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재회
사월 초파일인 오늘은 날씨가 아침부터 뜨거운 햇살로 한마당 가득 내려 쪼였다. 용천사에는 신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천여 개나 넘는 연등이 공중에 매달렸으니 넓은 마당에는 빽빽하게 연등 그늘로 채워져 있었다. 미풍 따라 풍경소리도 부드럽거니와 오색찬란한 연등도 춤을 추고 있었다.
활짝 열려 있는 주지실 방문.
툇마루에 걸터앉은 사람과 사람들. 여기저기 소복하게 겹쳐 놓인 신발과 신발들.
병풍을 등지고 푸른 염색을 한 안동 모시로 지은 승복을 깨끗하게 다려 입은 주지 용천이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면서 의젓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교자상 위로 붓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 옆에 김 처사가 바쁘게 신도들이 건네주는 봉투를 받으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지 앞에서는 돈 많은 신도들이 용천과 말 한마디라도 더 거들어서 눈도장을 찍으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하나, 둘 들어오는 신도들은 한 발이라도 주지 가까이 앉으려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주지 용천 앞에 앉아 있는 신도들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서로 요지부동이었다.
더러는 웃다가 심각하다가 신도들은 주지의 붓이 가는 대로 눈길도 따라들 갔다. 붉은색 그림이 붓을 따라 그려진다. 부적이었다. 꼬불꼬불 오밀조밀 잘도 그린다. 십만 원, 삼십만 원, 백만 원...... 신도들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핸드백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돈을 꺼낸다.
용천은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참기름에 개면서
“이건 중국에서 가져온 건데, 진짜야……. 불치병도 고치고 정신도 맑게 해 준다는 것이거든…….”
자랑에 침이 마르고 듣는 이는 혀를 내둘렀다.
그때 지팡이를 짚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주지의 방 앞 마루에 비집고 들어와서 걸터앉았다. 진한 향내를 밀어내고 할머니의 몸에서 밴 땀내가 한동안 자리를 진동했다.
“애고 스님, 저기…….”
하던 말을 멈추고 할머니는 치마를 걷어 올리면서 고쟁이에 붙어 있는 손바닥 보다 큰 주머니를 뒤적였다. 꼬깃꼬깃 손등 주름보다 더 접쳐진 천 원 권 지폐 열 장을 꺼내 두꺼비 같은 그녀의 손으로 차곡차곡 폈다. 그리고 양쪽 귀에는 때 국이 낀 반으로 접힌 봉투를 꺼내 돈을 그 속에다 넣고 용천에게 내밀었다.
용천은 내키지는 않지만 일어서서 합장하며 공손히 봉투를 받아 들었다.
큰 얼굴에 비해 작은 코를 가진 할머니, 그녀의 거친 손과 굵은 손가락 마디마디, 찬찬히 훑어보던 용천은
“보살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잠깐 보살님 생시가?”
“애고, 스님, 이놈의 팔자, 가진 것도 없고, 스님, 괜찮습니다. 살 만큼 산 저가 앞으로 무슨 낙을 보겠다고요...... 저는 탑이나 돌며 부처님께 쪼그만 소원일랑 빌랍니다, 그만 앉으십시오.”
손사래를 치면서 얼른 어설픈 걸음걸이로 법당을 향하려는 것을
“돈 걱정일랑 말고 생시나 말씀해 보시지요.”
하고 할머니를 불러 앉혔다.
“그러면……. 저는 기미년 모월 모일 축시생이래요.”
부끄러운 듯이 사주팔자를 말하자 용천은 종이에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고 가로세로 대각선으로 줄을 그은 다음 손가락을 집더니 만세력을 펼쳐 들었다.
“보살님 살아생전에 고생이란 고생은 눈물겹도록 했군요, 어려서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부모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고, 이제는 손주 복도 없으니 쯧쯧”
“내가, 내가……. 흐흑”
할머니는 그만 치마를 걷어 올리고 코를 팽 풀었다. 고생고생해서 살아온 육십 평생 자신의 삶을 용천이 말하자 그만 복받치는 눈물과 함께 그녀를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히고 말았다.
곧바로 용천의 묵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혈육이라고는 어미 아비 없이 소중하게 키운 손주 놈 하나뿐인걸, 그 자식조차도 키운 공도 없이 지할미를 버리고 훌쩍 나가 버렸으니 애간장이 오죽 타겠소, 보살님 사주에는 돈복도 자식 복도, 복이란 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을…….”
용천의 이 말에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울음으로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어서 용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열심히 기도나 하소, 그리되면 조금이나마 풀릴 것이니…….”
용천의 한 마디가 또렷하게 할멈의 귀에 와 박혔다. 한참을 푹 퍼져 울던 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공손히 합장하고 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참 대단한 분이야…….”
한쪽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잠시 주저했던 사람들도 모두 아낌없이 돈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마당이며 요사채며 절간 이곳저곳이 시장 장날을 방불케 했다. 어느 사이에 탑 주위로 길고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고 모두 숙연한 얼굴을 하고 손을 비비며 저마다 소원을 비느라 중얼거렸다.
음력 사월인데도 햇살은 한낮이 가까울수록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미래를 기원하고 큰돈으로 부처를 산 사람들은 주지 용천 옆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미래를 기원하고 있었다.
일도 스님의 염불 소리는 굵직하면서도 부드럽고 애처롭다가도 다정하게 신도들에게 다가왔다. 목탁 소리 또한 한 번은 강하다가 한 번은 약하다가 염불과 함께 장단에 맞추어 마이크를 타고 연등 위를 훨훨 날아가는 꽃가루가 되어 신도들의 폐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용천은 돈 벌기에 눈이 벌게 있고, 김 처사는 돈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도는 염불을 하면서도 시주 통에 신도들이 줄을 이으며 돈을 넣는 것을 곁눈질해 본다. 법당 안 시주 통에도 신도들이 경쟁하듯 불전을 넣는다. 어디를 가도 돈통은 신도들의 주머니를 들쑤셔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는 일도의 염불 하는 입과 손에 든 목탁에는 신명이 들어가고, 어깨춤이 절로 나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돈이 그렇게도 좋은가. 고생고생해서 모은 꼬깃꼬깃한 때 묻은 저 돈 몇 푼을 부처님께 바치는 어느 할머니의 정성 어린 시주가 오늘을 지나 내일은 누구에게 갈 것인가. 불쌍한 중생들에게로 골고루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몹쓸 기생년 앞가슴으로 들어갈 것인가.
신도들이야 돈이 어디로 흘러간들 알 일이 무엇인가. 오직 그들은 땡추중에게 바친 게 아니라 부처에게 바친 돈인데…….
그렇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울러 부처님의 탄신 일을 축원하는데 부처를 바로 앞에 모시는 저 중들의 마음속에는 부처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돈만 부처보다 귀하게 모시고 중생들의 호주머니에서 그것을 빼내 가지려고 온갖 정성을 다할 뿐이다.
부처님의 탄신 일은 서서히 어두움이 깔리고 여느 때와 같이 저물고 있었다. 그 많고 북적대던 신도들은 다 어디로 가고 불어오는 미풍 따라 주인 잃은 연등만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적막이 깔린 산사에는 가끔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용천은 일도와 혜천, 성초를 앞에 앉혔다. 기도 승 일도와 혜천에게 오늘 일당을 쳐 주기 위해서였다. 결산이 끝났을 텐데 김 처사가 아직 옆방에서 건너오지 않고 있었다.
용천은 늙은 보살의 사주를 봐준 후 신도들이 앞다투어 돈을 내고 자기 신수를 봐 달라고 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한껏 거드름을 피운다.
“성초야, 너는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고 일도와 혜천이 들으라는 듯 만만한 성초에게 묻는다. 성초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예?”
하고 도리어 의아하게 묻는다.
“이놈아, 부처가 있느냐고 묻질 않느냐?”
“예, 계십니다…….”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있는지 오늘 밤 찾아보거라......”
그때 돈다발을 넣은 가방을 들고 김 처사가 들어왔다. 결산이 끝난 모양이다.
“스님, 일억이 좀 넘습니다. 지금 가져갈 거죠?”
김 처사로부터 건네받은 돈다발이 든 가방을 열고 이리저리 살피던 용천이 작은 돈다발 하나를 꺼내 세어서 하나는 일도에게 다른 하나는 혜천에게 봉투에 넣어서 건네면서 위로의 말인지 아니면 체면치레인지 한마디를 한다.
“너무 섭섭게 생각은 말게, 계획한 게 있어서……. 좀 적네…….”
얄팍한 봉투를 열어 본 일도와 혜천은 무척 섭섭했다. 아무리 계획이 있다고는 하지만 벼룩이 간을 내먹지 결코 이런 것은 아니다 싶었다. 돈이 많이 들어왔으면 일당을 다른 날보다 3배는 쳐 주리라 기대했는데 주지가 짜기는 소금보다 더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일당에 삼만 원을 더 올려 십만 원을 만들어 준다.
“중놈이 남한테 받기만 받았지 남 주는 거 봤어?”
자기도 중이면서 용천을 속으로 나무라며 포기하고 위안을 갖는다. 혜천도 마찬가지였다. 곁가지로 얻어먹는 주제에 오만 원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억이 넘는 돈을 만지면서 동냥 몇 푼이 고작이었다.
“지는 저 돈으로 계집질하고 처먹고 신나게 쓰겠지?”
얼마 전에 용천은 사복을 입고 혜천을 데리고 룸살롱에 간 적이 있었다. 중인 용천이 계집의 젖가슴에 돈뭉치를 쑤셔 넣고 몸뚱이란 몸뚱이는 죄다 주물럭거리며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혜천은 한편으로 서운하고 한편으론 더러워서 이를 물었다. 그리고 오만 원이지만 저고리 주머니에 넣었다.
“두고 보자, 내 이번 배팅만 잘 되면…….”
경마장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승용차를 몰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용천사로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의 눈에는 혜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고 싶을 뿐이다.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온 모양이었다. 성초가 얼른 밖으로 나갔다.
“스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용천은 이 밤에 누가 왔나 하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쥐색 양복을 입은 풍채 좋은 노신사가 미소를 지으면서 차에서 내려 용천에게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용천은 누구인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은 듯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자
“저를 아시겠습니까?”
하고 그는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용천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용천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지만 밤이라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서 얼버무리듯이 그냥 따라서 합장만 했다.
“글쎄요, 김 총재님과 너무 닮아서...... ”
“허, 허, 허, 아시기는 아시는가 보군요, 내가 00당 총재 김 아무개입니다.”
“아니, 총재님께서 어쩐 일로?......”
“예, 스님께서 족집게보다 더 잘 집어낸다는 소문이 국회에서까지 좍 퍼졌지 멉니까,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이 밤에 찾아뵌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안 용천은 어깨를 뒤로 젖히고 무게를 잡았다. 그리고 부처님께 사양하듯 젊잖게 한 마디 던졌다.
“제가 멀 압니까, 부처님의 뜻으로 말한 것뿐입니다,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김 처사, 차 준비하라 이르게.”
T.V에서만 봐왔던 여당 총재를 눈 가까이 바라보자 사찰 내에 있던 모든 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김 처사는 용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양실로 향하려고 하자
“그만, 그만, 별것 아닌 사람이 찾아왔는데 소란스럽게 하지 맙시다, 스님께서 곡차도 잘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오늘 밤 저하고 곡차나 마시며 이야기나 나눕시다, 그래도 되겠지요?”
“정 그러시다면, 김 처사?”
“아, 여기 내가 가져온 곡차가 있어요, 김 기사, 그거 가져와!”
그는 김 처사의 발길을 막으면서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곡차면 자신 있는 용천이었다.
그날 밤 총재의 가족과 총재 자신의 앞날을 청산유수 같은 용천의 아첨과 본래의 신기를 잘 조화해서 꼿꼿한 자세로 설파했다. 대저 사람이란 알고, 모르고, 있고, 없고 가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의 차이가 얼마겠는가. 있어도 세끼 밥이 고작이요 알아봤자 생각은 거기에서 거기 까진걸.
늙고 교활한 정치인 김 총재도 용천의 점술이 깃든 말에 그만 감화당하고 말았다.
“부처가 어디 있느냐, 있으면 나와 보라고!”
용천의 어깨에는 어제와 다른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초파일이 지나가자 용천사에는 그 많던 사람들의 그림자라곤 씨가 마를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한낮이 조금 지났다.
용천이 나타나자 곧이어 김 처사가 봉고차에서 내렸다. 이어서 함께 내린 이 보살이 뒤 트렁크 문을 열었다. 뒤이어 혜천, 일도, 성초가 내려서 박스에 든 물건을 용천사 옆 계곡 쪽으로 하나둘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 계곡에는 옅은 바람을 타고 고기 굽는 냄새가 법당 안 부처님 앞으로 날아 들어왔다.
박스에서 내어놓은 질 좋은 쇠고기, 잘 씻은 상추와 배추, 마늘과 양념장, 낙지회. 소주, 맥주, 막걸리...... 계곡 한편이 그득하다. 사찰 식구들이 모두 다 모인 듯했다.
아직 꿈틀대는 산 낙지회가 접시 밖으로 감겨 나오자 용천은 기어 나오는 산 낙지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용천은 그래도 중이라 젓가락에 칭칭 감긴 낙지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꺼림적스러운 모양이었다. 젓가락을 들어 잠시 감긴 낙지를 보다가
“뭘, 죽은 건데......”
하고 초장을 찍어 입속으로 홀랑 집어넣었다. 붉은 초장에 빠진 낙지의 흡반(吸盤)이 용천의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쫄깃한 고기 맛이 용천의 이런 생각을 금방 쫓아 버렸다.
“성초야, 여기 곡차 한잔 따라라!”
하며 소주잔을 들었다. 옆에서 고기를 굽던 김 처사가 얼른 이 보살에게 눈짓을 하고 소주병을 따서 건넸다. 그래도 여자가 따라 주는 술잔이라고 용천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한 잔 가득하게 잔을 채운 용천은 잔을 높이 들고
“자, 모두 들 곡차 한 잔을 들게, 자, 자 다 같이 건배!”
계곡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면서 술판은 무르익기 시작했다.
“김 처사? 여기 이 땅 계곡을 사려면 얼마면 될까?”
거나해지자 용천이 옆에 앉아 정신없이 술을 따르는 김 처사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여기는 우리 절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다른 용도로는 쓸모가 없는 맹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땅값이야 얼마 되겠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아~ 생각해 논게 있어서...... 이 땅을 사면 어떨까 해서......”
“한 만여 평 되나? 많이 쳐서 평당 만 원씩, 한 장이면 충분하겠지요......”
“그래요? 그렇다면 김 처사가 내일 당장이라도 한번 알아봐요, 가격이 맞으면 바로 계약하게요.”
“근데 뭘 하시려고요?”
“요양원을 지으면 어떨까 해서......”
“요양원요? 어떤?......”
“정신병은 불치병 아니요, 버리지도 못하고 데리고 있지도 못하는 병이 정신병 아니요, 그들을 우리가 수용한다면 병자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서로 맡기려고 할 것 아니요?”
용천의 생각은 이러했다. 정신병자는 법이 미치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고 사회나 가족, 혈육에게 버림받고 냉대받은 자들이다. 한 집안에 정신병자가 있으면 고치기는 고사하고 병자의 행패를 감당하기조차 힘이 든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것이 정신병이다. 요양원을 지어서 이들 정신병자들을 이탈하지 않도록 감시 시스템만 철저하다면, 거기다가 종교를 빙자하여 이들을 보호해 준다고 하면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물을 지으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김 처사는 벌써 건물을 지을 걱정을 하자 용천은
“걱정 마시오, 부처님이 계신데 무슨 걱정이요, 또 천여 명에 가까운 신도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명분만 뚜렷하면 신도 하나하나가 돈이고 건물 아니요? 그리고 당분간은 무허가로 건물을 지어서 운영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면 그때 가서 정식으로 건물을 지으면 되니깐......”
“여기는 그린벨트로 묶여 있을 텐데요? “
“궁하면 피할 곳이 있겠지요...... 그런 걱정은 닥친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용천은 김총재를 만나자마자 그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탐욕을 성취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한편 혜천은 정신병이란 말이 나오자 초파일 전에 만난 부자 집 여인 권금순의 딸이 생각났다.
초파일 행사에 정신이 없다 보니 그사이에 잠시 잊어버렸던 것을 용천이 정신병자를 수용하는 요양원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었다.
“아참, 내일쯤에 새로 여신도 한 사람 올 거요, 안동사람인데 돈도 제법 있는 사람이니 잘 요리해 보시오.”
이 말에 주지 용천은 대수롭지 않게
“그래, 한 건 하셨구먼, 허, 허, 허.”
“내가 한 건을 한 것이 아니라 주지가 한 건 하게 생겼소, 잘하면 은덩이가 나올지 금덩이가 나올지 모르는 사람이요,”
“자, 자, 그건 그렇고 이 보살, 내일 저녁에 이곳 유지 몇 사람을 모실 테니 준비 좀 하세요, 그리고 일도는 내일 하루 더 볼일을 보고 저녁에 내려가게.”
“알았습니다.”
“일도나 혜천이는 시간 나면 사람 좀 알아보시오.”
“사람을요? 뭣에 쓰게요?”
일도가 먼저 주지 용천에게 물었다.
“요양원을 시작하면 주먹깨나 쓰는 아이들이 필요할 거다, 그리되면 일도와 혜천이도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 여기 일을 분담해서 맡아봐야 되니깐.”
“우리 가요?”
어제 돈 받을 때와는 달리 둘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용천이 우리를 박대할 턱이 없지, 암, 없고말고.......”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일도는 떠돌이 기도 승 신세를 면하게 될 것이고 혜천은 시주나 하면서 돈 몇 푼을 바라고 신도를 잡아들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용천이 땅도 사지 않았는데 사람 쓰는 것을 준비하라는 걸 보니 요양원을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모양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둠살이 끼자 성초가 해야 할 일만 계곡에 잔뜩 어질러 놓고 술판은 다시 주지실 뒤 요사체로 옮겨졌다.
아침이 되자 언제나 그랬듯이 성초는 그 넓은 경내를 혼자 쓸고 닦고 거기다 어제 먹은 계곡의 어지러운 술자리까지 청소를 마쳤다.
용천사에는 초파일이 지난 지도 이 틀이 되었건만 아직 연등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표를 달고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제저녁에 주지와 김 처사, 이 보살은 사찰 아랫동네에 있는 김 처사 집에 내려갔고 일도와 혜천은 요사체에서 자고 있었다.
주지 용천은 손님이 온다 해도 찾아 헤매는 척 불러야 올 것이지만 혜천과 일도는 절에 기도드릴 손님이 온다고 약속되어 있으니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한다.
역시 성초 밖에 없었다. 성초는 혜천과 일도를 새벽 일찍 깨워 아침 공양을 시켰다. 그리고 연등을 떠받히고 있는 장대를 하나둘 걷어서 늘어뜨린 후에 차례차례 연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등도 성초 하나의 손에 의해 차곡차곡 한쪽 모퉁이에 정리되고 있었다.
점심 공양 때가 다 되어서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용천사 주지실 옆 주차장에 멈추었다. 기사가 차의 문을 열었다. 까만 승용차에 분홍색 원피스와 연두색 스카프를 한 여인이 내렸다. 금순이었다. 그녀의 옷과 백옥 같은 피부는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동안 성초의 시선은 얼이 나간 사람 모양-이미 얼이 나간 사람이지만-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의 행동을 따라갔다.
“스님 방이 어딥니까?”
그때 서야 성초는 정신을 차리고 금순을 주지 방으로 안내했다. 공양 실 앞에서 연등을 정리하던 김 처사도 바쁘게 주지 실로 왔다. 벌써 올 것이라 미리 준비한 혜천과 일도도 법당을 나와 점잖게 여인에게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미인을 대하면 비록 사찰이지만 사람들의 마음 또한 한없이 들뜨고 밝아진다. 오랜만에 용천사 식구들은 찾아온 그 여인으로 인해 활기가 활짝 피어났다.
그리도 사람을 보면 달다 쓰다 말 한마디 없던 김 처사도 금순을 보자 입이 헤 벌어졌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여인을 용천사에 잡아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날 같으면 용천이 부러 뜸을 들이는 것을 알고 김 처사도 같이 뜸을 들이면서 천천히 용천을 불러왔었다. 그러나 오늘은 누가 독촉하지도 않았는데도 김 처사가 먼저 부산을 떨었다. 그는 바쁘게 용천을 데리러 집으로 내려갔다.
아마 용천이 이렇게 빨리 사찰에 올라오기는 모르긴 몰라도 용천사가 생기고는 생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용천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차에서 내려 주지 실로 들어갔다. 그는 평소대로 뒷짐을 진채 어깨를 펴고 얼굴에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금순을 대했다. 그의 머리는 절을 건립하고 단 한 번 백호를 쳤을 뿐 항상 보기 좋게 3부로 깎았다. 그래야 사복을 하면 그를 중으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안동 모시에 푸른 천연염색을 한 승복을 곱게 다려 입고 떡 벌어진 어깨를 내밀며 주지실 안으로 들어선 용천은 그야말로 멋진 풍채와 용모를 가진 사내였다.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오른손만 앞으로 내밀어 합장의 자세를 취하며 인사를 하는 용천을 보자 금순은 그가 주지 스님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오매불망하던 그를 다시 만났다는 기쁨에 놀라서 용천을 향해 외쳤다.
“아니, 성욱 씨, 성욱 씨 아니세요?”
“누구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놀라는 여인을 보자 용천은 의아한 듯 그녀를 쳐다보다 금방 예전의 금순을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 아, 옛날, 예.......”
얼마나 반가웠던지 금순은 주변의 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와락 용천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서울로 시집오기 십여 년 전에 그렇게 한 번이라도 만나 보려고 애를 썼던 그 사람 성욱이었다. 그 숱한 사내 중에 금순이 마음속으로 오직 단 한 번만이라도 그리워했던 사람이라면 그는 성욱이었다. 그런 그를 십여 년 만에 여기서 우연히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녀였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입만 벌리고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그러한 금순의 행동을 보고 금순과 같이 온 운전기사 정호의 얼굴빛이 차츰 굳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