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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과장 Mar 30. 2021

(생각)절차탁마의 중요성

2017.04.19

끊임없이 자신을 절차탁마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죽지 않는 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절차탁마는 학문이 아니라 인격을 말한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타인에 대한 죄책감, 미움, 질투, 시기, 경멸의 감정 연속 선상에서 무시, 비난, 고독과 함께 불청객은 불현듯 찾아온다. 


혼자 살 수 없는 이 사회 조직에서 자의든 타의든 버텨야 한다. 간혹가다 텔레비전에서 세상과 세상 사람들로 받은 깊은 상처 때문에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여럿 보곤 했다. 그 산속에서도 사랑하고 또는 혼자만의 생활을 체념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뭐라 할 건 아니지만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에 의하면 깊숙한 동굴보다 바깥의 햇볕을 쬘 수 있는 양지바른 곳이 더 낫다. 굳이 산속이 아니더라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 폐쇄적 생활 속에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히키코모리가 될 것이 아니라면 바깥의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산속에 사는 그들 또는 히키코모리는 단절과 회피가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부딪혀서 생겨나는 상처의 반복을 통해 아픔을 견디는 힘을 기를 수 있다. 현실에 순응하고 또 적응하고 그러나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하고 뻔뻔한 사람이 된다. 의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한다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사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현명한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주관적 생각들이 결국 혼자만의 우물 안 개구리 되지 않으려면 부단히 내 인격을 갈고닦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해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흔히들 말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실제는 나무만 보고 있어도 자신은 숲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타인이 볼 때 틀렸고, 잘못됐고, 비겁한 행동들이 누가 일러 주기 전에는 본인은 모른다. 남의 인생에 감히 훈수를 두지 않는다. 서로가 남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는 무관심과 냉대 속에 사는 것이 덜 피곤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은 될 수 없지만 철저한 비난 속에 미움받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덜 아프며 덜 고통받고 더 기뻐하며 의미 있는 하루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계속하고자 다짐한다. 그 첫 번째가 책과 신문을 읽고, 두 번째가 글을 쓰고, 세 번째는 조금이라도 걷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내 마음을 챙기고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건강한 독립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틈만 나면 위 세 가지는 행 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타인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건 본인에게 달려 있지만 미니멀한 인간관계속에서 나와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더 귀하고 값지다. 누가 어떻게 살든 정답은 없고 해답은 있을 수 있다. 아니면 2개 이상의 해답을 구해 각각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감능력을 찾는 것이 왜 사는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해답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은 말 할 것도 없다.


하루가 벅차다. 숨쉬기조차 힘들고 지치고 위로받고 이해받고 싶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고성방가라도 하고 싶지만 그건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해 잠시 덮어둔다. 고차원적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바라본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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