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7)

집 터

by 김수현



1


며칠째 억수같이 퍼붓던 장마 비가 저녁나절에 잠깐 소강상태에 들자 순녀는 어미젖을 찾아 칭얼대는 손자를 달래느라 등에 업고 집 밖을 나왔다. 그녀는 마을 앞을 흘러내리는 개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방금 내린 장맛비로 산에서 흘러내리는 누런 흙탕물이 콸콸 소리를 지르면서 개울고랑을 넘쳐흐르고 있었다. 무섭게 내려 쏟는 계곡물과 개울물이 합류하는 길목은 사람이 건너 다닐 수도 없게 움푹 파여 들어가 있었다. 물과 물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우렁찬 천둥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물보라를 파편처럼 튀기면서 무섭게 흐르고 있었다.

순녀는 어떻게 이곳을 건너갈까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때마침 손자가 무엇을 봤는지 업힌 등에서 버둥거리자 다시 둘러업으려는데 순녀의 발이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이고 야야, 가만있그라.”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업고 있던 손자를 추켜올리면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순간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녀의 치마 끝을 밟은 줄 모르고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하자 밟힌 치마 끝이 앞으로 당기면서 다시 중심을 잃고 말았다.

“어, 어?”

그녀가 손을 짚으려 했지만 업고 있는 손자 때문에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잠깐 사이에 그녀의 발이 개울 쪽으로 미끄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세찬 계곡물에 의해 그녀는 손자를 등에 업은 채 개울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의 코와 입으로 누런 흙탕물이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헉!”

업고 있는 손자가 물살에 끌려 등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자 그녀는 손에 잡힌 손자의 다리를 힘껏 앞으로 당겨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빠르고 세찬 물살도 그녀의 초인적인 힘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손자의 몸이 그녀의 가슴팍으로 안겨왔다.

“내 손자, 내 손.......”

또 한 번 왈칵하고 흙탕물이 호흡과 함께 콧구멍 깊숙이 들어왔다. 코가 따갑고 숨이 막혀 왔다. 물살은 손자를 떼어 내려고 강하게 밀어냈지만 그녀는 결코 손자를 놓치지 않았고 두 손으로 더욱더 가슴에 꼭 껴안았다. 물살에 밀려 쿵쿵하고 그녀의 몸이 이리저리 돌부리에 부딪혔다. 한참을 물살에 휩쓸려 부딪히며 내려가던 그녀는 이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오직 손자만 돌부리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감싸 앉고 있었다. 처음에는 답답해 오던 호흡이 차츰 편안해 옴을 느꼈다. 그녀의 몸뚱어리는 물결 따라 계속 돌부리나 바위 사이를 부딪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물살은 두 사람을 순식간에 삼켜 버리고 빠른 몸부림을 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순녀네 식구들이 개울에서 하천으로 합류한 주변 십리 길을 내려가면서 모조리 다 뒤졌다. 누런 흙탕물이 하천을 넘치도록 흘러 내려서 돌 틈에 끼었는지 아니면 하천과 합류하는 개평 뜰 앞 낙동강까지 흘러들었는지 그날은 화산 댁의 시신을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장마가 걷히고 그렇게 성이 나듯 세차게 흐르던 물이 언제 그랬나는 듯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날도 화산에 식구들은 하천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다녔다.

샘내 아래에 있는 보 밑 가시 넝쿨사이에 천 뭉치 같은 것을 발견한 것은 순녀의 남편 화산이었다. 치마가 넝쿨에 끼어서 물 위로 떠 있었다. 화산은 직감적으로 아내 순녀인 것을 느꼈다. 그는 얼른 달려갔다. 시신은 반쯤 모레에 묻혀 있었으며 터지고 깨져서 만신창이 된 순녀의 시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며칠 째 물길을 따라 미치듯이 헤매던 며느리는 아들이 할머니 품에 안겨 고이 잠든 것을 보자마자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물에 휩쓸리면서 어떻게 등에 업은 손자를 안았는지 몰라했다.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할미 가슴팍에 꼭 안겨 숨진 손자가 급류에 휩쓸리면서 그 숱한 돌 구덩이를 지나왔었는데도 상처 하나 없이 죽어 있었다.

목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손바닥만 한 땅뙈기 몇 마지기가 고작인 화산은 돈 나올 구멍이라곤 빚 말고는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이를 물고 큰 결심을 했다. 물에 빠져 죽은 아내와 손자 장례는 치를 돈도 없을뿐더러 마음도 없었다.

"나가서 죽은 사람은 집안에 들이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쓴 묘보다 화장하는 것이 상책인기라......."

하고 귀동냥해서 들은 생각으로 단숨에 가족들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이를 물었다.

“명은 하늘에 있는 거라. 야 명은 여기까지 밖에 안 되는 걸 어쩌니......”

그날 늦은 오후에 화산은 지게를 짊어지고 몇 차례 뒷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자식들이 따라오려는 것을 막고 다시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날은 음력 오월 보름이라 달도 유난히 밝았다. 낮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장작 위에 시신을 올려놓고 기름을 듬뿍 부운 뒤 불을 붙였다.

"따다닥."

장작불 타는 소리와 함께 튀기는 불꽃이 화염과 함께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유령같이 화산 영감의 가슴속을 태우고 있었다.

"망할 년의 할망구, 뒈지려면 혼자 뒈지지, 어린 손주 놈은 뭣 때문에 데리고 뒈져......."

늙어 쪼그라진 자그마한 영감의 얼굴에는 점점 타들어 가는 화염 속에서도 눈물방울이 마르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일렁거리는 불길 속에 할멈과 같이 했던 옛날 일들이 하나하나씩 떠올랐다.

"따다 다닥."

불길은 시신을 감싸고 훨훨 타들어 가면서 또 한 번 장작 타는 소리를 내지른다.

방금 까지도 저 앞에 있었던 아내와 손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산은 꺼져가는 잿더미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2


천석은 하루 종일 아비 화산이 모심는 것을 보고 소 꼴 한 짐 해놓고 빈둥거리는 자신이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오늘도 밥상머리에 앉기조차 싫었다. 그는 어디엔가 멀리 떠나 버리고 싶었다.

"그래, 대구에 계신 아제내 집에 가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천석이 오촌당숙인 덕칠은 대구 변두리에서 조그마한 가내 공업으로 모기장을 만드는 공장을 하고 있었다.

천석이가 오촌당숙인 덕칠을 찾아간 때는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한참 주문이 밀려 공장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로 모기장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잖아도 덕칠은 어디서 사람을 구하나 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때맞춰서 조카인 천석이가 자기를 찾아온 것이 무척 반가 왔다.

밀린 주문 때문에 어제도 잠깐 눈을 붙이고 밤새 일을 했지만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장 직원들을 온종일 달래고 같이 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몹시 피곤했다.

오늘 저녁도 밤일을 해야 하는 날이다. 며칠째 잠깐 눈을 붙이고 밤일을 계속했던 천석이는 육신이 피곤해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오촌 당숙인 덕칠이가 밤을 새우며 같이 일을 하는 통에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사장 덕칠은 밀린 주문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공장에서 공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전 내내 손과 발은 재봉틀로 가고 있지만 온 신경은 전화기에 쏠리고 있었다. 일신 상회에 두 번씩이나 납품 날짜를 어겼기 때문에 오늘은 틀림없이 독촉 전화가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벨이 울렸다.

“천석아!”

“야?.......”

“네 잠깐 나갔다 올 거니깐 아들 간수 좀 하그라.”

하면서 덕칠은 공장 일을 천석이에게 당부하고 일신상회 사장을 만나려고 밖으로 나갔다.

천석은 사장이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것을 보자 말자

“니들 참 시간되면 시켜 먹고라, 내 눈 잠깐 붙이고 오꾸마.”

하고는 뒷방으로 들어가서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 벌렁 자빠졌다.

천석은 낡아 빠진 선풍기의 버튼을 1단에 놓고 스위치를 눌렸다. 날개가 있는 몸체가 흔들거리면서도 고장 없이 잘 돌아간다고 천석은 생각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베개를 베고 누우니 세상에 이렇게 편안한 것은 더 없다고 생각했다.

피곤에 겹친 심신은 눈을 감자 말자 깊고 깊은 늪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 시간에 덕칠은 밀린 주문으로 거래처에 약속된 물량을 건네주지 못해 주문처 사장과 만나고 있었다.

공장 식구들의 수는 생각하지 않고 우선 돈벌이에 욕심을 부린 것이 이런 일을 초래한 것이다. 덕칠은 백번을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사정해서야 겨우 납품날짜를 연기할 수가 있었다.

날씨가 얼마나 더웠던지 덕칠이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날씨가 더우니 화는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약속한 제품을 여러 날 어겼으니 별도리는 없었으나 그래도 왠지 화가 치밀었다.

그가 공장 문을 신경질적으로 힘껏 열어젖히고 들어설 때 공장 공원들은 야근을 하기 위해 저녁참을 먹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는 그들 속에 천석이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 눔의 자식이 가면서 그만큼 부탁하고 갔는데, 그새 어디 가고 없니?”

공원들이 놀고 있는 것이 천석이가 감독을 하지 않는 탓과 같았다. 갑자기 머리에 열이 치켜 오르며 눈앞이 캄캄해진다.

"공장장은 어데 갔어!"

하고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낮은 소리로 직원들에게 물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흥분과 함께 독기 어리면서 떨리고 있었다. 공원들은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재봉틀 앞에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한번 공원들에게

"공장장은 어데 가고 없어!"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자 사장 가까이에 있던 한 공원이

"뒷방에......."

하며 공원들이 기숙하는 방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어데?....... 뒷방에?........ 이놈의 자식이!....... "

눈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쩔 줄 몰라하면서 바삐 뒷방으로 향했다. 너무 흥분한 탓에 공장 비상구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질 번하면서 손으로 짚었던 곳에 벽에 기대어 차곡차곡 쌓아둔 박스가 와르르 무너졌다.

"이게 뭐야!"

더욱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올라왔다. 발길로 힘껏 흩어진 박스를 걷어찼다. 덕칠은 흩어진 박스를 그대로 두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던 공원 하나가 급히 달려와 박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피곤했던 천석이는 사장이 들어오기 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려고 생각했던 것이 그만 깊은 잠이 들고 말았다. 납품 량은 밀려 있는데도 정신없이 잠든 천석이를 보자 덕칠은 눈이 뒤집히도록 천석이가 미웠다.

"이 눔의 자식이......."

모기장을 걷어붙였다.

"이 눔의 자식아! 지금 잠 잘 때야!"

자신도 어제 눈 한번 못 붙이고 이렇게 동분서주하는데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조카의 잠든 얼굴이 너무나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천석은 잠결에 어렴풋이 사장의 고함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켰으나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다시 돌아누웠다. 그때 그의 귀와 볼 사이에 무엇인지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어이쿠!"

잠결에 천석이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귀가 멍하고 구멍이 뚫린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몸이 공중으로 쭉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 대 맞은 귀에 한쪽 손을 올려붙이고 벌떡 일어나 앉아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눔의 자식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빨리 나가지 못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백 하고 질렀으나 천석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천석아!"

그때서야 사장 덕칠은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천석이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심하게 손찌검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카인 천석을 다시 한번 불렀다.

“천석아~”

".........."

아무 대답도 없이 천석이는 덕칠을 향해 싱긋이 웃고만 있었다. 그를 향해 웃고 있는 천석이의 눈동자의 초점이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섬뜩하게 들었다.

"천석아!"

또 한 번 천석이를 불러 보았다.


3


천석이가 오촌 당숙인 덕칠이와 함께 D.S 정신 병원에 들른 것은 이튼 날 오후였다. 덕칠은 예상했던 대로 병명이 나오자 덜컥 겁이 났다.

“다 큰 조카를 따귀까지 때리는 것이 아닌데.......”

하고 흥분했던 자신을 후회해 본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긴 복도 끝에는 굵직한 쇠창살이 무겁게 복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의사와 덕칠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덕칠이가 의사의 주머니에 무엇인가 찔러 넣어주었다. 의사는 웃음을 지으며 덕칠의 어깨를 두드리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흰 가운을 입은 건장한 청년 네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석과 덕칠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오더니 무작정 천석의 두 팔과 두 다리를 잡았다. 갑자기 놀란 천석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리를 잡고 있는 두 사람이 그만 다리를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황급히 몸부림치는 천석을 다시 잡았다. 그들의 손아귀를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는 천석은 애원하듯 덕칠을 불렀다.

“아제요!”

잡혀가는 천석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뜻한 모습으로 저항을 멈추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원망스러운 듯이 덕칠을 바라보았다.

“철커덩!”

잠시 쇠창살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육중하게 들렸다. 덕칠은 그만 고개를 숙였다. 천석은 창살 안쪽 문으로 사라졌지만 덕칠은 더 이상 천석이가 사라진 그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바로 돌아서서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하루 종일 처량하게 바라보며 끌려가든 천석이의 눈동자가 떠올라서 덕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세월보다 무심한 것은 없다. 세월은 세상 모든 것을 품 안에 묻고서 말없이 묵묵히 흐를 뿐이다. 비록 천석은 병원으로 가버렸지만 흐르는 물처럼 그의 자리는 아무런 표식 없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그 일도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천석이의 모습으로 마음이 괴롭던 덕칠은 한 이틀이 지나자 점차 잊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세월은 흘렀다.

“때르릉, 때르릉......”

덕칠은 또 뭔 일이 잘못되어서 전화가 걸려 왔나 하고 귀찮은 듯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거기 윤 덕칠 씨 댁이죠?”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에 덕칠은 의아해하면서

“예, 누구심니껴?

하고 대답하자

“계시면 부탁해요.”

“접니다, 무슨 일입니까?”

“예, 병원인데요, 선생님의 판단이 천석 씨를 퇴원시켜도 좋다고 해서요, 그래서 연락드립니다.”

그러나 덕칠은 천석이가 퇴원하는 것이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그는 할 수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천석이는 상태가 매우 호전된듯했다. 덕칠을 보고서는 웃는 얼굴을 하며

“아제요, 안녕 하시이껴?”

하면서 인사까지 했다.

덕칠은 올 때와는 다르게 천석이가 밝은 마음으로 인사를 하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천석을 데리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천석이가 돌아오자 공장장이 돌아왔다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대했다. 그러나 덕칠은 천석이가 일을 하던 잠을 자던 어떤 행동을 해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정신 병원을 다녀온 후론 또 재발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접어들고 공장에 일이 별로 없어 한가로운 어느 날이었다. 덕칠의 아내가 공장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가 천석을 보고 웃으면서

“조카님, 이제 장가들어야 되겠네.”

하고 잠시 농담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제, 나 장가보내줘!”

하고 천석이가 장가를 보내 달라고 덕칠에게 보채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자만 보면 장가를 보내 달라고 때를 썼다. 덕칠은 기가 막혔다. 도무지 한 번 말을 꺼내면 막무가내였다. 심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칼을 들고 달려들자 모두 기겁을 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덕칠은 할 수없이 천석을 달래서 병원으로 다시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천석아, 장가를 갈라면 우선 선부터 봐야지, 안 그래? 자, 자, 내가 잘 아는 여자가 있으니 지금 내캉 선보러 가자, 옷도 갈아입고, 응?”

하자 금방 행패를 부리든 것을 멈추고 얌전해졌다.

“참말이지, 아제? 참말로 장가보내주지?”

“그래, 그래, 참 말이고 말고, 자, 자, 옷부터 갈아입고, 자.......”

천석의 행패로 잠시 몸을 숨겼던 모습을 보이면서 달랬다. 한참 만에 천석의 눈동자도 풀렸다. 덕칠은 옷을 갈아입히고 택시를 불러 천석을 데리고 다시 D.S병원으로 갔다.

천석은 병원을 보자 갑자기 눈동자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문을 열려고 막 문고리에 손이 갔다. 덕칠은 급히 천석을 잡아끌며 말을 둘러댔다.

“천석아, 선 볼 아가씨가 혹 너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보고 약 좀 받아 갈라고 왔다. 알았지?”

“아제, 참말 이제?”

“그라문 참말이지, 내가 니보고 거짓말하겠나?”

“알았다. 참말로 약만 타 가지고 갈꺼제?”

“그렇다니까, 약만 타 가지고 갈 거라니까.”

겨우 천석이와 타협을 본 덕칠은 의사를 만나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덕칠을 바라보는 의사를 향해 눈짓을 했다. 눈짓을 얼른 알아차린 의사는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마한 버튼을 눌렸다.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청년 네 사람이 들어왔다. 천석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전에 보았던 건장한 청년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자 벌떡 일어나 덕칠이에게 갔다. 그리고는 덕칠이의 사타구니에 팔을 넣고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이게?”

거꾸로 쳐 박으려는 찰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그때 청년 네 사람이 급히 달려와 덕칠과 천석을 붙잡았다. 다행히 덕칠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석은 이를 바드득 갈면서 덕칠을 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네 사람은 천석을 끌고 밖으로 나가자 옷이 잡힌 덕칠은 밖으로 같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껏 잡았는지 문밖에 나오자 잡힌 옷이 찢어져서야 겨우 천석의 손아귀에서 벋어 날 수 있었다. 다시 천석은 양팔을 잡힌 채 쇠창살 안으로 들어갔다. 쇠창살 안에서는 천석이 얌전하게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덕칠은 따라가면서 뒤 돌아보는 천석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옷이 찢기면서 천석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던 일은 잊어버리고 얌전하게 따라가면서 자신을 바라보던 천석의 눈동자가 너무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천석이는 덕칠에 이끌려 정신병원을 전전긍긍하다 시골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집을 떠난 지는 만 일 년이 지난 이듬해 여름이었다.

천석이 돌아오자 그는 먼저 아버지 화산영감이 쓰던 사랑방으로 들어가서 벌떡 누었다. 심신이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덕칠은 엉덩이를 붙이지도 않은 채 문밖에 서서

“천석아, 여 고기 봉지 하나는 아버지 거다, 니 아버지 오시면 드리라고 너는 한숨 푹 자고 여기에 있그라, 나는 니 아버지 만나고 대구로 내려갈 거다. 여기 있는 약은 빠주치 마고 잘 챙겨 먹어야 한다,”

하고는 무슨 벌레를 떨어 내 듯하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화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돈이 없어 기 한번 펴고 살지 못했던 형인 화산을 어르고 달래서 이 자리를 피하려는 눈치였다.

혼자 남은 천석은 목침을 베고 멍석 위에 누웠다. 벌써 하늘에 별빛이 어둠 사이로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모기란 놈이 목덜미며 팔뚝이며 허벅다리며 그냥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사정없이 물어 댄다. 그래도 천석은 잠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몸이 눅눅해지고 으스스 추위를 느껴서 잠이 깼다. 새벽이슬이 내린 모양이다. 천석은 목침을 들고일어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바를 내리고 문을 열어 놓은 덕에 모기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천석은 목침을 내려놓고 누웠다. 바를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빛이지만 그래도 시렁에 걸려있는 가래는 이불을 얹어 놓은 사다리 모양 그의 시야 바로 위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천석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천석의 동공은 크게 늘어났고 불꽃이 튀는 듯 광채가 일어났다. 그의 어미가 천석이의 가슴 위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매, 답답....... 하....... 다, 그만 내려....... 오그....... 라.”

천석은 어머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숨이 막혀오자 헐떡거리면서 온 힘을 다해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작은 어머니는 빙긋이 웃음 지으며 꿈쩍하지 않았다. 천석이의 얼굴에는 이제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흥!”

천석은 이를 물었다. 얼마나 힘을 줘서 물었는지 입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그는 어머니를 떨어뜨리려고 몸을 뒤틀었다. 어머니의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갔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문 앞에서 어머니가 물에서 죽은 조카를 무릎에 앉고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매, 뭐 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 없이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자 답답했다. 천석은 어머니를 향해 발을 옮기려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어느 사이에 어머니가 목에 허리끈을 메고 길게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매는 어둔데 왜 여기 누워 있니? 불 좀 켜 주까?”

그는 불을 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성냥을 찾기 위해 윗목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더듬거리는 팔에 걸려 호롱이 넘어졌다. 넘어진 호롱에서 석유가 흘러나와 냄새가 났지만 천석은 성냥을 찾으려고 그대로 기어갔다. 천석의 손에 팔각 성냥 고막이 잡히자 빨리 불을 켜고 싶었다.

“피시식”

성냥불이 켜졌지만 성냥개비가 거의 다 타도록 그의 눈에는 앞으로 넘어져 구른 호롱이 보이지 않았다. 다 타들어 간 성냥개비불이 그가 잡은 손가락 끝에 닿자 손가락이 뜨거워졌다. 그는 얼른 성냥개비를 방바닥에 버리고 다시 불을 켰다. 그가 버린 성냥개비는 자리 위에 쏟긴 기름에 번져 점점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불을 켜지 않아도 자리에 붙은 불 때문에 방안은 환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밝은 불빛으로 조카를 앉은 어머니가 빙긋이 웃으면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석은 조카와 어머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조카를 밀어내고 천석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불꽃은 검은 연기를 휘감으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천석은 어머니의 인자한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뿌지직!”

대들보가 시뻘건 화염을 싸고 천석이의 몸뚱이 위로 폭삭 내려앉고 있었지만 천석은 마냥 행복해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고함치는 소리가 그의 귀에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불이야!”

한참 깊이 잠든 시간에 화염을 발견하고 불난 것을 안 이웃들이 앞개울에서 퍼다 나른 물로는 불을 끄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이웃으로 불이 옮겨 붙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한 곳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모두 타버린 잿더미 위에 드문드문 연기만 올라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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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저녁나절 동내 젊은이들이 더위를 식혀가며 가게 들 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한창 천석이네 집이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야, 천석이가 죽은 사랑방 시렁 바로 밑에 있는 구들장 아래 베고 난 나무 밑둥치가 있었다며?”

“그래, 아마 우리 아름으로 세 아름이나 된다지?”

“천석이네 집이 들어 선지도 몇십 년은 되었는데 나무뿌리가 썩지도 않고 있었다면서?”

“본래 옛날부터 어른들이 그 집터가 좋지 않다고 했어.”

“천석이네 집이 뭐라 카드라? 살풍이 있다든가?”

“옳아, 그 집이 뒤 산 능선 언덕 아래지, 집터가 사방 바람을 맞고 있다지?”

“근데 말일쎄, 가만 보면 아제네 집에 문제가 많데이.”

“문제는 무슨 문제?”

“야들아, 봐라, 화산 아주머니는 큰 물 때 손자하고 같이 죽었지, 천석이는 미쳐 불에 타 죽었지...... 참말로 그 집안에 무슨 귀신이 붙었는 게 아이가?”

“그렇게, 귀신이 안 붙고야 집안 식구가 하나같이 그렇게 안 될 턱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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