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환자의 직장생활

퇴원 후 생활3-2. 직장생활


뇌졸중으로 편마비라는 후유증을 가지게 된 환자들의 가장 큰 변화는 본업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일 때 직장에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라 장애를 가지게 되면 못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편견을 없애고자 한손은행원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역시나 한 손으로 일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나 또한 본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근로자 수가 있는 기업은 장애인을 채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면 벌금처럼 사업주가 부담금을 납부하도록 되어있다. 또한 중증 장애인 출퇴근 비용과 장애인 근로자 보조공학기기‧장비 지원 및 그 구입‧사용에 지출한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었다.

필자의 이전 직장은 대기업으로, 이미 장애인채용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굳이 장애인직원을 추가로 채용할 필요가 없는 구조였다. 당연히 권고사직을 당할 줄 알았다. 장애인직원으로서 자리도 없을뿐더러, 기존에 하던 업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발병과 동시에 내 인생의 직장생활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며 체념했다.



개인의 문제는 회사와 별개


하지만 나는 생계형 직장인으로, 급여로 살아가는 서민일 뿐이었고, 복직이 불가피했다. 회사의 인사지침에 따른 휴직기간을 모두 소진하면서 병원 생활을 했던 터라 더 이상의 휴직이 허락되지 않았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춰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한손으로 일할 각오를 하고 복직을 했다. 인사담당자는 나의 상태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회사는 나 하나 정도를 고려할 필요도, 여유도 없는 너무나 큰 조직이었다. 발병 이후 일반적인 근무가 불가능할 수 있음을 고지해왔기에 복직 전 나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대면의 자리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근무가능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유선통화가 전부였고, 혼자 걸을 수 있는지, 대화는 가능한지 정도만 확인한 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일반 영업점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발병 이전에 은행창구에서 근무를 해왔는데, 지폐를 세야하고 컴퓨터로 업무를 해야 하는 직종이라 한손으로 근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직원은 대고객접점에 배치되지 않고 후선업무를 담당하는 곳에 숨겨져(?)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뇌졸중 환자들이 세상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걸 익숙해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나에게는 위험하기도 하면서 체력적으로 더 힘들 수 있는 근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 한명쯤의 불편함은 회사에서 다룰 중대한 사항이 아니었다. 보직변경, 근무지변경, 사무환경조성 등 나 하나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신경 써 줄 대기업이 아니었다. 이러고도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장애인 고용과 현실의 괴리


복직을 하면서, 부서의 이동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은행은 대고객을 담당하는 영업점에서의 업무도 있지만, 그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숨어있는 부서 및 업무들이 많다. 당연히 그쪽으로 발령이 날줄 알았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생긴 복시와 사시로 인해 사람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가 힘들뿐더러, 불완전한 신체에서 나올 움직임과 업무실수 등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대고객업무를 하면 회사 입장에서 곤란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후선업무로의 이동을 꾸준히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직군의 문제였다. 영업직군으로 채용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입장에서 나 같은 경증 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으로 채용되었다가 장애인이 된 경우에는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중증 장애인이 채용되어있기 때문이다. 후선에 있는 장애인 직원들은 폐기문서 파쇄, 서류 전달 등 단순한 노동으로서의 업무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직렬은 아니며 그렇다고 나만 개인적으로 편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편의를 바란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달라고 한 것뿐인데 요행을 바라는 직원으로 낙인 찍혔고, 내가 포기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된 경우에 대한 별다른 지침이 없었다. 한 손으로 일을 하든, 사고를 치든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은행에서 열심히 했던 흔적
마감하는데 전 화폐'27'이나와서 신기했다


열악한 근무 환경


한 손으로 일을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기본 근무 환경이다. 장시간 앉아있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내 관리자가 의자도 바꿔주고 근무환경을 개선해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근본적인 환경을 바꿀 수는 없었다. 왼쪽마비인 나는 사무기기들과 장비들이 오른쪽에 위치해야 했는데 대부분 왼쪽에 배치되어 몸을 비틀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자리에서 고객이 보여야해서 대부분 장비들이 한 쪽으로 몰려있다) 늘 허리통증과 어깨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을 본사 측에 개선 또는 변경가능한지를 전달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전 지점이 통일된 사무구조이며, 한명에 맞춰 변경할 경우 다시 원상 복귀하는 비용이 수반되고, 구조변경에 대한 규정도 없다는 것이다.(주기적으로 순환근무를 한다) 대단한 변경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서랍이나 장비위치를 오른쪽으로 바꿔도 되냐는 것이다. 나 하나 때문에 바꿀 수 없는 회사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적어도 약간의 변경은 해주는 게 직원을 대우해주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몸이 같지 않은데, 같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면서 동일한 성과를 내라는 입장이 모순 아닌가. 그래서 근무하는 동안 사내 제도를 고쳐보려, 장애인 직원 인식개선에 일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기업이라는 곳에서 몸이 불편한 직원을 위한 제도나 지침이 없을뿐더러, 개선의지 또한 전혀 없었다.

결국 나는 키보드 및 마우스뿐만 아니라 기타 장치들을 전부 한손으로 다뤄야 했고, 동선 또한 여전히 맞지 않아 사무실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엉덩방아찧기도 수차례 있었다. 자세와 감각 문제로 바퀴 달린 의자를 쓸 수 없는데 내 몸에 맞는 의자로 바꾸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한 열린 사고의 관리자가 바퀴를 뺀 의자를 제작해준 정도로 사무환경개선이 끝이 났다. 결국 그 의자도 나의 신체 상태에는 맞지 않아서 여기저기 몸에 문제가 많이 생겼었다. 나의 은행생활은 총9년, 복직 8개월만에 끝이 났다.


관리자가 바꿔준 바퀴뺀의자


편마비로 일해보니..


편마비가 있는 환자들은

일단 앉아있는 것이 힘들다. 흔들리고 움직이는 의자에서는 더 그렇다.

한손으로 키보드를 치면 치겠지만 속도도 느릴뿐더러 오타가 잦고 손목에 무리가 많이 된다. 한손용 키보드도 있지만 회사의 정해진 가구에 맞지 않아 일반키보드를 한손으로 치는 연습을 하는 편이 낫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배뇨 문제도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화장실이 사무실 밖 건물에 있어 급한 용무가 있을 때 어려움이 있다.

개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개별적인 사무환경 변경이 가능할 수 있지만 사무환경을 일괄로 관리하는 대기업은 쉽지 않다.

뇌손상이 있다 보니 주의력이나 기억력, 시야 등의 문제가 업무숙지를 어렵게 한다.

빠른타자를 위한 기준점들 표시



일하면서 받은 오해들(뇌손상의 한계)


보고해야 할 일을 까먹거나 하는 일이 잦아서 자주 혼 난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해낼 수 없어 업무속도가 떨어진다(주의전환의 한계)

한 손으로 주고받아야 해서 예의 없게 보일 수 있다.

물건을 나르고 힘쓰는 일은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해서 눈치 보인다.

업무를 숙지하는 데까지 꽤 오래 걸린다(주의, 집중력의 한계)

신체적 불편함과 어려움을 동료들도 이해하지 못 한다

감정조절이 잘 안돼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조금 집중도있게 일하면 잠이 쏟아지는데 10분 남짓의 잠깐의 휴식도 용납되지 않는다..잠과의 전쟁..


회사 선배의 따뜻한 마지막인사

생활형장애인의 직장생활


뇌졸중으로 인해 의지나 삶의 가치가 달라져서 본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된 생활형 장애인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고 높음을 많이 체감했다. 장애인고용 관련법들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나같은 케이스는 날로 늘어날 것이다. 중증장애인이 아닌 생활형장애인들도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름의 고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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