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그 후,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뇌졸중 환자의 퇴원 후 생활


장애인이 되다

장애인. 영어로 disabled person 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사전적 정의로는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단어 자체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들어있지 않지만 장애에 대해 경험이 부족하고 인식이 낮은 사회 분위기가 단어의 뉘앙스를 이상하게 만드는 듯하다.

나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간혹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안타까워하거나 장애인딱지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환자들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험난한 여정이지만, 크게 의미도 없다. 각종 복지혜택을 위한 등급을 매기는 것일 뿐이다.



생활형 장애인


뇌병변 장애인이 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뇌병변장애인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뇌졸중이라는 질환과 뇌손상 후유증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1급 장애인 아니냐고 할 정도이다. 혹은 그냥 다리를 다친 정도로 본다. 나는 발병 후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뇌병변장애 4급을 판정받았다. 이후 장애등급이 폐지되면서 경증장애인으로 분류되었고, 첫 장애등급 판정일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에 뇌병변 장애 4급에 해당하는 등급 및 경증장애인으로 영구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나처럼 비장애인이었다가 뇌손상으로 뇌병변장애인이 된 경우, 뇌성마비나 기타 뇌손상으로 중증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 비해 장애의 정도가 훨씬 미미한데 나 같은 경증 뇌병변장애인으로 인해 중증 장애의 어려움이 미화될 수 있어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비장애인 상태에서 취직을 하고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 후에도 같은 일을 해야 하고 발병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하기에 신체적 장애뿐만이 아닌 다른 어려움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생활형장애인 혹은 일상형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뇌졸중으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는 사람들에게 생활형장애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서 자신을 자책하거나 스스로 비하하지 말고, 생활형장애인으로서 기존의 생활에 충실하고 장애의 종류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장애가 눈에 띄지 않지만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생활형장애인이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조심해주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어려움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내 장애인복지카드


뇌병변 장애의 인식 부족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들어본 말 중에 최악의 말은 은행에서 근무할 때,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다 자리로 돌아오는데 출입문을 지나는 내가 너무 느려서 진로방해가 됐는지, 고객인지 행인인지 모를 아저씨 한분이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내 뒤에서 "아프면 집에 있지 왜 돌아다녀" 하시는 것이었다. 근무 중인 상황이라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당하고(?) 있어야했는데 장애인의 현실의 벽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

근무 중이 아니었어도 그 아저씨한테 뭐라고 대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일반적인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도, 무시를 당하는 것도 없었지만, 굳이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과 그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세상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내가 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을까..?


장애인이라고 대놓고 차별하는 경우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지만, 현실은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뇌병변 장애인의 특징을 모르는 데에서 오는 이해 부족 현상이 더 컸다.

나는 퇴원 후 생활형장애인으로서, 원래 할 수 있던 것들을 전부 해보려고 도전해 왔다. 가장 먼저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대중교통 타기이다. 원래도 이동수단이 대중교통이나 자차였다. 운전면허가 있고, 오른손으로 운전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해서 이동에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데, 시야문제나 판단력문제가 있는 지금의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하여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기로 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생활형장애인으로서 진짜 ‘리얼 현실’에 부딪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생활혈장애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생활형 장애인의 어려움


보행속도


앞서 경험담에 적었듯이 느린 걸음으로 인한 트러블을 어딜 가나 겪는다. 사실 내가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람의 평균보행속도를 맞추려고 꽤나 노력했다. 그렇게 해도 횡단보도를 시간 안에 겨우 건널만한 속도라 바쁜 우리사회에서는 걸리적거릴 것임을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생활에 여유가 있는 국가들에서는 느린 걸음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캐나다에서 어학 연수하던 시절, 건물 출입구나 화장실 등 문이 있는 곳에서는 뒷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이 느리든 어떻든 끝까지 기다려준다. 앞사람이 느리게 걸어서 방해된다고 눈총을 주는 경우도 없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있는그대로를 받아들일 뿐 답답해하거나 재촉하거나 눈총주는 일이 없다.

하지만 퇴원 후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느린 걸음걸이로 인해 눈총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 지팡이를 꼭 가지고 다닌다. 지팡이 없이도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은 걸음걸이인데 다리 다친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느리게 걷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지팡이를 짚어야 어딘가 불편해서 느리게 걷는구나 한다. 보통 지하철이나 사람 많은 상가에서 이런 이유로 충돌이 잦다. 빨리 타야 되는데 혹은 빨리 내려야되는데, 빨리 지나가야되는데 이런 압박감이 있는건지 사람들은 너도나도 먼저 가겠다고 앞서고 나같은 거북이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넘어지거나 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서두른 만큼 더 빠르진 않던데.. 그렇게 서둘러도 문 닫히는 시간은 여유가 있고, 지나갈 시간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상위권으로 입퇴장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발바닥이 불나도록 걷고 또 걷고
균형문제


균형조절에 문제가 있는 생활형장애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나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 온 체력을 다 쓴다. 건측에 의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여정 내내 한발로 서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수차례 대중교통을 이용해봐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지만 처음에는 흔들림을 감지하지 못해서 여러 번 고생했다. 버스의 높은 계단 두세 칸을 오르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흔들리는 버스에서 중심을 잡기란.. 버스가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방향 따라 발목이 꺾여서 그 뒤로 버스는 잘 안 탄다.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다. ‘ 그래, 마비에 진동자극은 좋은 거지’하고 있다가도 흔들림이 반복될 때마다. 덜컹 한번 할 때마다 종잡을 수 없이 튕겨 나간다. 지하철을 탈 때는 봉으로 된 손잡이에 매달려 딱 붙어서 가야 한다. 이리 저리 튕겨 다니는 나를 보고도 멀리 갔다 오느라 힘들다며,덥고 다리 아프다며 빵빵한 등산가방 안고 잠을 청하는 어머님들이다.

계단이용의 어려움

일반버스를 탈 때도, 지하철 출입구를 들어가고 나올 때도,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될 뻔 한 적이 비일비재하다. 한창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펴면, 발과 발목까지 펴지는(보통 뻗친다고 한다) 현상이 심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면서 인도를 향해 다리를 뻗으면 발바닥이 아닌 발가락과 발등이 땅에 딛어져 넘어지곤 한다. 지하철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다 여정 내내 서있기라도 하면 근피로도가 급증하면서 조절능력을 더 상실한다. 그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면 다리9가 뻣뻣해져서 목각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된다. 목각은 내려가겠지만 위에 있는 몸통은?? 목각이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위에 있는 몸통은 앞으로 고꾸라진다. 올라갈 때도 앞으로 고꾸라지면 나으련만, 올라간 땐 뒤로 고꾸라져서 그대로 저승길이다. 그래서 보통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이마저도 거북이는 쉽지 않다. 노약자,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라고 써있는 그것은 셔틀버스 정도의 이동수단이라 선착순이다. 5-60대 어머님들이 재빠르게 탑승하시고 남은 한 자리에 얻어 타볼까 하면 김동성선수 못지않은 스킬의 대한민국 어머님께 밀려 엘리베이터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내가 첫 번째 탑승객일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타면 서있는 것과 내릴 때가 문제다. 안전하게 탑승했다가도 수많은 인파에 밀리고 밀려 똑바로 서지 못할 만큼 구석에 처박힌다. 마비로 인해 관절들이 유연하지 않아서 각 관절의 각도를 변화하여 서있을 수 없는데 끼어있는 채로 겨우 서있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보면 인파들 사이에 껴있던 몸이 펴지는데 한참이고, 내릴려고 겨우 발을 내딛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서 못 내린다. 그래서 승객이 유독 많은 지하철역에서는 지하철출입구를 벗어나는 데만 몇 십 분이 걸린다. 장애인만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는 역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무분별한 사용으로 정작 편의를 보장받아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 문제다. 그 때문에 30분 이상을 길에 쏟아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시간이 아니란 말인가.

장애인주차구역


뇌병변 장애 4급 판정을 받고,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할 수 있는 장애인주차표지를 받았다. 하지만 재판정을 받으면서 회수 당했다. 왜냐고? 의사가 써 준 진단서 상에 독립보행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민센터에서는 보행상 장애가 있어야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걸을 수 있다는 진단서를 보고 나는 보행상장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독립보행은 가능하지만 일반주차구역에서는 옆에 주차된 차가 있으면 내릴 수가 없다. 장애인주차구역이 넓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차 문을 한껏 열어야 몸을 돌려서 차에서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와서 직접보고 심사하라고 이의신청을 했고, 걷는 것, 옷 입는 것, 간단한 동작들을 시키고 동영상을 찍어갔다. 당연히 보행상 장애로 나왔고 장애인주차가능 표지를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예전에 장애인 등급을 남발하여 주던 시절 때문에 진짜 장애등급을 받기가 어려워졌고 장애인주차가능표지를 받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몸이 유연하지 않은 뇌병변장애인 대부분은 장애인주차구역이 절실하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니까! 장애인주차표지가 행정적으로 관리를 하기 위함일 뿐, 진짜 필요한데 그마저도 이용할 수 없는 게 생활형장애인들이다. 의사가 독립보행이 가능하다고 진단서에 기재하는 순간 멀쩡한 사람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진단서에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과 명확한 기준이 없을까..?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에는 허점이 너무나 많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보여주기식 복지..

항상의문인건, 장애인 주차구역 표지가 없는 보행장애인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고 내리는것을 사람들이 보았을때, 뭐라고 할수 있는 일이냐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진짜 장애인이 주차했을뿐인데 주차표지로 장애를 판단하는 현실에 대한 궁금증.



천천히, 여유롭게


뇌병변 장애인, 생활형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시선을 이겨내야 하며 내 신체의 문제로 인한 세상의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구조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의 변화로 인해 세상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한가지 바라는 변화는 세상을 조금 천천히 둘러보며 살면 좋겠다는 것이다. 걸음이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조금 물러서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배려해주고, 문 한번 만이라도 잡아주고, 기다려주고, 버스 하차벨 대신 한 번 눌러주고, 횡단보도 다 건널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고. 조금만 여유롭게 세상을 천천히 보길 바라는 것은 내 개인적인 문제일까?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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