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발은 늘 남겨두지

적을 위해서 혹은 나를 위해서

by 방방이

국민학교 5학년 어느 날 아버지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 오셨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동생과 나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나에게도 ‘비디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용돈이 생기는 족족 비디오를 빌려봤다. <첩혈쌍웅>, <지존무상>, <도신>, <강시>, 주로 홍콩 영화였다. 당시 홍콩 영화는 엄청난 인기였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홍금보, 그리고 주성치까지. 조폭들의 우정은 고귀했다. 나는 홍콩의 브로맨스에 열광했다.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서는 수십 발의 총알이 필요하고, 도박은 동료를 구할 수도 있는 정의의 사투였다. 강시야말로 최고의 호러 영화였다. 종종 강시 이마에 부적을 붙이는 놀이를 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홍콩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영웅본색>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번은 본 것 같다. 보고 또 보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봤다. 나중에는 모든 대사를 외워버릴 정도였다. 난 영웅본색에 너무나도 심취한 나머지 내 몸속에 킬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난 우리 동네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악당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악당과 싸우는 꿈은 나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였다. 주윤발은 나의 영웅이었고, 유년을 <영웅본색>과 함께 보냈다.


“마지막 한 발은 늘 남겨두지. 적을 위해서 혹은 나를 위해서.”


필통을 열면 주윤발의 대사가 적혀 있었다. 내 삶의 지침이자 교리였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주윤발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슈퍼맨임을 증명하기 위해 2층에서 떨어졌다는 어떤 아이의 괴담을 들은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난 킬러가 아니었다. 홍콩 영화를 정복한 나는 이제 다른 장르의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날도 용돈을 모아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음, 이번에는 좀 색다른 영화를 봐볼까'. 대여점은 10평 남짓 되는 그야말로 흔한 동네 비디오 가게였다. 대여점 안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안 계실 때 ‘아주머니~’하고 부르면 영락없이 그곳에서 아주머니가 나오시곤 했다. 아마 대여점과 거주 공간이 함께 있었던 것 같다.


그날도 가게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안 계셨다. 아마도 안에서 집안일을 하고 계셨으리라 짐작하고, 나는 비디오를 골랐다. 언제나처럼 어떤 비디오를 볼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들었다 놨다를 수백 번 했다. 이걸 볼 지 저걸 볼 지, 오랜 고민 끝에 <에이리언>이라는 영화를 빌리기로 결정했다. 당시 <에이리언>은 러닝 타임이 길어서 비디오테이프가 상, 하 2개로 나뉘어 있었다. 돈이 모자라 우선 ‘상’만 빌리기로 했다. 당시 왜 <에이리언>을 보려 했는지는 모른다. 어린 마음에 홍콩 영화를 벗어나 외계인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끌렸던 것 같다.


난 대여료를 지불하기 위해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줌마”, “아줌마 안 계세요?”. 아주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비디오 가게 안쪽 문을 향해 아줌마를 수없이 불렀다. 조용했다. 대체 아주머니는 어딜 가신 걸까? 주무시나? 무려 20분 넘게 아줌마를 부르고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 생각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자라더니 머릿속, 아니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훔치자.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밖을 봤다.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집까지 뛰어가면 불과 1분. 완전범죄가 가능해 보였다. 난 마지막으로 큰소리로 아줌마를 불렀다. 내 심장소리를 제외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10초가 지났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냅다 집으로 달렸다.


칼 루이스보다 빨랐다. 뭘 훔친 사람의 달리기는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걸 알았다. 정말 빛의 속도였다. 집에도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진정되지가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겠지’. 우선 비디오테이프를 책상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서랍을 여는 데 손이 다 떨렸다.


난 며칠을 불안에 떨었다. 후회도 했다. 내가 왜 그랬지? 다시 갖다 놓을까?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고, 아버지가 심각하게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혹시 알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눈치를 보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 지났다. 조금씩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무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젠 비디오를 꺼내 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됐다.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비디오를 봤다.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20세기를 주름잡은 위대한 여전사 '시고니 위버'였다. 영화는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재밌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외계인. 심장이 쪼그라드는 서스펜스. 외계인 영화지만 공포 영화처럼 조이는 맛이 있었다. 저절로 영화에 몰입됐다.


난 다음 편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도 다시 그 비디오 가게에 가서 ‘에이리언’ 하편을 빌렸다. 내가 훔친 걸 아무도 모르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에이리언>은 내 인생 영화가 됐다. 시고니 위버는 <매드 맥스>의 ‘퓨리오사’가 나타나기까지 내 인생 최고의 여전사로 자리매김했다. 난 시고니 위버를 존경했다. 너무 멋있었다. 나는 ‘시고니 위버’처럼 당당하게 <에이리언> 하를 반납했다. 상은 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채로.


며칠 후, 엄마가 “너 비디오 반납 안 했다며? 비디오 가게 아줌마가 반납하래” 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지? 난 순간 “나 비디오 안 빌렸는데” 했다. 걸린 걸까? 난 비디오를 갖고 있지 않아야만 했다. 난 빌린 적이 없으니까. 만약 내가 비디오를 갖고 있다면 그건 훔친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일단 증거를 없애야 했다. 그날 밤 뒷동산 작은 굴에 비디오를 숨겼다. 초조했다.


다음날 엄마는 또 말씀하신다. 아줌마가 비디오 반납하란다고, 비디오 어딨냐고, 혹시 잃어버린 거냐고. 나는 사색이 돼서 우물쭈물했다. 부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적은 없었다. 마침내 엄마는 화를 내셨다. “빨리 찾아와 새끼야” 난 일단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비디오 가게 아줌마는 내가 비디오를 훔친 게 아니라 <에이리언> 하를 빌릴 때 상도 빌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냥 다시 비디오를 반납하기만 하면 이 사건은 끝나는 거다. 나의 도둑질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 비디오를 돌려주자. 그럼 말끔히 끝난다. 난 다시 뒷동산에 갔다. 비디오를 숨겨둔 굴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맙소사, 비디오가 없어졌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죽고 싶었다. 이제 어쩌지. 정말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자고 비디오를 이곳에 두었단 말인가? 그냥 서랍에 두었으면 아무 일도 없이 끝났을 텐데. 사색이 됐다. 하늘이 노랗고 나는 살 가치가 없어졌다. 한심 그 자체였다. 뱃속에서 에이리언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제 나의 인생은 산산이 부서졌다. 한껏 웅크리고 앉아 불행 속에 휩싸였다.


오랜 고민과 방황 끝에 일단 자살하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 집에 갔다.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았다. “쌍노무 새끼야, 나가 죽어”라는 욕도 들은 것 같다. 다음날 엄마는 아줌마에게 비디오 값을 지불했다. 3~4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냐는 말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사건은 '도둑질'이 아닌 '잃어버린'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게 위안이 됐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다. 죗값을 모두 치른 뒤의 이불속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었다. 소설 <죄와 벌>을 읽지 않았만, 왠지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속죄의 평온함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다시 일상을 찾았지만, 목에 뭔가 걸린 듯 말끔하지가 않았다. 비디오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그 비디오 가게에는 다시는 가지 않았다. 비디오 보는 일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심부름으로 비디오를 빌려야 할 때는 옆동네 대여점에 갔다.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이 사건은 내 인생에 치욕으로 남아버렸다. 양심에 '카인의 표식'을 새긴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차라리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다. 아, 마지막 한 발은 남겨뒀어야 했다. 적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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