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물어보지 못하고 적는 해설
아버지는 화가이셨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본 아버지 평생에 그림을 놓으신 적이 없다.
서양화가 이태운 작가. 지금은 중앙대가 된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오시고 수원 영복여고에서, 서울 성덕여상과 성덕여중에서 30년간 수많은 여학생들에게 미술적 자아를 각성시켜 수많은 미대생을 만들어내시던 아버지.
긴 시간 한 학교에서 일하셨던 탓에, 그 학교가 있는 동네에 쭉 살았던 탓에, 동네 길 20미터만 걸어가도, "안녕하세요, 선생님"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 일이 없었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더 만날 수 없는 아버지.
2021년 4월, 순복음 중동교회에서 했던 전시가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던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그 초대전을 마지막으로, 다음 해 한참 추웠던 1월 11일에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다.
내가 대학생 때는 국문과 다니는 딸내미가 집에 있는 게 보이면 아버지는 "미안한데, 1시간이면 되는데..."라고 하시며 종이에 잔뜩 끼적여 놓은 작품 해설 초안들을 보여주셨다. 나는 밥을 먹다가도, TV 보다가도 그렇게 소환되었고, 사실 이 핑계 저 핑계로 며칠간 피해보았지만 언제나 결국에는 컴퓨터 앞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타이핑이라 부르고 실제로는 작문인 활동'을 최소 2시간은 집중해서 해야 했다.
아버지가 적어서 건네주신 글들은 언제나 상당히 난문이었다. 이뿐 아니라 어떤 영감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는가를 적어두신 글 외에도 번외로 길게 설명해주시기도 했고, 작품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보여주시며 이 부분은 어떤 것 같이 보이는지 반추상을 해석해 보도록 시키기도 하셨다. 상당한 대화를 거쳐 언제나 쉽지 않게 질의응답과 재해석을 거치며 그렇게 문구는 문장이 되어갔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종이 위의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주어와 맞는 서술어를 찾아오고 서술어와 맞는 주어를 붙여가며 문단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면, 그 과정 중간쯤 더 이상은 전달사항이 없어 이미 따로 거실로 쉬러 가셨던 아버지께 수정본을 보여드렸다. 그러면 언제나 "참 잘했다. 수고했다. 미안하다." 말씀하시곤 했다(꼭 미안해하셨다).
이제는 그렇게 같이 이야기하면서 적을 수가 없다.
언젠가 이렇게 혼자 쓰라고 그렇게 때마다 시마다 나를 불러서 이야기를 적게 하셨나 보다. 적어둔 노트만 말고 그림도 요모조모 보고, 어떤 의미인지 어떤 느낌인지 읽는 과정을 경험해 보라고 시키셨나 보다.
떠나신 후에도 얼마나 많은 그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뒷정리하신다고 기증도 많이 하시고, 나눔도 하셨지만 아직도 쓰시던 화실에는 전시회장 하나는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크고 작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성격과 진심 어린 마음 때문에 숨 쉬듯이 그려두신 바.
꺼내어 차마 다 전시할 수 없어서, 생전에 함께 했던 작업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이어나가 보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17114873&memberNo=12096182)
개인전
1995 현대아트갤러리
1999 진흥아트홀
2005 빛갤러리
단체전
1987 도쿄방법전(일본 우에노미술관)
1987 아시아국제전(서울시립미술관)
1989 아시아국제전
2009 한국미술 대표작가 100인의 오늘전(세종문화회관)
수상경력
1969-1970 목우회 공모전 입선 2회
1975-1980 구상전 입선 4회
1984 창작미협 공모전 특선
1985 성화대전 대상
1987 교육장상
1994-1999 교육부장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