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아침에 일어나니 6시 38분이었다. 깜짝 놀랐다. 맙소사. 옷 입고, 짐 챙기고, 신발 신고, 콜택시 부르고. 모든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3분 만에 해치웠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는 것은 도둑질하고 달리는 것만큼이나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칼 루이스보다는 당연히 빠르고, 우사인 볼트보다도 빨랐다. 분명히.
택시를 타자마자, “김포 공항이요. 늦었거든요. 빨리 가주세요”했다. 비행기 시간은 7시 20분이다. 기사 아저씨는 고맙게도 나의 목숨을 담보로 전력 질주해주었다. '영화 <택시>의 감독이 아저씨가 운전하는 걸 봤어야 했는데’ 하고 생각했다.
택시 안에서 알람을 확인하니, 오전이 아닌 오후 5시 30분에 맞춰져 있었다. 참 나답다는 생각을 했다. 어쩜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결같을까. 공항에 정확히 7시 15분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모바일 티켓팅을 해서 티켓팅 없이 바로 검색대로 뛰었다. 빛의 속도로.
다행히 비행기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나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좌석에 앉아 생각하니 조마조마했던 아침이 재밌게 느껴져 웃음이 났다. 입냄새도 났다. 이도 못 닦았으니. 일어난 지 1시간 만에 비행기에 앉아 있는 게 신기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눈곱을 뗐다. 이런 것도 여행의 맛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품을 하고 잠을 잤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엉망이 됐던 삶을, 그리고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도심을 떠나 쉬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해, 차를 렌트 하고 아침을 먹었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스러운 걸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몸국'을 먹었다. '몸국'은 돼지고기에 모자반을 갈아 넣은 국이다. 정말 맛있었다. 반찬으로는 '우뭇가사리'가 나왔는데, 제주도 특산물이란다. '묵무침'하고 비슷하다. 쫄깃하면서 은근히 고소했다.
숙소는 남쪽 바다 근처, 남원리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마을 골목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문득 잘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파란색 지붕이 나왔다. 방은 2층이었다. 욕실이 딸린 작은 침실이 전부였지만 아담하고 깨끗했다. 마음에 들었다.
커튼을 열자 바로 앞에 나무가 보였다. 초여름의 나무가 싱그러운 초록을 내뿜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고, 나무가 바람에 살랑 거렸다. 평화로워 보였다. 난 어쩐지 그대로 나무에 빠져버렸다. 짐을 풀고 창가에 누워 하염없이 나무를 봤다. 책을 보다 나무를 보고, 졸다가도 나무를 봤다. 산책하고 와서 나무를 보고, 밥을 먹고 와서 나무를 봤다.
도시는 빠르다. 차들은 달리고, 사람들은 경쟁한다. 그러나 나무는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등지고 이렇게 영원한 나무를 보는 시간이 좋았다. 나무의 침묵을 해석하는 일만큼 좋은 게 있을까?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를 보고 있자니, 윤동주의 ‘나무’라는 시가 떠올랐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게 상식인데, 동주의 나무는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분다고 한다. 뭔가 주체적이다. 20살의 동주가 바라본 나무의 모습이다.
그런 나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평화로워진다.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동주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무와 함께 했을까? 나무를 보고 이런 시를 썼다니. 동주는 분명 결이 고운 사람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쩐지 동주라는 청년이 보고 싶어졌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와 친구가 되어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저녁 무렵에는 월정리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얀 모레가 깔린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발을 딛자, 모래가 발을 머금었다. 모래에 발을 놓는 느낌이 좋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감촉, 파스텔 톤이었다.
초여름의 저녁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파란색을 머금었다. 투명하다가 베이비블루였고, 머리인블루였다가 마침내 코발트블루가 노을 진 하늘에 맞닿고 있었다.
가족, 친구들, 연인들이 산책을 하고, 물놀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백구(하얀 강아지)도 신나서 물놀이를 했다. 정말로 제주도에서는 백구가 물놀이를 하더라.
평화란 이런 것일까?
해변에 앉아 말없이 그러한 풍경을 바라봤다. 파도 소리가 추억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고요했다. 평화가 내 안에 깃들고, 엷은 미소마저 떠올랐다.
그런 바다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바닷가 저쪽 빨간 부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무언가 올라왔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3~5분 간격으로 반복한다. 해녀였다. 해녀는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었다. 한참을 보았다. 어쩐지 신비로워 보였다. 노동은 언제나 경이롭다고 생각했지만, 초여름 저녁 월정리 해변에서 바라보는 해녀의 물질하는 모습을 보니, 신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물질하는 동안에도 바다는 여전히 밀물과 썰물을 반복했다. 해변가의 사람들도 여전히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해는 저물어 갔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러한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그저 취해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했다. 흩날리는 옷자락과 머리카락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 그리웠나 보다. 인생은 어쩌면 해녀가 사라진 저 어디쯤의 풍경과, 해녀가 물 위에 나온 그 어디쯤의 시간 속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참 있다가 해녀가 밖으로 나왔다. ‘와, 대단하다!’ 나는 놀랐다. 해녀의 체구보다 2배는 커 보이는 바구니 두 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해녀는 해변에 걸터앉아 수경을 벗었다. 할머니였다. 70세는 되어 보였다. ‘와, 저 연세에, 대단하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할머니가 채취한 건 ‘우뭇가사리’였다. 아침에 먹었던 반찬이다. 할머니는 바위에 걸터 앉으셨다. 쉬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처럼 바다를 보고 계셨다.
풍경과 시간들이 마치 정지된 것만 같았다. 정지된 풍경과 시간은 그림이 되었고, 그림 안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지게를 지고 할머니에게로 천천히 걸어오셨다. 기다림의 애틋함도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걸음 속에도 성급함은 없었다. 그저 100년을 기다리고 1000년을 걸어온 듯. 밀물 다음에는 썰물이 있듯이, 해가 뜨면 달이 뜨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듯이 자연의 일부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기다리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걸어오셨다.
이번에는 ‘우뭇가사리’ 바구니 2개가 지게에 올려졌다. 물이 다 빠지지 않은 ‘우뭇가사리’는 분명 무거워 보였다. 아무 말없이 지게를 지고 할아버지는 힘겹게 일어나서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그 뒤를 할머니가 따랐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삶 자체였다.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 동주의 ‘나무’를 봤을 때처럼, 나는 그분들과 함께 걷고 싶었다. 잠시나마 마음으로 함께 걸었다.
내가 좇던 삶이 모두 헛돼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물론 작업장이나 집으로 가시는 것이겠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목적에 얽매여 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며 살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삶 자체였다.
머리를 감고, 지하철을 타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 그 일상이 삶이다. 그 일상을 동주의 나무처럼, 할머니의 물질처럼 할아버지의 지게질처럼, 그리고 함께 걷는 저 풍경처럼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풍경 속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바보처럼 눈물이 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노을 너머로 끝없이 사라져 갔다.
다음날 아침 빗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었다. 나무가 들려주는 빗소리였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