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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Dec 01. 2015

지니의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기
- 프랑스길

지니의 Camino de Santiago (까미노 데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이야기 

- 프랑스길 편 - 


시작하기에 앞서...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성 야고보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다.

여러 갈래길 가운데 가장 알려져 있고 흔히 거치는 길로 '프랑스 길'이 있는데 절대 만만한 코스가 아니며 프랑스 남부 국경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 여정. 하루에 20여 킬로미터씩 한 달을 꼬박 걸어야 한다. 연금술사의 파올로 코엘료가 걸어 더욱 유명해졌다. 2010년 27만명이 방문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ko.wikipedia.org/wiki/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_순례길 -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길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은 제 여행 동반자인 지니님이 혈혈단신으로 지구 반대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여행을 한 이야기입니다. 

☆ 경로 : 까미노 프랑스길 (Camino Francis, Saint Jean Pied de Port ~ Santiago de Compostela)

☆ 거리 및 소요시간 : 약 900km, 총 11일


☆ 기종 : 첼로 메르디안 105 흰색 (애칭 : 흰둥이)

※ 가져간 짐 

  - 자전거, 싯포 거치대, 짐받이, 튜브 여유분 2개, 각종 공구 및 펑크패치, 헬멧, 고글, 장갑, 라이트

  - (착용) 기능성 민소매&얇은 긴팔티, 이너 패드 팬츠&기능성  칠부바지, 양말 1벌, 운동화 1켤레

  - (소지) 라이너, 반바지, 긴팔티, 바람막이, 속옷 1벌, 선크림, 충전기, 휴지, 수건, 세면도구, 슬리퍼

  - (기타) 여권, 휴대폰, 카드 및 현금 500유로, 파워젤 2개, 식염포도당 1통, 치즈육포 2개, 시건장치



자전거 3년 차, 자전거 실력은 겨우 초보를 벗어나 초급을 달리는 만 29세 지니입니다. 

저는 본디 포스팅을 하지 않지만, 까미노 자전거 순례 전 자료 조사를 하면서 자전거 순례자와 관련하여 심각한 정보의 부재를 느낀 후 저의 경험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13년 9월 12일 (목) -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


인천공항에서 앞 뒷바퀴, 싯포스트, 드롭바 분리하여 박스에 자전거 포장하여 비행기에 싣고 출발


09:25  인천-파리 대한항공 직항

14:20  파리 드골공항 도착

18:25  파리-비아리츠 이지젯 직항

19:55  프랑스 비아리츠 공항 도착


프랑스 비아리츠 공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비아리츠~바욘 약 7km 라이딩 후 ibis 호텔에 숙박하였다.  

공항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주욱 빨간색 도로 타고 표지판 따라 달리다가 강 건너서 바욘(Bayonne)의 ibis 호텔로 ㄱㄱ!!

찻길 옆에 좁긴 하지만 자전거 도로 있어서 어렵지 않게 도착하였다. 


Bayonne를 흐르는 강 근처의 야경

원래는 마지막 기차라도 타고 생장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공항에서 자전거도 조립해야 하고 국내선 비행기도 살짝 연착되는 바람에 급하게 1박하기로 결정했다.

호텔 체크인 후, 밤 10시에 늦은 저녁으로 먹은 꽃등심 스테이크와 맥주

무려 100유로 가까이 육박하지만 이비스에서 가장 싼 방... 비싸지만 역도 가깝고 깔끔하고... 당분간 이런 좋은 숙소에서 잘 일 없겠지ㅠ



2013년 9월 13일 (금) - 생장에서 산티아고 자전거 여행 시작 


07:45  바욘~생장 기차

10:00  생장에서 순례 시작!!


걷는 순례자들이 가는 까미노길로 1시간 즈음 가다가 중간에 차도(N-135)로 내려와서 N-135를 쭉 따라 갔다. 

론세스바예스, 주비리 등을 거쳐서 팜플로나(Pamplona) 입구 Villava 알베르게에서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조식을 먹고,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바욘 기차역으로 가서 7시 45분 첫차 표를 티켓팅 했다. 기차에 자전거 칸이 있는 덕분에 자전거를 싣고 이동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조촐한 2량 열차에 승객은 6-7명쯤 됐으며, 모두 큰 배낭과 스틱을 지닌 것으로 봐서는 전부 까미노 여행자들인  듯하다. 


생장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 지도가 앞에 있지만 잘 모르겠으니 그저 사람들을 따라갔다.

자전거로 가는지라 혹여나 걷는 사람들 보다 앞서갈까 봐 아주 천천히 페달링..ㅋㅋ


여길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순례자 사무소에서 크레덴셜 발급받고, 간단한 설명도 듣고, 물도 보충한 후 드디어 출발!!

이미 이르지 않은 시각인 오전 10시, 생장에서의 출발은 끌바로 한다. 예쁜 돌바닥이지만 자전거 타기에는 편하지 않아서... 


순례자 사무소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주욱 내려가니 머지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길게 돌아가지만 완만하면서도 안전한 발카로스 루트 선택한다. 도보 순례자들이 많이 가는 나폴레옹 루트는 자전거로는 끌바 없이 가기 힘든 곳으로 알고 있다.


자 이제 레알 시작이야~ 발카로스 루트로 궈궈씽!! 순례자 사무소에서 호스피탈레로가 일러준 길을 잘 찾아내서 갔다. 차도에는 큰 차가 많고 위험하니 꼭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오메.. 이게 레알 피레네구나..  푸르디푸르다.. 

피레네 입구에서부터 감탄한다.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스팔트가 99%는 깔려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산길에 아스팔트만 깔아놓은 것일 뿐.. 오르막이 대박 심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결국 끌바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걸어가는 사람들 무리를 세 번을 만났다. 그것도 똑같은 무리를.... 아, 창피해..

달리다가 아웃렛 같은 곳이 나오길래 언제 식당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들어가서 대충 식사를 해결하고 차도로 내려갔다.


차도란 바로 이런 길~ 드디어 납득할만한 경사의 업힐이 등장하였도다. 길도 깨끗하고 좋다.

10km를 한 시간 동안 달리고 휴식, 업힐 중간이라서 절대 앉아서 쉬지 않았다. 더 힘들어질까 봐..

그리고 다음 10km를 한 시간 동안 달리니 피레네 정상이 나타났다. 

총 30km 정도 올라온 것 같고 처음 한 시간 삽질의 시간이 있었지만 생각보단 어렵지 않았다.


피레네 인증샷~ 발카로스 루트라서 고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존이 미리 챙겨준 치즈육포 먹으면서 산책~하다가 추워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내가 올라온 길. 난 별로 좋은 찍사는 아니어서 경치는 직접 가서 구경들 하시길..

이곳에서 영국인 여행자인 앤드류를 만났다.  

1년 4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는 중인데 까미노는 그냥 easy!!라고 했다. 너한테나 쉽겠지..;; 


Pamplona에 거의 도착했을 때까지도 나는 사실 제대로 된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에 저장된 작은 안내지도 하나만으로 추측하고 묻고 물어서 Villava라는 마을을 찾아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Pamplona 중심은 아니고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시설이 매우 깨끗한 알베르게에 등록을 한 후, 같이 딸려있는 레스토랑이 오후 7시에 오픈을 한다기에 근처의 성당 앞 광장에서 주스를 마시며 당보충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7시에 레스토랑에서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 있었다. 

프랑스, 미국, 스페인, 한국에서 온 네 명의 순례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곤 곧 일상이 될, 샤워-빨래-코고는 소리 들으며 잠들기.. 가 이어졌다. 

취침 전에 오프라인 지도 앱(Maps with me)을 다운로드해두었다. 



2013년 9월 13일 (토) 


Pamplona 중심가까지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도시를 나올 때 A-12를 타 버렸다. 도로변에 갓길이 있었는데 이 길이 고속도로인데다가 자전거가 통행금지인 줄은 굉장히 나중에 알았다. 

고속도로를 탄 후에도 갈피를 못 잡아서 1시간 정도 헤매다가 방향을 겨우 잡았고, 이대로 계속 가다간 터널이 있는 것 같아서 중간에 Astrain이라는 마을로 우회하려고 빠졌다. 나중에 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앞길에 터널 같은 건 없었던 것 같다.


Astrain으로 빠져나온 이 길은 각 지도에 N-111 또는 N-1110으로 표기되어 있고, 실제 가보니 N-1110이었다. 어차피 같은 길이라 상관은 없을 듯..

N-1110으로 빠지니 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정말 한적하면서 공기도 좋은 왕복 2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드물지만 자전거 순례자들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 혼자 다른 길을 달리고 있었구먼..


지도에서는 A-12로 보여지지만, 실제로 N-1110이 고속도로와 매우 근접해있는 작은 도로라서 지도를 확대해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일단 N-1110을 계속 따라가니 Puente la Reina, Estella, Los Arcos, Viana 등의 마을을 지난다.  Logrono 직전에 이 N-1110은 N-111 도로로 합쳐지며 Logrono로 입성할 수 있었다.


A-12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N-1110으로 빠진 후 페르돈 언덕 가는 길

아침이고 일교차가 심해서 안개가 많이 끼었다. 저기 앞에 자전거는 쉬고 있는 날 따고 지나가는 동네 로드 아저씨...

피레네를 넘으면 언덕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도 500미터 이상 고지는 되었다. 레알 페르돈 꼭대기까지 가면 600미터 이상 되는 듯 하지만, 타이어도 얇은데다가 초반에 1시간이나 길을 잃은 터라 그저 직진한다.


오늘의 풍경은 대략 이러하다... 멋있으면서도 황무지 같다... 

그나저나 이놈의 오토바이는 어딜 가도 문제임,, 위험하고 시끄럽고, 어휴~


끊임없는 업다운을 계속해서 가고 있는데, 스위스에서 온 앤젤로가 말을 걸어왔다. 

"야, 니 자전거 되게 웃기다!!ㅋㅋㅋ 사진 좀 찍어도 되냐?  네 거 대박!!ㅋㅋ 근데 니 짐은 더 대박!! 완전 쪼금 가지고 다니네, 그게 니 짐 전부야?"

"ㅇㅇ 이게 다임, 넌 패니어 앞뒤로 쩌네? 너 어디가냐? 나 로그로뇨 가는데, 너 거기 가면 나랑 같이 가자~"

"ㅇㅇ 나 로그로뇨 감. 원래 난 엠티비라서 까미노길로 가는데, 왠 신기한 자전거 있어서 도로로 내려와 봤음. 같이 가자~ 근데 유럽에 있는 미니벨로는 접이식만 있지, 이런 사이클 식은 없어. 하튼 신기 크리..ㅋㅋ"

"촌스럽긴~ㅋㅋ 내꺼 대박 이뿌지 않음?ㅎㅎ 하튼 나 알베르게 찾아갈껀데, 같이 가등가~ 궈궈씽!!"


어렵사리 알베르게를 잡고, 샤워-빨래를 한 후에 앤젤로와 같이 로그로뇨(Logrono) 중심가로 나왔다.

스페인어와 영어과 포함된 4개 국어를 하는 앤젤로 덕분에 알베르게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레스토랑도 맛있다는 곳으로 물어물어 찾아갔다.

로그로뇨 근처에는 굉장히 큰 와이너리가 있으므로 로그로뇨는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 중 하나라고 앤젤로가 말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오징어, 페퍼로니, 샐러드, 로제 와인을 시켜서 같이 흡입했다. 이렇게 전부가 단돈 30유로!! 


밥을 다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쥬피토도 먹다가.. 밤 10시에 알베르게 닫기 때문에 짧은 불토를 뒤로 하고 후다닥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뭐 일상생활 이야기들이라서 패스~



2013년 9월 15일 (일) 

 

Logrono 좌측의 노란 길 "Avenida de Burgos"를 지나 LO-20으로 들어갔다. LO-20은 고속도로로 추정되며 중간에 "Autovia" 표지판이 수시로 설정되었다가 해제되는 것으로 보아서 자전거 통행금지구역인 듯 하나;; 일요일 아침 일찍인데다가 갓길이 넓은 탓에 조금 달렸다.


이대로 계속 고속도로를 탈 수는 없어서 지도를 보니 N-120 도로가 있다. Navarrete로 빠지면서 N-120이 시작되지만 곧 다시 고속도로 A-12와 잠시 합류가 된다. 이제는 고속도로는 무조건 타지 않기로 결정을 했으므로 Sotes라는 마을이 있는 길로 우회했더니 중간까지는 계속 오르막이고 그 이후는 내리막이었다.


Sotes 마을을 지나 메인도로로 진입하면 N-120이 다시 시작된다. Santo Domingo de la Calzada를 지나 계속해서 N-120을 달렸다.


N-120도로만 따라가면 Belorado를 지나 Villafranca Montes De Oca에 도착할 수 있다. 긴 오르막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점이다. 


Villafranca Montes De Oca의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 앞에서 남은 치즈육포를 뜯으며 호스피탈레로를 기다렸다. 

내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는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엄청 쿨하고 재밌다.ㅋㅋ 


"야, 니 다리 진짜 심각하다. 태닝 라인이 완전 쩌넨..ㄷㄷ"

(칠부바지를 입은 덕에 무릎 아랫부분 종아리에 선이 흑백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야, 니 친구는 귀엽다는데 넌 진짜 왜 그러냐? 진짜 웃긴다.."

"음.. 그게 말이야.. 심각하리만큼 귀여워...ㅋㅋㅋㅋ"


이곳에서 순례길을 여행하는 한국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났는데, 직접 요리하신 육개장과 쌀밥과 수프를 저녁으로 얻어먹었다. 그리고 장을 보면서 같이 산 와인도 한잔 했다.

와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날 무지무지 잘 잤다. 방에 코 고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아침에 모든 순례자들이 짐 챙겨 떠날 때까지 나는 잠깐도 깨지 않았다. 



2013년 9월 16일 (월)


Villafranca Montes De Oca에서 계속해서 N-120을 타면 Burgos 시내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다.


알베르게에서 전날 사다 놓았던 계란과 요거트, 과일 등을 아침으로 먹었다. 부르고스를 지나면 한동안 차도가 계속될 것 같아서 중간에 또 간단하게나마 샌드위치와 레드불을 먹었다. 

그리고, 부르고스를 나서는 찰나.. 이상하게 조금만 큰 도시만 와도 길을 잃어버리는 나의 멍청함 때문에 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서 같은 길을 세 번 정도 빙글빙글 돌았던 것 같다. 이미 같은 길을 계속해서 달리기에 이골이 났던 나는 고속도로인 A-231을 그냥 타고 가다가 다른 차도로 빠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내가 길치였던 건지 표지판이 이상했던 건지 이건 A-231도 아니고 다른 고속도로로 내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A-62였던 것 같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설정되었다가 해제되었다가.. 갓길은 넓게 있었지만, 큰 화물트럭들이 다니고 난리가 아니었다. 나보고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듯 빵빵거리기도 하고..ㅠㅠ 

1시간 정도를 그렇게 달리다가 마을이 나오길래 일단 마을로 빠졌다. 그리고 지방도를 통해서 이어지는 N-120을 찾아냈는데, 도통 마을길이 갈래갈래 되어있어서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주민들 다 잡고 물어봤는데도 잘 몰라해서;; 결국 혼자서 찾다가는 실패하고.. 다시 고속도로ㅠㅠ

이 고속도로 타고 계속 가면 나는 마드리드로 간다..흐어엉ㅠㅠ 

그래서 그 고속도로를 반대로 타고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되돌아가면 A-231이든 N-120이든 뭐든 나오겠지~ 하면서..

결국 나는 Burgos까지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마을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고속도로와 엉뚱한 작은 마을에서 헤매었던 것은 총 3시간.. 아까 먹은 샌드위치가 다 꺼졌다;;  

다시 차근차근 지도를 보며 근처 마을 주민들에게(영어 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물어물어, 시내에서 N-120으로 바로 이어지는 도로를 찾아냈다. 

Burgos 성당 근처에 강이 흐르는데, 이 강과 성당을 오른쪽으로 두고 앞으로 쭈욱 가면 그 도로가 N-120과 합쳐진다.


N-120을 계속 타고 가면 다음 알베르게까지 가는 게 너무 멀 것 같아서 까미노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빠지기로 했다. N-120으로 가다가 오른쪽의 Sasamon이 나오기 전에 왼쪽에 Olmillos de Sasamon이라는 작은 마을로 빠질 수 있다. 이 길이 Bu-P-4041 도로이며 남쪽으로 나있다.

  

Olmillos de Sasamon 마을에서 이 도로로 빠지기 위해서 주유소에 길을 물어봤는데, 잘 알려주었지만 길이 또 여러 갈래라서 조금 헷갈렸다. 차 두 대가 지나가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고 도로표식이 없는 작은 도로였지만 차가 거의 없었기에 이제 정말 까미노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Villabdiego를 지나서 나오는 다음 갈림길에서 우회전을 해야 한다. 이 도로가 BU-P-4013으로 Castrojeriz로 가는 방향이며, 이 길을 따라 가면 Castellanos de Castro를 지나 Hontanas에 도착할 수 있다.  

이 도로 또한 메세타 지역 한가운데에 있어 정말 멋진 풍경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오전 무렵에 길을 잃었던 터라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있어서 이대로 가도 마을이 나올까 걱정하면서 달렸다.   


결국에는 오늘의 최소 목표로 잡았던 Hontanas에서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침대가 꽤 많아서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나를 위한 자리가 없었다.. "Completo!!"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Full이라는 스페인어인가 보다. 

나도 질 수 없지!! "Please!!" 고속도로 포함해서 3시간이나 길을 잃었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고, 더 간다고 해도 자리가 있는지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정했다. 마침내 호스피탈레로는 2층의 방으로 끌고 가더니 바닥을 가리켰고 나는 당연히 "Si!!"를 외쳤다.

 

샤워-빨래-와이파이 콤보 후에 같은 알베르게에서 한국사람 4명을 만났는데, 고맙게도 본인들이 요리하는 파스타, 오믈렛, 레드와인을 나눠주셔서 저녁을 해결했다. 한 명은 바닥에서 자는 나를 위해 파스와 베개도 줬는데 표현은 못했지만 진짜 진짜 고마웠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해준 얇고 짧은 매트에도 초긍정의 힘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사진을 원래도 많이 찍지는 않는데, 이날은 가뜩이나 길 잃어서 아예 한 장도 없다.



2013년 9월 17일 (화)


어제 달리던 BU-P-4013을 이어서 가면 Castrojeriz가 나오고, 여기서 BU-400을 타고 다시 올라가야지만 N-120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만나는 지점의 마을은 Melgar de Fernamental이다.


Melgar de Fernamental에서 N-120을 타고 가다 보면 N-611을 만나면서 잠깐 N-120이 끊기는데, N-120이 N-611과 같이 표지판에 표시되어 있으니 당황할 필요가 없다. 표시가 되지 않아도 N-611의 Osorno La Mayor 방향으로 가면 문제없이 곧 N-120으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N-120을 타면 Carrion de los Condes와 Sahagun 등의 마을을 지난다.


N-120을 타고 Calzada del Coto를 지나서 A-231에 근접해 있는 작은 도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괜히 또 고속도로를 타게 될까 봐 N-120을 조금 더 타고 내려오다가 갈림길에서 우회전해서 LE-6701을 타고 Bercianos del Real Camino에 도착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알베르게 앞에 있는 바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왔는데, 나의 침낭 라이너가 없어졌다..ㅠㅠ 이리저리 다 뒤져보고 결국은 못 찾아서 짐을 챙겨서 얼른 나섰다. 

다행히 Hontanas 이후 잠시 동안은 도보 순례자와 코스가 거의 비슷해서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가며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다 물어봤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훔쳐간 건지, 아니면 누가 두고 간 걸로 착각해서 챙겨간 건지.. 이유는 몰랐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네덜란드 부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라이너 잃어버렸어? 나 쓰던 거 하나 있는데, 괜찮으면 이거 너 줄까?"

"헐, 대박.. 주면 진짜 고마울 것 같아. 나 안 그래도 침낭 없이 라이너 한 개만 쓰니까 꼭 필요하거든!!" 


그렇게 나에게 준 라이너는 세상에.. 내가 원래 쓰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모양, 재질, 색깔, 브랜드의 완. 전. 히 똑같은 것이었다!! 폭풍 감동의 쓰나미~ㅠㅠ 

"헐퀴, 이거 내가 쓰던 거랑 완전 똑같다!! 완전 고마워. 너넨 정말 천사야..ㅠㅠ"

"너 있지, 그거 알아? 까미노에는 천사가 엄청나게 많은걸~ ^-^"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가 마을이 나오면 이렇게 로모도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시고, 레드불도 마시고...


Bercianos del Real Camino 직전에  도로포장을 새로 하느라고 길이 막혀있었다. 초반에는 옆의 흙길로 끌바를 했지만, 저기 오르막을 가보니 공사구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알베르게에 곧 도착했고, 그곳에 호스피탈레로가 두 명이 있었는데 흔치 않게도 두 명 다 영어를 잘 해서 의사소통하기에 매우 매우 편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침대를 얻었다!! 내 뒤에 오는 사람들부터는 모두 바닥 신세다!! 오늘은 진짜 아침부터 행운이 가득하다. 


양쪽에 난간이 없는 2층 침대였지만 바닥보다는 훨씬 낫다는 사실을 난 어제 알았지~    


샤워-빨래 콤보 후, 저녁시간이 되기 전까지 나는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면서 다음날 갈 루트를 지도로 살펴보는 일을 하고는 했다. 그때 폴란드에서 온 피터가 같은 테이블에 조인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안녕, 니 이름 뭐야? 나도 자전거 타고 순례하는데, 아까 너 봤거든~ 그래서 여기 앉겠다고 한거야!! 너 오늘 며칠째야? 난 오늘 6일째고, 폴란드에서 이태리 레스토랑 사장인데 휴가 내고 왔어~"

"안녕~ 난 한쿡에서 온 지니라고 해. 너 나 봤어? 난 오늘 5일째인 것 같은데, 내가 쫌 빠른듭? ㅎㅎ 이따 알베르게에서 저녁 공짜루 준다는데 같이 먹으러 가자. 여긴 아침도 공짜고, 자는 것도 돈 안 받더라.. 신기!! 근데 기부하는 센스는 좀 발휘해야지~"    


그렇게 모든 순례자(Peregrino, Pilgrim)들이 모여서 저녁을 알차게 먹고, 우리는 내일 함께 달리려고 지도도 보고 체인에 오일도 새로 뿌리고 잤다. 그리고 추워서 덮고 잤던 알베르게의 담요는 나에게 베드버그 첫 세 방을 선물해주었더랬지..ㅠ



2013년 9월 18일 (수)


Bercianos del Real Camino에서 LE-6713을 타고 나가면 El Burgo Ramero이고, 이 마을을 지나 LE-6615 도로를 타면 Reliegos를 지나 Mansilla de las Mulas까지 이어진다.


Mansilla de las Mulas에서 N-120을 타면 Leon을 지나 Astorga까지 갈 수 있다. Logrono~Burgos~Leon 구간의 N-120 도로는 고속도로와 가깝기 때문에 오르막이 심하지는 않지만 다른 곳보다 차량통행이 많은 편이면서 대형 화물트럭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일행은 둘 뿐이지만 선두에서 내비게이터가 되어주는 피터!! 

독일 사람이 쓴 자전거 순례자용 책(지도)을 폴란드에서 사 왔다는데 엄청나게 좋다. 업힐과 다운힐, 트래픽, 자전거/도보용 까미노 등 종이지도에 참 다양하게도 나와있었다. 

자국과 방문국의 깃발도 달고, 자전거 뒤에 바퀴를 하나 더 달아서 세 번째 바퀴에 패니어를 매달았더군..


달리고 달려 레온 성당에 도착!! 

사실  그동안 혼자 달리면서 종교가 없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성당에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었는데 피터 덕분에 와보았다..;; 

되게 웃긴 게 성당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그래서 내부 구경은 안 하고 크레덴셜에 도장만 받아서 왔다.

 

사진 찍어준대서 어색하게 인증샷.. 혼자 다니다 보니 내 사진이 별로 없다. 그리고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따땃한 햇살~

내 자전거 뒤에 있는 게 바퀴 세 개 달린 피터가 개조한 바퀴 세 개짜리 자전거다. 


"야, 너랑 나랑 다니면 사람들이 아마 아빠랑 딸이 다닌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서 나 내일부터 면도 좀 열심히 해야겠다.ㅋㅋ 근데 나 사실 19살에 결혼해서 큰 딸이 너랑 두 살 차이밖에 안남!!ㅎㅎ // 니가 짐이 너무 적어서리 내가 니 짐 다 실어주고, 너는 화장품이랑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나 넣어 다닌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거야..ㅋㅋ" 


헛소리를 자주 하는 피터였다..;;

피터는 몇 년 전 무릎에 철심 박는 수술을 한 덕에 조금이라도 업힐이 길거나 가파른 곳이 나타나면 끌바를 한다. 그래서 종아리 근육을 봐도 오른쪽이 조금 더 발달되어 있었다. 하지만 끌바 속도가 무지 빠르다는 게 함정.. 시속 5km 이상 되는  듯하다. 단면 클릿 페달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달리고 달려 목표했던 Astorga에 도착!!

샤워-빨래-와이파이 콤보를 마친 후, 나가서 성당도 구경하고 진짜 맛있는 순례자 메뉴도 먹고, 맥주와 와인도 당연히 마시고~ 캬아!! 

그리고 나란히 같은 침대의 1,2층에서 각각 잤다. 그런데, 옆 침대의 전기자전거 타고 순례 온 70대 미국 할머니 두 분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우리 둘 다 거의 잠을 설쳤다..ㅠㅠ



2013년 9월 19일 (목)


Astroga에서 동쪽 샛길인 LE-142로 나와서 시작했다. 계속해서 LE-142로 가도 상관없지만 밑으로 약간 돌아가는 느낌이라 Castrillo de Los Polvazares를 지나서 나오는 갈림길에서 직진 코스인 LE-6304를 택했다. El Ganso를 지나고 Rabanal del Camino에 다다르게 되면 이 길은 다시 LE-142로 합쳐진다. 



며칠 째 날이  건조한 데다가 일교차도 심해서 입술이 부르트고 피가 나기도 했다. 짐을 줄인다고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나 립글로스 등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더니 바를 수 있는 게 없었다. 

피터가 이런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애기들이나 바르는 순한 크림을 줘서 입술에 바르고, 영상 5도까지 떨어지는 아침에는 추울까 봐 바람막이도 하나 더 입으라고 빌려주고, 로그로뇨 빨랫대에서 양말까지 잃어버리고 와서 맨발로 달리는 나를 위해 안 신는 자기 양말도 깨끗이 빨아서 주었다..ㅠ

거울을 보니 크림 바른 게 되게 빡구 같아서 아침 출발 직전에 사진 찍었다... 옷도 펑퍼짐해서 더 빡구 같음;;


9월의 스페인은 보통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해가 뜨곤 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어둡지 않은 7시 반에 숙소를 나서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운치 있고 안전하게 달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마침 피터도 그렇다고 해서 이날도 7시 반쯤 나섰다.


오늘이 바로 프랑스길 세 개의 고비 중 두 번째인(첫 번째는 피레네 산맥) 산을 넘는 날이라 오르막이 많았다. 피터는 끌 바를 계속하고 나는 조금씩 기다리며 업힐을 천천히 하고 있는데 누가 날 부른다. 로그로뇨에서 봤던 앤젤로였다!! 

"어이~ 램프의 요정 지니!!!!! 너 왜 이렇게 천천히 가냐? 니 속도로 가면 지금 여기가 아닐 텐데~"

"헐퀴, 앤젤로~ 너 댑따 빠르네?? 그때도 완전 늦잠자더니 벌써 여기까지 온거야? 바로 옆이 까미노길이라서 날 봤나부네. 폴란드에서 온 아저씨랑 같이 달리느라 좀 진도가 늦어졌는데, 그래도 일정이 생각보단 널널해서 그냥 천천히 가고 있어. 그때 너랑 사진을 하나도 못 찍어서..ㅋㅋ 지금 하나 찍자!!"


저 멀리서 피터가 끌바해서 드디어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배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평소에는 특히 자전거 탈 때는 밥을 많이 먹지는 않는데,  어제저녁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알고 보니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토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앤젤로가 패니어에서 약을 찾아내서 줬고, 녹차나 콜라를 찾아서 많이 마셔보라고 했다. 피터는 기운도 없을텐데 내가 기다릴까봐 끌바를 늦추지 않았던 것이다. 


길은 어차피 하나였으므로 나는 꼭대기에 가서 기다린다고 하고 먼저 갔다. 중간에 많이 쉬어서 그런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업힐 머신이 된 것 같다고 착각하기까지 했다.ㅋㅋ

여긴 1000미터가 넘어야 산이라고 부르고, 500미터는 넘어야 언덕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암사에 있는 아이유 3단 고개가 과속방지턱임은 내게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는 경로가 내내 도보 까미노길과 비슷해서, 쉬지 않고 왔다면 피레네보다는 약간 힘들었을  듯하다.


피터를 기다리며 사진 찍긔~ 파리가 겁나게 많아서 막 혼자 발광하면서 뛰어다녔더니, 걸어오던 사람들이 보고 웃는다. 자전거를 30분 이상 세워놓는 바람에 그 시간에 지난 다른 사람들의 인증샷에도 전부 내 자전거가 들어갔을 것이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피터가 도착했고 우리는 바에서 콜라와 맥주를 각각 마시며 쉬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있는 업다운 능선을 지나서 드디어 다운힐에 도입했다. 여기는 도로가 좋은 편이 아니었던 지라, 나는 브레이크를 꽉 잡고 서서히 내려갔다. 뒷브레이크 패드를 오기 전  새 걸로 갈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많이 닳았다. 손도 아프고 림도 뜨거워져서 쉬었다가 내려왔다가를 반복했다.  

El Acebo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엄청나게 많은 헬기와 저 멀리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우리는 다운힐을 아직 반도 내려오지 않은 상태였다. 피터는 업힐은 늦어도 다운힐은 누구보다 빠르기 때문에 조금 더 가서 쉬려고 했었는데.. 저짝 아랫 도로에 불이 나서 도로 통행이 제한되었다고 한다. 

2~3시간을 기다리느니, 어차피 오늘 피터 컨디션도 별로고 하니 그냥 이 마을에서 있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잠을 너무 못 자서 호스텔이나 호텔의 싱글룸에서 자자고 했다. 피터가 내 방도 돈을 내줬다. 레스토랑 사장이라고 하니 별로 미안하진 않았다.ㅋㅋ 내일 내가 밥  사면되지, 뭐~ 

그래서 오늘 탄 거리가 35키로 정두.. 그래도 두 번째 고비인 언덕의 정상을 넘었으니 그걸로 만족~ 



2013년 9월 20일 (금)


어제부터 타고 온 LE-142 도로를 계속 타고 내려가면 다운힐의 끝에 Ponferrada가 있다. 이후부터는 N-6을 타야 한다. N-6을 타고 Pedrafita de Cebreiro까지 간다.

Pedrafita de Cebreiro에서 LU-633을 타면 업힐이 시작되고, 드디어 이정표에 Sarria, Santiago 등의 남은 키로수가 표시된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해 뜰 무렵 출발~ 피터의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돌길이니까 시작은 다시 상콤하게 끌바로..

도로를 계속해서 달리는데 피터가 더 긴 루트로 돌아가려 한다. 

"야, 니 책에 나온 대로 모든 마을을 다 들를 필요는 없어. 우리가 밥을 먹지 않거나 잠을 자는게 아니라면 그냥 더 빠른 경로로 가도 되잖아. 까미노는 내가 만드는 길이야."

"하긴.. 이 책을 보니까 도보 순례길은 670km 정도 되는데, 자전거 순례길은 910km 정도 되더라고.."

"아놔, 이 멍충아.. 그 책 좀 그만 믿으라고!!ㅋㅋㅋ" 


그래서 우리는 Villafranca del Bierzo라는 마을에 빠르게 도착해서 식사를 했다. 여기에는 산티아고까지 183k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자전거로는 200km 넘게 남았겠지..

나는 배고파서 밥을 먹고 피터는 커피만 한 잔 마신 후 먼저 출발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곧 마지막 고비인 세 번째 산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언덕은 시작되고 있었다. 피터는 끌바를 해야 되니까 먼저 출발한다고 했고 어차피 길이 하나라서 만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천천히 식사를 한 후 30분은 더 있다가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피터를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30분 늦게 출발했던지라 나는 일부러 더 빨리 달렸다. 제 속도로 달려도 이미 만났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피터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다. 


Villafranca del Bierzo 마을을 지나서는 전 구간 중 유일하게 터널을 지났다. 100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터널이라서 빠르게 통과했다.

이틀 연속 1000m 이상의 고지인 산을 오르니까 너무 힘들다. 어디가 정상인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막판에 10분 정도 끌바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끌바였다. 힘들고 목이 말랐지만 언제 물을 또 충전할 수 있을지 몰라서 물을 조금씩 아껴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 그러나, 이번 산의 첫 봉우리일 뿐이라는 것..


헐,, 이건 1000미터가 아니라 1300미터나 되었구나. 어쩐지 힘들더라니.. 에휴~ 경치는 죠으네.. 

더 가면 이제 능선을 타고 업다운이 계속 될텐데, 이미 업힐하느라 지쳐버린 나는 이곳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모든 알베르게, 호스텔, 호텔 전부 Completo!!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힘이 빠졌다. 다음 마을까지는 5키로였지만 거긴 너무 작은 마을이라 자리가 없을게 뻔했다. 

나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페인어는 못하지만 노샐이라는 미국 할아버지를 성당 앞에서 만났다. 할아버지에게 숙소를 찾고 있다고 하니 날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책을 덮고는 나섰다. 유창한 영어로 (미국인이니 당연히-_ -;;) 이래저래 숙소에 자리가 있나 물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모두 Completo.. 


"야, 나 사실 트윈룸에 혼자 묵는데, 너 괜찮으면 거기서 잘래? 나 일행도 두 명 있거든. 근데 걔네 커플이라서 남 1 여 1인데, 니가 나랑 같은 방에서 자는거 좀 불편할 것 같으면 그 옆방에 스위스 여자애랑 방 바꿔줄게~"

"헐, 진짜? 대박.. 오늘의 천사는 너로구나.ㅠㅠ 대박 고마워!! 진짜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ㅠㅠ" 


노샐 덕분에 단돈 10유로만 내고 추가 등록해서 겨우 숙박할 수 있었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나와서 맥주를 마시며 두근두근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앉아있은지 1시간이 지났을까.. 피터가 보였다!! 이제 막 이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서로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내가 밥 먹을 때 피터가 성당도 들르고 이래저래 도보 까미노길로 천천히 가는 동안, 나는 급하게 차도로 나가서 씽씽 달려서 내가 오히려 앞서 나간 것 같기도 했다. 뭐 아무튼.. 피터는 여기 더 이상 잘 곳이 없다는 나의 말에, 내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다음 마을로 라이딩을  계속했다. 그리고  또다시 만나지 못했다..



2013년 9월 21일 (토)


어제 달리던 LU-633을 다시 달린다. 산 정상에서 업다운이 계속되는 능선을 지나다가 다운힐이 시작된다.


LU-633을 계속해서 달린다. Sarria를 지나서, 조금은 넓지만 말라비틀어진 강의 긴 다리를 건너서 Portomarin에 도착했다. 힘든 고비를 모두 넘었지만 업다운이 가파른 구간이 종종 있어서 쉽지는 않았다.


도착해서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에 짐만 풀어놓고 일단 나가서 좀 걸었다. 5분 정도 걸었더니 나오는 강가의 레스토랑에서 어떤 한국인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25일 동안 도보순례를 하면서 한국사람을 처음 봤다고 맥주와 와인을 몇 잔이나 사주셨다. 그리고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온 다른 일행들은 베드버그가 물린 내 목에 약도 발라주고 소형 전기충격기도 쏴줬다.ㄷㄷ

한국사람들 1000유로나 하는 비행기 타고 와서 돈 아끼고, 궁상떨고, 영어 못해서 한국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음식 맨날 파스타나 해서 먹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다고..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왕 돈 내고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왔으면, 적당히 소비하며 배우고 느끼고 들이대고 즐기는 것이 까미노의 추억을 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날 왠지 술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분위기에 취했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나는 비틀비틀 알베르게로 겨우 돌아가서 7시에 샤워도 빨래도 못한 채 그냥 그 옷 그대로 쓰러져서 잤다. 그리고 새벽에 깨서는 잠이 안 와서 와이파이 삼매경..;;



2013년 9월 22일 (일)


어제 타고 오던 LU-633을 이어서 달린다. 중간에 N-540과 만날 때 길이 약간 헷갈렸지만 도보 순례자들이 걷는 길로 따라가면 맞다. N-547을 만나기 전까지는 가는 길이 거의 도보 순례자들과 같은 구간이다. N-547부터 Palas de Rei, Melide 등을 거쳐서 Azura로 갈 수 있다.

오밤중에 와이파이 한참 하다가 새벽녘에 잠들었는데, 다들 이미 떠나가고 호스피탈레로 청소하는 소리에 깨어났다.ㅋㅋ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조금 더 나태해진 듯 싶다. 하지만 진도도 이 정도면 괜찮고.. 천천히 준비해서 9시 반쯤 나섰다. 

중간에 Palas de Rei 직전까지는 도보 순례자가 걷는 까미노 길과 거의 일치해서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숨이 차오르도록 가파른 업다운이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오토바이 동호회 모임도 있었나보다. N-547에서는 수십대가 한 번에 내 옆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업힐에서 혼자 느릿느릿~ 하고 있으니 오토바이 아저씨들이 엄지 짠!! 해줬다.ㅋㅋ 

Azura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보이는 알베르게로 바로 들어가 등록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알베르게는 더욱 넓고 많아지는데, 그 전에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서 잤던 후유증이 커서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고는 또 짐만 풀고 나와서 맥주, 와이파이, 지도보기 등 일상을 즐기며 내일 갈 루트를 보고 있었다. N-547을 계속 타고 가면 산티아고가 나오지만 중간에 산티아고 공항 직전에 이 도로는 잠시 고속도로로 통합이 된다. 고속도로를 통과해서 빨리 갈 것인가, 좀 멀지만 안전하게 돌아갈 것인가..


옆자리에 자전거 순례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짜식.. 지도가 되게 좋아 보여서 일부러 말을 걸었다.  

"안녕, 한쿡에서 온 지니라고 해. 너 자전거로 순례해? 나도 자전거로 순례하는데.. 니꺼 지도 좀 잠깐 봐도 되겠어? 내일 루트 때문에 궁금한 게 좀 있어가지고~"

"ㅇㅇ 그러던가~ 근데 나 너 봤어, Cebreiro에서~ 니 고글이랑 신발이랑 등등 기억난다. 너 앉아서 맥주 마시고 있던데.. 니 자전거가 워낙 특이해서 자전거 타는 순례자들은 전부 너 기억할걸?" 


지도를 보니 역시나 고속도로를 타지 않는 길이였다. 참! 이 친구는 벨기에에서 온 윔이다. 벨기에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 약 23일간 2500km 정도를 타고 프랑스를 통과해서 왔다. 순간 산티아고를 가는 커~다란 관광버스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갔다. 

"너 고속도로로 가겠다고? 저기 저 버스들과 나란히 가겠구먼..ㅋㅋ 나도 오늘 여기서 쉴 건데, 내가 그냥 너 있는 알베르게 가서 잘테니까 내일 같이 우회도로로 산티아고 입성하자~" 


DEAL!! 그래서 우린 샤워-빨래 후 나가서 같이 저녁, 커피, 쥬피토 등을 먹었고.. 난 먼저 들어와서 9시쯤 잤고, 윔은 12시 넘어서 들어왔다고 했다. 술을 참말로 좋아하는 윔이였다..



2013년 9월 23일 (월)


내가 원래 가려했던 길이 N-547인데, 산티아고 직전에 고속도로인 A-54로 통합이 되므로 가지 않았다. 우회도로로는 Azura를 조금 지나서 AC-240을 타고 남서쪽으로 내려가다가 AC-960을 타고 서쪽으로 와서 N-525를 타고 산티아고 아래쪽에서 진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실제로 지나온 길은 윔의 책을 보고 같이 따라왔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겠다. AC-240을 진입해서 달리다가 후반에는 작은 마을 밭 사이의 굉장히 가파르고 잦은 업다운 길을 지나왔다.

AC-240 타자마자 윔의 튜브가 펑크 났다. 예비 튜브와 공구를 찾느라 짐을 다 풀어헤쳤다.. 그리고 결국 타이어를 깠는데 튜브가 펑크 난 것은 아니고  지난번 튜브를 갈아 끼울 때 꼬여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날인데다가 예비 튜브도 하나 남아서 안전빵으로 교체하고 달렸다.


산티아고 입성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서로 인증샷을 찍어줬다. 짐이 엄청 많은 윔..

사진을 보니 AC-261로 들어갔군.. 지도를 보니 AC-960에서 N-525를 타기 전에 AC-261로 빠지는 작은 도로가 있다. 이제 정말 산티아고에 다 와간다.

산티아고 입구는 경사가 매우  가파른 데다가 돌길이 많아서 결국 끌바를 했다.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샤워-빨래를 한 후에 완주 증서를 받으러 사무실로 왔다. 그노무 종이쪼가리  하나받으려고 1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 같았다. 그래도 까미노 프랑스길을 무사고, 무 펑크로 안전하게 완주했다!!


그렇게 얻어낸 집착의 결과물!! 이것은 신성한 종이라서 구기거나 접으면  안 된다고 윔이 말했지만, 내 가방이 너무 작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다. 그래서 다들 1유로에 파는 원통 케이스를 사는 거였군. 왠 장사속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벼.. 



밑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인증샷 나갑니다.~

당일에는 저녁에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바라본 게 전부였고, 인증샷은 이틀 후인 마드리드로 떠나던 날 찍은 것이라 쓰레빠 차림이다. 바람막이 주머니에 시건장치, 지도 등 가득 넣어서 불룩하다.




스페인 서쪽 끝인 피니스테라와 마드리드, 그리고 몇 가지 소소한 팁을 담은 번외편이 이어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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