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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May 16. 2021

메타버스, 손가락 말고 달을 보자

미디어 서비스 관점에서 본, '메타버스 전환'의 필요성

메타버스란 단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미 이런 식의 버즈워드(Buzzword)가 몇 번을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단어가 갖는 매혹의 힘은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신(Dx)을 거쳐 메타버스란 '단어'의 시대가 다가온 듯하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자라는 말이 있다. 메타버스 그 자체의 실체 여부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필요한 때도 분명히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버즈워드에 대해 많은 이들의 '촉'이 뜨거워진 이유, 그 저변을 살피는 것이 실질적인 이득이 된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메타버스란 단어의 세부적인 의미(예를 들어, '스노우크래쉬'와 관련된 논의 들이나, xR 생태계, 로블록스 관련 이야기 들)를 파고들기보다, 이러한 버즈워드의 부상 자체가 어떠한 변화의 방향을 지시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미디어-콘텐츠 사업자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간략히)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위계'의 조정

일단 메타버스를 실체로 볼 것인가, 일종의 이념형(ideal type)으로 볼 것인가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버즈워드'로서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들은 로블록스가 보여준 샌드박스 방식의 새로운 창작-소비의 경제라는 차원과, 이번에야말로 다시 주목을 얻겠다는 의지를 담은 XR 계열의 입장, 그리고 게임과 같은 전통적인(?) 가상 세계의 이야기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메타버스를 일종의 '실체'로 바라보는 시각일 것이다. 오히려 메타버스를  이미 다가온, 혹은 다가올 미디어-현실의 관계에 대한 조망을 담고 있는 단어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전략들을 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메타버스 개념은 일종의 '4차 산업혁명' 같은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혁명'을 '혁명'이라 부르며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은 분명했다. 메타버스도 그 세부적인 모습들에 대한 논의는 다소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해 '콘텐츠 산업 트렌드 2025'(이상규, 이성민, 2020,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3가지 방향으로 요약한 트렌드의 핵심 개념으로 '메타버스'를 선정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메타버스가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 위계가 변화하는 것' - 즉,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와 동등하거나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 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가상의 세계가 현실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있는 것이 지금 메타버스로 묶이는 변화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NFT는 가상세계에 복제 불가능한 '아우라'를 부여해줄 수 있게 했고, 메타 휴먼은 가상의 존재들에게 실존하는 대상이란 감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실감 기술은 우리에게 경험의 복합성을 제공해주고 있고, 비경제적 활동 중심이란 오해를 해결하는 시장의 확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국, 물리적 실제 현실과 대등한 수준의 더 확장된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사업자의 대응: 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미디어 사업자 입장에선, 특정한 '메타버스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 가능한 사업자와 아닌 사업자로 나뉠 것이다. 세계를 만드는 건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협력을 통해서 그러한 '세계'가 구축된다면, 그 세계 안에서의 '미디어'로서 존재하는 전략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메타버스 세상도 그 자체로 '세계'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지금과 같은 '분업'의 방식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결국 메타버스라는 것이 가리키는 '변화'에 있어서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위치를 고민하고, 변화하는 생태계의 가치 사슬 중 어디에서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고 역할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적 관점에서, 메타버스의 부상은 '평면 스크린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마노비치(2001)는 이미지의 계보를 평면 스크린 중심의 '재현(representation)'의 전통과 체험 중심의 '시뮬레이션(simulation)' 전통으로 구분한 바 있다. 가상 세계에서 우리가 다시 2차원 평면 스크린에 '재현'된 이미지를 경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미디어 사업자는 메타버스 세계로의 '번역'과 '이주'를 위한 '데이터화' 전략이 우선해야 한다. 재현의 전통에 맞게 구축된 미디어 '재료'들을 시뮬레이션 전통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작업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기존의 미디어 서비스의 자원들이 데이터적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번역이 가능한 형태로 모듈화, 요소화 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그것이 꼭 로블록스와 같은 아바타의 이동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미디어 서비스 자체도 일종의 가상의 세계의 '자아'와의 교류라는 관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이 데이터와 같은, 새로운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주권의 감각은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성장과 숙련, 자아의 구성의 '재료'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서비스는 그러한 감각의 형성을 돕거나, 그러한 '세계관'의 형식에 맞는 방식의 경험 설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메타버스(적)' 서비스에 맞추어 협업을 하는 것이 일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서유기'라는 방송콘텐츠의 IP를 가상 세계에 구축하는 작업을 통해, 사용자가 그 재료를 활용해 직접 찍는 웹 예능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마치, 마인크래프트 기반의 1인 미디어 영상처럼!). 현재의 메타버스적 서비스가 메타버스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메타버스의 세계관과 작동원리를 가장 전선에서 테스트하는 곳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의 문법은 세계 속에 들어감으로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튜브 콘텐츠 스튜디오를 미리 시도했던 디지털 스튜디오들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과 유사하다.


그리하여, 우리도 VR을 하자, 라기보다, VR적인 경험에 맞게 우리는 서비스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묻는 방식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보다 전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메타버스 시대에 어울리는 서비스의 구축을 목표로 하되, 실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메타버스 전환(Metaverse Transformation)을 고민하기

한편으로 메타버스 개념은 미디어 서비스의 위치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할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디어라는 것 자체가 현실을 구성하고 매개하는 것이라면, 메타버스는 사실 미디어 그 자체다. 메타버스 안에서의 미디어 서비스란, 사실상 새로운 '세상'의 인프라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때의 미디어 서비스란 개념은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개념을 벗어나야 할 수도 있다.


모든 기업이 미디어 기업이 되고 있고, 모든 기업이 디지털 세상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미디어 서비스란, 어찌 보면 현실의 활동과 가상의 활동을 연결해주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비즈니스의 기회들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 광고와 같은 수익 모델의 차원, 경험의 증강과 관련된 서비스의 차원(예를 들면, 팬미팅, 공연 등과 같은 엔터 비즈니스 영역, 강연 등 교육 비즈니스 관련 등) 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현실적으로는, XR이라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미디어 양식으로 드디어 자리 잡을 때, 거기서 가능한 서비스의 방식들의 시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업의 구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XR로의 경험 양식 확장 차원, 메타버스 시대를 위한 미디어 인프라 구축 차원, 메타버스 경제 시스템과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 차원의 미디어 서비스 접근 등으로 세분화한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전략적으로, 메타버스란 버즈워드를 활용하더라도 말이다.


메타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도, 현상도 아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신, 디지털 뉴딜이라는 버즈워드들이 지속적으로 늘려온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상적 소통과 경험의 질적 도약이 자극한 상상력을 묶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보면, 20년 넘게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사이버 세계'의 경험 양식이 보다 전면화되고 있음에 대한 '인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메타버스란 단어는 그 실체의 여부에 대한 논쟁 보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변화'를 향한 대응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메타버스 전환(Metaverse Transformation)'(황경호, 2021)*이란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가상의 세계의 '위상'과 '위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가상 세계에서의 소통과 경험 영역에서의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생태계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참고)

*황경호(2021.5.14) '메타버스의 부상과 미디어 서비스의 미래', 한국언론학회 2021 봄철 정기학술대회.
 황경호 교수(경남대)는 메타버스의 부상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미디어 서비스의 미래를 논의하면서, 메타버스 전환(Metaverse Transformation)이란 표현을 제시하며, 콘텐츠-플랫폼-경제-정체성-IP권리-마케팅 차원의 레이어 별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글은 해당 발표에 대한 토론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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