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들이 퇴원을 앞두고 꼭 준비해야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모로 안전한 병원이 아닌 진짜 날 것(生)의 생활을 하게 되는 만큼 안전을 가장 일순위로 두어야 한다. 대부분은 가족 중에 장애가 생긴 첫 사람이 해당 환자일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집엔 편마비 환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안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의 준비 목록은 내가 퇴원하고 나서 유용하게 잘 썼고, 지금도 쓰고 있는 것들을 준비물로 나열해 보았다.
안전바(손잡이)
움직임이나 균형문제가 심각할수록 안전바는 곳곳에 필수로 설치해 두어야 한다. 나는 항상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서 운동하는 곳 한군데에만 안전바를 설치해두었는데, 경우에 따라서 화장실이나 침대 옆 등 낙상이 자주 일어나는 곳에 설치해두는 것이 좋다. 안전바는 업체에서 직접 시공을 할 수도 있고, 사용자가 직접 설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저렴한 안전바를 사서 직접 벽에 설치하는 방법으로 했는데, 운동하다가 균형을 잃거나 힘들 때 잡을 수 있어 매우 안전하고 용이하다. 안전바의 길이나 모양이 다양하다. 각자 처한 환경과 신체에 맞는 안전바를 골라 설치해두는 것을 권장한다.
집에설치한 안전바
미끄럼방지 매트
욕실에서 없어서 안 될 물품이 바로 미끄럼방지 매트이다. 우리 집은 샤워실이 따로 없고 욕조에 들어가서 씻어야 하는 구조인데, 발의 감각이 떨어지다보니 욕조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비누칠이라도 하면 서있을 수도 없어 미끄럼방지매트를 깔아둘 수밖에 없었다. 욕조에서 미끄러지면서 욕조 밖으로 넘어지는 위험천만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다행인 것은 발병 이전부터 화장실을 건식으로 쓰고 있어서 타일에서 미끄러질 일은 없었다. 욕조는 타일과 다르게 일체형의 민무늬라 유난히 더 미끄럽다. 욕조 안에 미끄럼방지매트를 두면 욕조의 물이 완벽하게 마르지 못해서 물때가 엄청 낀다. 다양한 종류의 미끄럼방지매트를 써봤지만 쓰고 완벽하게 건조시켜도 물때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미끄럼방지 스티커이다. 욕조에 영구적으로 붙여두는 건데, 매트만큼 미끄럼방지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까끌까끌한 스티커의 표면이 감각이 둔한 마비측 발에 좀 더 자극이 되어서 바닥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욕조용과 타일용이 있는데 두 개가 역할이 다른가보다. 반드시 용도에 맞는 미끄럼방지스티커를 사시길 바란다.
각종 신체 보조(보호)용품
퇴원을 하면 아무래도 오프로드(?)스타일의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병원처럼 안전시설이 잘 되어있지도 않고, 사람들이 환자라고 이해해주지도 않고, 길도 깨끗하게 평평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보다 확실히 부상위험이 높다. 그래서 퇴원하고 바깥활동에 적응될 때까지는 신체 상황에 맞는 보호용품들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아직도 포기 못하는 것은 발목보호대다. 지금은 발목에 발목보호대 대신 스포츠테이핑을 하고 다니지만 퇴원하고 나서 발목 부상이 워낙 잦아서 발목보호대의 기능이 강력한 것으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면서 써왔다. 다행히 재활기간동안 썼던 어깨 보조기나 무릎보호대를 더 이상 쓰지는 않지만 자주 부상을 입는 부위에 대한 보조용품은 부상방지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회복과 생활 적응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료용 보조기나 보호대는 외관상 안 좋다. 아픈 사람 티가 팍팍 나는 디자인이다. 일상생활을 할 때 오히려 불편감을 줄 수 있어서 퇴원 후에는 보조기에 의지하는 양상도 줄일 겸 일반 스포츠용 보호대를 쓰는 것도 추천하는 바다. 가장 큰 장점이 외관상 특별히 이상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생활환경 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워낙 통증을 달고 살아서 각 신체부위별 보호대들이 시중에 잘 나와 있다. 꼭 뇌졸중 재활 목적의 보조기나 보호대가 아니더라도 환자의 몸에 잘 맞고, 쓰기 편하며 부상예방의 효과가 있는 보호용품이라면 그 어느 것이라도 좋다. 딱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부상방지이다.
늘 하는 발목보호대
지팡이
나는 퇴원 후 지팡이를 쓸 생각이 없었다.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내 나이 겨우 서른이었는데 나보고 노인용 지팡이를 짚고 다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보행치료를 할 때부터 지팡이 없이 걷는 연습을 했고, 퇴원을 앞둔 사람들이 지팡이를 장만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게 나의 현실로 다가올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뇌졸중환자용 지팡이는 노인용지팡이로 바닥에 닿는 지팡이 끝이 뭉뚝하고, 미끄럼방지 기능을 하는 고무패킹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디자인이 촌스럽다. 그래도 그 중에 여성스럽고 예쁜 디자인을 찾으면 꽃무늬 지팡이가 그나마 여성스러웠다. 결국은 올검 지팡이를 택했지만.. 퇴원을 하고서도 지팡이는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리를 절뚝거릴지언정 지팡이를 들고 다닐 용기가 없었다. 사람들이 날 얼마나 이상하게 볼지 두려웠다... 지팡이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끝까지 콧대높이고 있던 내가 지팡이를 사용하게 된 건 밖을 많이 다니면서이다. 밖에서 더 잘 걷기 위해 산 것은 아니었고, 이역시도 부상방지를 위해서다. 편마비로 인해 몸이 불완전하다보니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만 스쳐도 휘청거리고 금세 넘어진다. 그리고 외출하면서 꾸준히 듣는 ‘ 왜 이렇게 앞에서 알짱거려’,‘왜 빨리 안가’와 같이 느린 보행속도로 인한 의도치 않은 진로방해를 안하기 위해서였다.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아, 어디가 불편한가보구나 하고 서로 조심하게 된다. 지팡이는 사람들과의 충돌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환자임은 표시해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지팡이에 ‘팡팡이’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로 나의 일부가 되었고, 기회가 된다면 커스텀마이징을 해서 나만의 스타일리쉬한 지팡이로 꾸미고 싶다. 노인지팡이 말고 젊은 여자 환자용 멋들어진 지팡이는 없나요?
팡팡이와 산책
사실 일반인들이 몸 불편한 나 같은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장애인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중증이 아닌 나 같은 생활형 장애인들이 오히려 일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진로방해. 배려를 받으려고 하지만 말고 생활형장애인도 한 번쯤은 내가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세상이 부당하다고 서로 탓하지 말고, 환자든 아니든 서로를 위해 배려한다고 생각하면 더 멋진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언젠가는 생활형장애인이 근처에 많이 보일 날이 올수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