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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Nov 24. 2023

5화 - 발표

 "수현, 그동안 많이 공부했네. 밤늦게까지 남아서 열심히 하더니. 사수 영우랑 의논해서 연구 방향 더 깊게 잡아 봐." 교수님의 칭찬에 선배들이 씩 웃는 게 수현의 눈에 들어온다. 수현은 그제야 마음이 한결 놓인다. 매주 토요일 연구 발표 시간이다. 2~3개월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데, 수현은 입학한 지 1년이 될 때쯤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다. 거창한 칭찬은 아니고 지금 잘하고 있다 정도의 독려지만 무척이나 내심 기뻤다. 선배들이 가는 길은 빛나 보이는데, 자신 혼자 못 따라가고 내심 버거워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죽던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연구 발표를 끝내고 일과를 마무리하고 내려가는 산 길이, 일주일 만에 벗어나는 학교 울타리가 무척이나 반갑다. 어느새 추워진 겨울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이 온몸을 감싼다. 아, 일단 끝냈다.

 

 봄 학회 수현은 그동안 연구 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포스터 등록만 하고 붙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강의실 내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대학원생뿐 아니라 교수님들, 관계자분들도 많이 찾아올 것이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작 이 짧은 기간 공부한 내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대답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학회 자료 발표 준비에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니, 발표 전 날이 다가왔다.

 "수현, 준비 많이 했어?" "하긴 했는데, 걱정돼요." "뭘 걱정해, 어차피 너보다 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야. " "네, 선배" "네가 아는 것만 사실로 말해. 모르겠으면 앞으로 더 연구해서 알아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돼. 네가 얼마나 아는지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야. 너의 태도를 보는 거지. 그러니 긴장하지 말고 발표 잘해." 술자리에서우스갯소리만 하는 선배지만 연구실에는 따끔하게 지적하는 선배가 웬일로 따뜻하게 말을 건네와 놀랐다. 

 "수현, 공부 많이 했어?" "수현, 이거 다 알겠어? 설명해 봐." "수현, 실험 계획 다 세웠어?" "수현, 얘네들은 한 번 읽으면 아는 애들이야. 그런데 나는 이해가 안 가. 그래서 수십 번을 읽어." 논문을 보면서 입학 초 선배가 말을 건넬 때는 '저 사람 뭔데 저렇게 재수없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알고보니 수현이 들어오기 전 유일하게 타대에서 입학했던 선배는 나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연구실 내 최고 연차가 되었고, 누구보다 연구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수현이 보기에 그 선배의 강점은 성실함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수현은 글자 중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대학원 생활 내내 문자를 읽어댔다. 학교에서는 논문을 하루 종일 보니, 집에 와서까지 논문을 보고 싶지는 않았고, 그 대신 책을 읽었다. 그 시절 수현은 책에 매달리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그것만이 수현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수현은 여러모로 연구실 선배들을 좋아했다.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따라갈 수 없는 그들 리그에 간극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사람들 덕분에 많이 배우면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다. 석사만 하고 졸업하려던 입학시절의 계획을 박사 과정까지 할지 고민하게 할 정도로 함께하는 에너지가 좋다. 나만 잘하면 되는데, 도통 공부를 해도 해도 비교만 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현은 마음을 다 잡고 내일 발표 준비를 한 번 더 하고 기숙로 내려갔다.

 다음 날 학회장에 가서 수현은 발표 시간을 기다렸다. 떨리긴 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이었다. 발표야 외운 것을 말하면 되는 것이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걱정했던 부분은 질의응답시간이었는데 전 날 선배가 알려준 대로 매끄럽게 진행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 발표를 마치고 나니 쾌감과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다. 수현 연차에는 잘 시키지 않는 발표를 교수님이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하게 되었는데 해냈다는 자신감에 기쁨이 커졌다. 똑똑한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이라고 혼자 느끼고 있던 수현은 오히려 자신이 특별하게 인정받는 눈치라 뿌듯했다. '박사 과정을 진학해야 할까? 생각보다 잘할 것 같은데' 행복한 고민이 되는 수현이다.

 박사로 계속 학위를 이어가든 취업을 하든 일단 석사 과정 졸업은 해야 하니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사실 요새 수현은 바쁜 연구 속에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입학보다 졸업 영어 커트라인 점수가 더 높아서 시험 점수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 연말부터 시험을 보고 있는데 번번이 점수를 만족하지 못한다. 입학과 졸업 점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서 신경 쓰였다. 20~30점만 더 높이면 되니 이번 봄에는 어서 점수를 만들어 놓아야겠다. 그러고 나서 박사를 할지, 석사만 할지 좀 더 깊은 고민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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