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소비 시대, 대화 중심 문법의 진화
*데일리안에서 유튜브의 새로운 인터뷰 콘텐츠 형식에 주목한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최근 유튜브 트렌드를 살펴보면 화려한 편집이나 짜여진 구성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토크쇼나 일상 브이로그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형화되지 않은 콘텐츠'가 부상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 기사를 위해 드렸던 코멘트를 아래에 정리해서 공유드립니다.
* 데일리안 관련 기사:
https://www.dailian.co.kr/news/view/1576437/
Q. 최근 유튜브에서 정형화된 대본 없이 진행되는 토크 콘텐츠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은 영상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 현상은 제작 효율성과 매력의 발산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제작과 출연의 관점입니다. 꽉 짜여진 대본이 없는 환경은 출연자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정해진 대사를 외우거나 연출된 상황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출연자는 본연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드러내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복잡한 세팅이나 구성을 덜어냄으로써 제작 과정을 훨씬 단출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비자의 관점입니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영상을 각 잡고 시청하기보다 일상의 틈새, 즉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는 시간에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때 '수다'라는 형식이 갖는 힘에 주목해야 합니다. 수다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시청자는 정제된 콘텐츠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에 나도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 일종의 '상상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친근감은 결과적으로 팬덤 형성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지속적인 콘텐츠 소비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됩니다.
Q. 과거에는 스타들이 작품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할 때 작품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요즘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사적인 이야기나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A. 이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정보 소비'에서 '관계 소비'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작품에 대한 정보값을 전달하는 것이 홍보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이 콘텐츠를 소비할 때, 그 작품에 참여한 '사람'과의 관계와 매력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청자는 잘 포장된 홍보 멘트보다는 그 사람의 이면, 속내,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출연자가 일상적인 수다를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면, 시청자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응원하게 됩니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나도 관심이 간다"는 심리가 형성되는 것이죠. 즉, 작품 자체를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보다, 사람에 대한 호감이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제작자, 게스트, 시청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Win-Win)' 구조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변화입니다.
Q. 이러한 흐름을 미디어의 진화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A. 저는 이 현상이 일종의 '라디오 문법의 영상화 및 진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 특히 TV 방송은 편성 시간에 맞춰 정제되고 편집된 영상을 송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이러한 물리적, 관습적 제약에서 자유롭습니다. 이용자는 언제든 라이브러리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유튜브는 라디오의 생존 전략을 닮아 있습니다. TV의 등장 이후 라디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청취자와의 긴밀한 소통, 즉 '대화 중심의 문법'이었습니다. 유튜브는 이 라디오의 문법을 받아들이되, 공간의 제약을 없애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라디오는 주로 차 안이나 특정 장소에서 들어야 했다면, 유튜브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나무를 바라보는 등 훨씬 다채로운 일상의 공간에서 소비됩니다. 시청자는 화면 속 인물과 함께 밥을 먹는 듯한 '밥 친구'의 느낌을 받거나, 대화에 끼어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즉, 유튜브는 라디오가 가졌던 청각적 친밀감에 시각적 실재감을 더하고, 소비의 장소를 일상 전반으로 확장하며 '일상의 동반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