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경(上京)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은 영호남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맥으로 형제봉, 소백산, 국망봉, 도솔봉, 주흘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에 이르러서야 그 길고 긴 여로의 끝을 맺는다.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기상과도 같은 덕유산 산허리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에 와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 같은 모양의 두 능선을 남기고 다시 지리산을 향해 꿈틀거리며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덕유산의 높고 깊은 능선 사이에는 맑은 개울물이 옥구슬 구르듯 조잘거리고 있었고 이름 모를 잡초들에게도 신께서 내린 영양분을 사이좋게 나누어 주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개울을 끼고 넓고 큰 뜰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뜰 바로 아래에는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물이 합류해서 길고 드넓은 하천을 만들었고 달구지가 다니는 도로까지 뜰을 이루고 있었다. 그 큰 뜰을 시샘이나 하듯이 뜰의 허리를 자른 곳에 낮고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덕유산의 위압에 눌린 듯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유심히 바라보면 긴 덕유산 원줄기는 다섯 개의 곁가지인 봉우리 뒤로 얼굴을 숨기고 밭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손바닥으로 덮어서 낚아채려고 숨을 죽이면서 굵은 손가락을 뻗치고 있는 듯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에 잡힐 듯이 두 계곡 가까이에 서 있는 작은 봉우리 동쪽 기슭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겨울 추위에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고 있었고 그 뒤에 봉우리를 등지고 아담한 세 채의 초가집들이 서로 다정하게 이웃하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춘심이네 집 앞에 나 보라는 듯 혼자 버티고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덮칠 듯한 덕유산 기슭에서 흘러 내려오는 굵은 손가락 같은 산의 기세를 막아 주고 있었다.
깊은 겨울밤에 찬 서리가 내릴 시간쯤이었을까 출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춘심은 산고의 고통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응아!”
새벽 정기를 끌어안으려는 듯 새 생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의 힘찬 울음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넘어가는 새벽 별도 아기의 울음소리에 놀라 서산머리에서 발길을 멈추고 잠시 숨을 죽이면서 귀 기울이고 있었고 그믐달도 하늘 중턱에서 엷은 미소를 머금고 가려진 느티나무 줄기 사이를 비집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보려는 듯 기웃거리고 있었다.
산고의 기미를 알아채고 이것저것 준비를 끝내고 춘심의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던 춘심의 시어머니는 삐죽이 머리를 내밀며 울음소리를 터뜨리는 아기를 보았다. 다행히 순산이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기는 여식 아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또 딸이구먼, 계집애가 무슨 큰일을 하려고 울음소리는 그리도 크던가......”
막 샛문을 열고 있던 춘심의 남편 영두는 계집아이라는 자기 어머니의 한숨 섞인 소리에 평소 큰 배를 내밀고 다니던 아내 춘심이 생각났다. 이를 보는 이마다 한마디로
“자네, 이번에는 틀림없는 아들이구만, 아 놓거든 톡톡히 한 잔 사야 하네!”
하고 자기 일인 양 좋아하자
“아들? 사내만 노면 한 잔이 문 제겐 남!”
어깨를 으쓱거리며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계집애라고?”
하고 문을 삐죽이 열면서 금방 풀이 죽어서 어미를 보고 재차 물었다.
“그려, 계집애라니까!”
서운함이 깃든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춘심의 시어머니는 화롯불에 담갔던 가위로 탯줄을 끊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아기를 닦으면서 입이 열댓 발이나 튀어나와 무슨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에잇 병신 같은 년!”
어미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고 영두는 획하고 샛문을 닫아 버린 후에 이부자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래도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인물값은 하게 생겼구먼......”
춘심의 시어머니는 어미젖을 빠는 아기를 보고서 혼자 중얼거리며 쭈그러진 양은 세숫대야를 힘겨운 듯 들고 부엌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부엌문을 덜커덕거리면서 흔들고 있었다.
“아이고 추버라!”
그녀는 얼른 부엌문을 열고 삽짝으로 던지듯이 대얏물을 버리고 문을 닫아 버렸다.
춘심은 벌써 세 번째 출산이었다. 그러나 여태껏 대를 이을 아들 하나를 낳지 못하고 줄줄이 딸만 셋을 낳았으니 출산을 해도 송구해서 시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영두는 춘 심이가 내리 딸 셋을 낳자 밭에다 씨를 뿌린 것이 자신 임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마누라 춘심이 못나서 딸만 낳는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셋째 딸 금순을 낳은 후로는 한술 더 떠서 노름판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집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영두는 본래 배짱이라고는 좁쌀만 해서 노름을 하려고 해도 가슴이 콩닥거려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얕은 속 꾀는 제법 있는지라 노름에는 대들지 않고 노름판 뒷전에 앉아서 고리나 뜯고 잔심부름이나 뒷돈을 빌려주는 전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영두 호주머니에는 푼돈 몇 푼 만 가지고 있었지 사실 큰돈이라고는 없었다. 그래도 신용 하나는 똑소리 나는지라 남의 돈을 빌려서 노름판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심심찮게 돈이 불어났다.
영두는 솔솔 불어나는 돈놀이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자니 좁쌀만 한 배짱도 눈에 보는 돈 불어나는 소리가 자주 들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큰 장독만 해져서 급기야는 옆집 순돌이네 논 판 돈을 알아내고
“어이, 순돌아비 돈 잠깐만 빌려주게, 내 이자는 톡톡히 쳐서 줄 테니까!”
“아이고 이 사람아, 이 돈은 죽어도 안 되네, 이 돈이 무슨 돈이라고......”
“허 참, 돈이면 다 돈이지 주어도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며칠만 빌려주면 새끼를 쳐서 아무 일도 없이 이자를 톡톡히 쳐 줌쎄, 장롱 속에 가만히 두면 그놈의 돈이 워찌 새끼를 치남......”
“그래도....... 논 판 돈인데.......”
“이 사람아, 내가 누군가? 나는 고리만 뜯는 사람이네, 돈 쓴 자가 바로 내 앞에서 그 돈으로 노름을 하고 있어, 돈을 들고 어디로 도망가겠어? 뛰어야 부처님 손바닥 안 일세, 아무 걱정 말게!”
며칠만 있으면 자연 삼부 이자가 손에 들어온다고 우기면서 빼앗다시피 돈을 빌려서는 자기는 노름판에서 일할 이자를 받아 하룻저녁에 칠 부를 챙겨 먹었다.
그러나 그 복이 영두에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화투만 치면 돈을 긁어모으던 친구가 꾼에게 걸렸는지 하룻저녁에 거액을 날려 버렸다. 그 돈 중에는 순돌이네 논을 판 돈과 개울 건너 이장에게 급전으로 빌린 돈까지 들어 있었으니 이보다 더 난감한 일이 없었다.
영두 생각에는 그래도 다음 날에는 따겠지 하고 이장에게 빌린 돈에 더 빌려서 친구 노름 돈을 대주었는데 그 돈조차도 꿀꺽 날려 버렸다.
영두는 처음 이자를 받아먹을 때와는 다르게 정색을 하고 친구에게 돈을 달라고 보챘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된 친구는 얼굴빛을 고쳐 앉고 안면을 몰수했다. 더군다나 남의 돈을 생짜로 먹으려는 노름꾼 심보가 아닌가.
“워째 미안하게 됐구먼, 내 돈 따면 갚아 줄 테니까 기다려 보더라고.”
하고는 옷을 툴툴 털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한동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멍하니 가는 친구의 뒤만 바라보던 영두는 그날은 참고 자기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해가 뜨기 무섭게 친구를 찾아갔으나 노름하는 그 친구가 집에 붙어 있을 턱이 없었다. 수소문해서 안다는 집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간 곳은 오리무중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순돌이 눈치도 눈치지만 돈을 빌려준 이장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찾아왔다. 그렇다고 땡전 한 잎 갚을 처지가 못 되는 영두로선 달리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아무리 궁리해도 돈을 갚을 길은 캄캄한 밤 중이다. 이 궁리 저 궁리 생각하니 제갈공명이라도 이 난국을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는 큰 결심을 내렸다.
“짐을 챙겨서 식구 모두 야반도주하자!”
참으로 자신이 생각해도 이수밖에는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거기까지 큰 결심이 서자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그것이 문제였다. 조선 천지에 장수 말고는 어느 한 곳 아는 곳이 없는 영두는 머리에 머리를 쥐어 짜내서 야반도주할 곳을 생각해 냈다. 바로 경상도 안동이었다. 영두의 본이 안동 권 씨고 사십 대손이었다. 영두 어미가 가물가물하게 먼 죽은 지아비의 일가가 안동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낸 것이다. 내친김에 그리로 줄행랑을 놓은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전지는 모두 남의 땅을 부쳐 먹고살았는지라 이삿짐이라야 이불과 솥단지가 전부였으니 영두네는 사람이 옮겨 가는 것 외에는 별로 힘이 드는 것은 없었다.
영두 어미가 영두 아비 먼 피붙이에게 신신부탁해서 월세를 얻은 곳이 광석동 소전마당이었다. 조그만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소전마당은 말 그대로 소를 파는 장터가 있는 마을이었다. 대다수 마을 사람들은 장날 소를 팔고 사는 장꾼들의 돈을 우려먹으려고 한 집 건너 한집은 기생을 두고 술을 파는 마을이었다. 마을은 말 그대로 소 전이 있는 탓에 동네가 술장사로 매일 술상 두드리는 소리가 끝일 줄 몰랐다.
그렇지만 영두는 여기 올 때까지 만해도 눈만 뜨면 이웃 세, 네 집 얼굴만 보고 살아서 무척 적적했었는데 비록 술꾼들로 북적대는 소전마당이었지만 제법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춘심은 또 넷째와 다섯째 아이를 안동으로 이사 오고 낳았는데 연신 딸이다 보니 이제는 출산하는 게 겁이 났다. 병이 들어 죽지 않으면 유산시킬 방법이 없었으니 안 낳을 도리는 없겠지만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춘심의 심정이 더욱 이를 물게 했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나 마는 벌어들이는 돈은 없는데 밥상 앞에 소복하게 딸들만 앉아서 숟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춘심의 속은 딸만 낳은 죄책감에 그 딸들이 빗자루로 쓸어버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래서 춘심은 시어머니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기를 한 번도 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자니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꽁보리밥인들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키우는 동안 그중에 둘은 병으로 죽었다.
춘심은 아들을 못 낳았다는 죄로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한동안 받았다.
남편인 영두는 어머니에게 떠밀려 밖에서 아들을 낳아서라도 들어오라는 재촉에 못 이겨 더러는 술집 계집들과 외도도 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춘심으로부터 여섯 번째에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고 연이어 일곱 번째도 아들을 낳았으니 그 후로는 어깨를 펴고 살게 되었다.
맏딸 옥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거들고 있었고 그래도 여식이지만 공부 잘하는 하나는 학교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둘째 금순을 고등학교에 보냈다.
둘째 금순이는 위로 언니 하나가 죽지 않았다면 선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게 생겨서 여자지만 다른 자매들을 제치고 고등학교라도 다니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금순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미인이었다.
눈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세워서 좀 건방지게는 보이지만 오뚝하게 선 콧날이며, 희고 말끔한 알맞은 크기의 얼굴, 터질 듯이 튀어나온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남다르게 큰 엉덩이, 꽉 죄는 청바지는 그녀의 몸매를 한층 탄력 있게 보였고 교복을 입고 문밖을 나서면 보는 남학생마다 침을 흘리며 그녀의 눈에 들려고 애를 썼으니 그녀의 건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그러자니 자연 성깔이 못되어서 조그마한 일에도 자기 뜻에 거슬리면 신경질을 내고 집어던지기가 일 수였고 친구들도 모두 자기 아래로 생각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했다.
그녀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두 먹고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얼굴이 좀 반반하다고 하면 돈 있는 집의 첩살이를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 왔기 때문에 이 가난을 벗어나려면 자신의 몸뚱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금순은 잘 알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예쁘면 남자들이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더러는 용기 있는 사내들도 있었지만 보통 주먹잡이나 돈 잘 쓰는 노름꾼이 먼저 대들었다.
금순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름꾼 진현이가 금순을 보게 된 것은 친구들과 소전 마당에 있는 단골 술집에 같이 간 날이었다. 그도 이곳 소전 마당에서 남의 돈을 탐내는 어리석은 촌놈들을 꼬여서 소를 판 돈을 노름으로 날름해서 먹은 터였다.
그날도 진현이는 바람잡이 노름꾼 친구들과 어울려서 소전마당 술집에 들렀다. 그날은 달리 노름꾼들이 없는 날이라 밤이 늦도록 서로 자기 살 뜯어먹기 노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현이는 노름판이 별 재미가 없자 혼자 슬쩍 빠져나왔다. 사립문을 열고 막 나오는데 집에 들어가는 금순과 마주쳤다. 금순은 진현이가 단골로 다니는 술집 바로 뒷집에 살고 있었다.
“히야!”
진현의 눈이 번쩍 띄었다.
어두운 골목길이었지만 몸에 찰싹 붙은 청바지에 터질 듯한 금순의 몸매만 슬쩍 봐도 남자들의 눈길을 끄기에는 충분한 그녀였다. 첫눈에 반한 진현은 그날 이후로 뻔질나게 금순을 보기 위해 소전마당을 찾았다.
금순이의 미모가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시장 뒷골목에서 주먹깨나 쓰는 치들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나이 차는 많지만 그녀를 먼저 본 진현이가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진현이는 스스로 결혼을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법 나이는 많지만 아직 혼자 살고 있었다. 그의 수중에는 노름으로 많은 돈을 따서 가지고 있었고 주먹 쓰는데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현이의 추파는 금순의 눈에 금방 들게 되었다.
쉽게 번 노름돈은 금순을 만족시키기에 족했다. 그녀의 팬티 세탁조차도 세탁소에 맡길 정도였으니 그의 씀씀이는 알 만할 정도였다.
싱싱한 금순이의 처녀 딱지는 노름꾼 진현이가 떼었고 그 후 금순은 진현과 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소파 수술을 하기에 이르렀다. 학생 신분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돈과 쾌락을 즐기는 둘의 성격으로 임신은 용납하지 못했다. 금순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원도 없이 진현과 인생을 즐겼다.
금순이의 집에서는 금순이가 진현이와 놀아나고부터 집안이 윤택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안에 쓰는 라디오나 시계 등 소품들이 들어왔지만 나중에는 돈이며 전답이며 집문서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순이 아비 영두는 자기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온 돈으로 집안이 윤택해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부터는 마음이 변해서 딸의 행실을 은근히 모르는 척하고 재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미 춘심이 또한 평생 가난에 쪼들리다가 집안이 펴지자 엊그제까지만 해도 처녀가 연애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바람을 피우는 년은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 머리 깎아 집안에 가두어 두지 그냥 둬?”
하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것이 시집도 안 간 금순이가 나가서 집문서, 논문서와 돈을 들고 들어오자
“연애 못하는 지지 바들 엇따 써먹니?”
하고 말을 바꾸어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말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자식 키우는 사람은 어디 가서 함부로 큰소리칠 일이 아니라고 뒤로는 모두 수근덕 거렸다.
신시장 야채 시장에서 방물장사로 끼니조차 근근이 잇던 식구들이 이제는 금순이 덕에 신시장 입구에 큰 가게를 두 칸이나 사서 명실상부한 과일 도매상까지 차렸다.
딸년이 바람을 피워 얻은 돈이지만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이제는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게 되자 영두는 등짐만 지고 어슬렁거리면서 제법 점잔을 빼고 다녔다.
이웃이고 친구고 모두 남의 피땀 흘려 번 돈을 노름으로 빼앗아서 생긴 돈으로 잘 먹고 잘 산다고 속으로 욕은 했지만 돈이 있으니 겉으로는 권 주사, 권 주사하며 떠받치며 그를 대했다.
진현이는 마른 체구였음에도 무던히 금순이를 밝혔다. 금순이의 터질 듯한 몸매 또한 사내의 그것을 밤이 새도록 쉬지 않고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진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것도 복상사라는 것이었다. 금순이의 배 위에 올라탄 진현이 흥분해서 정신없이 그 짓을 하다가 갑자기 축 늘어져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금순이가 정신을 차리고 진현이를 부르며 몸을 움직이자 그대로 축 늘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들 둘이 같이 잠을 자러 간 것을 본 사람이 있으니 둘이 같이 있다가 죽은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만 금순이의 입에서도 나온 말도 아니고 누가 두 사람이 관계하는 것을 본 것도 아닌데 둘이 잠을 자며 호흡한 소리까지 흉내 내면서 소문은 퍼져 나갔다. 또 어떤 소문은 성관계를 하다가 둘이 붙어서 죽었으니 서로 떨어지지 않아 병원으로 실려 가서 의사가 수술을 하고서야 겨우 떼 낼 수가 있었다는 황당한 소문까지 퍼졌다.
진현이가 죽은 일로 금순은 경찰서에 몇 번 불려 다닌 덕분에 학교도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결국에는 퇴학 처분이 되었다. 금순은 한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문간 출입을 금하고 있었지만 시뻘건 대낮뿐이지 밤만 되면 집안을 빠져나와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들어가곤 했다.
그녀의 타는 듯한 젊은 육체는 이제 막 불붙기 시작했는데 진현이가 죽었다고 해서 열녀같이 오랫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썩을 여자가 아니었다.
진현이 주변에서 침을 흘리던 남자면 남김없이 그녀의 놀잇감 상대였다.
주먹잡이 중에 성욱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제법 잘 생기고 남다르게 주먹질도 잘하는지라 금순도 성욱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어차피 내어놓은 몸이라 만날 때마다 성욱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성욱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지까짓게 사내지 별수 있나, 어디 보자.”
하고 금순은 속으로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역전 기관고 패거리 중 우두머리 격인 봉구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키도 크고 근육질인 몸매에다 오랫동안 유도를 해서 감히 누구 하나 함부로 덤비는 일이 없었다. 그도 역시 진현이가 데리고 논 금순을 좋아하고 있었다. 한 번 건드려 보고는 싶었지만 진현이가 살았을 때는 진현이가 있어서 의리상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현이가 죽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금순이를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금순이가 시내에서 우연히 봉규와 마주쳤다. 평소 진현이가 살아 있을 때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이 은근하다는 것을 금순이도 모를 리가 없었다.
봉규는 생긴 그대로 다짜고짜 금순의 팔을 잡아끌었다. 힘깨나 쓰는 사내면 은근히 마음을 줬던 금순이었지만 봉규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짜증을 부렸다.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제법 앙탈을 부려 봤으나 금순은 그 큰 봉규의 옆구리에서 끼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우?”
“사내면 사내다워야지 이게 뭔가?”
“흐흠!”
아무리 주인 없는 여자지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 내친걸음 뒤로 물러설 봉규가 아니었다. 그의 잔인성은 결코 먹이에 입도 대지도 않고 풀어 주는 법은 없었다.
“이거 놔요!”
또 한 번 금순이가 앙탈을 부렸다. 그때였다.
“그만 놓그라, 이게 무슨 짓이고?”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금순이가 좋아했던 성욱이었다.
“이거 웬 자식이고?”
봉규는 가소롭다는 듯이 씩 웃으며 성욱을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금순은 봉규의 두꺼비 같은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봉규는 천천히 성욱을 향해 다가갔다. 성욱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봉규의 주먹이 성욱의 면상을 향해 날아왔다. 성욱은 얼굴을 뒤로 살짝 젖혀 가볍게 주먹을 피하면서 한쪽 다리는 봉규의 옆구리를 가격하면서 바로 올려 목덜미를 가격했다.
“퍽, 퍽!”
봉규의 옆구리와 목덜미에 발 길이 닫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분명 봉규가 쓰러진 줄 알았는데 아무 반응도 없이 맞은쪽 고개를 어깨에 살짝 문지르면서 동시에 성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성욱은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봉규는 가고 없었다. 단 한방에 성욱은 쓰러졌고 얼굴은 묵사발이 된 것이었다.
그날 봉규에게 얻어맞은 성욱은 온 사방을 수소문해서 봉규의 집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성욱은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봉규네 집을 찾아서 대문을 두드렸다.
“야, 박봉규 이 새끼, 나와라, 야, 봉규야!”
안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은 봉규는 낮에 자기에게 맞은 성욱인 걸 알고 대문을 뛰쳐나오자마자
“이 자식이 뒤지려고 환장을 했나?”
하고 바로 그의 허리끈을 잡고 넘겨 쳤다. 갑자기 당한 성욱은 그 자리에서 자빠졌고 봉규는 자빠진 성욱을 향해 오른 팔꿈치로 목을 조르려고 달려들었다. 순간 성욱의 왼쪽 무릎이 봉규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갔다. 봉규는 조르려던 팔을 풀고 얼른 뒤로 피했다.
물론 싸움에 성욱이가 이길 턱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싸움은 봉규의 일방적인 싸움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다음 날 아침, 저녁, 또, 또 하루도 쉬지 않고 연 일주일을 끈질기게 성욱이 덤벼들자 결국 그 큰 덩치 봉규는 성욱을 대하기에 진저리가 났다.
“야, 네놈도 거머리같이 지독한 놈이구나, 내가 졌다!”
하고는 성욱에게 꿇어앉아 빌고 말았다. 싸움에 이기고도 져 보기는 봉규가 태어나서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전마당에서 가까운 당북동에 서울과 안동을 오르내리며 쌀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첩에게 빼앗겨 버리고 지금은 두 남매를 데리고 혼자 쌀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강원도에서 탄광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첩과 자식을 낳고 잘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 돈 십 원 한 장도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자식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춘심의 가게를 찾아왔다. 그녀는 춘 심이가 신시장 채소 파는 골목에서 방물장사를 할 때 쌀을 걷으려고 시장통을 자주 왕래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거래를 했다. 그때 춘 심이도 장꾼들에게 쌀을 사서 조그마한 이문을 남기고 다시 그녀에게 팔았기 때문에 그녀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형님, 어쩐 일이 껴? 우리 점방을 다 오시고......”
장사에 지치고 자식에게 지쳤으련만 언제 봐도 곱디곱게 늙은 그녀의 얼굴을 대하니 춘심은 무척 반가웠다.
“왜? 나는 오만 안 되나?”
하고 그녀는 따라 웃었다.
“아이고 형님도 별말씀을요, 어서 올라오시소, 그래, 어쩐 일인교? 오늘은 서울 안 올라가셨는가?”
“그래, 자네한테 할 말이 있어서 장사고 뭐고 다 치우고 일부러 왔다, 우선 물이나 한 잔 다고.”
“형님, 사이다 한 잔 하세요, 여 따 논게 있니다.”
“아이다, 물 있으면 다고, 물이 최고다.”
하면서 꺼낸 말이 금순이의 중매 이야기였다. 춘심과는 못 할 말없이 다하는 가까운 사이라 굳이 다른 각설은 하지 않고
“너 아 금순이 시집보내라!”
“형님도, 생뚱스럽게 시집은 무슨 시집을요?”
금순이의 행실을 잘 아는 춘심은 딸 시집 이야기가 나오자 속으로는 좀 부끄럽고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 어디 좋은 중매 자리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 시침을 뚝 떼고 일부러 놀라는 척했다.
“야야, 니캉 내캉 서로 모르는 게 뭐 있니? 내사 톡 깨 놓고 말하련다, 그 사람 돈 많은 서울 남자다, 이북서 월남한 사람인데 쇠떵거리를 만져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다, 상처했는데 너 아 금순이 만한 딸이 하나 있다, 그 외는 월남한 사람이라 주변에는 시어마이, 시아바이, 시누이, 머 거추장스러운 사람은 하나도 없단다, 까짓꺼, 나이 많으면 어떠니? 돈만 있고 사람만 건실 하만 됐지, 한번 안 해 볼라나?, 자네가 좋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주선해 보련다, 어떠니? 그 사람 한번 볼끼가?.”
부자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춘심이었지만 금순의 아버지 또래인 사람이란 말이 찝찝하기는 했다. 하기야 돈 많은 사람이 뭐가 답답해서 첩도 아니고 후처로 우리 금순이 같은 여자를 구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자 춘심의 마음 한편으로는 은근히 호기심이 당겼다.
“그라만 스무 살도 더 차이가 나네요?”
하고 춘심은 나이라도 똑바로 알아보려고 말을 던졌다.
“까짓꺼, 스무 살도 더 차가 나면 어떠니, 돈 많고 신체 건강하면 됐지, 그 집에 가만 식모가 있어 가주고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산단다, 또 자가용도 있고 운전수도 딸려 있어서 자네 딸이 시집가기만 하만 황후장사 부럽지 않게 산다!”
비록 실수로 노름판 뒷전에서 돈놀이를 하다가 남의 돈을 떼먹고 야반도주는 했을망정 그전에는 차돌같이 야물고 매사가 분명했던 금순이 아비 영두도 딸 덕에 공짜 재물 맛을 본 후로는 사람이 달라져도 이만저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식모에 자가용까지 있다는 말에 권 주사는 딸 혼사에 대해서는 찍소리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춘심에게 맡겨 버렸다.
지아비가 그런데 춘심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바늘 가는 데 실간다고 춘심이 역시 돈맛을 알고부터는 주위 여건이나 사람 됨됨이는 따져 보지도 않고 금순이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금순은 그렇잖아도 진현이가 죽고부터는 씀씀이가 진현이 만한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데다가, 죽은 진현이와 나이도 10년 이상 차이가 났고 보니 이제는 나이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금순은 어미 아비와 마찬가지로 서울살이에 부자라는 말만 듣고 그렇게 하겠다고 얼른 결정을 짓고 말았다.
그렇게 결정을 짓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언가 빈 듯해서 그날 저녁 금순은 성욱을 꼭 한번 만나 보려고 안달을 했다. 주위에 아는 건달에게 줄을 놓아 성욱을 찾아봤다. 아비 같은 늙은 영감과 결혼해서 평생을 산다고 결정은 해 놓고 지금에 와서 막상 생각하니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혹 성욱을 만나면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성욱과 서로 인연이 없는지 금순은 그날도 다음 날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며칠 동안 성욱을 만나지 못하자 금순은 성욱을 한 번 만나 보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돈 많은 사람의 후처가 되려고 서울 길에 올랐다.
부모와 딸, 셋이 죽이 맞아떨어져 스무 살도 채 안 된 금순이의 서울살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