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 외우기부터
뇌졸중을 겪게 되면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지의 문제도 많이 나타난다. 대부분 기억력, 집중력, 주의력의 문제가 생기는데 아마도 어딘가의 뇌손상으로 뇌신경회로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제 기능을 못하는 손상부위를 다른 부위의 어디선가 대신해야만 하니까 그것을 처리하느라 다른 정보들을 처리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손상부위로 에너지를 보내줄 수 있으니까? 라는 필자의 작고 귀여운 상상이다.
인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환자와 보호자들이 흔히 말하는 인지의 문제는 정상적인 대화와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조금 일반적이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 ‘인지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도 발병 초기에는 헛것도 보고 헛소리도 하고, 이상한 행동도 많이 했다. 인지기능평가에서 정신이 또렷한 상태를 뜻하는 ALERT를 받을 수 있기까지 3개월 남짓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인지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럼 인지장애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화를 하고 말도 잘하는데 코끼리라는 상하지 자전거의 손잡이가 마치 사슴뿔 같다며 왜 사슴 자전거라고 안하고 코끼리 자전거라고 부르냐며 호탕하게 웃는 나는 왜 인지장애가 아닌 것일까? 생활에 문제가 전혀 없는데 숫자를 순서대로 세지 못하고, 옷의 앞뒤를 구별 못하는 환자는 왜 인지장애가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인지 기능 평가
뇌졸중으로 진단받고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여러 가지 기능평가를 한다. 신체기능부터 인지기능까지. 정해져있는 평가기준에 맞춘 검사와 평가, 진단을 하게 된다. 인지기능평가 항목에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어있는데 수 개념, 공간지각력, 기억력, 언어력 등이 들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받았던 인지기능평가 항목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00에서 7씩 뺄셈하기, 1에서 100까지 숫자세기, 단어 3개 외우기, 그림 외워서 따라 그리기, 4개중 다른 하나의 그림 찾기, 길에서 신분증을 습득했을 때 해야 하는 행동 등. 초기 평가에서 제대로 해낸 것은 그림 그리기, 다른 그림 찾기, 단어3개 외우기뿐이었다. 같은 사람, 같은 문제, 같은 평가시간을 가지고 여러 번 측정을 하더라도 인지기능평가를 하는 환경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인지기능평가로 환자의 인지상태를 진단하고 가늠 하는 것은 정확한 인지기능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가받는 동안의 치료실의 분위기나 그때의 감정에서는 1부터 숫자를 못 세고 5,10,15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병실로 돌아오면 1,2,3 순서대로 셀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인지기능평가로 얻은 결과에 대해 좌절하거나 환자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평가 받는 순간의 일시적인 긴장으로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고, 평가자의 융통성에 따라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인지가 좋아졌다, 재활을 본격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환자 스스로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할 때이다. 인지 회복의 기대 수준을 그렇게 높게 잡아야하는 이유는 그래야 환자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덜 받으며 회복을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심리, 교육 등의 여러 분야에서 메타인지가 대세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앎’에 대한 중요성이 여러 자기계발 분야에서 화두가 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일반인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뇌졸중 환자들에게 메타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본인의 신체, 감각 등을 스스로 분석, 인지할 수 있어야 뇌졸중으로부터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지가 정상이다. 인지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는 기준이 메타인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 수준이 높아야 재활의 의지와 방향을 논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인지기능 또한 좋아지기 때문이다.
메타인지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보자.
1. 개요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공자(논어)
γνῶθι σεαυτόν너 자신을 알라.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기가 생각한 답이 맞는지’, ‘시험을 잘 쳤는지’, ‘어릴 때의 이 기억이 정확한지’, ‘이 언어를 배우기가 내게 어려울지’ 등의 질문에 답할 때에도 사용되며, 자신의 정신 상태, 곧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정상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상위인지, 초인지라고도 한다.
메타인지는 아이들의 발달 연구를 통해 나온 개념이므로 교육학 등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다. 뛰어난 메타인지능력을 가졌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전을 함으로써 학습속도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영을 한 달 배운 아이가 '나는 100m를 완주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만약 완주할 수 없다면 나에게 부족한 게 체력인지 기술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메타인지가 사용되므로, 메타인지능력이 높다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더욱 정확히 파악해 시간과 노력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투자하므로 효율성이 높아진다.
또한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메타인지능력은 향상된다.
사람의 무지함을 일깨우려 할 때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진짜로 위험한 건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등으로 등장한다.
2. 메타 인지의 요소
메타인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요소로 분류된다.
서술 지식 - 자신이 학습하는 부분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지식과 능력을 가졌는지 아는 능력
절차 지식 - 이해 정도를 아는 능력.
전략 지식 - 지식 습득 방법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는 능력.(출처_나무위키 메타인지’)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식과 조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과 그 계획의 실행과정을 평가하는 것에 이르는 전반을 의미한다.1) 그리고 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사고과정 전반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수행하거나 배우는 과정에서 어떠한 구체적 활동과 능력이 필요한지를 알고, 이에 기초해서 효과적인 전략을 선택하여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또 다른 지적 능력 메타인지 -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생활 속의 심리학, 김경일)
메타인지는 자신의 사고나 행동을 내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한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요소이다. 뇌졸중 재활은 ‘환자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말이 항상 언급되는 만큼 스스로가 회복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고, 그것을 설명,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메타인지는 또 다른 말로 자기주도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맞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물론 치료를 본인 손으로 직접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세 조절이나 근 긴장 조절 등 환자 스스로 할 수 없는 영역은 재활치료사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아야하고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지 수준이 좋아져서 스스로 재활에 의지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회복할 수 있고, 삶의 질 또한 향상될 수 있다. 치료에 의존하는 회복과정보다 혼자 힘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 회복 속도가 더디고, 모양새도 안 좋을 수는 있지만, 확실한건 정신적으로, 뇌졸중 환자로써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좋은 점이 더 많다.
환자가 병원에서 주로 하는 일은? 치료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받는 것에 대한 주도성을 키우는 것이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연습이다. 그래서 시간표나 치료실을 스스로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나는 시간표를 외우고 쓸 수는 있었지만, 진짜 그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우측뇌가 손상되면 상대적으로 시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현실에서 유난히 제 시간에 맞는 치료실을 찾아다니는 것이 어려웠다.
시간표를 달달 외우고 길을 외워서 치료실을 찾아가는, 단순히 기억력을 올리기 위한 연습이 아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해보는 연습도 되는 시간표 외우기는 환자가 치료에 대한 주도성을 가지도록 할 수 있는 좋은 인지훈련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일어난 일, 일어날 일을 순차적으로 떠올려보게 한다. 그래서 첫 시간은 어느 치료실에 어떻게 갔고,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떠올리면서 기억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해주자. 공간이 어려우면 어떤 치료사를 만났는지, 누구와 함께 갔는지, 환자가 인식하기 쉬워하는 요소들로 사건의 흐름을 떠올릴 수 있게 하자. 그렇게 한, 두 시간 치료시간과 치료실, 치료사를 떠올리다보면, 점점 오전 일과가 완성되고, 오후 일과를 넘어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기억해낸 일과의 시공간에 스스로를 대입함으로써 메타인지도 좋아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치료스케줄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주도성으로 치료에 더 적극적이고 재활에도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것보다 치료스케줄을 스스로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인지재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