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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과장 Mar 30. 2021

(영화리뷰)나, 다니엘 블레이크 – 켄 로치 감독

2017.01.22.

국가의 선별적 복지시스템 조건의 혜택을 받기 위해 이 영화 주인공 다니엘은 처절하게 고군분투한다. 왜 질병 수당을 받아야 하는지, 왜 실업수당을 받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 증명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 장벽이 존재하며 이 유리장벽은 넘을 수 없는 절망감만 느끼게 한다. 자신은 정직하게 열심히 이웃을 도우며 살아왔지만 돌아오는 건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 그리고 관료주의에 물든 융통성 없는 공공기관 직원과 대면하는 일이다. 공공기관 직원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데도 돌아오는 비난에 억울해할 것이고 공공기관을 방문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도 불친절한 행정서비스에 불편과 불만을 토로하며 상대방을 비난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한쪽만을 탓할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 문제 인식을 통행 점진적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이 영화는 사회고발의 화두에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개봉하는 영화관이 많이 없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외면받기 쉬운 영화가 되었다. 포항에는 개봉하지 않아 인터넷에서 제값 주고 노트북 화면으로 영화를 보려니 아쉬울 따름이다. 


 질병 수당과 실업수당의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 심사과정을 거쳐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혜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다니엘에게는 구조적 무력함에 맞닥뜨리게 된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지쳐가다가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노숙자로 되어버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잃으면 인간이 가진 존엄을 잃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작은 희망마저 포기하게 되고 이 자포자기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난하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게으름으로 인한 개인 탓만 돌릴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가진 복지 시스템의 문제도 일부 있다고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나만큼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고 못 본 척하기 쉽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니까 자신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에 양심이나 죄책감은 일부 면제된다. 하지만 내가 어려워도 물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문명이라 배웠다. 이 자발적 조건 없는 도움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인간이 가진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다니엘은 자신도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한 부모 가장인 케이티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준다. 다니엘도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연민을 통해 오히려 외면하지 않는 이 인간적 연대감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 부자였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절망 속에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다니엘이 케이티에게 그냥 같이 따라가는 것, 옆에 있어주는 것, 딱히 임무가 없었지만 가면 할 일 이 생기는 것, 어찌할 도리는 없으나 그냥 옆에 앉아 있는것, 이 무위의 동행은 시간낭비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연대의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처음에는 다니엘이 케이티에게 영화 마지막에는 케이티가 다니엘의 질병수당 항고심에 함께하는 것이 살맛나는 세상일 수 있는 희망을 전파하는 것 같았다.


케이티의 딸 역시 다니엘이 연락이 닿지 않자 직접 집에가서 저희 가족에게 도움을 주셨으니 저도 다니엘을 돕겠다는 장면은 사회적 상부상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외로움, 괴로움으로 인한 힘듦이 연속으로 닥쳐왔을 때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받고 도움 받으며 힘을 얻어 생존하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이 이 영화에는 여려 장면과 대사에서 확실히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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