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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an 09. 2018

4차 산업혁명과 문화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들

디지털 혁신이란 변화에 문화 정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1. 들어가며: 4차 산업혁명과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2017년을 거치며 어느 정도 공식적인 정책 담론으로 정착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 9월 출범했고, 모호했던 4차 산업혁명의 의미도 초연결과 초지능 기반의 산업 및 사회 변화라는 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전히 용어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떠한 변화를 포착하는 개념으로서 4차 산업혁명은 그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에 대해 불만을 품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비판은 ‘혁명’이란 용어에 대한 것이다. 이는 초연결과 초지능을 가능하게 하는 변화를 결국 디지털 혁신(Digital Transformation)이란 기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왜 새삼스럽게 이를 혁명으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왜 우리는 아직 충분히 도래하지 않은 변화를 ‘혁명’이란 용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을까? 아마도 한국의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가 폭발력을 갖게 된 배경에 ‘알파고’의 충격이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산업혁명은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되는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2, 3차 ‘혁명’이라 설명되는 그 간의 변화는, 디지털 전환 과정의 연장선이었음에도 광범위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물론 산업 분야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는 혁신도 있었지만, ‘기계에 의한 인간의 대체’라는 근원적 불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알파고’의 등장은 인간이 결국 쓸모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크게 확산시켰다. ‘혁명’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노동하는 인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될 때, 우린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지난 한 해 ‘4차 산업혁명과 문화·관광 산업 정책의 방향’이란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초기에는 ‘문화’에 대한 낙관론이 우세했다.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하면, 노동 시간은 감소할 것이고, 그 잉여의 시간을 문화적 삶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대표적이었다. 향후 인공지능과의 경쟁을 고려할 때 인간 고유의 창조성을 높이는데 문화가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힘을 받았다. 낙관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문화부는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주무부처에서 제외 되었다. 정책의 방점은 ‘산업’의 혁신에 찍혔다. 문화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 여가 시간의 변화 역시 낙관할 수 없었다. 산업 혁신이 그 자체로 노동 시간의 감소를 보장하지 않는다. 높아진 효율은 노동 인원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일은 오직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가 시간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문화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율형 자동차의 등장으로 확보된 시간의 활용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자 자기 장르의 콘텐츠가 주로 소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이러한 시간은 틈새 노동으로 채워질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문화는 그동안 인간 고유의 것이란 점에서 기술 문명의 심화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금의 혁명적 변화로부터 문화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은 문화가 그 변화의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이와 같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문화에 대한 논의는 크게 2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이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술 발전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 모두에 영향을 준다. 특히 초지능의 심화는 창작이 인간 고유 것이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초연결의 확대는 문화 향유에 있어서도 연결된 개인의 참여를 강화 시키며 그 방식을 바꾸어간다. 다음은 문화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지속된 기술 발전 가운데서도 인간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의 능력 덕분이었다. 지식 노동조차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이 오더라도, 인간 고유의 창조성은 여전히 그 힘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때 문화는 인간의 창조성을 지속시키기 위한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문화 정책 역시 문화의 변화와 문화의 역할이란 두 측면을 고려해서 그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도 각각의 변화를 간략히 검토하고,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2. 4차산업혁명과 경험으로서 문화의 변화

먼저 4차 산업혁명이란 변화가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본 연구에서는 문화 산업과 관광 산업 모두, 인간의 경험 영역에 대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험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경험의 맥락으로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실제 경험의 내용을 구성된다. 이러한 주체-맥락-내용의 틀에서 경험 영역에서의 변화를 요약하면 다음의 그림과 같다.

(이 부분의 논의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2017년에 수행한 '4차산업혁명과 문화관광 산업 정책의 방향' 보고서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4차산업혁명과 경험의 변화


경험의 주체의 변화: 포스트 휴먼(post human)

먼저 경험의 주체로서 인간의 변화는 이론적으로 ‘포스트 휴먼화’ 논의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인간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각 감각과 지능, 운동 기능을 발전시켜왔다. 이렇게 ‘확장’된 인간은 기존의 인간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누리게 된다. 기존의 기술 발전이 인간의 신체적 기능을 보조하는 것에 집중되었다면, 인공지능의 발달로 신체 뿐 아니라 인지, 지능까지 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인간 뿐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와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그 존재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해 나가고 있다.


경험 맥락의 변화: 새로운 시간-공간의 구성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시간 의식에 있어서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오늘날의 기술의 발전은 점차 여가시간과 노동시간의 상호침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동으로 deep-work(창조성을 위한 집중 노동), deep-leisure(질 높은 여가시간의 확보)의 욕구 또한 증대되고 있다.


한편, 기술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인간 생활의 공간적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인간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공간과 장소는 오랫동안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미디어 침투 공간의 확장은 그러한 자연적-물리적 환경으로서의 장소의 중요성을 침식시키며, 이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로 인해 강화되고 있다.


경험 내용의 변화: 상징-물리-소통 경험의 융복합화

경험 내용의 변화는 크게 상징(콘텐츠)-물리(여행)-소통(커뮤니케이션) 경험의 융복합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상징 세계의 핵심 경험인 콘텐츠는 점차 다양한 방식으로 장르간 융복합화를 확대해가고 있다. 물리적 세계의 경험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방식인 여행에서도 미디어 경험과의 융복합이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소통에서는 사물, 소프트웨어, 미디어 등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및 상호작용이 확대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렇듯 인간 경험의 다양한 측면들은 전면적 디지털화에 따른 융복합화를 통해 새로운 결합의 형태들로 재구성될 것이다.


3. 정책적 함의: 4차산업혁명과 문화-정책의 역할

이러한 변화가 심화될 때 정책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융복합의 심화에 따라 문화의 내적 영역 구분이 약화될 때, 현재의 정책 지원의 틀을 어떻게 유연하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존 듀이는 인간이 외부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발생한 ‘경험’이 표현력을 획득한 것으로서 예술을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경험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간의 변화된 삶은 새로운 경험 양식, 즉 새로운 예술과 콘텐츠의 형태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문화의 역사는 항상 새롭게 등장한 문화 실천과 기존 문화와의 충돌과 경합, 공존의 연속이었다. 제도화된 기존 예술과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제도적 지원과 규제의 틀에 대한 위기로 이어진다. 예술과 콘텐츠의 경계보다, 동일 장르 내부에서의 종 다양성 확보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인디 게임 개발자와 상업적 미술가 중 국가는 누구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예술의 수월성 논쟁과 콘텐츠 진흥의 효율성 논쟁을 넘어서, 무엇을 위해 국가는 문화를 후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흐려질 때, 정책의 대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수 있는 세상에서 정책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모두가 창작자이자 향유자를 겸하게 될 때, 창작 지원과 향유 지원의 경계를 어떻게 확정할지, 그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 장(field) 외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다. 앞서 시간의 문제에서 논의했듯이, 문화 향유 및 생산을 위한 참여 확대를 위해선 결국 인간 생활시간과 환경의 문제가 긴밀히 연결되게 되며, 이는 단순한 문화 정책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 강화의 문제가 아닌, 디지털 혁신에 따른 사회 혁명의 문제로 큰 틀에서 다루고 있다. 독일의 아인슈타인 재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큰 틀에서의 삶의 변화에 따른 영향들을 고려해야 하고, 그 틀 속에서 문화의 위치를 잡아나가야 할 필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문화의 사회적 기능 혹은 문화의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인간 창조성 발현의 결과인 예술 등의 형식의 재생산을 후원할 것인가, 혹은 그 예술의 향유가 갖는 사회적 영향 및 기여를 바탕으로 문화적 삶을 후원할 것인가. 문화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말하는 문화 정책의 담론은 문화의 형식 간 우위의 문제를 침식시킨다. 근거기반 정책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문화의 사회적 효용의 문제에 끊임없이 답하기를 요구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변화에서 문화의 역할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주장하며, 사회적 지지와 자원을 획득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재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선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결과적으로, 지표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의 문화 향유를 보다 정밀히 포착하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내는 작업, 이를 통해 현재의 변화를 정밀히 담아내며 정책을 설계하기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당장의 대답을 원하는 분들에겐 충분한 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결국 개인의 창조성을 증진하고, 그들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창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린 그 개인에게로 한 발 더 다가갈 전략을 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란 담론이 그저 한 때 유행하는 정책 용어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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