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진수의 가시밭길 인생(人生)
육이오 때 진수는 동생 재수와 헤어져 남으로 내려오다가 충북 제천에서 자리를 잡았다.
전쟁이 끝나자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한두 해 세월이 흐르자 차츰 사회는 안정되어 갔다.
혼자 월남해서 먹고 살아갈 일이 큰 걱정이던 진수는 우연히 중앙선 열차를 타다가 열차 내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홍익회 사람들을 보자 혼자서 무릎을 쳤다. 진수가 보기에는 홍익회 사람들이 물건값은 두 배나 받아먹고 불친절하고 뚝뚝하기는 장승과도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열차 내는 승객들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살 선택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수가 생각해 낸 것이 야매(やみ)로 물건을 팔자는 생각이었다.
남한 사람들이 느낀 대로 이북 사람들은 말 그대로 생활력이 무척 강했다. 진수는 열차 내에서 차장과 홍익회의 눈을 피해 삶은 달걀이나 김밥, 보리차, 사과, 오징어 등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팔았다.
진수는 보기보다는 성격이 꽤 깔끔했다. 그가 파는 물건은 홍익회에서 파는 물건과는 아주 딴 판으로 깔끔하게 잘 포장해서 승객들에게 팔았다. 어느 때는 홍익회에서 사서 먹은 김밥으로 인해 배탈이 난 승객들이 발생했고 진수가 파는 야매(やみ) 물건이 깨끗하고 값싸다는 소문이 퍼지자 단골 승객까지 생겨났다.
소문은 소문으로 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차장이나 홍익회 사람들은 혹 진수를 만나면 가만 두지를 않았다. 그렇잖아도 열차가 정거장에 잠시 정차하면 야매꾼들이 차창 밖에서 너도나도 물건을 팔아 안전에도 큰 골치를 앓던 터였다.
진수는 그들에게 몇 번이나 잡혀서 두들겨 맞고 쫓겨나기도 했지만 먹고살려고 이를 물고 달려드는 대는 그들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세월이 약이 되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장사를 했지만 진수는 그 들과 쫓고 쫓기면서 점차 친해지기 시작했다. 진수는 명절 때마다 물건을 판 이익금으로 차장이나 홍익회 직원에게 정성껏 선물을 하는 등 호의를 베풀자 자신들이 판 물건이 자신의 것이 아닌 홍익회 것이라 그들도 마음을 열어 진수와 한층 더 가깝게 되었다.
어느덧 홍익회 사람들과 얼굴도 익게 되었고 차장들도 낯이 익자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진수를 잘 아는 사람 중에 중앙선 객차의 차장을 하고 있는 주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평소 진수가 친절하고 행동이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객차 손님들의 차표를 검사하다가 물건을 팔러 올라온 진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는 진수에게 느닷없이
“자네, 여기서 떳떳하게 내놓고 장사하지도 못하는데 어때 이 일 그만두고 철도에 취직해 보지 않겠나?”
하고 말을 걸자 진수에게는 귀가 번쩍 뛰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 철도 기능직 직원을 뽑는 데는 철도 직원의 친인척이나 가까운 사람끼리 소개해서 들어가는 것이 태반이었다.
“아이고 형님, 자리만 있으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디 좋은 자리라도 있습니까?”
“좋은 자리라기보다 기능직인데, 자네 벌어 논 돈은 좀 있는가?”
“예, 그런 일이 있다면야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해야지요.”
“그렇다면 내 알아보지!”
하고 말한 지 두 달쯤 지나자 일자리가 나왔으니 출근하겠느냐고 물어 왔다. 진수는 얼른 승낙하고 돈을 마련해서 들어간 것이 현재까지 철도 기능직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기능직으로 근무한 지 어언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진수는 철도청에 취직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슬하에는 아들 둘을 두었다.
별 탈 없이 잘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진수는 평소와 같이 이틀 근무하고 하루를 쉬려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침을 먹으려고 단골로 다니던 식당에 들렀다.
그날따라 식당에는 처음 나온 아주머니가 방금 다녀간 손님이 먹었던 그릇을 치우고 물수건으로 식탁을 닦고 있었다. 진수가 언뜻 아주머니를 보니 키는 좀 작았지만 얼굴은 제법 곱게 생겼다. 진수는 평소 하지 않던 농을 걸고 싶어졌다.
“아줌마, 참 이쁘게 생기셨네, 언제 들어왔어요?”
그녀는 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걸레질하던 손을 멈추고
“왜요? 이쁘면 선생님이 날 데려가시게요?”
생글거리면서 추파를 던지는 모습이 무척 정감이 들었다.
“아이고 아주머니 얼굴이면 데려가다 뿐이겠어요? 같이 살면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떠받치고 살겠구먼, 허, 허, 허.”
“그런 남편이 있으면 내가 식당에 나오겠어요?”
진수가 던진 농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둘은 시간이 되면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식을 셋이나 둔 유부녀였고 그녀의 남편은 농사를 짓는 좀 모자라는 사내였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나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저 약간의 돈이나 가져다주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남녀가 만나 몸을 섞다 보면 세상의 누구보다도 가까워진다. 그녀와 만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였다. 진수는 식당에서 만난 그 여자에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식당을 차려 준 것이었다.
진수는 평소 집에서는 쉬는 날이 이틀 걸러서 한 번이었는데 삼일을, 오 일을 이제는 한 달을 거르면서까지 겨우 한 번씩 집에 들어왔다.
워낙 장거리를 뛰는 기관사라 진수의 아내 순득이가 남편에 대해 수상한 기미를 눈치챈 것은 일 년이 훨씬 지난 후였다.
순득은 지금까지 월급봉투는 물론이고 남편도 이십 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꼬박꼬박 집에 들어왔으니 진수 아내는
“나이 든 사람이 무슨 일이야 있겠나.”
하는 생각에 별 의심 없이 지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진수는 월급도 사람도 발을 딱 끊어버렸다.
답답했던 진수 아내는 우선 그가 다니는 철도 사무실로 진수를 찾아갔다.
본래 쉬쉬하는 이런 일은 남이 알고 먼 친척부터 천천히 거쳐서 본인의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사무실직원들이 먼저 진수가 바람이 난 사실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고 서로 진수에 대해서 활동사진을 찍으면서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자기 일도 아닌 남이 바람피우는 일이 얼마나 스릴 있고 재미가 있었겠는가. 직원들은 오늘은 어찌 될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중에 진수 아내가 나타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쉬쉬하며 사실을 서로 숨기면서 말을 않고 있더니 그래도 양식 있는 나이 많은 직원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아직 몰랐어요? 변주임이 역 앞에서 다른 여자와 식당을 한다고 합디다, 오늘 하루까지는 근무하니 내일 한 번 가만히 뒤를 밟아 보세요.”
하고 귀띔해 준다. 이 말을 들은 순득은 기가 막혔다.
“세상 사람들이 다 바람을 피워도 내 남편은 절대로 바람을 피우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분수지 이게 무슨 일인가?”
그녀는 땅을 치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도 직접 확인도 안 된 일 아닌가?”
하고 마음을 위로하면서
“그럼, 안녕히 계시소.”
하면서 억지로 참고 적은 소리로 인사를 하고 돌아서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나서는 뒷머리를 향해
“서방 뺏긴 못난 년!”
하고 비웃음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것을 뒤로하고 총총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을 나선 순득이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직장을 나가고 들어오고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껏 남편을 철석같이 믿고 살았는데 배신당하고 보니 앞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년같이 혼자 속으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허둥거리다가 겨우 집까지 와서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는 누워 버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자식들이 깨워서야 저녁 늦게 일어난 그녀는 오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올케언니가 퍼뜩 떠올랐다.
순득은 위로 오빠가 넷이나 있었지만 셋은
“남의 집으로 출가한 년, 그 집 귀신이 돼야지.”
하면서 오빠나 올케 언니 모두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 도무지 이런 일에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막내 오빠네의 올케언니 옥숙이는 집안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바른 소리라면 위아래를 막론하고 시원스럽게 싸 붙이는 소위 정의파 올케언니였다.
“내가 진작 왜 그 올케를 생각 못했지?......”
그녀는 만사 일을 제쳐 놓고 그 밤에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막내 오빠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오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죽은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서러워서 여태까지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언니, 세상에 이런 일이...... 흐흑......”
하고 흐느끼자 영문도 모르는 옥숙이는
“아니, 무슨 일로 그래요?......”
하고 놀란 눈을 하고 바라보자 순득은 더욱 서러워 눈물을 흘리며
“오빠야, 언니야, 나는 어쩌면 좋니? 흐흐흑......”
“왜 우노? 무슨 일이고?”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누이동생을 놀란 듯이 쳐다보던 오빠가 먼저 물었다, 순득은 그런 오빠는 외면한 채 올케언니만 바라보면서 말했다.
“변 서방이 바람이 났다,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나는 어찌하면 좋니? 언니야, 나 좀 살려 죽으라.”
“무슨 소리고? 바람이라니? 언제?”
“아직은 잘 모른다, 철도에 가 봤더니 직원들이 말하기를 벌써 우리 그 이하고 그년이 역 앞에서 식당을 차려서 같이하고 있단다.”
벌써 올케언니는 얼굴색이 달라졌다. 장롱문을 열어젖히고 옷부터 입는다.
“앞장서그라, 그런 년을 왜 이태 놔뒀니? 가보자!”
“역 앞인 건 알지만 자세한 것은 이죽 모른다.”
“참내, 이 좁은 땅덩어리에 뒤져 보만 금방 알제, 금마 모른다고 이대로 가만있을래? 앞장서그라, 아이 따, 큰집에 질녀도 부르고라, 가가 요새 집에 와 있다고 그러더라, 캄캄한 밤길에 어린아이라도 하나 있으면 힘이 된다 안 카나!”
그날 저녁 셋은 진수의 첩이 운영하고 있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옥숙이의 말대로 식당은 금방 찾아냈다. 우연찮게 맨 먼저 찾아 들어간 식당이 진수가 전에 밥을 먹으러 다니던 식당이었다.
셋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진수 아내 순득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이는 한 오십쯤이고 철도 다니는 키가 보통인 남자가 젊은 여자와 이 근처에서 식당을 한다는데 혹 아시는가?......”
하고 묻자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 집주인이 먼저 알아봤다. 셋의 얼굴빛이 심상찮은 것을 눈치챈 식당 주인은 진수의 본처가 찾아온 것을 알았고 이제야 일이 터진 것을 직감했다. 거기다가 자기 식당에 단골이었던 진수와 종업원을 뺏긴 것은 물론이고 근처에 같은 업종의 경쟁 상대가 하나 더 생겼으니 식당 주인으로서는 별반 좋아할 턱은 없었다.
“아̃̃̃̃, 식당 하는 변 씨 말이지요?”
“예 변 씨가 맞니다, 지금 어디서 합니까?”
그 말에 식당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저 옆 왼쪽으로 돌아서 두 번째 식당이 씨더.”
식당 주인의 말대로 약간 뒤진 곳에서 진수 첩 미향이는 혼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소, 여기 앉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고 물수건으로 탁자를 닦고 있던 그녀는 손님이 세 사람이라 반갑게 맞이하면서 자리를 권했다.
“네가 주인이라?”
큰 올케 옥숙이가 대뜸 반말로 따지듯이 말하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예, 그렇심니더......”
갑자기 반말을 하는 손님의 거친 태도에 미향이는 당황하다가 들어온 사람들이 대충 누구인가 눈치를 채자 금방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버렸다.
그때 올케 옥숙의 손이 다짜고짜로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야이 화냥년아, 어디 서방질할 때가 없어서 가만히 잘살고 있는 남의 서방을 가로채가 사노, 이 죽일 년아.”
얼마나 세게 잡아 흔들었던지 단번에 한 움큼은 머리가 빠진 모양이었다. 옥숙의 양손에는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들려 있었다. 때를 같이 해서 순득이의 질녀가 어디서 찾았는지 망치를 찾아가지고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이게 다 고모부가 번 돈으로 한 거 아이가.”
부엌 고양이처럼 얌전하기로 소문이 난 순득이도 방으로 들어가서 살림살이를 부수기 시작했다.
싸우는 소리를 들은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첩지를 했다며?”
“생기긴 꼭 난쟁이 똥자루만 하게 생겨 가지고, 지 눈에 안경이라더니 쯪쯔......”
“그래도 지법 애교는 있게 생겼구먼요......”
몇 분 만에 식당은 난장판이 되었다.
“아이고, 사람 좀 살려 주소, 누가 경찰서에라도 연락 좀 해주소......”
미향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이 오른 옥숙이는
“그래, 경찰에 연락해라, 너 두 연놈들, 같이 콩밥 처먹으려면 연락해 보그라, 이년아.”
머리채가 끌린 미향이는 옥숙이의 손아귀를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한쪽 구석에 처박혀서 밖에 있는 구경꾼들을 향하여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저런 년은 맞아 죽어도 싸, 아이고 내 속이 시원하다.”
어느 한 사람도 얻어맞는 그녀의 편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는 잘한다고 모두 들 한 마디씩 거들기만 했다.
구석에 처박혀 꼼짝을 못 하던 미향이가 옥숙이의 손이 좀 느슨한 기미가 보이자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앞으로 밀쳤다. 옥숙이는 그 바람에 뒤로 주춤했다. 순간 옥숙이의 손을 빠져나온 미향이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녀가 도망 처서 어디로 갔는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싸움은 흐지부지 끝나버렸고 구경꾼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그렇게 해서 그날 싸움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날 밤늦게 첩인 미향이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진수는 아침 일찍 본가로 들어왔다. 아들 둘을 출근시키고 진수아내만 혼자서 집안정리를 마치고 막 오빠 집으로 갈 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진수는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아내의 생김 생김새가 눈에 가시같이 보였다. 거기다가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애첩을 친정 나부랭이들과 함께 쳐들어와서 두들겨 팼으니 진수는 아내를 보자마자 눈에는 열불이 올랐다.
“아이고, 내 이런 맹추 같은 년과 어떻게 지금까지 한 몸을 섞고 살았누.”
하고는 가만히 내려다보니 지금까지 지극정성으로 자기를 뒷바라지한 공은 흔적도 없고 튀어나온 코며, 찢어진 입이며 가는 눈이며 행동거지 하나하나 어느 한 곳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생긴 것이 꼭 뭐같이 생긴 년이 질투는 있어가지고...... 이년이 친정 나부랭이들을 데리고 사람을 패?”
눈을 부라리며 이곳저곳 매를 들 적당한 것을 찾다가 한쪽 방 모서리에 세워놓은 방 빗자루를 발견하고 얼른 집어 들었다.
“에라 이 년 너도 맞아봐라.”
진수는 처음에는 한두 대 매를 데려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흥분해서 아내의 얼굴이고 등짝이고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혼자가 된 순둥이 아내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고는 진수가 때리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빗자루가 풀리고 흩어져서 손에 잡히는 것조차도 으스러져 아무것도 없자 이번에는 손발을 걷어붙이고 닥치는 대로 차고 때리다가 자기 풀에 맥이 풀린 진수는
“에잇 꼴도 보기 싫은 년!”
하고는 손을 툴툴 털고 일어서 어디론지 나가 버렸다.
어미가 맞은 것을 자식들이 안 것은 퇴근하고 난 늦은 저녁이었다. 온 얼굴에 멍투성이가 된 어미를 보자 깜짝 놀란 아들이 사실 이야기를 듣고
“어무요,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같이 가 보시더.”
하고 다시 외숙모인 옥숙이를 동원해서 아비를 찾아 식당이 있는 곳으로 왔으나 진수와 미향이는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역 앞 식당에는 문이 잠겨 있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틀을 연거푸 식당으로 가 봤으나 역시 문은 잠겼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때서야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3일 전 바로 진수가 아내에게 매질을 하고 나가던 그날 짐을 싸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순득은 곧장 영주에 있는 사무실로 달려갔다. 역시 사무실에서도 그날 사표를 쓰고 나갔다는 것이었다.
순득은 기가 막혔다. 사내가 아무리 계집질을 해도 수십 년을 다니던 직장까지 사표를 쓰고 집구석에는 말 한마디 얼굴 한번 들여 밀지 않고 사라진 것을 본 순득은 남편이 이렇게까지 철저히 자신을 배신하면서 떠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남편과 첩의 행방은 묘연했다. 넷째 오빠도 처음에는 펄떡 뛰면서 경찰서에 고발해서 잡자는 둥 별소리를 다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순득은 더 이상 바람난 남편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후 소문은 여러 갈래에서 들려왔다. 남편 진수가 첩 년과 제천역 앞에서 포장마차를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제천 어느 시장에서 둘이 리어카를 끌면서 야채 장사를 한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작 당사자인 순득은 손을 놓고 있었지만 옥숙은 질녀와 함께 제천역 앞에도 가보고 야채시장에도 다녀봤지만 여러 번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결국 본인 당사자가 찾을 의지가 없고 보니 다른 객은 더 이상 애간장을 쓰면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진수가 바람을 피우고 집을 떠나간 지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7월이었다.
순득은 아들 혼사 문제로 한창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문제는 호적에 버젓이 살아있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 첩 년과 살림을 차려 어디론가 가버려서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돈이 될 댁에서는 바깥사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만약 그날 나타나지 않으면 아들 체면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며칠 전부터 진수가 결혼할 아들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혼인 날짜는 언제인지, 며느리에게 예물은 뭘 했으면 좋겠냐고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묻고는 자기가 모든 준비를 다 해 줄 터이니 걱정 말라는 연락이었다.
순득은 아들로부터 남편 진수의 소식을 듣고는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청첩장도 돌리지 않았고 일 년이 남도록 소식 하나 없던 남편이 어떻게 알고 연락을 취했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다. 아무리 진수 아내 순득이가 잘했고 남편 진수가 잘못해서 죽일 놈이라고는 하지만 친척 중에는 그래도 진수의 편이 되어 순득이에 대해 돌아가는 상항을 귀띔해 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진수에게 연락해 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순득이의 큰올케였다. 역 앞 식당에 막내 올케와 함께 가서 첩 년의 살림살이를 부수었던 장 질녀의 어미였다.
그녀는 평소에 막내 시동생의 아내인 동서 옥숙이가 바른 소리를 하면서 집안일에 끼어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그녀 보기에는 가만히 두면 조용히 해결될 일을 오히려 막내동서가 끼어들어 시누이 일을 더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진수가 자기 아들의 혼사 일에 끼어들려고 자주 내왕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던 장 질녀가 동생 친구를 불러 진수를 미행해서 집을 알아냈다.
진수는 첩인 미향이와 제천에서 살고 있었다. 제천은 진수가 월남해서 맨 처음 발을 붙인 곳이기도 했다.
다음 날은 진수 아내와 막내 올케 그리고 장 질녀 셋이서 진수가 살고 있는 제천집으로 쳐들어갔다.
집은 도로를 끼고 있었고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으며 어디로 갔는지 둘은 나가고 없었다. 사실은 장 질녀가 집에 와서 고모부와 첩 년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어미는 미리 진수 첩에게 연락해서 피신하라고 일렀던 것이었다.
밖에서 진수 아내 일행이 부산하게 떠들자 다른 셋방 아낙들과 주인이 함께 모여들었다. 그들을 향해 올케인 옥숙이가 인사를 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첩년인 주제에 본처 행세하느라고...... 아 글쎄, 아이가 들어서지를 않아 시어머니에게 눈치가 보여서 둘이 나와서 산다면서 시집이 농사를 많이 지어 부자라고 자랑하더군요, 어쩐지 자식이 없다고 할 때 이상하드라......”
하고 집주인과 셋방 아낙네들이 맞장구를 치자
“그뿐인 줄 압니까, 지 아를 셋이나 낳고 지 사내가 버젓이 살아 있는 년이 서방질을 해서 남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것 아입니까.”
옥숙은 신이 나서 이들에게 불을 지핀다. 남자도 아닌 여자들끼리만 모였으니 하나같이
“저런 죽일 년, 저런 쳐 죽일 년!”
하고 혀를 차면서 흥분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자, 여기 있어요, 이거면 문을 딸 수 있을 겁니다.”
흥분한 여자가 두리번거리더니 마루 밑에서 배척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여자의 힘으로는 배척을 문고리에 대고 눌려도 고리가 잘 빠지질 않았다.
바로 옆에는 버스 회사가 있었고 배차를 기다리는 운전수들이 모여 있었다. 운전수들은 모퉁이에 삼삼오오 모여 서서 잡담을 나누다가 올케 옥숙이의 큰 소리에 심심하던 차에 무슨 싸움이나 하지 않을까 모여들었다. 이야기를 듣던 한 운전기사가
“보십시다, 내가 끌러 주지요.”
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와서 배척을 뺏어 들고 단번에 눌러서 장식을 빼버렸다. 옥숙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방안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둘이 다정하게 붙어서 찍은 사진틀이 벽이며 책상 위며 한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득은 사진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런, 죽일 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날아가 손에 든 망치로 액자 유리가 가루가 되도록 두드려서 부셨다. 질녀는 세간을 닥치는 대로 부시고 올케 옥숙이는 금침 이불을 조각이 되도록 갈기갈기 찢어서 수돗물을 부었다.
“아이고 시원하게 잘한다!”
“아주머니, 잘하십니다!”
“이 집에서 그년 놈들을 아주 쫓아내 버리세요!”
밖에서는 구경꾼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한결같이 다들 잘한다고 박수를 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온다는 걸 누구에게서 귀띔을 받은 모양이다, 그렇잖고 문까지 잠그고 어디로 가고 없을 턱이 없다, 오늘은 그만 가자...... 아주머니들, 지송 하지만 혹 년 놈들이 오면 우리에게 연락이라도 부탁하니다, 이번 기회에 이 연놈들을 아주 뿌리를 뽑아야 될 씨 더, 나중에 사례를 함 시더, 꼭, 부탁드리니다.”
“연락하다마다요, 걱정하지 마세요, 연락처나 하나 적어 놓고 가세요.”
하고는 모두 자기 일인 양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진수와 첩 미향이는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세 들어 사는 아낙네가 우연히 모 여관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는 순득이에게 연락을 했다. 이번에는 진수 아들까지 합세해서 찾아가기로 의논을 맞췄다. 역시 딸인 장 질녀의 이야기를 들은 순득이의 큰올케가 사전에 진수에게 연락을 했다. 셋이 연락한 여관을 찾아가자 이들은 이미 어디로 가고 없었다.
사실 진수는 지금껏 받아 놓은 퇴직금을 곶감 빼먹듯이 한 푼 두 푼 빼먹고 있었다. 무엇을 할까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미향이가 식당을 해 본 경험도 있고 돈도 별로 들이지 않고 하는 사업이 포장마차란 생각이 들었다. 또 포장마차를 하면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려도 쉽게 처분해서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장마차를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고 그 일 때문에 오늘 업자와 만날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야야, 큰일 났다, 어찌 알았는지 그 여자들이 이리로 쳐들어온단다.”
진수의 이야기를 들은 미향이는 기겁을 하면서
“엄마야,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어떡해, 피해야지, 그나저나 포장마차 하려고 업자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해 놨는데...... ”
“여관 주인한테 다른 데로 오라카만 안 됩니까?”
“그러면 어디로 갈까?”
“이왕지사 그 여자들 피할 겸 오늘 오랜만에 겸사겸사 의림지로 가 보시더, 그것들이 설마 하니 거기까지 알고 찾아오게니까.”
“아이고 이쁜 거, 그걸 어찌 생각했니? 바로 그게 양수겸장일세, 그래, 우리 제천 와서 그 유명한 의림지를 한 번도 못 가봤지, 그리로 가자. 내 내려가서 주인한테 이야기해 놓고 올게.”
“혹 모르니 단단히 이야기해 노소.”
“한 개도 걱정하지 말거라, 그 사람보고 의림지 정자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해 놓을게.”
하고는 진수는 신이 나서 여관 주인을 만나러 내려갔다.
“혹시 나를 찾는 여자들이 오면 딱 잡아떼고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남자 한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그 사람에게는 의림지에 있는 정자로 오라 일러 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알았습니다. 그렇게만 전하면 되지요?”
“혹 반대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여자들 말고 남자에게만 우리 가는 곳을 말해야 됩니다.”
“아- 알았습니다, 내가 바본 줄 압니까? 허허허!”
둘은 신신당부하고 택시를 타고 의림지로 떠났다.
얼마 뒤 순득이의 일행이 여관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이 여관에 진수라는 사람캉 작달막한 여자 한 사람이 같이 묵고 있는 방이 어딥니까?”
하고 진수 아내가 묻자 여관 주인은 함께 온 사람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하나 같이 기세가 등등해서 꼭 싸우러 오는 사람처럼 심상찮은 기미를 느낀 여관 주인이
“벌써 나가고 없습니다.”
하고 딱 잘라 말하자 성질 급한 올케 옥숙이가 타고 나섰다.
“혹시 어디 간다는 말은 안 하고 갔는가?”
“말 안 했는데요.”
“아면 좀 갈채주소, 우리는 안동에서 여까지 왔니다, 다른 게 아니고요, 이 사람은 그 사람 안사람이 씨더, 그리고 그 두 연놈들은 바람이 나서 이곳저곳 피해 다니는 인간이 씨더, 야는 아들이 씨더, 한번 생각해 보이소, 이런 다 큰 아들을 놔두고 아 셋이나 달린 계집년이 뭐 좋다고 붙어서 도망 다니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씨 더, 안 그렇껴?......”
올케 옥숙의 말을 들은 순득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 한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처량한 생각이 들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그만 여관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들고 눈물을 닦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깥을 내다보던 진수 아내 또래인 여인이 튀어나왔다.
“아 여보, 이야기 안 해주고 뭐 해요, 그까짓 더러운 여관비 더 받아서 뭐해요, 가만히 듣고 보니 정말로 딱하게 됐군요, 당신이 이야기하기 그러면 내가 이야기해 줄게요, 제천 의림지라고 아십니까?”
“여보, 그 사람들이 신신당부하고 갔는데......”
“신신당부고 뭐고 그런 못된 사람들을 가만 놔두려고요? 의림지로 간다고 했어요, 의림지 정자에 간다고 했어요, 둘이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간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군요, 우리가 이야기했다고는 말하지 말고 빨리 가 보세요.”
하고는 종이쪽지까지 내서 일일이 적으면서 위치를 그려 주었다.
어느 여자고 간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 본처 아닌 계집과 도망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할 여자는 하나도 없다. 결국은 진수가 여관 주인에게 신신당부한 약속은 바람이란 말 때문에 헌신짝처럼 깨지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는 진수와 미향이는 여관 주인에게 당부하고 나온 터라 안심하고 시원한 야외 넓은 호수의 공기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왼쪽으로 소나무 숲과 정자, 넓디넓은 호수 주변에는 큰 바위와 펼쳐지는 숲 그리고 또 정자, 저 멀리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의림지를 향해 한낮을 노래한다. 간간히 배고픈 물고긴가, 수면 위를 가볍게 뛰어오르며 누가 먹이를 주지 않나 살피고 들어간다.
미향이는 진수 팔에 매달려 별 간드러진 애교를 다 떨면서 천천히 호숫가를 거닐고 있었다.
“잠 깜 내 소피 좀 보고......”
진수는 미향이가 낀 팔을 아쉬운 듯 빼면서 화장실을 향했고
“자기, 빨리 갔다 와?”
첩실은 행복한 듯이 간들거리며 천천히 다시 걷고 있었다.
“저년이다, 저기 저년이 남의 서방을 뺏은 년이다!”
옥숙이가 얼마나 큰소리로 외쳤는지 꽤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처음에는 자신인지도 모르고 옥숙이 쪽으로 시선을 향하던 미향이는 차츰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향이가 몸 돌릴 틈도 없이 옥숙이가 달려들어 먼저 머리채를 잡아 흔들기 시작했고 진수 아내 순득이가 멱살을 잡았다. 질녀도 가만히 있을 성질이 아니었다. 셋이 한 여자를 상대로 때리고 짓 뜯고 하니 첩실은 사면초가였다. 순식간에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앞니가 깨어졌는지 입 언저리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아이고 사람 살려주소!”
조금 전까지 행복했던 순간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집에나 있을 걸......”
멱살이 잡히고, 얻어터지고, 머리채가 뜯기고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터이다. 진수 첩은 세 사람 다리 틈 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밀면서 구경꾼들에게 애원하다시피 도움을 청했다.
“이년이 아 셋 가진 년인데 지 남편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데도 남의 남편을 꼬여 내서 안동에서 여까지 와서 서방질하는 년 이 씨 더, 이 죽일 년이......”
하고 머리채를 끌면서 옥숙이가 소리치자 사실을 일게 된 구경꾼들이 하나 같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년 물에 처넣어 버리세요!”
“참 뻔뻔스럽게도 생겼다!”
“저런 년은 가랑이를 찢어 버려야 해!”
“그년 가랑이에 금테라도 둘렸나?”
손가락질을 하는 구경꾼들이 참으로 야속하다고 미향은 생각했다.
소피를 마치고 밖을 나온 진수는 어디 싸움 구경이 났나 싶어 옷을 여미면서 구경꾼들 사이로 고개를 들여 밀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고 사람 죽네!”
진수는 밑에 깔린 여자가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미향이라는 것을 목소리만 듣고서 바로 알아챘다. 그는 얼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 사이를 뚫고 미향이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들었다. 미향이를 잡아 머리채를 흔들던 옥숙이는 진수를 보자 미향이의 머리채에 손을 놓고 진수의 넥타이를 감아쥐었다.
“이놈이 저년과 간통질한 놈이 씨 더, 야 이놈아, 오늘 니 죽고 나 죽자!”
순둥이 진수 아내도 첩의 편을 드는 진수를 보자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이를 보자 진수는 상황이 심상찮음을 느꼈다. 진수는 얼른 꼬리를 납작 낮추고 걸음아 나 살려라 뒷구멍으로 몸을 피해 달아나고 말았다.
잠시 후에 순경 두 명이 왔다. 진수가 파출소에 가서 미향이의 이름으로 고발을 하고 자기는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미향이는 우선 그 틈바구니에서 몸을 피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향이와 순득이의 일행은 파출소로 끌려갔다. 진수가 여자 한 사람을 폭행한다는 고발만 듣고 출동했던 순경들은 우선 가해자인 옥숙이를 보고 먼저 진술서를 작성하려고 질문을 던졌다.
“뭐 때문에 여자 한 사람을 여럿이 폭행했습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에 앉아 있던 미향이가 앞니를 보이면서
“저 여자들이 내 이를 두 대나 뿌리자 놓았니다, 여 보이소.”
하자 순경은 입술 주위를 바라보면서
“상처가 심하네, 무슨 이유로 한 사람을 여자 셋이서 이 모양을 만들어 놨어요?”
그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올케 옥숙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미향이와 순경을 번갈아 보면서
“이게 얻다 대고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니, 여보소 순사님들 저년이 어떤 년인지 아시는가? 저년이 아 셋을 낳은 본 남편이 있는 년인데 이 년 전부터 우리 시 매부를 꼬드겨서 간통하다가 오늘 여기서 잡혔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이소, 순사 아저씨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
간통이란 말에 순경은 미향이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그래요? 참말로 아줌마가 잘못했구먼......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머니가 맞아도 싸는구먼, 아주머니! 어떻게 하렵니까? 같이 고발할까요?”
“아이고 몰씨더, 그이가 와 봐야 알겠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순경들은 사실대로 조서를 꾸미고 순득이의 일행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고소가 취하될 줄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관할경찰서로 이첩이 되어서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다. 고소인의 이름은 미향이었고 진수는 뒤로 쏙 빠져 있었다. 고소 내용에는 간통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았고 폭행 사건과 주거침입 및 기물파손이 전부였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진수가 고향 선배인 모 검찰청 고위 간부에게 청을 넣은 뒤에 만든 진술서였다.
“이년 놈들을 그냥 둬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다, 경찰서에 들어가서 맞고소를 하그라,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대고마고 깨춤 추는 거 봐라, 이것들이 된 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그냥 둬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옥숙이가 열을 올리자 순득이는
“언니, 그러면 간통으로 맞고소 하자는 말이껴?”
“그거 말고 뭐 다른 방법이 있나?”
“간통은 이혼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요?”
“왜? 이혼하기는 싫나?”
“아이씨더, 이 나이에 그까짓 인간한테 뭔 미련이 남아서 이혼이 싫다고 하게니까, 아들 혼사 문제가 걸려서 그렇지요.”
“그건 그렇다만 지금 그 인간들을 처넣지 않고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잖나.”
“할 수 없구먼요.”
먼저 옥숙이와 순득이가 경찰서에 들어가서 고소인 당사자와 달아난 남편 진수가 간통을 하다가 들켜서 그 자리에서 여럿이 서로 옥신각신 싸움이 붙었고 그러던 중에 고소인의 이가 부러진 것은 스스로 넘어졌는지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고 진술하고 동시에 진수와 고소인인 미향이를 간통으로 고소하고 말았다.
고소장이 접수되어 집에 경찰관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진수와 미향이는 아예 피해 다니면서 여관에 투숙하였고 미향이와 함께 먹고살기 위해 숨어서 전에 준비했던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미향이는 음식을 만들고 진수는 손님을 맞으면서 식탁도 닦고 음식상도 차려 주면서 둘은 다정하게 눈을 피해 포장마차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항상 불안했다. 간통으로 수배가 떨어진 상태였으니 단속 경찰관이라도 어슬렁거리면 둘의 신원을 물을까 봐 조마조마해서 간이 콩알만 해지곤 했다. 진수는 미향이의 고소는 취하하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고소를 취하하면 퇴직금 반을 준다고 회유하였고 수차례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밤늦도록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많았다. 진수는 술 시중에, 청소에, 손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줌마, 생각보다 괜찮은데...... 우리 데이트 한번 할까?”
술이 취한 젊은 한 사내가 미향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손님,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일어서 가세요.”
바쁜 와중에도 진수는 수작을 거는 사내에게 다가가 점잖게 타일렀다.
“와, 나는 돈 없을까 봐? 여기 돈 있어, 왜 그래?”
“그게 아니고 손님이 취하신 것 같아서......”
“야 인마, 돈 주면 될 거 아니야.”
하며 소리치면서 지갑을 꺼냈다.
“손님이 너무 취했습니다, 그만두십시다.”
“너 이 새끼, 돈 준다는데 웬 말이 많아!”
“철썩!”
사내는 지갑에서 꺼낸 돈과 함께 진수의 뺨을 때렸다. 돈이 날려서 여기저기 흩어졌다. 진수는 버르장머리도 없이 함부로 어른의 따귀를 올려붙이는 젊은 사내를 대하자 어이가 없었다. 진수가 젊은 사내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자 안주를 만지던 미향이가 뛰어나오면서
“여보, 참으십시오.”
하고 소리 지르며 잡은 멱살에 매달리자 잠시 느슨한 틈을 타서 젊은 사내의 주먹이 다시 진수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어이쿠!”
진수가 얼굴을 감싸자 순간
“이 눔이 사람 잡는다!”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미향이가 젊은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코, 이년 놈들 봐라, 둘이 덤벼들어?”
미향이가 젊은 사내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퀸 것이었다.
이렇게 셋이 엉켜서 싸우는 바람에 포장마차는 난장판이 되었다. 먹다 만 손님들은 돈을 계산하고 일어서 가버리고, 남은 술은 바닥에 쏟아졌고 술병은 엎어진 탁자와 의자 사이를 이리저리 뒹굴었다.
주위가 소란해지자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관이 달려오고서야 이 싸움은 끝이 났다. 셋은 영락없이 파출소에 끌려갔다. 싸워서 흥분한 진수는 파출소에 끌려가서야 자신이 수배된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진술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기소가 되어 도망 다닌 것이 탄로 나게 된 것이었다. 결국 포장마차에서 싸움이 붙는 바람에 둘은 간통죄가 들통이나 구속당하고 말았다.
그는 손이 닿는 대로 온 힘을 다해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내에게 합의를 종용했다. 남아 있는 퇴직금 전부를 아들에게 줄 테니 지 어머니에게 졸라 합의서를 써 달라고 했다. 한 편으로는 자식과 마누라를 달래면서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 다짐하고 있었다.
“이년, 네년이 합의서에 도장만 찍어라, 그때는 퇴직금이고 뭐고 네년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 테니......”
진수의 아내 순득이가 올케 옥숙이와 함께 면회를 왔다.
“야야, 애들을 봐서라도 합의해 다오.”
진수가 사정조로 이야기했지만 지금에 와서 순득이도 등신은 아니었다.
“돈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합의서를 써줄 수 없니다.”
하고 순득이는 입을 다물자 한참을 생각하던 진수는 결국 체념하고는
“그래, 좋다, 합의서를 써다오, 내 퇴직금이 든 통장 전부를 넘겨줄게.”
하고 달래려 들자 옆에 가만히 있던 옥숙이가
“아이고, 또 간사한 혓바닥으로 사람을 놀리려고? 차라리 지나가는 개를 믿으라고 하지, 먼저 통장하고 도장을 넘기지 않으면 어림없지, 합의는 틀렸네, 가세.”
하고 딱 잘라 말하고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옥숙은 순득이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진수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처럼 처남댁인 옥숙이가 아내 순득이보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얕은 수법으로 합의서를 받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수로부터 통장과 도장을 넘겨받고 돈을 찾아 손에 쥐고서야 순득은 쌍방이 고소한 건에 대해 서로 취하했다. 그리고는
“더러운 놈!”
하고 순득이는 전에 없던 욕설 한마디를 던지고 행하니 자리를 떠나버렸다.
유치장을 나온 진수와 미향이는 우선 두부를 사서 한 입씩 먹고 난 후 미향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것들이 어째 쉽게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주던가요?”
돈을 다 빼앗기고 겨우 합의서를 받아 구치소를 나온 진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향이를 향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쉽게? 야야, 말도 마라, 그것들이 얼마나 약아빠졌는지 아나? 남은 퇴직금 다 빼앗겼다!”
“그러면 돈은 한 푼도 없단 말이껴?”
“우선 나오고 봐야 할 것 아니냐.”
“그럼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사는가?”
“포장마차를 수리해서 장사를 시작하면 안 되나.”
둘은 역 앞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로 왔다. 그런데 포장마차는 온데간데없고 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진수는 가까이 있는 가게에 가서 물어봤다.
“아저씨가 싸워서 파출소에 간 이튿날 군청 철거반이 와서 깨끗하게 철거해 갔어요, 한번 군청에 들어가 봐요.”
하자 진수는 이제 포장마차도 빼앗기고 당장 살길이 막막했다. 우선 급한 대로 여관에서 짐을 빼서 살던 집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둘은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보, 마음도 정리할 겸 오늘 하루만 여관에 자요.”
하고 미향이가 조르자 진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디 잠깐 볼일이 있으니 여관에 들어가 있어요.”
하고는 대답도 하기 전에 쪼르르 어디론지 나가 버렸다. 저녁해 질 때까지 기다려도 미향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수는 기다리기 적적해서 미향이가 오기 전에 우선 방이라도 미리 빼서 전세 보증금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셋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진수가 살던 전셋집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을 들여다봤더니 집안 살림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살림살이 모두 어디 갔어요?”
기침 소리를 듣고 찾아온 주인 여자에게 진수는 놀라서 물어보자
“벌써 아낸가 첩인가 같이 살던 사람이 와서 살림을 모두 빼고 돈도 찾아갔어요.”
“아니 빼 달라한다고 그렇게 빨리?”
“그렇잖아도 동네 창피해서 방 빼 달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바로 사람을 데려와서 살림을 빼니 얼씨구나 하고 줬지요.”
“......”
진수는 이상한 예감은 들었으나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머리는 잘 돌아가네, 내가 방을 빼기 전에 먼저 와서 뺏는 걸 보니......”
하고 여관으로 오겠거니 생각하고 발길을 옮겼다. 여관에 들어왔으나 미향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금방 생긋 웃으면서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미향이는 이튿날도 사흗날도 그리고 영영 들어오지 않았다. 진수는 알만한 곳은 모두 연락을 해봤으나 미향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망할 년, 벼룩이 간을 빼 먹지 그래 보증금을 빼먹고 도망을 가?”
외상으로 시켜 먹던 밥도 돈을 줄 대책이 없자 그만두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