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연(因緣)
경기도 양평군 국수리의 용천사. 삼면이 숲으로 우거진 용천사는 여느 때와 같이 아늑하고 조용했다. 가끔 지나치는 산들바람은 풍경(風磬)을 흔들면서 산새들의 깃털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고 풀잎에는 새벽에 내린 이슬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성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법당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은 후에 넓은 마당을 다 쓸고 아침 공양을 하려고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김 처사가 봉고차를 몰고 사찰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성초가 공양실 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지금 차 소리가 김 처사 들어오는 소리지?”
하고 상을 차리던 공양주 보살이 성초를 보고 묻자
“야!”
“마침 잘됐다, 김 처사도 왔으니 스님도 공양할 때 같이 해야지, 성초야, 네가 혜천 스님도 깨워서 데리고 오너라.”
오는 사람마다 여러 번 상을 차리기가 귀찮은 공양주 보살이 공양을 하려고 들어서는 성초의 발길을 되돌렸다. 그렇지만 남에게 받기만 한 스님들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턱이 없었다.
“무슨 스님이 저리도 깨글 받을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줄 모르고......”
성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공양실 벽에 세워 뒀던 빗자루를 창고에 넣고 혜천스님을 깨우려고 건너편 요사채로 향했다.
법당 용마름 뒤 동쪽 전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엷은 투명유리같이 잘게 쪼개져서 성초 눈에 눈부시게 비쳤다. 성초는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고 히죽히죽 웃으며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혜천스님이 묵고 있는 요사채로 향했다.
성초는 주지인 용천으로부터 계를 받아 머리를 깎았고 성초라는 법명을 얻은 지가 벌써 석삼년이 되었다.
사실 성초도 뜻이 있어 한때 경상도 영양에 있는 일월산으로 들어가서 토굴을 파고 기도를 했었다. 한 이 년은 그도 그런대로 견딜 만은 했었으나 삼 년을 못 채운 어느 날 기가 약한 탓인지 온갖 귀신에 시달리다가 기도고 뭐고 내팽개치고는 하산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가끔 헛소리도 하고 이상한 행동도 하는 그를 부모가 수소문하여 병도 고칠 겸 용천사에다 성초를 맡겼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절 일을 도와주며 행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성초가 행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은 들어오자마자 계를 받았으니 예비 승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사찰 식구들은 성초가 약간 맛이 간 것을 알고 있기에 행자 취급을 하지만 평소에는 워낙 말수가 적고 성실하다 보니 내용을 모르는 신도들은 성초를 스님, 스님 하며 잘 따르고 대접도 해 주었다.
요사채는 좌우로 두 줄씩 각각 6칸으로 모두 12칸의 방이 있었다. 다른 칸은 오가는 스님들이 머물거나 가끔 고시생들에게 월세를 받고 공부방으로 빌려주는 방이기도 했다. 주지 스님 방에서 가장 가까운 첫째 칸 뒤쪽 방은 주지 스님과 소위 곡차 판을 벌리려고 아예 비워두는 곳이었다.
“스님!”
성초는 바로 그 방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다. 이어서 문이 열리면서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이불을 반쯤 걸친 스님 한 분이 고개를 내밀었다.
“누 누구고?”
“설촙니다.”
“아, 성초가? 아이고 대가리야…….”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박박 머리를 긁적이며 성초를 바라본다.
“스님, 공양하셔야지요.”
“그래, 알았다, 내 곧 갈게.”
평균 한 달에 두세 번씩 나타나는 혜천 스님은 올 때마다 바로 돌아서서 가는 법이 없었다. 혜천 스님이 오는 날이면 꼭 이삼일은 주지와 밤이 새도록 곡차를 마셨다. 그런 때면 성초와 공양주 보살, 그리고 김 처사는 무척 바빠진다. 김 처사와 성초는 곡차와 안주를 공급하느라 시도 때도 없이 대기해야만 했다. 한 가지가 떨어지면 주지스님은
“성초야!”
하고 불렀고 주지스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초와 김 처사는 차를 몰고 시내로 가서 모자라는 술과 안주를 준비해 바쳐야 했다. 그렇게 꼬박 이삼일을 수발하다 보면 머리통이 수박보다도 큰 일도 스님이 왔다. 그리고 다음 날 낯선 보살 한 사람이 오고 나면 일도 스님의 염불 소리와 함께 오전 내내 법당에서 기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한나절 조금 지나 기도를 마치고 나온 혜천 스님과 보살이 함께 방생을 하기 위해 출타를 한다. 그리고 해 그름 해서야 만면에 미소를 띤 혜천 스님이 다시 혼자 사찰로 들어오면 그때부터 주지 스님과 일도, 혜천 스님 셋이 다시 대작을 시작한다.
혜천은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성초가 깨우던 그 시간에는 술이 덜 깬 데다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잠이 들었다가 점심 공양 시간에서야 겨우 기침을 했다. 어제 신도 한 사람을 몰이해 온 덕에 주지인 용천과 새벽까지 대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혜천은 주지 용천이 자란 안동에서 좀 떨어진 일직면 조탑 사람이었다. 부농의 집안 서자로 태어난 그는 머리가 뛰어나게 좋아서 책을 한번 보기만 해도 줄줄 외울 정도였다.
혜천은 아비가 술집 작부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혜천을 낳자마자 자기들 씨라고 혜천을 빼앗고 천한 술집 작부라고 해서 어미는 쫓아내 버렸다.
혜천은 위로 배다른 형과 큰어미의 구박 속에서 눈치를 보면서 자라났다. 서출에다가 어미조차 없이 큰 어미와 배다른 형제들 틈에 자랐으니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 들 그의 주위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비록 한 핏줄로 태어나긴 했어도 술집에서 낳아 데려온 자식이라 큰 어미로서는 남이 잘되는 것보다 서자 그 자식이 잘될까 봐 더더욱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차라리 좀 모자라는 듯했더라면 그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은 받지 않았을지도 몰랐을 텐데 뛰어나게 영리하다 보니 어미와 형제들에게 온갖 미움까지 독차지하게 되었다.
혜천은 고등학교를 나오자마자 숨이 막히는 집안을 뛰쳐나와 건달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배운 것은 없는 혜천이었지만 친구를 배신하는 의리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용천이와는 건달 생활을 할 때 같은 건달이었는데 용천의 배짱과 싸움 솜씨에 반해 그때부터 용천을 따랐다. 용천과 혜천이 서로 태생은 달랐지만 상황이 비슷한 처지라 한때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 후에 용천이 주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와 잠깐 어깨너머로 사람의 관상 보는 법을 배우더니 곧바로 사람 낚시질을 하기 시작했다.
혜천은 한번 들으면 열을 생각하는 좋은 머리 덕분에 설익은 솜씨에도 걸려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지인 용천은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자랐다. 아비는 본래 00사의 발원지인 북한산 00사에 주지로 있으면서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처녀와 눈이 맞아 아들 셋을 낳았는데 그중 둘째가 지금의 용천이었다.
그의 아비 법명은 벽해였다. 키도 크고 풍채 또한 대장부다워서 죽자 살자 벽해를 따르는 신도들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 신도가 훨씬 많았다.
불교의 종파 중의 하나인 00종은 중들의 결혼을 허용했다. 그러나 00종이 결혼을 허용한다고는 했지만 벽해를 따르는 신도들, 특히 여신도들이 잘생긴 벽해가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면 당장 실망해서 수많은 여 신도들이 그의 곁을 떠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노릇이었다. 속담에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이 적격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벽해로서는 사찰 운영에 큰 타격이 있을까 우려되어서 아내 해수와 합의해서 신도들 몰래 처가인 안동으로 아들과 처를 내려보냈다.
용천 어미는 안동에서 용천 아비가 중이란 사실을 숨겼고 그녀 곁에서 아들 셋 모두 겨우 초등학교까지만 다녔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들은 빈둥빈둥 놀 수밖에 없었다.
용천의 어미인 해수는 첩의 딸이었다. 해수는 어려서 두 어미 밑에서 자라다 보니 시기심 많은 큰 어미의 눈치를 꾀와 슬기로 그때그때를 잘 모면하면서 살았다. 그러자니 자연 남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해수의 바탕이 어미를 닮아 미인인 데다 천성이 눈꼬리로 웃음을 짓고 자랐으니 신기가 없었다면 기생이 되어서 뭇 사내들을 농락했을 것 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녀를 보는 사내들은 한 번 품어 보고 싶어 하나같이 침을 흘렸다.
그녀는 스스로 북한산 00사 주지인 벽해를 찾은 것은 신기가 있어서였다. 처녀 때부터 벽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용하고 생김새 또한 남다르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녀는 벌써부터 한 번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왕지사 그녀는 첩의 자식에다 신기까지 있어 출가를 제대로 하기는 틀린지라 소문만 듣고서 00사 주지 벽해를 마음속에다 담아두고 백 가지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었다.
해수가 벽해를 만난 것은 낙엽이 다 떨어지고 갈무리가 끝날 음력 시월 그믐께였다. 앙상한 가지 끝에 따다만 감 몇 개가 터질 듯이 붉게 익어 먹잇감을 구하는 까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도 벽해는 쓸쓸히 경내를 돌다가 공양실 뒤 감나무에 달려있는 감 몇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등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 주지 스님이 아니십니까?”
그는 뜻하지 않은 여인네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순간 벽해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났다.
“나무관세음보살!”
여민 옷 사이로 튀어나올 듯이 깊게 파인 가슴, 가까이 다가온 그녀로부터 여인네의 향내가 젊은 사내인 벽해의 코에 그윽하게 와닿았다. 지금껏 그는 숱한 여인네를 만나 봤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벽해는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벽해의 눈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서 번뜩이는 신기를 발견했다. 벽해는 처음 본 그녀에게 망설임도 없이 주지실로 함께 가기를 재촉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녀의 사주팔자 속에 자신의 사주팔자가 함께 해야 서로가 길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본 벽해였다. 이심전심이랄까 만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마음이 맞아 그 밤을 절에서 함께 보냈다.
그 후 벽해와 해수 사이에서 동욱, 성욱, 기욱 세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해수는 세 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안동에 내려와 대문 앞에 「卍」 자 깃발을 꽂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편 본격적인 점을 봐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점괘가 용하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반면 벽해의 세 아들은 어린 마음속에 어미가 점을 봐주는 무당이란 놀림 때문에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아비조차 멀리 북한산 00사 주지로 있어 가뭄에 콩 나듯이 해수를 찾았으니 집안에 엄한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곳이 전혀 없었다. 어미가 집안에 신당을 차려놓고 점을 봐주니 초등학교 때부터 세 형제는 집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질과 도둑질을 일삼았다.
그렇게 자란 성욱은 군 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할 일도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다. 연초 건조장에서 단순 노동자로 일하면서 촌에서 올라와 같이 일하는 처녀들이나 농락하며 건달들과 어울리면서 몇 년 세월을 보냈다. 바로 그때 건조장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만난 건달들이 영근이와 영표, 재석이었다. 성욱은 이들 셋과 뜻이 맞아 건조장에서 일하는 처녀들과 할 짓 못 할 짓을 다 해가면서 놀았다. 그러나 비록 건달 질을 하지마는 영근이와 영표는 처녀들에게 난잡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재석은 닥치는 대로 처녀들을 농락했다.
성욱은 그 짓도 얼마 가지 않아 싫증이 났다.
여름 장마가 한창인 7월 초여름이었다. 굵은 빗줄기가 앞집 담장에 덮인 호박잎을 죽어라고 두들겨 패고 있었다. 개구리가 무슨 살판을 만났는지 비를 맞으며 좁은 텃밭 호박 줄기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지런히 다닌다.
“임자 있는가?”
세찬 빗소리에도 어미 해수는 벽해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듣고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실로 작년 11월에 보고 처음 대하는 남편 벽해였다. 비는 끝일 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해수는 점을 보러 오는 손님을 일절 받지 않았다. 둘은 이불을 펴고 오랜만에 정사를 즐겼다. 장마로 인해 방안 가온이며 이불이며 습기가 차서 눅눅했지만 정사가 끝난 둘의 몸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 성욱이 집에 잠시 들르러 왔을 때 아비와 어미가 이불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찬 빗소리에도 남편 벽해의 소리를 알아듣던 어미는 성욱이의 발자국 소리는 빗속에다 묻어 버린 모양이었다.
“........ 내가 산에 토굴을 지어 생식을 하며 삼 년 동안 기도했지, 그래서 득도를 하고 하산을 했는데 그 후로 신도들이 줄을 잇고 나를 찾아왔지…….”
아비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성욱은 결심한 바가 있어 그 길로 아비가 있는 북한산을 찾아들었다.
인적이라고는 하나 없는 북한산 중턱에다 토굴을 지어 솔잎과 나무뿌리로 연명하며 기도에 정진했다. 기도 중 온갖 귀신들이 성욱을 유혹하고 협박했다. 성욱이 워낙 독하고 배짱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런 기질이 없고서야 온전한 정신으로 지탱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천일이 되던 날. 성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도를 드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덮이더니 찢어질 듯한 뇌성벽력이 치기 시작했다. 그때 섬뜩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순간 개천에서 용이 하늘을 오르는데 여의주는 물지 않았지만 몸에서 나는 빛은 오색찬란했다. 성욱은 겁도 나고 신기한 마음도 들어 멍하니 하늘만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집채만 한 호랑이가 승천하는 용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서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그만 잠에서 깨어났는데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수습한 성욱은 그 길로 지금까지 하던 기도를 마치고 토굴을 내려와 자신을 스스로 용용 자, 내천자를 써서 용천이라 불렀다.
땡전 한 닢도 없는 용천은 바랑을 걸머지고 시주를 하면서도 자신이 안착할 절터를 물색하고 있었다.
어느덧 북한산을 내려온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푸르렀던 나뭇잎이 붉게 물든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하고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지친 발길은 양평군 국수리 어느 집 앞에서 멈췄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대문 바로 옆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던 소가 굵은 목을 흔들며 목탁을 두드리는 용천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주인인 듯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눈은 가늘고 얼굴은 각이 진 딱딱한 모습의 제법 의지가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우리는 예배당에 다닙니다.”
사내는 점잖게 한 마디 던지고 문을 닫아버렸다. 바로 그때 작달막한 중년의 여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부엌에서 바가지에 쌀을 담아 용천 앞으로 다가왔다. 제법 붙임성 있게 생긴 여인은 좀 전에 문을 닫은 사내의 아내인 듯싶었다.
“스님, 여기…….”
바랑을 벌리고 바가지에 담은 쌀을 넣는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용천은 이 집 내외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온 형제 같은 정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이제 같이 안착할 사람을 만난 것을 느꼈다.
“보살님, 안에 계신 처사님이 남편 되는 분이시지요?”
“예!”
“안에 계신 처사님 상을 보니 팔 남매 중 셋째군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하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용천은
“처사님 위로 두 분 형님이 계셨는데 두 분 다 익사했고, 해서 본의 아니게 맏이가 됐으니, 쯔쯔쯔, 남은 형제자매분들도 처사님과 인연이 없어 서로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으니…….”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말을 방 안에서 듣고 깜짝 놀란 남편이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스님, 제가 어리석어 몰라 봤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그랬다. 병 도는 위로 형 둘이 있었는데 첫째는 강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했고 둘째는 그해 겨울에 형이 익사한 바로 그 자리에서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죽었으니 일면식 없는 자신의 형제 일을 족집게같이 알아맞히는 용천의 말에 병 도는 맨발로 뛰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병도 어미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은 아비의 유산이 병도 어미의 몫으로 제법 많이 있었다. 물론 시집 장가간 동생 몫도 많았지만 동생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의 몫들을 사업이다 노름이다 모두 다 말아먹고 말았다.
수중에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제법 넉넉한 전지가 있고 보니 어미는 아들 병도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홀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도 동생들은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홀로 농사를 짓고 있는 고향에 있는 어미와 자주 왕래하기 시작했고 맏이가 된 병도 내외를 어미도 모시지 않는다며 헐뜯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틈만 있으면 입에 발린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 자식들의 말에 그 어미는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병도 어미는 자식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그들 요구대로 자기 몫의 논밭전지를 모두 팔고 말았다.
어미 수중에 돈이 들어오자 자식들은 서로 효자 효녀인 척하면서 돌아가며 어미를 모신다고 난리를 치면서 논밭전지 판돈을 야금야금 뺏어 먹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돈이었지만 여러 형제들이 야금야금 곶감 빼먹듯이 빼먹기 시작한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거기다가 병도 어미는 나이도 많고 돈도 한 푼 없는 데다가 병까지 들고 말았다.
이제까지 돈을 빼앗아 먹기 위해 지어미에게 온갖 사탕발림으로 아첨을 떨던 자식들은 어미의 수중에 전지도 돈도 없게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병든 어미를 별도의 집 앞에다가 몰래 버리고 나 몰라라 도망가 버린 형제자매들이었다.
그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제와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죽은 부모 앞으로 된 병도 몫의 밭뙈기까지 공동소유니 분할해 달라고 소송까지 걸어와서 병 도는 그 일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날로 병 도는 용천과 인연이 되어 자기가 믿고 있던 교회조차 팽개치고 용천을 따랐다. 거기다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국수리 개천 건너에 있는 이천 평이나 되는 밭에다가 용천사를 짓게 하고 자신은 용천이 부르는 대로 김 처사라 하면서 봉고차를 한 대 기증하여 스스로 운전수 역할을 담당해서 신도들을 실어 날랐다. 또 아내는 이 보살이라 칭하고 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주관하여 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인연이 되고 보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병도 내외로 인해 용천의 뜻한 바가 하루아침에 모두 이루어졌다.
용천이 하산하여 용천사 주지로 자리를 잡자 아비를 닮은 남다른 풍채와 인물을 바탕으로 신수를 족집게처럼 봐주자 그때부터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특히 여 신도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니 과히 부전자전이라 할 만했다.
혜천은 어제 밤새도록 대작을 하던 주지 용천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난 과거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용천과 대작을 하던 혜천은 속이 타고 졸음이 와서 도저히 더 이상은 술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소피를 핑계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을 때였다. 대충 계산해 봐도 빈 소주병이 스무 병이 넘었고 혜천이 꺾어 마시느라 그중 열대여섯 병은 용천이 먹었을 터인데 새벽이 가까워 오도록 용천은 자세하나 흩트리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속해서 곡차 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 하나는 술에 취한 말소리와는 달리 신도들의 운과 일진을 풀 때처럼 무서울 정도로 신기가 비치는 것을 혜천은 느꼈다.
“대단한 사람이야!”
한낮이 가까웠는데도 사찰에는 용천이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지금쯤 아랫마을 김 처사의 본가에 갔을 것이라고 혜천은 생각했다. 일요일이나 초하루, 보름 때가 아니면 오전에는 신도들이 용천을 만날 일이 있어 찾아와도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었다.
평소 용천은 아랫마을 김 처사 집에 내려가 안방에서 TV를 보면서 이 보살이 달여 놓은 보약을 먹고 있을 터이지만 이것도 일부러 기다리는 신도의 애간장을 태우려고 시간을 끄는 용천의 얕은수였다.
혜천은 다시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쓰린 속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듯싶었다. 그는 해우소를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사찰 입구까지 걸어갈 일이 귀찮아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건너편 공양 실 앞에서 김 처사와 이 보살, 성초와 공양주 보살이 초파일을 맞을 연등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 다른 일을 다 팽개치고 연등을 만드는 일에 모두 열중하고 있었다.
혜천은 빈둥거리면서 하루 더 쉬고 싶었지만 다음날은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이미 벌어 드린 돈 몇 푼은 시골에 눈칫밥을 먹고 있는 마누라에게 보낸 터라 빈둥거리면서 놀 여유가 없었다. 그는 승복에 바랑을 걸머졌다. 오늘 가지 않으면 낚시질해서 다 잡아 놓은 고객을 놓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용천을 찾아와서 처음 만나 대작으로 시간을 보낼 무렵 혜천은 아직 법명도 없고 자기 이름자인 영근이라고 불릴 때였다. 연장 삼일을 술을 마시고 그날은 간을 좀 쉬게 하자고 겨우 용천을 졸라 영근은 요사채에서 쉬고 있었다. 사실 늘 먹던 술을 먹지 않고 쉬려니 혜천으로서는 무척 심심했다. 마침 그때 용천이 들어왔다.
“어이, 친구, 심심하지? 내 자네 신수나 봐줄까?”
그렇잖아도 여기 와서 용천의 주역 풀이가 신기에 가깝다는 소문을 심심찮게 들은지라 영근은 언제 한번 용천에게 신수를 봐 달라고 용천에게 먼저 말을 떼려고 벼르고 있는 터였다.
“그래, 한번 봐주게.”
벌떡 일어나 반갑게 용천을 맞이한 영근은 자신의 난해부터 난시까지 차근차근 말해주자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 손가락으로 육십갑자를 짚던 용천이 말했다.
“자네, 사형제 중에 셋째구만!”
“그래, 셋째다.”
그때 용천은 놀란 듯한 눈빛을 지으면서
“자당께서 본 부인만 되어서 자네를 낳았어도 자네 사주팔자가 달라졌을 것을...... 앞으로 자네는 저 높은 하늘에 별처럼 모든 사람들의 빛이 될 것이니......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것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 이 사람 주지, 농담은 그만하시고......”
영근은 빌어먹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자 용천은 다시 얼굴을 고치고는 말을 돌린다.
“자네 어릴 때 한 번 죽다 산 적이 있었지?”
“그걸 어찌 아노? 그래 맞다, 일곱 살 때 애들하고 놀다가 담장이 넘어졌잖는가, 거기에 같이 눌려서 나만 겨우 살아났잖는가.”
“니 마누라도 좀 보자,”
영근은 마누라의 난시를 몰라 얼른 시골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주를 한참 짚어 보던 용천의 입에서
“니 마누라 고집이 대단하구먼, 한참 코를 불면 대적할 사람이 없겠구먼, 그런데 수술한 적이 두 번이나 있네? 한 번은 생식기 계통이고 다른 한 번은 소화기 계통이지?”
영근이 생각해 보니 용천이 한 말이 사실과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비록 영근 아내가 먹고 살길은 막연했지만 배다른 시어미 밑에 들어가 시집살이를 한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웬만한 사람이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래, 그래, 고집도 세고....., 근데 생식기? 아, 그래 자궁이니 생식기가 맞지, 소화기 계통도 맞고...... ”
“그런데 몇 해를 못 넘기겠는걸? 지금도 매일 숨이 답답하다고 하지?”
“맞다, 맞아, 야, 대단하구나, 근데 몇 해 못 넘긴다고?”
“삼 년을 넘기기가 힘들겠어, 머지않아 큰 징조가 보일 걸쎄!”
이 말에 영근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자네가 그걸 알면 사는 방법도 알 거 아이가?”
이쯤 해 놓고 용천은 씩 웃으며 영근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쓰다 달다는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영근은 자신과 아내의 일을 손금 보듯이 아는 용천이 던진 말이 마음에 걸렸다. 영근은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이 되었다. 아침 공양 시간에 성초가 영근에게 다가와 한마디 던졌다.
“처사님, 어제 주지 스님께서 처사님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던데요.”
“그래? 기도를 드리려면 어찌해야 하노?”
“법당에 제물을 차리고 기도를 드린 후에 방생을 해야 합니다.”
“방생? 그렇게 하면 돈은 얼마 드는고?”
“기도스님을 부르고, 제물도 차리고...... 한 삼백 정도는 드는 가 봅니다.”
“삼백이나?”
“글쎄요, 일, 이백도 되지만 기도와 제물은 처사님 정성 아니겠어요?”
돈이라고는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어서 찾고 찾아서 절에 더부살이를 하러 온 영근이었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기도를 드려야 하느냐 마느냐까지 걱정해야 하니 영근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더구나 먹고살기가 하도 어려워 아내를 가시방석 같은 시골집에 떼 놓고 온 것이 미안했던 그였다. 시골집 그곳이 어디인가, 서자 아들로 어머니조차 없던 그 시절에 눈치, 코치 다 보며 자란 고향집 아닌가. 그런 곳에 떼 놓고 온 아내가 3년을 넘기기 힘들다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돈 삼백을 구하면 살 수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무일푼인 영근이로서는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이 생각 저 생각 궁리를 하던 중에 용천이 들어왔다. 기도 때문에 태산같이 걱정을 하던 영근은 용천을 대하자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이 사람아, 말만 던져놓고 훌쩍 가면 나는 어쩌나?”
“허허 급하긴 사람도...... 생각은 해 봤는가?”
“자네 말이 족집겐데 생각하고 자시고 가 어디 있는가, 어찌......”
영근의 말을 중간에 가로막으면서 용천은
“사람 낚시는 그렇게 하는 거네, 알겠는가?”
그게 영근이가 머리를 깎고 혜천이란 법명의 중이 된 시초였다.
혜천은 시내로 가는 첫차를 탔다.
잠이 채 깨기도 전에 지친 몸을 이끈 새벽 노동자들의 행렬이 고깃집 진열대에 아무렇게나 걸어 놓은 고깃덩어리처럼 손잡이에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나마 자리를 차지한 운 좋은 사람들은 의자에 길게 서로 눌어붙어서 피곤한 몸을 의지하고 못다 잔 잠을 청하고 있었다.
젊은 신사복을 입은 사내가 비좁은 사람들 틈 사이로 무언가는 눈치를 살피며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건너편 의자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다리가 벌어진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졸고 있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팽팽히 당긴 스타킹이 그녀가 입은 팬티의 선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다른 사내들도 한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지만 힐끔힐끔 그쪽으로 향하는 눈길이 사내라서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망할 자식들, 무얼 볼 것이 있다고, 나무관세음보살”
혜천은 사내들이란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사타구니에 무엇이 볼 것 있다고 저리도 곁눈질을 해가며 보는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혜천은 며칠 전에 술집 계집년을 데리고 하룻밤 잔 적이 있었다. 마누라를 본 지도 몇 개월이 되었으니 아무리 중 복장을 해도 그 짓은 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다리를 벌리고 혜천을 받아들이는 계집년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그년의 사타구니에 뭐가 있었던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혜천은 그 일에 마음이 끌리니 이 무슨 조화인가.
혜천은 다시 한번 곁눈질해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허허, 중 복을 입은 이놈의 생각이 겨우 요것뿐인가?”
혼자 피식 멋쩍게 웃었다.
“내 깨달음이 요기까지니 요렇게 살지, 흐, 흐, 흐.”
혜천은 낚싯밥을 던졌던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는 항상 가난하고 문제가 있을 법한 집을 택하여 낚시질을 했다. 벌써 여러 여인네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혜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혜천은 거리를 두고 점잖게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밤새 먹은 술 냄새가 풍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보살님, 안녕하신지요?”
“스님, 밤에 곡차 하신 모양이지요? 호호호.”
“스님, 우리 바깥양반 신수 좀 봐주시구려,”
“우리 아들 신수도 좀 봐주세요.”
모두 쪽지에 적은 생시를 들고 혜천이 앞으로 내밀었다. 미소를 머금은 혜천은 쪽지를 받아 들면서 정작 말이 없는 집주인아주머니에게 불안한 눈길을 돌렸다.
“그날 말씀드린 대로 준비는 되셨는지요?”
“예, 스님!”
다행이었다.
“그럼, 내일 저희 절로 오셔서 기도를 드린 후 방생을 하십시다. 소생은 다른 분들 신수를 좀 봐 드리겠습니다.”
그랬다. 혜천은 어수룩하고 가난하고 뒷말이 없을 법한 집들을 찾아 시주를 빌미로 용천에게서 배운 관상술을 써먹었다.
대개 사람이란 자신의 형제가 몇이며, 형제 중 몇째이고 어려서 아니면 젊어서 큰 병을 앓아 죽을 고비를 넘겼고, 부모덕이 없고……. 하면서 상대의 과거를 어림잡아 이야기한다. 사람의 일생 중에 병으로 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열에 아홉은 병을 앓았으니 그들의 과거는 대충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리되면 오히려 혜천에게 무릎을 앞당겨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과거를 하나둘 사실대로 이야기하기 마련이었다. 한참을 상대가 말한 이야기와 섞어 풀이해 주다 보면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에 취해 혜천에게 자기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줄도 모르고
“야, 잘 맞추시네!”
하면서 족집게라고 말하게 된다. 그다음은 상대의 미래였다. 그가 바라는 것도 자신의 과거가 아닌 미래인 것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미래에 대한 모든 그림은 혜천이가 그린 대로였다. 혜천은 그것을 노렸다. 혜천은 상대방의 미래를 때에 따라서는 위협으로, 칭찬으로, 그냥 그대로 서툴지만 아주 조심성 있게 상을 봐가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가장 어리숙하고 마음 약한 사람을 찍어 다음 순서인 기도를 권했다. 그 기도는 혜천이 몸을 담고 있는 용천사의 주지 스님에 의해 기도승이 한다고 하고 일체의 소요 비용은 용천사 불전에 신도가 직접 바치라고 했다.
처음에는 백여만 원의 비용을 떼먹고 혹 달아나지 않을까 염려했던 사람들도 의심을 풀고 혜천이 하자는 대로 모든 일을 맡겼다. 거기에 중 복장을 한 데다가 돈 한 푼 선불받지 않고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하니 더더욱 믿기 마련이었다.
사실 기도하는 비용이라고 해야 방생에 쓸 자라 한 마리 값과 과일, 몇 조각 떡이 전부였는데 그 돈이야 합쳐 얼마 되겠는가. 나머지는 기도승의 일당을 뺀 금액이 혜천의 몫이었다.
이로 인해 용천사에는 새로운 신도가 또 늘어나게 되었다. 주지 용천과의 약조는 혜천이 뒤로 돈을 돌려받는 대신 그 신도는 용천사의 신도가 된다는 밀약에서였다.
그렇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신도와의 인연은 백이 되고 천이되어 용천에게로 굴러 들어왔다. 가끔 왕건이가 물려 들어오기도 하면서…….
혜천은 신수를 보고 싶다는 돈 안 되는 곁다리 여인네들이 내민 사주조차도 꼼꼼히 챙겨 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들 모두는 언제 새로운 고객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일 벌 돈을 확실하게 짱 박아 두었으니......”
밖을 향하는 혜천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졌다. 그는 돈을 들고 경마장에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지난번에 찍어 놓은 사 번 말이 일등으로 들어오는 꿈에 금방이라도 돈을 수백 배 불려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경마장에 드나들면서 마권을 배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심풀이로 친구와 돈 오백 원을 배팅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배팅한 경주마가 일등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오백칠십 배인 이십팔만 오천 원을 배당받고 보니 혜천은 눈알이 뒤집혔다. 그날 가진 돈도 제법 있었는데 십만 원이라도 배팅했더라면 그 돈이 얼마인가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는 돈이 생기면 영락없이 경마에 배팅했다. 그러나 오백칠십 배의 기분은 그날 한 번 뿐이었다. 평소 잔챙이 몇 푼이지 큰돈을 들고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한번 맛 들인 경마 배팅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혜천을 영원한 용천사 낚시꾼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 내가 이번에 배팅만 잘하면 「포니」라도 한 대 굴리고 꼭 용천사에 들어가야지, 아니지? 「포니」가 뭐야, 「포니」가...... 「로열 프린스」라도 굴리고 의젓하게 들어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혜천의 가벼워진 발걸음이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 제법 큰 대문에 정원이 있는 집들이 높은 담장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조금 전에 신수를 봐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열두 서너 평 집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저택이었다. 혜천은 자기 적성과는 영 맞지 않는 부잣집들이라 돌아서 가려다가 왠지 오늘따라 이곳 집들에 구미가 당겼다.
“모처럼 부자 집 초인종을 한 번 눌려 볼까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은근한 오기까지 혜천을 발동시켰다.
“사 번 말? 그래 네 번째 집이다, 하나, 둘, 셋, 넷.”
널찍널찍하게 늘어선 집들을 세면서 네 번째 집 초인종을 눌렀다. 승복을 입고 바랑을 걸머지고는 처음 찾는 부잣집이었다. 한참 만에 대문 여는 소리와 함께 식모 인 듯한 계집애가 슬리퍼를 잘잘 끌고 문 앞까지 나와
“누구세요?”
하고 대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나무관셈보살, 보살님은 계시는지요?”
하고 목탁을 두드리자 마침 그때 안에서
“누가 오셨니?”
하고 주인 여자의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예, 중이 왔는데요!”
“아, 그래?. 여기 시주 돈 갖다 드려라.”
부잣집치고는 주인 여자가 마음이 후하던지 아니면 절을 믿는 여인이라고 혜천은 생각했다. 어차피 부닥친 일 혜천은 주인 여자를 만나 보기로 작정했다.
“보살님 좀 뵙자고 전해 주시지요, 나무관셈보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계집애는
“중이 사모님 보자는데요?”
혜천은 주인 여자를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금방 터질 듯한 몸매와 우수에 잠긴 듯 그윽한 눈은 혜천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두덩이 아래 약간 검푸른 빛은 그녀의 섹시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혜천은 이 여인의 눈두덩이의 검푸른 빛깔을 보고 음기가 무척 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음기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굶주린 한 마리의 야생마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혜천은 인간의 모든 길흉화복이 이마에 나타난다는 주지인 용천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새하얀 기운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으음, 보살님 바깥분의 신상에 좋지 않은 기운이....... 나무관셈보살.”
혜천은 목탁을 두드리며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엉겁결에 그녀도 손을 모으고 따라서 절을 하고 있었다. 손은 제법 단정했고 이끼처럼 매끄러웠다.
“옳거니, 이거야말로 부잣집에 들어와 잘하면 큰 구찌를 물을 수 있겠구나!”
하고 여인의 상을 본 혜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보살님은 복이 많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겠지만 몸에는 열이 많아 밤마다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히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상(像)을 갖고 계십니다.”
혜천은 음기가 많고 오직 밤일만을 생각하는 상(像)인 그녀를 어떻게 표현할까 망설이다가 궁여지책으로 튀어나온 말이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히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체질이라고 말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혜천은 용천의 말이 생각났다. 보지 않아도 분명 그녀의 유방이 뾰족할 것이며 국부가 다 뭐 할 것이라 상상했다. 혜천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얼른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보살님의 상에서 혼자 살 팔자가 보이는지라 혹 바깥 분께서 좋지 못한 일이?”
“예? 뭐라 말씀해니까?”
그녀가 강한 경상도 안동 특유의 사투리로 혜천에게 물었다.
갑자기 그녀로부터 ‘껴’라는 안동 사투리가 튀어나오자 눈치가 백 단인 혜천이었다. 그런 그가 안동 특유의 사투리를 놓칠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혜천의 고향도 같은 군내 일직 사람이었다.
“보살님 고향이 안동 아닙니까?”
“예, 그래요, 어떻게?”
“우리 주지 스님도 입적하시기 전에 안동에 계셨지요, 허, 허, 별 인연도 다 있네.”
그녀는 안동에서 올라온 금순이었다. 참으로 사람의 인연이란 묘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그녀가 안동에서 서울 부잣집 후처로 시집을 오기 전에 그렇게도 성욱을 그리워하다가 못 만나고 올라온지 십여 년이나 되었는데 여기에서 혜천의 시주 발길이 용천과의 재회를 마련하는 시초가 될 줄이야.
금순은 시집와서 십여 년을 살았어도 고향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모 형제들도 금순이가 매달 붙이는 돈만 쏙쏙 빼서 먹을 뿐이지 지금까지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지내고 있었다.
고향이 안동이란 말에 그녀는 친오빠들을 만난 것처럼 의심하는 마음은 멀리 사라지고 믿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 바깥양반이 좋지 못한 일이란 무슨 말입니까?”
“예, 바깥양반과 보살님이 서로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언제 한 번 소승의 절에 찾아오셔서 주지 스님을 만나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말에 금순은 잠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약이다 산삼이다 정력에 좋다는 약은 빼놓지 않고 먹여 봤지만 오십을 훌쩍 넘긴 남편이 어제도 그랬었다.
금순은 아직 물이 올라 성교를 하루에 몇 번을 해도 만족하지 못할 나이였다. 거기다가 혜천은 금순의 눈에서 음기가 센 여자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참 불이 붙을라치면 남편은 슬그머니 볼 일을 마치고 옆으로 나자빠졌다. 금순은 남편의 그것을 손에 잡고 잡아당겨 자신의 질 안으로 넣어보지만 이미 사그라진 그것은 요지부동이었다. 항상 그랬다. 단 한 번이라도 쾌감의 절정을 같이 즐겼으면 오죽이나 좋겠나 만 금순의 젖무덤과 터질듯한 탱탱한 육체, 남달리 풍성한 그 숲 속의 계곡을 맛본 남편은 보자마자 성급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연못 속으로 던지고 만 것이었다. 일을 마친 남편은 그녀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코를 골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금순은 미치고 싶도록 불타는 정력을 찬물을 끼얹으며 샤워를 하고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라고 그녀의 남편은 문밖출입조차도 제한했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성적 욕구에 대한 그녀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잠든 남편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쯤 가면 주지 스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옳커니, 또 한 건 걸려들었구나!”
그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묻자 혜천은 속으로 그렇게 쾌재를 불렀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이럴 때 자신의 욕심부터 먼저 차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더욱 공손하게 몸을 여미고는
“부처님 말씀에 수종백세 봉사 화사 불여수유 공양삼존 일공양복 승피 백 년이라, 비록 백 년 동안 불의 신을 숭배하여 제사드려도 잠깐동안 삼존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잠깐 공양하여 얻은 복덕은 백 년을 제사 지낸 것보다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우선 보살님께서 한번 기도를 드리고 방생이라도 하십시오, 그런 연후에 따로 주지 스님께 말씀을 올리고 만나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무관셈보살......”
비록 밤마다 술판을 벌리는 요사채지만 문짝이 없는 벽면 책꽂이에는 많은 불서가 꽂혀 있었다. 언제 한번 우연찮게 법구경을 뒤적이다가 술천품(述千品) 8장에서 수종백세 봉사 화사 불여수유 공양삼존 일공양복 승피 백 년 (雖終百歲 奉事火祠 不如須臾 供養三尊 一供養福 勝彼百年)라는 글귀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외워 둔 글귀였다. 마침 이럴 때 생각난 것이 참으로 신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적절하게 글귀를 갖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고 방생하려면 돈은 얼마 정도가 듭니까?”
“사람마다 정성에 따라 다릅니다만 대충 이삼백만 원 정도 듭니다.”
아랫동네에서 기도하고 방생하는 돈으로는 일백만 원이 최고금액이었다. 이삼백이 면 세배가 넘는 금액이니 혜천으로서는 많이 부른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돈에 대해서는 달다 쓰다 말 한마디 없이
“스님의 절이 어데 있는지?......”
하고 당장이라도 쫓아올 듯 절의 위치부터 물었다.
“양평, 국수리에 있습니다.”
혜천은 얼른 대답했다.
그녀는 왠지 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은 생각이 온통 머리에 꽉 채워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집 밖을 떠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녀는 십 년이 넘도록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에조차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은 울컥 고향의 향수가 금순의 가슴 깊이 저며 오고 있었다.
금순은 남편이 아무리 출입을 제한한다 해도 절에 간다는데 막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남편이 절에 가는 것을 막는다면?...... 그래, 미주, 미주가 있었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녀에게는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여러 명의 사내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전처 딸 미주가 있었다.
재수는 자수성가하여 결혼을 늦게 했었다. 늦게 한 결혼이지만 재산이 많다 보니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미주는 미인인 어머니를 닮아 무척 예쁜 얼굴이었다. 보통 키에 몸이 좀 약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오히려 연약한 모습이 뭇 사내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게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원인 모를 병을 앓다가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재혼을 서둘렀다. 마침 그때 들어온 여자가 미주보다 3살 위인 금순이었다. 비록 미주와 나이 차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순은 이미 남자를 알았고 풍만한 육체와 유연한 행동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성숙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재수는 금순을 애지중지 많이 사랑해 주었으며 이듬해 금순은 아들을 낳았다.
미주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학원을 마치면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보통 때는 운전기사가 학원까지 데리러 왔으나 그날따라 운전기사가 마중을 오지 않아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책을 보면서 자가용으로 다니던 밤길이었으나 그날은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걸어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버스에 내려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울창한 숲이 있었던 산 중턱이었다. 공기가 맑고 깨끗했으며 주변 경관도 무척 아름다웠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는 돈 많은 부자들이 하나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미주네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벌써 으리으리한 주택들이 한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언덕 밑에는 서민들이 사는 낡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었고 도로변에는 낮은 빌딩들이 낡은 주택 앞을 커버해서 상점들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미주네 집까지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몇 채의 집들만이 있었고 그 가운데 드문드문 건축물을 짓느라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늦은 저녁이라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짓고 있는 건물에는 일꾼조차도 모두 철수해서 어둠만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신축건물 앞을 지날 때였다. 시커먼 사내 몇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누구?”
채 말도 잇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끌려가던 그녀는 한참 뒤에서야 어둠이 점차 눈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사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내들을 어디에선가 낯이 익은 얼굴들이라고 미주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어둠 속에서나마 사내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사내들은 그들의 손아귀를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는 그녀를 지하실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반 지하실이라 말이 지하실이지 창틀 아래까지만 조금 땅에 묻혔을 뿐 지상이나 다름없었고 넓은 창 때문에 가끔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어슴푸레하게 그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미주를 다시 지하실에 있는 화장실로 끌고 갔다.
아직 미완성인 건축물이라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문틀만 달려 있었고 사방에는 시멘트 벽돌을 싼 모습이 도시 전체의 불빛으로 인해 희미하게나마 미주의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는 바닥을 쓸어 모은 시멘트 블록이 쓰레기와 함께 쌓여 있었다.
사내 하나가 들어와서 바지를 내리고 있었고 다른 사내들은 문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주는 숨이 막히고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손을 가슴에다 꼭 모으고 떨고만 있었다.
사내가 미주를 덮쳤다. 미주는 온몸을 쪼그린 채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그것이 미주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미주는 하체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신음소리를 냈다. 사내는 미주가 자신의 행위로 절정에 달해 신음소리를 낸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더욱 미주에게 밀착하고 집요하게 흔들어 됐다. 미주는 이를 꼭 깨물었다.
이때 건물 1층에서 전등불이 켜지고 분주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계단으로 전등불 빛이 반사되어 흘러들어 왔다.
미주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밖에 있던 사내들은 얼른 몸을 숨겼고 미주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짓누르고 있던 사내는 행동을 멈추고 미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내의 얼굴 뒤로 천정이 희미하게 보였다. 채 정리되지 않은 탓에 큼직한 합판 조각이 휘어진 못과 함께 대롱대롱 천장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미주의 눈에 들어왔다. 입이 틀어 막힌 채 미주는 합판 조각이 사내의 뒤통수에 떨어졌으면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천장과 벽 사이에 굵은 철사가 합판에 박혀 있는 못을 감고 있어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미주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리라고 생각했다. 웅성거리던 위층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지하에는 발길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지고 말았다. 전등 불빛도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건물을 덮쳤다.
다시 사내의 몸이 미주의 몸속에서 꿈틀거렸다.
한참 뒤 사내가 바지를 올리면서 일어서서 나가자 또 다른 사내가 미주의 몸 위를 덮쳤다. 온몸에 힘이란 힘은 모조리 어디 갔는지 미주는 그저 흐물흐물했다.
또 사내가 바지를 올리고 나가자 다른 사내가 들어왔다. 이제는 미주의 그곳에 사내의 그것이 닿아도 아무런 감각과 통증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사내가 올라왔다. 미주의 그곳에는 제법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몸이 공중으로 둥둥 떠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점점 몽롱해져 가다가는 잠시 후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아랫배에서 오는 무거운 통증을 느끼면서 한참 후에 깨어났다. 병원이었다. 누가 병원에 데려왔는지 왜 왔는지 그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왜 자기를 병원에 데리고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그녀의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항상 초점 없는 멍한 눈을 하고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는 거기까지만 다녔고 그녀를 유린한 그들은 영영 찾지 못했다. 피해자인 그녀가 정신이상으로 범인들의 인상착의조차도 알 길이 없었으니 경찰은 불량배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집 주변 불량배와 미주가 다니는 학교 주변 남학생들을 조사해 봤지만 그럴만한 단서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사건 수사는 흐지부지 장기화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범인 체포는 고사하고 주변에 소문만 무성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 미주 아버지는 일단 수사 중단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미주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후에 이미 이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딸의 장래에 걸림돌이 되어서 손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빤한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미주의 병을 고치려고 재수와 금순은 백 방을 다녀 약을 써도 별 차도가 없었다. 둘은 지쳤다. 결국 재수는 딸의 병을 고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금순은 그 딸을 위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하면 남편은 절대로 말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순은 혜천에게 다짐하듯 물었다.
“스님, 저에게 몸 쓸 병에 걸린 딸이 있는데 불공을 드리면 그 아이의 병도 고칠 수가 있는지요.”
이 말에 혜천은
“예, 치성이 하늘에 닿으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가만히 계실 턱이 있겠습니까?”
하고 은근슬쩍 오든 말든 당신의 판단에 맡긴다는 듯이 공손히 대답한다.
“머리에 워낙 큰 충격을 받은 병든 딸이라서......”
“그렇다면 더더욱 불공을 드려야지요.”
“그럼 당장 내일이라도 불공을 드려야겠어요.”
혜천은 금순의 제안에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번째 말을 찍어 네 번째 집에 들어와서 한 건을 잡았으니 이번에야말로 분명 베팅도 성공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도 금액을 너무 적게 부른 것 같았다. 한번 써먹고 바로 용천에게 신도로 넘겨주겠다고 한 약조도 후회스러웠다.
“여러 번 기도를 해야 한다고 구슬리면 이런 여자는 얼마든지 돈을 빼먹을 수가 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 내뱉은 말이니 지금은 어쩔 수 없고 다음에 기회를 봐서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초파일이 코앞에 왔으니 초파일이 지나고 이삼일 뒤로 하시지요, 지금 초파일 행사 준비로 절에서는 다른 행사는 모두 초파일 뒤로 미뤘을 겁니다.”
“잘 되었네, 우리 영감에게 말할 시간도 있고...... 그렇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