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뇌졸중후유증 극복하기

상상 훈련을 하자


뇌졸중 환자들의 편마비후유증 재활에 있어서 반가운 소식이 있다. 바로 상상훈련(정신훈련)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다.



정신훈련과 상상이 실제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파스쿠알-레오네는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일련의 멜로디를 가르쳤다. 방법은 어떤 손가락이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연주되는 음들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 정신훈련’ 집단의 사람들은 전자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서 하루에 두 시간씩 5일 동안 자신이 그 멜로디를 연주한다고 상상하면서, 연주되는 멜로디를 들었다. 두 번째 ‘신체 훈련’ 집단의 사람들은 하루 두 시간씩 5일 동안 실제로 음악을 연주했다. 파스쿠알-레오네는 두 집단 모두가 그 멜로디 연주를 학습했고, 두 집단 모두에게서 뇌 지도의 변화가 유사하게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정신 훈련만으로 실제 곡을 연주할 때와 똑같이 운동계 안에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5일이 지났을 때 근육으로 보내는 운동신호에서의 변화는 양 집단에서 똑같았고, 상상 연주의 정확도는 실제 연주가 3일 째에 보여주었던 정확도와 같았다.

정신훈련 집단에서 5일 만에 이룩한 발전의 수준은 상당한 것이기는 해도, 신체 훈련 집단에서 보여준 것보다는 떨어졌다. 그러나 정신 훈련 집단이 정신 훈련 직후 딱 한 번 두 시간 동안 신체 훈련을 받자, 전체적인 연주 수준이 신체 훈련 집단에서 5일째에 보였던 수준만큼 향상되었다. 정신 훈련이 최소한의 신체 훈련으로 신체적 기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기적을 부르는 뇌’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파스쿠알-레오네가 알아낸 정신훈련의 효과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 (image training)은 체육분야 등에서 올바른 기술 따위의 습득을 위하여 머릿속에 그 운동이나 동작을 그려 보는 연습방법이다. 영어권에서는 브레인 트레이닝(Brain training) 또는 멘탈 트레이닝(mental training)으로 불리고 있다. 이 방법은 실제의 연습과 병용함으로써 효과를 나타내나, 단독으로는 효과가 적다. 이 방법의 장점은 피로가 적으며 공포심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의 향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밖의 효과도 큰 것이다.(_네이버 백과사전)



뇌졸중 재활과 이미지트레이닝


이미지 트레이닝은 체육 분야에서 기술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무대공포증이나 심리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 재활에는 어떨까? 정신훈련 집단에서의 뇌지도의 변화와 신체훈련 집단에서의 뇌 지도의 변화가 똑같았다고 한다면.. 상상만으로 실제로 움직이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상상만으로 진짜 움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제약이 있다. 정신 훈련, 즉, 이미지트레이닝이 효과 있으려면 신체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정신 훈련 단독으로는 효과가 적다.



훈련? 운동? 연습?


나는 재활을 할 때 훈련과 운동, 연습과 시도를 구분한다. 특히 훈련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책에서도 계속해서 훈련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나올 것이다. 훈련은 단순한 연습과 다른 의미라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훈련의 사전적 정의로는 “기본자세나 동작 따위를 되풀이하여 익힘.”이라는 뜻인데, 뇌졸중 환자들이 한 번 시도해보는 것, 그냥 조금 연습해보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훈련은 단어 그대로 기본자세나 동작 따위를 되풀이하여 익히는 것이다. 뇌졸중 재활을 위한 ‘훈련’은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고, 집중력이 꼭 포함되어야하는 연습이자 운동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내가 하는 훈련들을 운동이나 연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경계한다. 내가 어떤 훈련을 하는 동안은 굉장히 몰입해 있는 순간인데, 옆에서 “어머, 연습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하면 나는 정색하고 “훈련하는 거에요”라고 정정해준다. 상대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뇌졸중환자에게 훈련은 매우 중요하고,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활동이라 이런 훈련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뇌졸중 환자들 스스로도 반드시 훈련의 가치를 느끼고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피아노 치는 것이 목표


발병 이전에 나는 종종 피아노를 치곤했다. 이루마의 연주곡이나 영화 OST 등 내가 쳐볼 수 있는 난이도의 곡은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취미가 있었다. 하지만, 편마비로 인해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은 꽤나 절망적이었고, 나는 이 재활의 최종 목표를 피아노 치는 것으로 잡았다. 건반 한번 눌렀다 떼보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곡을 연주하기!


마비가 생기니 피아노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 가만히 올려놓기만 해도 팔은 주르륵 흘러내리고 이 흘러내리는 팔을 유지해보려고 애를 쓰면 손에 강직이 생겨 주먹이 쥐어진다. 그렇게 건반위의 내 손은 주먹을 쥔 채로 뒤집어져 있다. 주먹 쥔 손의 손등으로 피아노를 때려야 하는 것이다..! 내 목표는 목표고, 뚱땅뚱땅 건반누르기라도 먼저 할 수 있어야 다음단계가 될 것만 같다. 아무튼, 피아노를 치겠다는 허황되고도 엄청난(?)(보통은 편마비 환자의 피아노치기를 거의 불가능으로 본다) 목표를 위해 이 책을 보고 난 후 상상훈련에 돌입했다. 병원은 확실히 바깥보다 훈련하기 좋은 환경이다.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적어서(이럴 때는, 졸졸 따라다니는 보호자가 가장 큰 방해요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고도의 집중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덩굴 줄기처럼 돌돌 말리는 손으로 피아노 치는 상상은 너무 현실성이 떨어져서 손이 좀 벌어질 수 있는 동그랗고 두툼한 인형은 손에 끼고(?), 책상에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올린다. 이 순간 나는 거의 피아니스트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즐겨 치던 이루마의 연주곡‘ River flows in you’를 재생한다. 안되겠다. 너무 빠르다. 왼손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동요로 바꾼다. 나는 고유 감각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편이라 눈을 감으면 손가락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다섯 손가락의 화려한 움직임이 핵심인 피아노를 친다? 상상으로도 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느껴지지 않으니 시각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손이 제대로 책상에 올려 있는지, 떨어졌는지 확인할 수가 없고, 손을 보면서 상상하면 건반 누르는 상상과 함께 손에 힘을 주는 욕심을 내게 돼서 손가락들이 또 돌돌 말려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상상훈련 조차 쉽지가 않았다. 매일 1시간씩 한 달을 했더니 그래도 상상 훈련을 하는 동안 노래에 집중하고 상상에 집중하는 시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각성상태를 만들어주는 듯 했다. 그 시간이 안정되고 좋았다.



피아노 치는 상상의 결과


그렇게 한 달을 고도의 집중을 동원한 상상훈련을 하며 보냈더니, 손가락이 움직여졌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뇌손상으로 움직이는 회로의 문제가 생겨서 그런지 제대로 움직이는 상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르는 상태가 되니 상상조차도 되지 않아서 피아노 치는 상상이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위치라도 뇌지도를 그리자는 생각으로 상상 훈련을 계속 했었고, 덕분에 피아노를 칠 때 어떤 손가락이 어느 건반을, 그다음 건반엔 이 손가락이 놓이겠다는 상상이 조금 더 가능해졌고, 왼손 새끼손가락이 도를 누르고 있으면 약지는 레, 중지는 미, 엄지는 솔을 번갈아가며 누르는 상상까지도 가능해졌다. 마음으로는 마비된 내 손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렇게 고유감각도 좋아진 듯 했다. 피아노 건반에 맞춰 내가 쓰고자 하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상상이 가능해졌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몇 번째 손가락인지 못 맞춘다. 상상은 상상이고, 현실은 현실인가..? 너무해....... 비록 어떤 손가락인지 못 맞추고, 손가락이 움직이지도 않지만 이제는 ‘하농’이라는 피아노 교본집으로 왼손 연주를 연습하는 상상을 한다^^



뇌가소성 실험


아..! 상상 훈련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상상훈련을 스스로 ‘뇌가소성실험’이라고 명명했는데, 상상 훈련이 뇌가소성실험이라고까지 거창해진 데에는 가소성 관련 책들을 읽은 것과 영화‘루시’의 영향이다.

영화‘루시’

노먼 박사가 지난 20년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인간이 뇌 용량의 20%를 사용할 경우 우리몸의 제어가 완전히 가능하고 40%를 사용할 경우 타인을 조종하는 단계, 사물을 조종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루시 역시 실제로 20~30%를 사용할 때 그 모든 경험을 했고 노트북 2대를 10명이서 사용할듯한 스피드로 사용하는가 하면 몸속의 핏줄, 핏줄속에 흐르는 피까지 다 느낄수 있고 본인의 세포제어가 가능하여 머리카락의 길이나 색깔까지 순식간에 바꿔버릴수도 있습니다. 생물체인 나무의 속 세포움직임까지 모든게 상세하게 보이는 루시. [출처] 영화 "루시" 정보와 리뷰 - 인간 두뇌 사용량 10%, 돌고래 두뇌 사용량 20% (출연진과 평점)|작성자 김블랙


최민식,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 루시’는 고작 뇌 용량의 10%만 사용하는 인간이 그 이상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액션영화인데, 주인공인 루시(스칼렛요한슨)가 뇌를 2-30%에서 40%까지 사용했을 때 마치 초능력을 쓰는 것과 같은 능력들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비록 뇌손상을 입었지만, 손상되지 않았거나 아직 안 쓰여진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10% 그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뇌를 개조해보자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은 마치 영화 속에서 루시에게 실험을 하는 것처럼 나도 실험중이라고 상상하고 ‘뇌가소성실험’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간의 뇌가소성 실험을 마칠 때쯤,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2020년 7월 18일

제목 : 뇌가소성 실험

루시처럼..

상상으로 좌뇌를 우뇌에 복제 및 연결해보자

6/15부터 뇌가소성실험스타트

잠도 못자고 시작

일명 브레인브릿징?

인터널커넥팅? 흠.. 굿나잇



과도한 각성상태의 연속


별거 아닌 메모지만 저 당시의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 상태이기도 했다. 한 달 동안 고도의 집중을 동반한 상상훈련을 했더니 상상훈련을 할 때만큼의 각성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깊은 잠에 들기 직전에... 렘수면상태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상상훈련을 할 때의 각성상태가 잠들기 전에 심지어 자면서도 일어났는데, 상상훈련을 할 때 뇌의 시스템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자면서 동일하게 받았다. 컴퓨터가 부팅되어 돌듯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활동이 일어났다. 수면 중이 아닌 의식이 있을 때는 손상되지 않은 좌뇌의 구조와 기능이 우뇌에 복제되는 중이라며 영화 속 실험장면을 떠올리고 상상했다. 그렇게 해서 썼던 메모이다. 자는 동안 두뇌 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으면 좌우 손을 대칭되게 자세를 취하고 뇌가 그정보를 복제하는중이라고 상상했다. brain bridging, internal connecting은 내가 상상하면서 만든 단어이다^^;; 약간 정신이상자 같지만 뇌손상자인 나만이 느끼고, 할 수 있는 해괴한 상상이다(하하;;)

좌뇌의 기능이 그대로 우뇌에 복제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회복에 대한 나의 염원이 담긴 상상..


아, 이 실험기간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자는 동안에도 계속 돌아가는 시스템 때문에 계속 깨어있는 것 같았다. 자는 동안에도 꿈에서 상상훈련을 하고 있고, 그 때의 각성 상태를 고스란히 느끼는 것만 같았다.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달을 밤샌 것 같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싶어서 더 이상 상상훈련과 망상을 하지 않았다. 과도한 각성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 잘못될 것 같아서 나의 뇌가소성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실험을 통해 얻은 것은.. 피아노를 칠 수 있겠다는 희망과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것. 그리고 질 높은 수면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keyword
이전 29화뇌졸중 인지재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