이 책의 제목처럼, 제 시선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엔 ‘당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들어 주신 이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느껴 왔고, 또 이렇게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왔습니다. 저와 함께 이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커다란 도움을 주신 GROWIN ‘허정문’ 대표님과 표지 작업을 도맡아 주신 Bucketlisters ‘이수진’ 작가 님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단행본은 전국 주요 서점과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 4.20. (월)
사랑을 담아서,
작가 류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