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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마주할 때

예술이 궁금하다

by 방방이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에는 관람객이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술에 정말 관심이 많구나’하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과 더불어 나는 그림이 아닌 관람객에게 저절로 관심이 갔다. 그들이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지가 궁금했다.


관람객 대부분은 도슨트를 이용했다. 하나의 그림을 10분 이상 자세히 관람하는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도슨트에서 설명하지 않고 건너뛰는 그림은 그냥 휙휙 지나가고 도슨트의 설명이 나오는 그림 앞에서는 설명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도슨트를 듣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했는데, 그들 중 3분의 2 이상은 그림에 붙은 제목과 설명을 그림보다 먼저 보고 더 오래 봤다.


사람들이 그림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고, 예술의 가치를 느끼는 방법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그림의 가격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 혹은 권위 있는 자가 좋아하는 그림에 관심을 갖는다.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의 역사와 배경에 대한 흥미도에 따라 그림에 애착을 갖는다. 물론 그저 그림 자체가 나를 이끌어서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호킨스 전시회에서 내가 느낀 관람객들의 관람 방식으로 볼 때, 그림 자체가 주는 감동을 느끼려는 사람은 거의 없던 것 같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그림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관람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시회를 즐기는 방식은 그림 자체일까, 아니면 그림에 대한 배경과 지식이 먼저일까? 어떤 것이 예술을 보는 좋은 방법일까?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이,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너무 '지식 쌓기’식 예술 감상에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러울 뿐이다.


물론 그림에 대한 뒷이야기와 배경, 역사 등을 먼저 알고 나면 그림과 친숙해지고 좋아질 수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올바르게 즐기는 유일한 방법이 ‘그림 자체를 감상하는 것’에 있다고도 생각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그림에는 선입견을 갖고, 유명 작가의 그림에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추세에 따르지 않으면 ‘뭘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교양 있는 사람'에 속하기 위해 그림 자체가 아닌 그림 주변의 지식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는 게 아닐까? 도슨트와 해설서 없이 그림을 감상하는 건 힘든 일일까? 아래 그림을 통해 질문을 확장해 본다.



당신은 위 두 점의 그림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자유로운 붓 터치 속에 어떤 예술적인 기운을 느끼는가? 위 두 그림을 포함한 총 3점의 그림이 영국 경매소에서 2천200만 원에 거래되었다. 그림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그림을 그린 작가의 스타일은 서정적인 추상적 인상주의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이 작가의 작품 하나를 소장했고, 미로는 자신의 그림 두 점을 이 작가의 작품 한 점과 바꾸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살바돌 달리는 이 작가의 캔버스에 너무나도 매료되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림을 자세히, 그리고 깊이 관찰해 보라. 어떤가 이 그림의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는가?


그럼 이 그림의 작가는 누구일까? 이 그림의 작가는 바로, ‘콩고’라는 침팬지이다. 아마 당신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다. 유명 화가가 아니다. 이것은 그저 침팬지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이 침팬지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신, 이제 그림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처음과 같은가? 만약 바뀌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세계적인 작가 잭슨 폴락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종종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잭슨 폴락의 그림에서 진심으로 무언가를 느껴서 좋다고 하는지, 아니면 유명해서, 혹은 ‘교양 있는 그룹’에 속하고 싶어서 좋다고 하는지 궁금해한다.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캔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폴락의 그림이 2천억 원이나 하는 걸까? 사람들이 예술을 좋아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비싸기 때문일까? 유명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그림이 좋아서일까?


<예술이 궁금하다>는 예술을 둘러싼 이러한 질문들을 독자와 함께 풀어가는 책이다. <예술이 궁금하다>는 우리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정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매우 체계적이고 일목요연한 떡밥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 떡밥을 성실히 받아먹다 보면 어느새 예술의 성지를 순례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늘 정해진 답을 확인하고, 그 답을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을 관습으로 여겼던 우리들에게, <예술이 궁금하다>의 떡밥은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기존의 작법은 먼저 정답을 알려주고 그 이론을 관련 사례에 적용하면서 이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면, <예술이 궁금하다>는 문제를 먼저 주고, 독자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6개로 구성된 각 챕터마다, 앞에서는 기본 틀과 개념을 설명하고, 뒤에서는 주제와 연관된 30여 개의 질문을 한다.


질문들은 가상의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예술계에서 논했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정해진 답은 없다. 독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들을 여러 층위로 쌓고 나누는 과정을 수행한다. 질문들은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답을 수행하다 보면 저절로 예술의 본질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게 됨을 경험한다. 매우 잘 짜인 커리큘럼을 받는 느낌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작가는 일부러 어려운 용어의 사용도 자제하고, 어려운 주제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물론 책을 다 읽었다고 예술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선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예술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매우 소중한 경험임을 고백한다. 우리는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면서 ‘아하!’와 같은 어떤 통찰과 혜안을 얻게 된다. 그 기쁨과 즐거움은, 이 책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침팬지 콩고의 그림 이야기는 첫 번째 챕터에 나오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당연히 정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예술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통해 우리 스스로 사고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 이를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정답의 확신은 우리의 사고를 가둬버릴 수 있지만, 질문은 언제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예술이 궁금하다>는 말한다.


이제 예술은 우리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위안을 받기도 하고 통찰을 얻기도 한다. 예술은 무엇인지, 예술 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슨트의 설명 없이 우리는 어떤 감상평을 남길 수 있을지와 같은 질문을 함께 풀어가는 책, <예술이 궁금하다>를 권장한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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