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욕정(慾情)의 나락(奈落)
뜻하지 않게 십여 년 동안이나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성욱을 만난 금순의 마음은 환희에 차서 어쩔 줄 몰랐다. 법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동안도 생각은 온통 용천에게 가 있었다. 그녀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성욱을 만나게 해 준 인연에 대해서 부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혜천과 함께 남한강에서 방생을 하고 나서야 겨우 본래의 냉정을 되찾았다.
금순은 밤이 새도록 용천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만사를 팽개치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여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방생을 끝마치자마자 용천사에 가지 않고 혜천과 바로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지금껏 혜천이 곁에 있어 한마디 말을 못 하고 참고 있던 운전기사 정호가 승용차에 오르자마자
“아니, 도대체 그 중놈은 누구야?”
하고 질투 섞인 추궁을 시작했다. 금순이가 딸을 위해 절에 가서 기도나 하고 방생이나 하고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주지를 보자 갑자기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정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금순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향 친구 오빠야,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못 봤으니 너무 반가워서 그랬지 뭐.”
하고 말하자 정호는 그래도 의심스러운 태도로
“하는 꼴이 예사 사이가 아니던데?...... ”
“지금 질투하는 거야?”
“질투 안 하게 생겼어?”
“내가 처녀 시절에 알았던 오빠야, 더 이상 캐묻지 말어!”
본래 정호는 금순과 중과의 관계를 캐물어서 혹시 일이 이상하게 커질 것을 대비해서 초장에 어떻게든 두 사람의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결연하고 엄숙하리만치 단호하게 말하는 금순을 대하자 정호는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운전기사인 정호가 왜 자신이 모시는 사장 부인에게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는 것일까. 또한 말투조차도 예사롭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의 관계는 이러했다.
금순의 남편인 사장 변 재수는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일요일이면 꼭 등산을 갔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빠짐없이 매주 등산을 다녔다.
재수가 등산을 갈 때면 운전기사 정호는 새벽 일찍 변 사장 집에 들러서 산행 입구까지 태워주고는 사장 집으로 다시 왔고 그런 다음은 아침을 먹고 정원을 손질한다든가 청소를 한다든가 여러 집안일을 거들어 주었다. 일이 없건 있건 간에 정호는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렸다가 사장이 등산을 하고 다시 내려올 때쯤 해서 아침에 태워 준 산 입구로 다시 간다. 거기서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장 변 재수를 태워 다시 집까지 데려 줘야 정호의 하루 일이 끝난다. 사단은 젊은 남자와 여자를 믿고 함께 둔 재수의 잘못이었다.
일요일인 그날도 정호는 사장 변 재수를 태워주고 난 후 사장 집에서 정원을 손질하고 있었다.
무척 더운 날씨였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무더위 때문에 정호는 옷을 벗고 셔츠 바람으로 꽃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정호의 몸매는 땀과 범벅이 되었고 몸에 찰싹 붙은 그의 셔츠는 나무를 자를 때마다 굵은 팔뚝과 함께 강한 굴곡을 한 가슴을 들어내고 있었다.
집안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서 가끔 아이들의 얼굴도 보였다.
몸의 굴곡이 다 드러나는 엷은 드레스 차림의 금순이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더니 아이들은 각각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금순은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근육질의 정호를 자주 쳐다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호도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때마다 거실을 흘끔흘끔 쳐다보았고 그때마다 금순의 눈과 서로 마주쳤다. 거실에는 대낮인데도 샹들리에 등을 켜 놓았고, 유리창 안으로 비친 금순의 모습은 무척 관능적인 모습이었다. 브래지어와 팬티가 비치는 드레스, 깊이 파진 드레스 사이로 풍만한 그녀의 유방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정호의 눈을 유혹했다. 정호를 바라보던 그녀가 엷은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는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정호를 향해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리고는 살짝 드레스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꼰다. 꼬인 다리 사이로 잘 빠진 그녀의 허벅다리에 분홍빛 팬티가 분수대의 물줄기 사이로 살짝 보일 듯 말 듯 정호의 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갈증을 느낀 정호는 힐끔힐끔 거실을 쳐다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물 한 컵을 시키려고 식모인 점순이를 찾았다.
“점순아~”
식모인 점순이는 어디로 갔는지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옳다구나!”
하고 정호는 엉큼한 마음이 들었다. 곁눈질하다 눈이 자주 마주쳤던 사모님이었다.
처음 정호가 운전기사로 들어왔을 때는 사장 부인인 금순이가 사장의 딸인 미주의 친구인 줄 착각했었다. 정호가 생각해도 사장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나이 차이 때문이었다. 사장의 후처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정호는 마음속으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돈이 뭔지...... 다 늙은 빠진 주제에 저렇게 젊고 예쁜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을 보면.......”
하고 마음속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호는 고목나무에 여인네의 팬티만 걸려 있는 것을 봐도 그것이 불끈불끈 서는 청춘의 피가 한창 끓는 젊은 나이가 아닌가. 그런 그가 아름답고 요염한 사장 부인을 보고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면 그것조차도 거짓말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사장 부인을 그리워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사장 부인인 금순에 대한 사랑놀이를 꿈꿔왔다. 그의 꿈속에서 온통 사장 부인과의 정사 관계를 하는 꿈이었고 그녀로 인해 여러 번 몽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고 나면 물거품 같은 허망한 꿈일 뿐이었다.
어제도 사장 부인과 욕정을 나누는 꿈을 꿨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사장 부인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처럼 눈에 비치는 것이었다. 정호는 호기가 발동하자 자신도 모르게 날씨를 핑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 불러도 점순이가 없는 것 같아서...... 사모님, 물 한 잔만 주실래요?”
하고 말하자 금순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일어나서
“오 그래요, 덥지요? 음료수 드릴 테니 위로 올라와요.”
드레스를 입은 금순의 육체는 멋진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 풍만하고 아름답게 정호의 눈에 비쳤다. 기다렸다는 듯 일어서서 냉장고로 향하는 그녀의 자취에서 진한 향수가 정호의 코를 자극했다. 정호는 후끈한 열기가 온몸에 달아올라 오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정호는 강한 햇볕에 탄 얼굴 덕분에 흥분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 일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금순이었다. 그녀는 벌써 정호의 이글거리는 욕정의 모습을 읽고 다음은 어떻게 할 거라는 예상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스 한 컵을 작은 소반에 담아서 거실 소파로 오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리 들어오세요, 여기가 더 시원해요, 여기 와서 주스 드세요,”
하고 은근히 유혹하자 정호는 속으로
“이것 봐라?”
하고 대번에 금순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그는 그녀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면 전체에 이태리제 슬라이딩 장롱이 방안 전체의 모습을 은은히 보여주고 있었고 침대 옆에는 작은 테이블과 앙증맞은 의자가 두 개가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금순이 방금 올려놓은 컵이 놓여 있었고 컵 속에 노란색 주스가 컵 밖으로 맑은 물방울을 뿜어내서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정호는 올려놓은 컵을 들고 황송스럽다는 듯이 허리를 굽히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짚고 있는 팔을 옮길 때마다 패인 드레스 사이로 금순의 유방이 보일 듯 말 듯 정호를 더욱 유혹하고 있었다.
단둘이 그것도 호젓한 안방에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그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호의 그것이 체면도 없이 바지 중간에 불쑥 튀어 올라왔다. 금순이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그것을 지나칠 리가 없었다. 보드라운 그녀의 손길이 불쑥 그의 그곳을 감싸 쥐었다. 동시에 정호의 손길이 그녀의 허리로 향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함께 침대 위로 쓰러졌다. 침대 위에 쓰러진 그녀의 온몸은 이미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근육질의 젊은 총각 정호는 온몸의 피가 터질 듯이 한 곳으로 집중했다. 신나에 불을 붙여 놓은 듯 그녀의 육체 또한 뜨겁고 정열적이었다. 그녀는 정호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 이게 꿈이 아닌가?”
정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정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금껏 어떻게 혼자 보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남자다운 남자를 대한 금순은 아직 눈을 감고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호는 벌써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정호는 욕정에 어두워 이성을 잃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금방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모님, 제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지금 정호로선 그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금순은 후회하는 정호와는 사뭇 달랐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자, 자, 한 번 더......”
금순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팔을 벌렸다. 그녀의 허리는 위를 향해 곡선을 이루었고 정호가 깊게 빨아들인 그녀의 유방은 약간 들려서 붉은 젖꼭지를 앙증맞게 보여주고 있었다. 히프 위로 밀려서 올라온 그녀의 드레스 아래에 보얀 살결의 아름다운 하체가 정호의 시선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육욕에 목말라 있던 그녀는 정호에게 다시 한번 그것을 요구했다. 정호의 눈은 울창한 그녀의 숲 사이로 패인 예쁜 봉우리로 향했다. 잠시나마 사장에게 죄의식을 가졌던 정호였지만 결코 이름다운 여체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만 그의 마음은 자포자기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아무튼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가 주인 그녀가 유혹하지 않는데 어찌 감히 고용인인 임 씨가 먼저 유혹하였겠는가. 금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오랜만에 육체의 회포를 마음껏 풀었다.
그것이 권 금순과 임 정호 관계의 시발이었다.
성에 굶주린 여인에게 푹 빠진 운전기사 정호는 몇 차례 육체의 향연을 반복하자 이젠 겁이 없어졌다. 이들은 사장 변 재수가 등산을 가는 날만으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양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둘은 틈만 있으면 서로의 육체를 자기 것인 양 만끽했다.
총각이 유부녀에게 빠져들어 성적인 노리갯감이 되면 여자가 놓아주지 않으면 결코 남자 스스로는 그녀의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물며 금순인데.......
그런 관계였기에 운전기사 정호가 금순과 용천의 사이를 질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편 용천사 옆에 붙어 있는 임야는 사실 그곳 계곡 입구가 용천사 마당 중간이었고 바로 주지실 뒤쪽이었다. 법당을 기준으로 하자면 서향을 향한 법당 왼편이니 남쪽에 자리했다. 용천사가 땅을 사들여 절터와 합쳐서 사용하게 된다면 쓸모 있는 땅이 되겠지만 호리병 주둥이 같은 그 땅의 입구를 용천사가 떡 막고 있었으니 임야 혼자 떼어놓고 보면 아무 쓸모없는 땅이었다. 거기다가 그린벨트로 묶인 땅이니 매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김 처사가 지주와 잘 알고 있는 이웃을 다리 놓아 임야 주인에게 흥정을 붙이자 본래 임야 지주인 노인은 몇 년 전에 이미 죽었고 대신 그의 아들이라며 이곳 용천사를 찾아왔다. 그는 땅이 이곳에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듯했고 와서 보고는 숲이 우거지고 계곡 양쪽이 가파른 산인 데다가 호로병 주둥이 같은 입구를 용천사 마당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자 쓸모없는 땅이라고 판단했던지 당장에 계약하자고 했다. 용천은 인심을 쓰는 척 흥정 가에다 몇 푼을 더 얹어 아예 잔금까지 일시불로 지급하고 매입해 버렸다.
이때 용천은 군청이며 경찰청에서 중요 보직에 있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도들은 물론이고 그들조차도 여당인 평화당 김 총재가 용천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을 익히 듣고 알고 있는 터였다. 용천은 당 총재의 그늘과 자신의 인맥을 믿고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그 계곡 터에다가 사찰 부속 건물이라 하고 감히 무허가 건물 여러 채를 지었다.
호로병과 같은 입구인 좁은 길목 양쪽에는 높고 곧은 낙엽송과 소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숲으로 가려져 있었고 양쪽 건물 뒤로는 가파른 산이 숲을 이루고 있었으니 입구 말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처럼 되고 말았다.
용천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불끈 양손을 감아쥐고 앞으로의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얼마 뒤 용천사에서는 요양원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용천이 계획한 대로 정신병자들을 요양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신도들에게 선전하여 때론 실비로 환자들을 수용했고 특히 신도와 연고가 있고 돈이 없는 환자들은 무료로 수용하기도 했다.
그의 계산은 적중했다. 소문은 신도들에게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신도들은 용천의 이런 자비로움에 더욱 그를 따랐다. 용천의 요양원은 비록 수용 인원은 십 수 명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사찰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일반인에게 믿음이 더욱 컸다. 또한 요양원 터가 그린벨트라고는 하나 외부로는 어느 한 곳 들어 나 보이는 곳이 없었고 거기다가 용천의 입김이 워낙 센 터라 잡음 하나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이로부터 사찰은 요양원에, 요양원은 사찰에 서로가 보완 관계를 유지하며 환자는 나날이 불어났고 용천의 명성은 전국을 대상으로 탄탄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용천이 요양원을 개설하자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찰 시주도 많이 들어왔지만 환자들로 인하여 생기는 수입 또한 짭짤했다. 그러자니 돈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 돈을 은행에다 저축하자니 그 이자만으로 용천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용천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용천에게는 그의 어머니의 배다른 친정 동생인 종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해수의 친정 동생, 즉 용천의 외삼촌 종근은 해수의 큰어머니의 둘째 아들이었다. 어쩐 일인지 해수의 큰어머니는 십수 년 동안 자식이 들어서지 않았다. 그러자니 시집 식구들에게 고개 한번 들고 다니지 못했고 이 틈을 타서 해수 아비가 술집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어도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살고 있었다. 참 세상 이치는 묘했다. 해수 어머니가 해수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간 후에 바로 그 해에 해수를 낳았다. 그런데 자식을 영영 못 낳을 줄 알았던 해수 큰어머니가 임신하였고 거기다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턱 낳자 해수의 친어머니는 기를 펴지 못했다. 더구나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 들이 종철과 종근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은 모두 해수보다 나이가 적었다.
커서 형 종철은 포악하고 방탕한 성격이었지만 반대로 동생 종근은 성격이 온화하고 차분하여 비록 배다른 누나였지만 미녀인 해수를 잘 따르고 이해해 주었다.
맏이인 종철은 아버지가 죽고 그 재산을 물려받자 그때부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음과 계집질로 세월을 보냈다. 놀음은 계집질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삼대 부자는 없고 삼대 거지는 없다는 말이 옛말은 아니었다. 종철은 몇 대를 떵떵거리며 살았던 그 많든 재산을 깡그리 놀음으로 말아먹고 알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니 알거지 신세가 아니라 여기저기 놀음 빚 때문에 집안 식구들조차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종철은 술에 의지하고 살다가 언제부터인가 고향 땅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동생 종근도 망한 형 때문에 결국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쫓기듯 귀국하게 되었다.
종근은 일본 유학 시절에 부모가 원단회사를 운영하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자주 원단과 나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귀국하면 형을 설득하여 값싼 노동력이 있는 조국에서 나염 회사를 차려 보겠다는 포부를 키워 왔었다. 그래서 종근은 그 친구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귀어 왔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을 형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귀국하게 되면 자신의 몫을 형으로부터 양도받아 나염 회사를 차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이 망하고 그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조기귀국을 하게 되니 만사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알거지가 된 형에게 자신의 몫을 달라고 졸라본들 눌려 똥 밖에 나올 것이 없는 형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배운 종근이었다. 결국 돈 잃고 마음 상하고 형제간에 의만 상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부모형제들과 연을 끊고 분을 참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 종근은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저 세월을 낚고 있었다.
“그래,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꿈, 하루아침에 다시 이루어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설령 내게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하찮은 인간인 자신이 세상의 이치를 어찌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겠는가.”
젊은 종근이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인지하고 있었다. 평소 종근은 누이 해수를 만나 하소연을 하다가 조카인 성욱이가 사찰의 주지로 많은 신도들에게 추앙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일본에서 배운 것과 인연들을 가진 돈이 없어 써먹을 곳이 없어서 무위도식하던 종근에게는 귀가 번쩍 띈 이야기였다. 잘 나가는 사찰의 주지라면 분명 돈은 많을 것이고 그 돈으로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원단과 나염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인식 있는 조카라면 분명 자신의 말을 믿고 투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누이인 해수로부터 요양원을 차린다는 소문을 듣고 보니 조카인 용천이 투자처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평소에 용천의 어미인 해수에게 다정다감했으니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옳거니 내 꿈이 조카 덕에 이루어지는구나!”
이런 종근의 생각이 한점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비록 가족과 인연을 끊고 중으로 지내는 용천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외가댁의 이런 사실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종근의 일을 모를 일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종근이 용천을 찾아왔다. 종근은 조카인 용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거기다가 자신의 친구 아버지가 일본서 나염회사를 운영하는데 일본에는 나염 회사가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하여 그 돌파구를 찾고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가 돌파구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무식한 용천도 들은귀는 열려 있었다. 번득 김 총재가 떠올랐다. 용천은 마음속으로 무척 반가웠다.
“그럼 외삼촌만 믿으면 되겠습니까?”
“자네 돈은 있는가?”
“글쎄요, 많은 돈은 없어도 외삼촌 밀어드릴 정도의 돈은 있지요!”
“주변에 힘깨나 쓰는 정치인도?”
“조카를 그 정도로 밖에 보지 못하고 찾아오셨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됐네, 그럼 내가 추진해 봄세!”
용천은 입이 쩍 벌어졌다. 점점 일이 재미가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래서 만들어진 것이 경북섬유회사였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금순이는 전처의 딸 미주를 데리고 용천사에 나타났다. 그녀는 백방으로 찾아다녀도 미주의 병이 차도가 없는 것을 핑계 삼아 남편 재수에게 부처님께 기도해 보겠다고 설득한 것이다. 금순이 몇 번 미주를 데리고 오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서 남편 재수를 데리고 용천사에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수도 용천의 용모가 담긴 점술에 반해 집안이며 회사의 좋고 나쁜 일조차도 용천에게 물어보고 처리하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용천사를 찾아온 재수가 주지인 용천에게
“스님께 한 가지 여쭈어볼 말이 있습니다. 들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좀 어색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예, 무슨 말씀이신지 해 보시지요.”
용천은 빙긋이 웃으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받는다. 재수는 약간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육이오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오다가 비행기 공습으로 헤어진 쌍둥이 형이 한 분 있습니다.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용하다는 스님께서 한번 알아주시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그랬다. 변 재수는 육이오 때 두 형제가 월남하다가 비행기의 공습을 받았다. 두 형제는 서로 살려고 뿔뿔이 흩어져서 공습을 피했다. 공습이 끝나자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가족을 찾으려고 죽은 시체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재수도 형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 많은 시체 중에서 형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은 시체를 뒤지다가 할 수 없이 혼자 월남하고 말았다. 그 후 재수는 늘 형의 생사 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꼭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용천은 육십갑자를 짚어보며 재수의 형에 대한 생사를 점치기 시작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던 용천은 드디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살아 있기는 한데 그분이 남쪽 방향으로 계시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에 계시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시간을 두고 찾아봅시다.”
우선 재수는 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에 섭섭했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두 형제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기가 막혔다.
재수와 진수는 한 개의 수정란이 그 분열 과정에서 두 개의 생활 체로 성숙했다는 소위 일란성쌍생아였다.
진수와 재수는 몇 분 사이로 형과 동생의 갈림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너무 비슷한 형질로 세상에 태어나서 가까운 친척들이라도 막상 둘을 대하면 누가 진수이고 누가 재수인지 분간하기조차도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둘은 항상 같이 행동하며 자라왔고 일사 후퇴 때 남하하다가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서 쌍둥이 형제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진수와 재수도 피난 도중에 폭격으로 인하여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이제 그렇게 헤어진 형이 살아 있다니 재수는 언제인가는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스님, 감사합니다. 자나 깨나 걱정했던 우리 형님이 살아 계신다니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재수는 용천에게 백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난 후 재수는 운이 좋은지 아니면 사실과 맞아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용천사를 다니고부터는 하던 일도 잘 풀려나갔다. 스스로 남편 재수도 사업에 대한 충고의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고 용천사에 많은 시주를 했다.
그녀는 초하루와 보름은 물론이요 매주 일요일마다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다며 뻔질나게 용천사를 드나들었다. 어쩐 일인지 의심이 많았던 남편도 용천사 주지가 금순과 동향이고 거기다가 딸을 위해서 불공을 드린다고 하니 감히 금순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용천사를 다니고부터는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니 오히려 금순에게 집안과 사업을 위해 불공을 드리도록 적극 독려까지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