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페럿은 사랑을 못하면 죽는다
암컷 페럿(족제비과에 속하는 동물)은 사랑을 해야 할 때 사랑을 못 하면 병들어 죽는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낭만적인 동물도 있다. 나 역시 페럿 못지않게 낭만적인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랑에 빠졌었다. 지금도 그녀가 또렷이 기억난다. 매끈하고 약간 사각진 얼굴이 아름다웠다. 보고 싶은 나의 첫사랑,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녀의 이름은 바로, '재믹스'이다. ‘재믹스’는 TV에 연결해서 팩을 끼워하는 오락기이다. 남극 대모험, 양배추 인형, 올림픽, 갤러그, 쿵후, 요술 나무 등은 당시 최고의 인기 게임이었다.
내가 도끼병이 아니라면 나를 좋아하는 듯한 분위기를 ‘폴폴’ 풍기던 짝꿍이 어느 날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짝꿍의 집에서 그녀(재믹스)를 처음 만났다. 짝꿍이 먼저 "해볼래?" 하며 '재믹스'를 틀어줬다. 그녀는 과일도 갖다 주고 말도 걸었지만 , “이제 그만 집에 가”라는 짝꿍의 새침한 말을 들을 때까지 나는 계속 ‘재믹스’만 했다. 집에 갈 때는 조이스틱을 들고 갈 뻔했다.
"조이스틱 놓고 가!"
그날 밤 잠을 자는 데 양배추 인형이 천장에 떠 다녔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져야만 했다. 안 그러면 난 페럿처럼 병들어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돈이다.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니?”
원빈에게도, 나에게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초등학생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엄마는 절대 사주실 분이 아니다. '졸라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차피 욕만 먹을 게 뻔했다.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바로 ‘신문배달’이다. 동네 신문사에 가서 “아르바이트하러 왔는데요” 했다. 사장님처럼 보이는 분이 몇 초 간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의 첫 번째 면접이었다. 정말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의지에 불타올라 “네, 할 수 있어요.” 했다. 해야만 했다. 나의 호소력에 감동한 듯한 사장님은 “내일 새벽 4시 30분까지 나와” 하셨다. 취업에 성공했다.
아파트 4개 동을 배정받았다. 주택가에 배달하는 것보다 아파트가 훨씬 쉽다. 초등학생에 대한 사장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일단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그건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고난도 나의 사랑을 꺾지는 못했다.
신문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날 배달할 신문 500부를 세면서 신문에 광고지를 끼워 넣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난 열심히 했지만, 손이 느리고 서툴렀다. 한참을 작업하다 다른 아저씨들이 작업하는 걸 봤다. '우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손이 안 보였다. 이건 뭐 거의 ‘신의 경지’였다.
산 사람에게는 해가 산에서 뜨고 지고, 섬사람에게는 바다에서 뜨고 진다는 말이 있다. 어느 경제학자가 말한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새벽 4시에 신문을 세는 바로 이분들의 손이었다. 내게 그것은 진리가 됐다.
반면에 나는 느렸다. 그리고 매우 서툴렀다. 세상은 1분 1초 촉각을 다투며 달리는데 나만 기어가는 것 같았다.
신문 500부를 일명 ‘구르마’에 싣는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가서 신문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로, 맨 위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신문을 돌린다. 손이 시리지만 장갑을 끼지 못한다. 장갑을 끼면 신문 집기가 영 불편하기 때문이다.
신문을 돌리다 보면 문에 ‘OO일보 거절’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뭔가 마음에 걸리지만 신문사에서 가르쳐 준 대로 조용히 신문을 놓고 지나간다.
겨울 새벽은 유난히 짙고 어둡다. 그리고 차갑고 조용하다. 신문을 돌릴 때면 내 숨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신문 놓는 소리만 들린다. ‘하아, 하아, 저벅, 저벅, 탁!’ 어두운 복도를 숨 가쁘게 달리다 보면, 가끔 복도 저쪽 끝에서 사람이 나온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깨가 움찔하고 머리가 쭈삣 섰다. 우유 배달 아줌마다. 매일 만나는 아줌마인데도 매일 놀랐다.
며칠 지나 아줌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니? 대단하다, 장하다 등의 칭찬을 했던 것 같다. 아줌마는 그저 순간경을 읊었을 뿐이겠지만 나는 아줌마와 동지애 같은 걸 느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우유와 신문을 집 앞에 놓는 일은 왠지 마법사의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문을 다 돌리면 6시 30분 정도가 된다. ‘구르마’를 반납하고, “신문 다 돌렸습니다.” 하고 퇴근한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속으로 ‘쏘옥’하고 들어간다. ‘아, 따뜻하다’ 미소가 절로 난다.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한다.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 몸과 마음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스르르’ 잠이 든다.
이후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결국 ‘재믹스’를 샀다. ‘재믹스’를 정말 신나게 했다. 눈 뜨고 하고 밥 먹고 하고 학교 다녀와서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행복했던 순간은 '재믹스'를 할 때가 아니었다. 2시간을 추위에 덜덜 떨다가 이불속에 들어가서, '아, 따뜻하다' 했던 순간. 그 순간이 좋았다. 고된 노동 뒤의 행복, 그것은 육체적이고 직관적이고 단순하고 너무나 말초적인 순간이었지만, 그때 느낀 행복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건 오직 나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시기와 질투가 없었다. 비교와 배척도 없었다. 그저 공감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행복은 그저 ‘이불속 행복’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행복이 합격, 취업, 성공이 아니어서,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스스로 또는 누군가에게 자괴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불속 행복'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