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천문학자의 코

나는 키스하고 싶다. 고로 존재하고 싶다.

by 방방이

1546년에 태어난 티코 브라헤는 당대 매우 저명한 천문학자였다. 많은 천재들이 그러하듯 그도 동전의 양면 같은 측면이 있었다. 위대한 천문학자라는 명성 뒤에 그의 우스꽝스럽기만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566년 그는 덴마크 귀족과 수학공식에 관한 의견 충돌로 결투를 벌였다가 그만 코가 잘려 나가고 금속으로 만든 가짜 코를 평생 붙이고 다녔다. 또 다른 일화는 1601년 로젠버스 남작의 만찬회에 참석한 일이다. 그는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오줌이 '몹시' 마려웠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 끝끝내 오줌을 참다가 결국 방광염이 터져 사망한다.


비록 코가 잘리고 방광이 터져 웃음거리로 전락했지만, 그의 투쟁과 오줌 참기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만의 숭고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숭고한 행위는 사람들에게 너무 하찮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져서 좀처럼 주의를 끌지 못한다. 게다가 위인이나 영웅이 아니라면 그 이야기는 틀림없이 파리채에 깔려 죽은 파리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교실 맨 뒤에서 짝과 함께 숙제를 ‘열나게’ 베끼고 있었다. 쉬는 시간 내에 해야 했기에 우리는 예민했으며 얼굴은 약간 상기된 상태였다. 교실은 시끄러웠다. 한참을 베끼고 있는데, 우리 반 짱이 내 짝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다(여기서 짱은 공부 짱이 아닌 싸움 짱이다).


짱은 늘 교실 맨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잔다. 밤에 대체 뭘 하길래 만날 잠만 잘까. 그날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 것이다. 짝은 짱의 자리 바꿔달라는 말에 1초 정도 망설인다. 나는 알았다, 그 순간 그는 매우 복잡한 갈등 속에 있었다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순종해야 한다는 굴욕적 항복이 그 찰나에 투쟁을 하고 있었음을. 짝은 ‘싫은데’ 했다. 당위성에 손을 든 것이다. 그러나 쫄은 기색이 역력했다. 짝의 선택은 꼬붕처럼 보이기 싫어서 ‘가오'를 세우는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생각하고 한 말이라기보다 순간적으로 '싫은데'가 튀어나온 것이다.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함께 짝은 내동댕이 쳐졌다. 덕분에 내 펜이 미끄러지면서 공책에 ‘주욱’하고 선이 그어졌다. 시끄럽던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 씨발 좆같네. 네가 뭔데 자리를 바꿔 달래? 끝나고 남아, 이 씨발놈아” 나는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아차 싶었다. 짱이 짝을 때린 것이 부당해 보였을까? 아니면 숙제를 방해받아서 순간 욱했던 걸까?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화를 냈던가.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처럼 짱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쌍절곤도 없이.


내가 왜 그랬을까? 나 역시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참았어야 했다. 무조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한 친구가 "짱이 정국뽕(다른 반 짱 별명이다)이랑 싸우는 거 봤는데 걔 장난 아니던데, 너 괜찮겠어?" 하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한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저 시크한 척 오줌을 눴다.


점심시간에는 밥맛도 없었다. 긴장되고 무서웠다. 한 교시, 한 교시가 끝날 때마다 공포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내 감각은 점점 무뎌져 갔다. 그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되어 도망치고 싶었다. 아프다고 하고 조퇴할까? 부모님이 교통사고 났다고 할까? 쓰러질까? 전학 갈까? 아, 이제 어쩐단 말인가?


내 마음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은 점점 비통한 심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불안의 구렁텅이에서 또 다른 구렁텅이로 빠져만 갔다. 하나님 아버지, 부처님, 알라신이여 제발 이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1분 1초마다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신은 내가 더 많은 고통 속에 머물기를 바랐던 게 분명했다.


결국 6교시 수업 종이 울렸다. 모든 수업이 끝났다. 내 인생도 곧 끝날 것이다. 짱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끈을 동여맸다. 난 태연한 척 여전히 3색 슬리퍼를 신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앉아만 있었다. 그러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난 아팠다. 집에 가야만 했다. 짱은 혼자서 책상을 앞으로 다 밀었다. 교실 뒷공간이 넓어졌다. 날 얼마나 패려고 저 많은 공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더욱더 초조해졌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나는 짱과 마주 섰다. 애들이 우리를 뺑 둘렀다. 무서웠다. 그러나 태연해야만 했다.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야 네가 자……”


난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하지만 너랑 싸울 마음은 없으니 우리 화해하자.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릎을 꿇을까도 생각했다. 극적인 화해를 꿈꿨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교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코피가 흘러 입으로 흘러 들어왔다. 쇠 맛이 났다. 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실 바닥에 누워서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 쪽팔려'. 나는 억지스럽게 황산벌을 빼앗긴 계백의 심정과 나의 코피 사이에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런 후 호탕하게 웃어젖히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흘린 코피는 학창 시절을 통틀어, 아니 개교 이래 불의와 맞서 싸웠던 가장 숭고한 희생일지도 모른다. 난 호기롭고 싶었다. 그런데 코피를 흘리며 호기로울 수 있을까? 애처로울 뿐이다. 아니 병신 같을 뿐이다. 17세기 어느 천문학자처럼 나의 숭고함 역시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쓰러지자 반 친구들이 고맙게도 싸움짱을 말려줬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코를 새로 하기 위해 유능한 성형외과를 찾아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짝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가서 피를 닦았다. 앞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픔보다는 창피했다. 싸움은 무조건 선빵인데. 계집애처럼 말로 때우려 했다니, 한심하다.


우울한 마음으로 학교 근처 치과에 갔다. 이빨이 흔들리니 병원에는 가야 했다. 오래된 치과였다. 의자도 낡고 의료기기도 낡았다. 의사마저도 늙었다. 게다가 대머리였다. 우울했다. 왠지 의사의 앞니도 두, 세 개쯤 없을 것 같았다. "입을 벌려 보세요." 그는 건치였다. ‘아, 치과의사였지’. 의사를 포함해 모든 게 유물이었다. 마치 치과 박물관 같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은 건치와 간호사뿐이었다. 그녀는 분명 박물관을 지키는 큐레이터였으리라.


의사는 내 앞니를 대충 흔들어보더니, 이건 새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해줬다. 앞니를 새로 하려면 흔들리는 치아의 양옆에 있는 치아도 뽑아서 다시 해야 한다며 앞니 3개를 새로 해야 하는데, 금니로 할지, 은니로 할지, 도자기 치아로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금니는 강한데 비싸고 도자기 치아는 비싸기도 하지만 잘 부러진다는 설명을 하며 다짜고짜 이 중에서 고르란다. 건치를 들어내며, 그것도 아주 다정다감하게.


“네? 이빨을 뽑아야 한다고요? 그것도 3개나?”


나는 너무 놀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당장 돈이 없다고 하자, 대머리 늙은 의사는 어떤 이빨로 할지 부모님과 상의하고 다시 오란다. 아, 괜히 욱해 갖고 쳐 맞기나 하고. 이게 뭐란 말인가. 왜 내 인생은 이모양이란 말인가. 정의와 명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찌질함과 병신들만이 가득했다. 앞니를 3개나 뽑아야 하다니, 암울할 뿐이다.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금니를 드러내며 웃는 내 미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끔찍했다. 이제 난 호탕하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웃겨도 손으로 가리고 '호호호' 하고 웃어야 할 것이다. 소개팅에 나가서도 입을 가리고 말을 해야 하고, 그러면 상대방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신감 없는 남자로 생각하고 나와 교제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간혹 성격 좋은 여자를 만날 경우 괜찮으니 손을 내리고 웃으라고 할 테고, 난 마지못해 손을 내리고 웃게 되면, 여자는 100% 실망할 것이고, 그럼 난 이제 영원히 '키스'를 못할 것이다. '키스'는 삶의 희망이자 꿈이다. '나는 키스하고 싶다. 고로 존재하고 싶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난 고작 17살인데. 아직 여자랑 손도 못 잡아 봤는데, 이건 너무 가혹했다.


나는 시내로 나가, 제일 좋아 보이는 치과에 갔다.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뽀뽀'는 하고 죽어야만 했다. 'XX 메티컬 치과'에 들어섰다. 치과 박물관과는 차원이 달랐다. '메디컬'이라는 이름답게 모든 기기가 최신식이었고, 간호사 누나들이 3명이나 있는 데다가, 모두 아름다우셨다. 난 이빨 엑스레이까지 찍었다. 360도 돌아가며. 치과 박물관에서는 대머리 늙은 치과 의사가 손으로 이빨을 두세 차례 흔들어보는 검사가 다였는데, 어쩐지 희망이 느껴졌다.


의사는 젊고 똑똑해 보였다. 게다가 건치였다. 난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냥 두면 저절로 붙어요" 의사는 '쿨하게' 걱정 말란다. “네? 정말요?” 순간 난 너무 기뻤다. 의사 선생님께 뽀뽀할 뻔했다. 근데 뭐지? 그 박물관 할아버지는? 쫓아가서 따질까? 이 사기꾼, 돌팔이, 말미잘, 대머리 할방구, 지옥에나 가버려! 이 젊고 똑똑한 의사야말로 예수님, 부처님이었다. 이 치과를 지날 때마다 친구들과 합장기도를 올릴 테다. 아니 언제, 어디서나 이 치과를 향해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평생 무료 홍보 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간호사 누나들에게 앞니를 내보인 후 윙크를 하고 휘파람을 불고 싶었다. 세상은 다시 아름다워졌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빛은 다시금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모든 그림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어쩐지 흔들리는 이빨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난 배가 고팠다. 배고픔을 느끼는 게 행복했다. 난 곧장 분식집에 갔다. 그리고 호기롭게 외쳤다. “라면 하나에 김밥 곱빼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